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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영의 경매이야기]'눈 내리는 숲속 풍경' 향수·상상 자극...지난해 5개 작품 거래액만 1억弗

피터 도이그 그림의 힘
91년 작 '로즈데일' 2,900만弗...가장 비싼 생존작가 반열에
'찰리의 공간'은 12년만에 10배 올라 150만弗 →1,500만弗
정통 회화에 기반한 '화가들의 화가'로 불리며 인기 상승세

[윤옥영의 경매이야기]'눈 내리는 숲속 풍경' 향수·상상 자극...지난해 5개 작품 거래액만 1억弗
피터 도이그 ‘로즈데일(ROSEDALE)’ 1991년작, 199.4x239.4 cm /사진제공=필립스경매

저 멀리 붉은색 벽돌 건물을 바라보는 나는 숲 속 어딘가에 서 있는 걸까. 앞을 막아선 굵은 나무줄기의 스케일은 멀리 보이는 저택과의 거리감을 암시하며 화면에 공간감을 더하고 있지만, 정지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리다가 멈춰버린 눈 속에서 나는 과연 여기가 현실의 숲 속인지 아니면 꿈속인지 알 수가 없다. 모호하면서도 신비롭고 눈을 뗄 수 없이 매혹적인 작품 ‘로즈데일(Rosedale)’(1991)은 지난 2017년 5월 뉴욕 필립스 경매에서 약 2,900만달러에 팔려 피터 도이그(Peter Doig)의 경매 최고가 기록을 만들어냈다. 뒤이어 그의 1990년대 대표작 4점이 크리스티와 필립스 경매에서 각각 1,000만~2,000만달러 선에 거래됐다. 지난해에만 총 다섯 점의 작품들이 1,000만달러 이상의 거래 기록을 줄줄이 쏟아냈다. 이 다섯 점의 거래가액만도 거의 1억달러에 달한다.

게다가 이들 작품은 모두 ‘2017년 가장 비싸게 거래된 생존작가 작품 톱20’에 들어 시장에서 도이그의 인기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리히터나 영국의 데이비드 호크니 등 한 세대를 앞선 가히 전설이라 할 작가들도 이 명단에 한두 점의 작품을 올리는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현대미술 시장에서 도이그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할 수 있다. 여세는 올해로 이어졌다. 앞서 2007년 360만달러의 거래 기록이 있는 ‘협곡의 건축가의 집’(1991)이 지난 3월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2,000만달러에 팔렸다. 런던 크리스티에서는 2006년 150만달러에 팔렸던 ‘찰리의 공간’(1991)이 12년 만에 10배 오른 1,500만달러 판매되며 지속적인 강세와 가격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도이그는 현재 명실공히 가장 비싼 생존작가 중 한 명이다.

도이그 작품 중 최고가 기록의 ‘로즈데일’은 경매 시장에는 처음 나온 작품이다. 1991년에 저명한 화이트채플 예술상(Whitechapel Art Prize)을 수상한 후 화이트채플갤러리에서의 전시를 위해 그린 것으로, 이 전시는 30대 초반이던 도이그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됐다. 당시의 영국 미술계는 데미안 허스트가 기획한 ‘프리즈(Freeze)’라는 전시를 기폭제로 도발적이고 혁신적인 개념의 작품들이 주목을 끌던 시기였음에도 그는 이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정통적 풍경화 형식을 바탕으로 한 회화로 이미 1990년대부터 영국 미술계의 대표주자로 부상했다. 이 시기에 나온 대형 작품들의 주제는 이후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이런 1990년대 회화들이 바로 현재 미술 시장에서 1,000만달러 이상 3,000만달러 선에 거래되고 있다.

[윤옥영의 경매이야기]'눈 내리는 숲속 풍경' 향수·상상 자극...지난해 5개 작품 거래액만 1억弗
피터 도이그가 1991년 그린 ‘협곡의 건축가의 집’은 지난 2007년 360만달러에 팔렸다가 지난 3월 경매에서 2,000만달러에 새 주인을 찾아갔다. /사진제공=소더비경매

[윤옥영의 경매이야기]'눈 내리는 숲속 풍경' 향수·상상 자극...지난해 5개 작품 거래액만 1억弗
피터 도이그의 1991년작 ‘찰리의 공간’은 앞서 2006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150만달러에 팔렸다가 12년 만인 올해 10배 오른 1,500만달러 재거래됐다. /사진제공=크리스티경매

로즈데일은 캐나다 토론토 근교로 넓은 부지에 지어진 저택들이 자연스레 캐나다의 자연과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어린 시절을 캐나다에서 보낸 그는 이미지에서 출발해 그 위에 마치 미로처럼 복잡한 층위의 회화의 조각들을 쌓아올림으로써 현실과 상상, 구상과 추상 사이 어디 쯤에 있는 이 신비롭고 매혹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의 알 수 없는 공간들은 개인적인 이주의 역사와 함께 만들어졌다. 1959년 스코틀랜드 에딘버그에서 태어난 그는 아직 아기였던 1962년 가족과 함께 트리니다드로, 1966년에는 캐나다로 이주했다. 1980년대와 1890년대에는 런던에서 공부했지만 중간 몇 년은 몬트리올에서 보냈으며 2002년에는 다시 트리니다드로 이사를 했고 현재는 런던과 뉴욕, 독일 뒤셀도르프를 오가며 살고 있다. “내 생각은 언제나 서로 다른 장소들 사이에 있다”는 말처럼 그는 다른 장소들에 대한 기억의 풍경을 그린다. 그리고 그 풍경 위에 작품의 또 하나의 키워드인 눈이 내린다. 정지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멈춰 얼어붙은 눈의 효과는 나와 풍경 사이를 파고들어 또 다른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어린 시절을 캐나다에서의 보낸 기억은 그에게 눈이라는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해 주었다. 눈 내리는 어느 날에 대한 아스라한 기억의 영상은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겠지만 도이그의 눈은 앞에 펼쳐진 풍경 위에 마치 스크린처럼 놓여 마음속에 있는 향수와 기억, 상상을 자극한다.

다양한 현대미술의 양상 속에서도 ’화가들의 화가‘라 불리며 여전히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이자 가장 비싼 생존작가인 도이그의 작품이 정통적인 회화에 기반 하고 있음은 시대정신을 거슬러 불변하는 회화성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계속되는 폭염에 지쳐가는 지금 마법 같은 눈이 내리는 그의 풍경 속에서 잠시 길을 잃어보는 것도 좋겠다.
/서울옥션 국제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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