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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Why]종이호랑이 신세 OPEC, 역사 속 사라지나

■카타르 OPEC 탈퇴 선언...붕괴하는 '석유 카르텔'

2000년대 들어 美·러 산유량

사우디와 맞먹는 수준까지 늘고

美 셰일혁명에 OPEC 위상 흔들

트럼프 트윗 한방에 유가 좌지우지

사우디, 카슈끄지 사건 등 입지 추락

'美에 맞대응' 러와 밀월 깊어져

불만 높아진 회원국 도미노 탈퇴땐

중동 산유국 설 자리 더 좁아질 듯







“이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이전 시대의 유물로 생각할 때가 됐다.”

OPEC의 ‘원년 멤버’이자 걸프만 아랍국 가운데 처음으로 카타르가 내년 1월1일 OPEC 탈퇴를 선언하면서 지난 60년간 국제유가를 쥐락펴락했던 ‘석유 카르텔’ 붕괴가 현실화하고 있다. 비회원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부상으로 이미 맹수에서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OPEC이 내부 균열까지 심각해지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OPEC의 합의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트윗 한 줄이 시장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카타르의 탈퇴가 OPEC 회원국의 도미노 이탈로 이어질 경우 세계 석유시장에서 중동 산유국들의 목소리는 급격히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OPEC은 1960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이라크·쿠웨이트·베네수엘라 등 5개 석유수출국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결성한 기구다. 여기에 이듬해인 1961년 가입한 카타르까지 창립 멤버로 분류된다. 이후 리비아·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이 가세해 현재 15개국이 가입돼 있지만 내년부터 회원국이 14개국으로 줄어든다.

1970년대 세계 석유공급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이들은 생산량 조절을 통해 국제유가를 통제하며 세계 경제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특히 1973년 사우디 주도로 OPEC의 아랍 산유국들이 미국 등 서방국에 금수정책을 취하며 전 세계를 ‘오일쇼크’로 몰아넣은 사건은 OPEC의 위세를 만천하에 떨치는 계기가 됐다. 1972년 배럴당 2.5달러였던 국제유가가 1974년 11.6달러까지 치솟자 에너지 공급을 석탄 대신 석유에 의존하게 된 서방국은 속수무책이었다. 이후로도 아랍 산유국들의 입김은 날로 세졌고 그 중심에 선 OPEC은 시장지배자로서 황금시대를 보냈다.

OPEC의 석유패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비회원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산유량이 OPEC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와 맞먹는 수준까지 늘어나면서 가격지배력에 결정적 타격을 받은 것이다. 특히 첨단공법을 내세운 미국 셰일오일 혁명의 파급력이 컸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하루 평균 산유량은 사우디를 가볍게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섰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오는 2025년 세계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5분의1은 미국산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은 지난달 26~30일 미 에너지부의 통계 작성 이래(1973년) 처음으로 미국의 석유 수출량이 수입량을 앞질렀다며 수입국에서 순수출국으로의 전환이 국제원유시장에서 보다 강화된 미국의 위상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OPEC을 이끌어온 사우디가 예멘내전 개입,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사건 등으로 코너에 몰리며 위상이 추락한 것도 OPEC의 몰락에 가속도를 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놓치지 않고 사우디와 OPEC을 유가를 올리려고 담합이나 하는 집단으로 매도하며 국제유가를 미국의 구미에 맞게 쥐락펴락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살만 사우디 국왕에게 전화해 산유량을 늘리라고 대놓고 요구하기도 했다. OPEC을 대변해야 할 사우디가 오히려 미국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자 서방에 맞서 비서방 산유국의 영향력을 강화한다는 OPEC의 설립 취지마저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게다가 사우디는 미국에 대응하기 위해 OPEC 회원국 간 결속보다 러시아와의 새로운 석유 카르텔을 형성하는 데 집중하면서 OPEC 무용론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블룸버그통신은 “OPEC은 변화한 세계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면서 “비회원국인 러시아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존재의 어려움을 증명한다”고 지적했다. OPEC은 2016년 감산 결정 이후 지금까지 러시아를 빼고 단독으로 합의를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사우디 정부 고위관료들은 사우디와 러시아만으로 시장에 충분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OPEC의 장기적 존재근거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사우디 유전. /로이터연합뉴스


사우디와 러시아의 밀월이 깊어지면서 소외된 OPEC 회원국들의 불만이 도미노 탈퇴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영국 싱크마켓의 수석 시장분석가인 나임 아슬람은 “카타르의 이탈은 OPEC의 중추가 내려앉는 것과 같다”며 “이는 다른 회원국들에도 OPEC 안보다 밖이 더 낫다는 메시지를 보내 ‘줄이탈’을 부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당장 카타르에 이어 이라크도 탈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바클레이스은행 에너지시장 연구수석인 마이클 코언 이사는 “다음 OPEC 탈퇴 후보로는 이라크가 눈에 띈다”며 “(OPEC과) 자주 충돌해온 이라크는 감산 방침이 과중하다고 느낄 경우 OPEC 탈출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는 OPEC의 산유량 2위 국가다.

OPEC의 균열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면서 앞으로 세계 석유시장은 미국과 러시아·사우디가 지배하는 3두 체제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블룸버그는 “OPEC이 석유시장의 통제력을 상실함에 따라 트럼프 미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등 3명이 내년 이후에도 국제유가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들의 견해가 서로 다른 점이 시장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저유가로 국가 비전에 차질을 빚고 리더십이 약화할 위기에 처해 있어 감산이 유일한 길이다. 러시아는 석유의존도가 많이 줄어든 상태여서 사우디와의 정치적 관계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감산에 큰 관심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증산을 통해 유가를 지금보다 훨씬 낮춰야 한다고 연일 사우디를 압박하고 있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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