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Science&Market] 생체모방학과 인류의 생물학적 겸손함

김홍표 아주대 약대 교수

45억년 지구환경 적응해온 생물

다양한 생존방식 배우는 인류

'신참자'로서 공존방안 고민해야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는 상어와의 경기에서 두 번 졌다. 결과론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직선 주로를 따라 먹잇감을 쫓는 상어는 펠프스보다 100m를 더 빠르게 헤엄쳤다. 두 번째 패배는 간접적이었다. 지난 2009년 펠프스가 상어의 피부를 본뜬 수영복을 입은 독일의 파울 비더만에게 뒤졌기 때문이다. 비더만이 입었던 수영복은 선수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마찰을 줄이고 물과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했다. 또 수영을 전혀 못하는 사람도 물에 뜰 수 있을 정도로 부력을 높이기도 했다.

상어 피부의 미세 구조를 흉내 낸 수영복은 생체모방학(Biomimetics)이라는 학문 분야를 세상의 전면으로 이끌어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피부에 세균이 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갈라파고스 상어의 피부 구조를 이용해 병원의 벽지를 개발한 샤크릿 테크놀로지(Sharklet Tech)라는 회사도 생겼다. 항생제 내성 세균이 병원에 잠복해 있는 현실에서 눈에 확 띄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과학사가들은 도꼬마리 씨앗의 갈고리 모양을 흉내 낸 벨크로가 생체를 모방한 최초의 상품이라는 얘기를 하지만 사실 자연을 모방하는 행위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으며 인류 전체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고대 수메르인이 발명한 바퀴도 말똥구리의 모습을 보고 깨우친 결과라지 않던가.

관심을 갖고 뉴스를 보면 생체를 모방한 연구 결과가 무척 다양할 뿐 아니라 흥미롭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다. 피부 전체에 퍼져 있는 그물망과 같은 빨대로 모래에서 물을 흡수하는 사막도마뱀도 그렇고 뇌에 충격을 줄이면서 나무에 구멍을 뚫어 벌레를 잡는 딱따구리나 광릉크낙새도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열을 내뿜는 새 부리의 내부 구조를 연구하고 냉장장치를 만들려고 고심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철썩이는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위에 붙어 있는 홍합이나 굴의 접착 면을 연구해 물속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접착제를 개발하기도 했다. 개미의 집단 협동 작업의 효율성, 꽁치나 새떼의 군무도 인간 집단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중요한 소재거리다. 버섯의 구조를 모방한 의자가 있는가 하면 식물의 잎을 연구해 실험실에서 광합성을 재현하려는 연구자들도 있다.



생체모방학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오징어 신경을 연구해 신경 증폭 장치를 개발한 미국의 오토 슈미트다. 2000년에 접어들며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세인들의 관심을 끈 ‘생체모방’이라는 학문 분야의 확립에 커다란 힘을 보탠 사람은 제니 베누스 박사다. 그녀가 이끄는 웹사이트인 ‘자연에게 물어보세요(https://asknature.org)’를 방문하면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가령 덥고 건조한 기후에서 기공의 구조를 변화시켜 광합성의 효율을 유지하는 쿠쿠마크랑카라는 식물에 관한 내용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가속화되는 지구 온난화로 한국의 남부 지역이 아열대 기후로 편입된다는 그리 달갑지 않은 소식에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이러한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이유는 뚜렷해 보인다.

지질학적으로 오랜 기간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명체들은 다양한 생존 전략과 생체 구조를 일궈냈다. 이를 본떠 인간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의 실질적인 해답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생체모방학에 관심을 기울이는 인간의 행위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응용과학자들이나 정책입안자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상어 피부의 미세 구조나 며칠씩 잠을 자지 않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가는 철새의 비행 방식을 연구하는 일 못지않게 나는 인류가 저 상어나 철새의 안위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한다고 느낀다. 현재 지구상에는 과거 몇 차례 일어났던 대멸종의 시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생명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45억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진 지구의 신참자로서 인류의 생물학적 겸손함이 절실한 순간이다.

김홍표 아주대 약대 교수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