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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영원 장미라사 대표]"옷은 인격을 담는 그릇, 멋쟁이 치고 못된 사람은 없어요"

가심비 높은 '나만의 옷' 뜨면서

맞춤 남성복 제2의 전성기 도래

'비스포크 슈트' 명품 인정 받아

젊은 친구들도 배우러 공방 찾아

슈트의 핵심은 우아함과 클래식

어떤 스타일이라도 균형이 중요

네팔 왕실·英여왕 남편 등이 고객

성공한 사람이 꿈꾸는 옷 되고파





옷은 사람에게 어떤 의미일까. 평생 옷만 생각하고 살아온 장인이 있다. 62년 전통의 비스포크(비접착식 맞춤) 전문점 ‘장미라사’의 이영원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옷은 인격”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옷을 통해 “나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혹자는 형식(옷)은 중요하지 않고 내용(됨됨이)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대표는 “내용이 중요한 만큼 형식도 중요하다”며 “형식이 없으면 내용을 어떻게 증명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옷은 자신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나한테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를 함부로 대하는 이가 타인에게 과연 진정으로 잘할 수 있을까요. 멋쟁이치고 못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거울을 자주 보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자기 관찰을 많이 하니까요. 옷 때문에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옷을 잘 입으면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힘이 나거든요. 집을 왜 인테리어하겠어요. 집 또한 인격을 가진 옷이기 때문이에요. 옷은 말입니다, 내 인격의 가장 가까이에 있습니다.”

요즘 기성복이 주축을 이루던 남성복 시장에 맞춤 양복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맞춤 양복은 이제 젊은 층에게 고루하다는 이미지가 아닌 ‘가심비’ 가득한 ‘나만의 옷’이라는 강점으로 다가왔다. 맞춤 양복 중에서도 특히 옷을 만드는 대부분의 공정을 손바느질로 하는 비스포크 양복은 장인의 정성이 더해져 진정 소장가치가 있는 명품으로 다시금 인정받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장미라사다. 명품은 더 이상 브랜드가 아니라 소재·디자인·희소성 등 절대적 가치의 차별화가 경쟁력이다. 이제 남에게 보이는 것이 목적이 아닌 나도 좋은 것이 명품, 바로 비스포크와 맞닿는 부분이다.

장미라사는 지난 1956년 삼성 제일모직 양복에 대한 테일러링 테스트를 위한 부서에서 출발했다. 고(故) 이병철 회장이 좋아했던 꽃이며 제일모직의 상징인 ‘장미’와 유럽 양복지를 뜻하는 말인 ‘라사’가 합쳐진 용어다. 1970년대부터는 독자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기 시작해 1988년 제일모직에서 독립, 이 대표가 장미라사를 맡으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장인 브랜드로 꼽히게 된 것이다. 슈트의 가격은 300만~500만원에 달해 그야말로 하이엔드다.

서울 태평로 본사에서 만난 이 대표는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컬러 ‘울트라 바이올렛’의 머리색과 더불어 그라데이션이 된 바이올렛 셔츠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패션 전문가답게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튀는 컬러 염색이라도 자신이 매칭한 옷과 스타일·분위기가 맞는다면 나이가 주는 한계는 없다는 것을 그는 증명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최근 바이올렛에 꽂혀 라벤더 이태리에서 라벤더 악어백도 주문했다”며 “이미 2년 전 ‘바이올렛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유행 컬러도 예견했다. 그린이란다.

평생을 슈트에만 바쳐온 이 대표는 “테일러의 출발은 런던 사교클럽의 소통공간”이라며 “나는 기술자가 아니라 테일러, 소통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남자 양복은 그게 그건데 사실 그게 그거가 아닙니다. 가장 싼 옷도 슈트고 가장 비싼 옷도 슈트예요. 그림과 비슷하죠. 어떤 그림은 길바닥에서 팔리고 어떤 그림은 유명한 뮤지엄에 있어요. 그게 수준 차이입니다. 슈트가 중요한 이유는 현재 그의 수준을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슈트가 정말 어려운 옷이에요. 30~40대 비스포크를 입는 남성들이 늘었어요. 모든 것이 대량 생산되는 기성품 시대에 자기 존재를 나타내고 싶은 거죠. ”

그에 따르면 슈트의 핵심은 우아함과 클래식이다. 어떤 스타일이라도 균형을 깨지 않으면서 우아함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클래식이라는 얘기다. 이 대표는 “남성이 장미라사를 입으면 장중한 우아함이 나오며 여성은 고급스러운 섹시한 우아함을 연출해낸다”고 설명했다. 그는 클래식의 원조로 그리스를 꼽고 바르셀로나를 클래식과 균형을 재해석한 곳으로 본다.

또 과거 프랑스에 밀려 문화 변방이었던 영국이 가장 절제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곳으로 인식한다. 이 대표는 슈트의 클래식과 균형, 또 불균형의 아찔한 선을 찾고 영감을 얻기 위해, 클래식의 트렌드를 공부하기 위해 1년에 열 차례 이상 그리스·바르셀로나·영국·로마 등을 찾는다. 지난해에는 하반기에만 그리스 크레타를 세 번 찾았다. 그리곤 바르셀로나로 날아갔다.

