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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언어정담] 두근두근, 반짝이는 설렘을 간직한다는 것

작가

나이 들수록 꿈 잊은 채 살지만

'첫 마음'의 소중함 되새겨보고

타인 삶에서도 가치 찾아낼 때

일상 속 권태 벗어날 길 열려





나이가 들수록 첫사랑의 설렘, 첫 시작의 설렘을 간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한다. 아무리 열심히 새로운 일에 도전해도, ‘처음’의 설렘보다는 두근거림이 덜해진다. 나는 내 가장 소중한 꿈인 ‘글쓰기’가 매너리즘에 빠질 위기에 처할 때마다 ‘처음 데뷔할 때의 설렘’을 떠올리며 그 간절함을 되새겨본다. 하지만 이제는 그 되새겨봄 자체도 ‘반복’을 거듭하다 보니 또 하나의 익숙한 습관이 되어버려 약효가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또 다른 종류의 설렘을 생각해 본다. 처음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의 두근거림, 처음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았을 때 그 쿵쾅거리던 심장박동 소리, 첫 조카가 태어났을 때 그 앙증맞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바라보며 가슴이 찡해지던 기억. 그 모든 ‘첫마음’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삶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눈부신 설렘의 기적이야말로 우리를 권태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영혼의 오아시스임을 깨닫는다.

얼마 전에는 외국에 살고 있는 친구의 집에 방문했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집에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준비되지 않은 설렘의 감정에 푹 빠져들었다. 빽빽한 빌딩숲에서 잿빛 콘크리트 건물 한 구석을 차지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삶을 벗어나, 아름다운 호수와 평화로운 산책로가 있는 교외의 2층집에서 마음껏 아이를 뛰어놀게 하는 친구의 모습이 어찌나 행복해 보였는지. 새벽에 눈뜨자마자 출근준비를 하고 저녁에 늦게 들어오는 스트레스는 변함없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 마치 숲속에 나만의 월든이 존재하는 것 같은 들뜬 기분이 되지 않을까. 나는 마치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에 나오는 ‘초록색 지붕집’이 현실에서 이루어진 것 같은 들뜬 기분에 사로잡혔다. 내 집도 아닌데 마치 ‘언젠가는 나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소원이 잠깐이나마 이루어진 것 같은 행복한 착시가 느껴졌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두근거림이었다. 나에게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익숙해지면 그 소원 자체를 파기해버리는 마음의 습관이 있다. 나는 ‘초록색 지붕집’ 같은 아름다운 숲속의 저택을 꿈꿨지만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에 익숙해져 꿈꾸는 법 자체를 잊어버린 것이었다.





넓은 주방에서 남편이 파스타와 샐러드를 만들고, 친구들과 둘러앉아 와인을 마실 수 있고, 거실에서 줄넘기와 맨손체조를 해도 아무도 층간소음을 느낄 수 없는 편안한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는 친구를 바라보면서, 나는 단순한 부러움이 아닌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느꼈다. 내가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니더라도, 내 소중한 친구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분 좋은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당장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이라도, 누군가 진정으로 삶에서 소중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을 두근거릴 수 있었다.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설렘이다. 설렘은 반드시 ‘나의 것’ ‘첫 마음’ ‘가슴 뛰는 특별한 경험’을 가져야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실현하는 타인을 바라볼 때, 내가 오래 전에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꿈을 실현하는 사람을 봤을 때, 내 가슴은 두근거린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내가 시도한 가장 아름다운 길은 일단 ‘나의 길’에서 잠시 눈을 돌려 ‘타인의 길’의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것이었다. 최근에 인디언 추장 ‘시팅불’의 유일한 초상화를 그린 여성 화가 캐롤라인 웰던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우먼 웍스 어헤드(Woman walks ahead)’를 보면서도 그런 두근거림을 느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홀로 떠난 사람의 이야기들, 그것이야말로 우리 심장의 가장 열정적인 언어, ‘두근두근’이라는 의태어를 매순간 다시 되살아나게 하는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이었다. 마음이 늙지 않는 비결은 더 오래, 더 자주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나만의 경험’ ‘나만의 이익’을 쌓아올리는 것에 골몰하기보다는 ‘나와 다른 타인의 삶’에 대한 마음의 안테나를 활짝 열어둠으로써 점점 둔감해지는 우리의 감각을 예민하게 벼리는 것. 그것은 지나치게 비대해진 ‘에고’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기도 하며, 타인의 시선에 길들기보다는 ‘내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싱그러움을 회복하는 마음챙김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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