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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리먼2008, 그 후 10년

정상범 논설위원

터키 등 신흥국 위기는 현재진행형

선진국은 산업구조 재편기회 활용

‘다이내믹 코리아’는 존재감 없어

경제활력 키우는 정책신뢰 절실





지난 2008년 9월15일, 달콤한 추석 연휴를 마치고 돌아온 이들에게 급보가 날아들었다. 미국 4위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뉴욕 남부지방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는 소식이었다. 미국 월가를 비롯한 세계 증시가 폭락했고 우리 증시도 연휴 다음날 6% 넘게 떨어졌다. 저금리 정책에 따른 집값 폭등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서막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도 ‘리먼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위기 처방전에 따른 과잉 유동성이 신흥국에 흘러들었고 그 부작용은 곳곳에 외환위기를 낳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재정난을 견디지 못해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리면서 정부 부처를 축소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한 터키에서는 자본 통제나 외화예금 봉쇄설까지 나돌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의 취약고리부터 하나씩 무너지는 양상이다.

그래도 위기는 누군가에게 기회인 법이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리먼 위기 10년, 일본 주식회사의 변신’이라는 기사에서 만년 적자에 시달리던 일본 대기업들이 근육질을 키워 돈 버는 기업으로 환골탈태했다고 전했다. 히타치제작소는 단순 제조업에서 벗어나 소프트 파워를 키웠고 소니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20년 만에 최대 실적을 올렸다. ‘일본 주식회사’가 민관이 똘똘 뭉쳐 절치부심 끝에 일궈낸 값진 결과다. 얼마 전 끝난 아시안게임에서 우리가 24년 만에 일본에 2위 자리를 빼앗긴 것도 마찬가지다. 일본 공무원들은 한국을 따라잡겠다며 태릉선수촌까지 찾아와 국가대표 운영 노하우를 배워갔다. ‘한국 타도’를 목표로 관광입국을 천명한 지 7년 만에 한국을 제친 배경에도 이런 숨은 노력이 담겨 있는 셈이다.



우리 기업들은 리먼 사태 당시 공격적 경영으로 투자를 늘리면서 위기를 정면으로 헤쳐나갔다. 모두가 몸을 사릴 때 기업들이 앞장서 글로벌 경쟁사와의 격차를 오히려 벌려놓았던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과감하게 투자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근성에는 외국사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만큼 한국 기업들은 역동적이고 기업가정신이 왕성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을 더 이상 듣기 어렵다. 오히려 위축된 투자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단단히 잡는 모양새다. 2·4분기 설비투자는 -5.7%로 떨어졌고 산업단지마다 공장 매물이 쌓이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수십 년 운영해온 식당을 허문 자리에 건물을 지어 임대업으로 편하게 살겠다고 나서는 판국이다. 이러니 세계 산업의 판도는 급변하는데 우리만 ‘우물 안 개구리’라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 10년간 세계 시가총액 상위권에는 알파벳(구글)·페이스북·알리바바·텐센트 등 정보기술(IT) 기업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엑손모빌이나 제네럴일렉트릭(GE) 같은 전통 강자들은 더 이상 존재감이 없다. 반면 우리는 10년째 별다른 변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와 기업이 경제와 민생을 살리겠다는 절박감을 갖지 못한다면 산업 생태계의 활력을 되찾기는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경제학자인 카르멘 라인하르트와 케네스 로고프는 과거 금융위기 연구를 통해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는 증후군을 경계하라고 주문했다. 경제위기는 다른 나라의 다른 사람들에게서만 발생하고 지금, 여기 우리나라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문제라는 경고다. 차입에 의존하는 취약한 경제구조나 신뢰위기에 빠져 있는 국가일수록 그런 증후군을 나타내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잘못된 진단과 처방을 고집하며 국민에게 조금만 더 참아달라고 얘기하는 정부, 오락가락 정책으로 국민 신뢰를 잃어버린 정부를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 그리고 값비싼 대가는 항상 국민이 치러야 했다. 리먼 사태 10년은 오늘의 우리에게 묻고 있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무엇을 배웠고 무엇이 달라졌는가.
ss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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