“더 ‘예쁜’ 기준이 중요해요. 한 곳이 스탠더드형 클래식(그리스)이라면 한쪽은 정반대에 있는 아르누보(바르셀로나)인 현재의 클래식이죠. 진짜 중요한 곳은 런던입니다. 금융인·정치인들이 잘 대비돼 있는 옷으로 옷을 입고 사용하는 현장이죠. 런던 사람들은 ‘TPO(시간·장소·상황)’에 맞춰 입어요. 삶 자체가 ‘입는 것’이에요. 남자도 우아할 수 있다는 것을 장미라사의 슈트를 통해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스 파르테논신전의 기둥에서 풍기는 절제미를 옷에 담아서 말이죠. ”

그럼 비스포크의 슈트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누가 어떻게 입을 것이냐를 두고 군더더기 없는 소통이 시작된다. 직업과 생활, 입는 목적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주인공은 나이기 때문에 테일러에게 자신을 숨겨서는 안 된다. 패브릭·실루엣·단추·안감까지 테일러와 소통하며 동행해야 한다. 만약 마음에 안 드는 옷이 나왔다면 이는 내 책임이다.

“호들갑 떠는 사람이 제일 좋아요. 솔직하거든. 좀 내려놓고. 옷을 만들고 있지 않을 때 단골 고객들이 더 많이 와요. 그런 친숙한 관계 속에서 사실 그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이 나옵니다. 옷과 고객과 테일러는 동행자니까요.”

장미라사 공방에서 손바느질을 하는 장인들은 20~30여명이다. 그들은 작품 같은 상품을 만든다. 65세 이상 장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아온단다. 재봉은 오래 한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자기가 자기를 부정해야 하며 발전하는 섬유와 트렌드에 따라 바느질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대표는 “여기서 내가 하는 일은 옷의 콘셉트를 잡아주고 장인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주며 이들의 수준을 올려주는 것”이라며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도 배우려고 공방을 찾아온다”고 말했다.

장미라사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가 터지고 나자 고객이 아예 사라졌다. 당시 한국에는 ‘하이엔드’ 개념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장미라사는 하이엔드로 가자’는 결정을 내렸다. 외환위기 같은 것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타깃이 확실해야 했다. 그는 초하이엔드 길로 가기 위해 보따리를 싸서 파리와 밀라노로 날아갔다.

“사진기가 발명되면서 화가가 갈 길이 없었잖아요. 그러면서 화가가 예술가로 인정을 받았죠. 휴대용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사진가는 포토 아티스트로 남았고요. 동전의 양면인 거죠. 파리 노점의 그림과 루브르박물관·오르세미술관 그림이 뭐가 다를까 생각했어요. 바로 ‘클래스(class)’, 수준 차이였어요.”

유럽에서 돌아온 그는 고객을 줄이고 비스포크의 본기능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7~8년에 걸쳐 공방의 수준도 높였다. 테크닉뿐 아니라 서양문화에 대한 이해를 넘어 이를 체화하고 미에 대한 안목을 높이기 위해 공방 식구들 모두 수시로 인문학을 공부하고 유럽을 방문했다. 좋은 옷에 대한 해답도 찾았다.

그는 “좋은 옷은 좋은 사람이 입는 옷이다. 잘 만든 것은 너무 주관적이니까. 타깃을 성공한 사람, 성공을 지향하는 사람이 있는 옷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명품 비스포크는 장인과 역사와 스토리가 필요한 법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입는 객관적인 히스토리를 만들어야 했다. 세계사 속에서 장미라사는 오래된 것도 아니고 우리 문화도 아니었다. 확실히 눈에 보이는 ‘스펙’을 쌓기 위해 이 대표는 세상 밖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찾으러 또다시 나갔다.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은 네팔의 전 국왕 갸넨드라였다. 무지한 건가 용감한 건가. 왕이 입는 장미라사, 그야말로 상징성은 최고였다. 그는 차근차근 네팔 상인들, 왕의 사위·아들을 만나고 결국 왕을 만나 왕실 옷을 만들었다. 이라크전쟁 중 바그다드에 재단사들과 함께 간 적도 있다.

“바그다드로 간 다음날 여행금지구역으로 정해졌어요. 장갑차가 다니고 총소리가 들리니 통역사도 겁이 나 그냥 내빼버렸죠. 결국 총리를 만났는데 말은 안 통했지만 앉은 자리에서 32벌을 맞췄어요. 그 뒤로도 계속 그의 옷을 만들었는데 마지막 퇴임하는 날도 나를 불러 슈트를 맞추더군요.”

이 대표는 각국 원수들에게 직접 노크를 하고 이들을 만나 슈트를 만들어줬다. 중국·싱가포르 등 최고급 호텔에 10명 안팎의 ‘VVIP’만 초대해 옷을 주문받는 ‘트렁크쇼’도 한다. 그렇게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보츠와나 대통령,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이 장미라사의 고객이 됐다.

