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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한국 교육에서 길을 찾다]컴퓨터에 인문학·캘리그래피 결합...'천재 잡스' 탄생 씨앗됐다

2부. 창의·융합형 인재를 키워라

<1> 경계 사라지는 교육

美 등 자기주도적 학습 한창인데

韓은 '20세기 커리큘럼' 되풀이

고교학점제도 이제 겨우 첫발 떼

암기·주입식 수업 방식도 장애물

대학들 교육 패러다임 전환 시급

<2부> 창의·융합형 인재를 키워라

<1회> 경계 사라지는 교육

미국 아리조나주립대 학생들이 컴퓨터랩실에서 과제해결에 몰두하고 있다. 애리조나주립대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기존 학과를 통폐합해 대기업 및 벤처기업, 지역사회와 연계한 프로젝트 중심 수업으로 커리큘럼을 구성했다. /사진=애리조나주립대 홈페이지




스티브 잡스는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도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갔다. 하지만 수업에서 그만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회의한 끝에 결국 중퇴했다. 잡스는 대신 원하는 수업만 청강하기로 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강의가 바로 캘리그래피(서체학) 수업. 아름다운 서체를 연구하고 만드는 이 수업에 그는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잡스는 캘리그래피를 컴퓨터에 접목해 오늘날 애플을 있게 한 맥킨토시 컴퓨터를 히트시켰다. 경쟁사들은 컴퓨터를 ‘계산하는 기계’로만 여기고 성능에만 신경을 쓰던 때 잡스는 차별화된 컴퓨터를 만들어 새 시장을 창조했다. 만약 그가 정해진 전공 커리큘럼에서 학점 따는 데만 열을 올렸다면 서체학과 컴퓨터공학을 융합해 창조적인 제품을 만든 ‘천재 스티브 잡스’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알리바바의 마윈 등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를 주름잡는 최고경영자(CEO)들은 모두 인문학 전공자들이다. 인문학과 예술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과학·수학 등과 함께 창의융합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필수 과목으로 꼽힌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에 선진국의 학교와 대학은 교육혁신을 통해 융합형 수업을 발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이에 못 미친다. 특히 문과와 이과를 나누는 칸막이 식 교육에 대한 우려가 크다.

◇OECD 국가 중 가장 뒤처진 교육 개혁=문·이과로 구분해 교육하는 나라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에 한국과 일본뿐이다. 그나마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교육제도 수술에 들어갔다. 사실상 우리나라가 가장 구닥다리 교육제도를 갖고 있는 셈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과목을 선택해 수강하고 있다. 짜인 시간표에 따라 획일적인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조합해 자기만의 수업 시간표와 학습 목표를 만든다. 미국과 영국에는 당연히 문·이과 구분이 없다. 기본 과목 이외에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수강할 수 있다. 프랑스·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은 고교 과정에서 계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4~6개 정도로 우리보다 다양하다. 과목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어문계열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학생이 원하면 과학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유럽이든 영미권이든 핵심은 학생들에게 충분히 과목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학생에게 과목선택권을 줘서 원하는 수업을 조합하는 데서 자기주도적 창의 교육이 출발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제 겨우 고교 학점제 도입의 첫발을 떼기로 했다. 오는 2022년 고1부터 일부 과목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게 된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당장 내신 절대 평가제와 대입제도 개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교육현장의 혼란이 커질 수 있다. 또 학점제가 자리 잡는다 한들 암기식·주입식 수업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획기적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이 평론가는 “국정 혹은 검정 교과서를 통한 정형화된 수업을 한다면 근본적인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며 “교사가 재량권을 발휘해 가르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십 년째 같은 수업 답습하는 대학=해외 대학들은 시대 흐름에 맞춰 이미 혁신에 나섰다. 스탠퍼드대는 학생의 45%가 전공과 상관없이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수업을 듣는다. 애리조나주립대는 69개 학과를 약 30개로 통폐합했으며 기업 및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철저한 프로젝트형 수업 중심으로 교과를 개편했다. 다양한 인문학 과목을 융합해 공동 전공을 신설하는 경우는 다반사다. 한석수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은 “다양한 과목을 융합해 프로젝트 중심 수업을 도입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한국 대학들은 이런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 대학은 문·이과 구분뿐만 아니라 전공 수업의 칸막이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또 그 칸막이 안에서 수업 역시 지식 전달에 그치는 ‘20세기 커리큘럼’이 대부분이다.

4년 전 국내 대학 교육의 현실을 고발한 ‘서울대에서 누가 A+를 받는가’는 교육계에 충격을 던졌다. 교수와 다른 의견을 제시한 학생은 나쁜 학점을 받고 교수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적어 내는 학생이 A+를 받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인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책이 나온 지 4년이 됐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여전히 수십 년째 써온 커리큘럼을 그대로 쓰는 전공이 대부분”이라고 꼬집었다.

대학들이 교육 패러다임 전환을 서두르지 않으면 한국의 산업적·사회적·문화적 경쟁력 전반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민화 KAIST 교수는 “패스트팔로어를 끼워내는 데 탁월했던 한국 교육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명을 다했다”며 “퍼스트 무버를 키워내는 혁신을 못한다면 한국은 낙오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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