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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뒷골목 문화를 만드는 '을지로3가 괴짜들…"젊은세대, 돈으로 형성된 상권선 재미 못느끼죠"

홍콩 영화서 본 듯한 구도심에 끌려 창업

페북·인스타 등 SNS 힘 보태져 큰 인기

낡은 전깃줄처럼 '공동체 형성' 품앗이도

종로구 익선동 풍경./송은석기자




“이 지역은 제가 좋아하는 왕가위(왕자웨이) 감독의 영화에 나올 법한 곳이에요.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홍콩의 대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쓸쓸한 고독감이 배어 있죠.”

지난 25일 카페 ‘잔’에서 만난 루이스 박(47) 대표는 최근 ‘힙’한 상권으로 떠오른 ‘을지로3가’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한 지역이 발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돈’이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면서 “젊은 세대는 가로수길, 강남역 일대처럼 돈으로 형성된 상권에서는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번쩍거리고 뻔한 동네보다는 생각지도 못한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구도심에서 매력을 느낀다”면서 “여기에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힘이 보태져 을지로3가가 ‘힙’한 동네로 떠올랐다”고 덧붙였다.

◇을지로3가에 홀린 3인=낡은 것과 새것의 어울림이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을지로3가는 ‘힙지로’라는 별명답게 추석 연휴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을지로3가에 들어왔다. 카페 잔의 주인인 박씨는 2014년 한옥을 개조해 카페 식물을 열면서 초기 익선동 상권을 형성했지만 홍콩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을지로3가에 반해 이곳에 발을 디뎠다. 그는 “좁은 계단으로 올라와 카페에 들어왔을 때 펼쳐지는 광경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라며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것을 을지로3가의 매력으로 꼽았다. 그는 최근 ‘루이스의 사물들’이라는 카페를 개점하며 을지로4가로 뻗어 나갔다.

4월 바 302호를 연 김태윤(38) 대표에게도 을지로3가는 매력적인 동네로 다가왔다. 독일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그는 베를린 바 순례를 즐겼다. 그는 “베를린에서도 비어 있는 공간을 클럽이나 바로 개조하듯이 옛것의 느낌이 남은 공간을 열고 싶었다”면서 “오래된 건물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화려하게 꾸미지 않고 조명 몇 개만 달았다”고 설명했다. 물론 을지로3가에 들어온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김씨는 “망리단길·성수동·익선동 등 최근 뜨는 동네는 다 알아봤지만 이미 많은 곳이 들어와 있었다”고 덧붙였다.

‘커피 한약방’과 ‘혜민당’을 운영하는 강윤석(48) 대표는 을지로3가에서는 서울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신구(新舊)’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강 대표는 “최근 새로 올라간 대기업의 건물과 기존에 있었던 낡은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묘한 느낌을 뿜어낸다”며 “이는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방치되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했다.

◇사람 냄새 나는 이곳=골목의 낡은 전깃줄처럼 을지로3가를 잇는 또 하나는 ‘정(情)’이다. 을지로3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이들은 ‘뒷골목공동체’를 형성하며 상부상조하고 있었다. 강 대표는 “을지로3가에 카페를 오픈하고 싶다거나 현재 가게를 운영하는데 아이템 조언을 받고 싶다고 연락이 온다”면서 “주 고객 중 하나인 대기업 종사자들이 생각보다 소비성이 강하지 않다는 점을 알려주고 실질적인 가격선을 조정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사소하게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때 옆집에 찾아가 해결해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아예 지인을 따라 을지로3가에 작업실 겸 카페를 여는 경우도 있다. 을지로3가역 7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커피사 마리아’가 이 경우. 루이스 박씨는 “카페 식물에서 매니저로 근무하던 이민선씨가 제 소개로 만난 일러스트레이터 이마리아씨와 함께 카페 겸 작업실을 열었다”고 했다. ‘호텔 수선화’는 박씨의 후배 3명이 그의 도움으로 문을 연 카페 겸 작업실이다. 박씨는 호텔 수선화의 상호는 물론 내부 공간까지 직접 챙겼다.

이 지역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이들도 을지로3가가 언젠가는 상권의 생로병사를 따를 수 있다고 했다. 박씨는 “다른 동네가 그랬듯이 한 상권이 확 뜨고 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도 “을지로3가는 기존에 인기를 끌었던 상권과 다르게 지역이 넓어 새로운 가게도 지속적으로 낼 수 있고 급격한 임대로 상승 문제도 덜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을지로3가에 자리 잡은 대부분의 카페와 바는 1층이 아닌 위층에 있다”면서 “1층에서는 보이지 않는 공간에 대한 궁금증이 을지로3가를 찾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세민기자 semin@sedaily.com

공간 디렉터 루이스 박/허세민기자


을지로 3가의 한 골목/허세민기자


을지로 3가에 위치한 바 302호의 외관/허세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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