이 대표는 평생 옷을 좋아했다. 이미 그는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맞춤 슈트를 입고 앵클부츠를 신고 다녔다. 삼성 입사 당시 월급이 4만8,000원이었던 시절에도 이탈리아 테스토니 구두 7만원짜리를 사 신던 그다. 만날 때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소화하지 못하는 하얀 가죽 재킷, 나폴리 블루 재킷을 비롯해 남성들은 시도할 생각조차 않는 컬러풀한 밍크 목도리로 자신을 표현했다. 20년 전에 이미 스타일의 마지막 단계인 블랙 솔리드 재킷에 스트라이프 팬츠를 입고 손가락질을 받았던 기억도 있다.

자신의 인격이라는 옷을 어떻게 하면 잘 입을 수 있을까. “옷을 좋아하는 사람은 실제 성공한 사람들이 많아요. 재벌 2·3세 중 옷 잘 입는 사람들은 정말 반듯하게 컸더군요. 실패도 많이 해보고 돈도 많이 벌어봐야 옷을 잘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옷을 잘 입는 것은 결국 몸매가 아닌 사람의 인격이 해결하는 것이더라고요. 사실 컬러 매칭은 중요하지 않아요. 스타일링만 있을 뿐이죠.”

이 대표는 안영모 동화은행장, 이병철 고 삼성그룹 회장 등을 옷 잘 입는 성공한 인물로,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은 자신의 포스를 옷에 잘 표현하는 인물로 꼽았다. 전 세계 최고의 메탈사운드디자인(MSD) 대표 유국일 마이스터는 몇 년 전 값비싼 장미라사를 입을 정도로 성장하겠다고 호언하고 돌아간 후 지금은 그 약속을 지켜 세계적인 사운드 디자이너가 됐다며 이 대표는 즐거워했다. 현재 유 대표는 세계 금속 스피커 분야 1인자로 세계 일류 음향 부품 제조사 독일 아큐톤이나 문도르프의 명장도 인정한 마이스터다.

이 대표에게 평생 기억에 남는 고객은 3년 전 대구에서 올라온 20대 청년이다. 그 청년은 장미라사 슈트를 입기 위해 1년간 300만원가량을 꼬박 모았단다. 그리곤 자신과 이 대표에게 “장미라사를 사 입을 수 있을 만큼 성공해서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꿈을 품고 돌아갔다. 이 대표는 반드시 그가 올 것이라고 기다린다. “장미라사는 성공한 사람들,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의 꿈이고 싶습니다.”/심희정기자 yvette@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고정관념은 스스로를 망치는 敵”…가수 솔비와 파격 컬래버

캐주얼과 정통슈트 절묘하게 믹스

감각적인 힙합클래식 패션 선보여



장미라사 이영원 대표./권욱기자


장미라사는 클래식의 변주자다. 정통 클래식을 지키면서 클래식이 어떻게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지 슈트를 통해 다채로운 클래식을 구현한다. 그 자신감으로 이영원 장미라사 대표는 최근 가수 솔비에게 컬래버레이션을 먼저 제안했다. 그를 선택한 이유는 아티스트 솔비를 통해 실험적인 퍼포먼스와 더불어 솔비의 감성을 극대화해 슈트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슈트를 다른 시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다. 협찬이나 광고 없이 전통의 가치를 이어가는 장미라사가 여성 아티스트 솔비를 뮤즈로 선택한 것 자체가 파격적인 행보였다. 자유로운 패션 아이콘 솔비와 장인정신을 지키는 장미라사의 만남 자체만으로 패션계에서는 크게 화제가 됐다. 이 대표는 “장미라사와 솔비는 극과 극의 이미지인데 우리 장인들의 고정관념 탈피와 신선한 경험을 위해 대담한 표현을 하는 솔비와의 협업을 선택했다”며 “장미라사에 ‘적(敵)’은 스스로를 가두는 고정관념”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솔비의 힙합 음악을 패션에 적용해 감각적인 형태의 힙합 클래식을 선보였다. 슈트에 꼭 셔츠를 입어야 한다거나 타이를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벗고 캐주얼과 클래식을 믹스해 귀여움과 시크함을 함께 표현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 솔비의 실험적인 그림으로 슈트·스카프 등의 의상과 소품을 만든 특별한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한 데 이어 룩북 뮤즈로 솔비를 내세웠다. 룩북은 로마에서 찍었고 솔비는 애칭처럼 정말 ‘로마공주’가 됐다. 장미라사의 슈트와 솔비의 자유로운 일상을 담은 룩북은 몽환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의 패션 화보로 주목받았다.

이 대표는 “장미라사의 슈트와 솔비가 만나 클래식과 캐주얼이 어우러져 새로운 느낌으로 완성됐다”며 “슈트가 살아 숨 쉰다는 느낌과 더불어 영감까지 준다”고 말했다. /심희정기자 yvette@sedaily.com

이영원 프로필

△1958년 경남 밀양 △1977년 삼성그룹 공채 입사 △1998년~ 현재 ‘장미라사’ 대표 △1998년 갤러리아 명품관 지점 오픈 △2013년 부산신세계센텀시티점 지점 오픈 △중동·중국 등 해외시장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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