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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이곳-'건축학개론' 서연의 집] '연기돌' 수지의 대표작..실패해서 더 아름다운 '사랑의 습작'

영화 속 승민과 서연이 함께 지은 집

제주도 서귀포에 모던한 카페로 꾸며

벽면 곳곳에 배우들 사진, 핸드프린팅 전시

2층 옥상정원에 서면 서귀포 앞바다 한눈에

영화 ‘건축학개론’의 스틸 컷.




카페 ‘서연의 집’을 찾은 방문객이 감상에 젖은 듯 유리창 너머 바다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돌 그룹 출신의 연기자인 수지의 스크린 데뷔작 ‘건축학개론(2012년)’을 보면 배우에게 작품과 감독 복(福)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전까지 TV 드라마에서 고만고만한 연기력을 보였던 수지는 이 영화를 통해 모두가 깜짝 놀랄 만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건축학개론’에서 스무 살 대학 새내기를 연기한 수지는 물 만난 고기처럼 극을 장악하며 생동감 넘치는 연기와 배우로서의 빛나는 매력을 동시에 뽐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지는 ‘건축학개론’ 개봉 이후 7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이 영화를 뛰어넘을 만한 작품을 브라운관에서도, 스크린에서도 남기지 못했다. 작품이 특출나지 않으니 연기자의 운신 폭도 좁을 수밖에 없었다. ‘건축학개론’을 통해 ‘국민 첫사랑’이라는 애칭을 얻은 수지가 다시 한 번 좋은 작품과 감독을 만나 새로운 캐릭터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그는 배우로서 또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수지의 풋풋한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담긴 ‘건축학개론’의 촬영지는 제주 서귀포시에 자리해 있다. 남원읍 위미해안로에 늘어선 돌담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면 영화의 핵심 공간으로 등장한 ‘서연의 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은 여행객을 위한 카페로 꾸민 이곳은 건축학개론의 세 번째 주인공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한 장소다. 영화가 시작하면 서연(수지·한가인)은 15년 전 대학 신입생 때 건축학개론 수업을 같이 들었던 승민(이제훈·엄태웅)을 찾아가 제주도의 고향 집을 새로 지어달라고 말한다. 건축 설계사인 승민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운 듯 쭈뼛대다가 마지못해 부탁을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은 과거로의 추억 여행을 시작한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을 담은 전시물이 카페 ‘서연의 집’ 벽면에 걸려 있다.




영화 속 서연과 승민이 교감하며 함께 지은 카페로 들어서면 감독과 배우의 핸드프린팅 액자가 먼저 눈길을 끌고 벽면 곳곳에는 포스터와 스틸 컷으로 만든 전시물이 걸려 있다. 한쪽 벽 전체를 가득 채운 유리창 너머로는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을 벗 삼아 평온하게 흐르는 서귀포 앞바다가 보인다. ‘승민의 첫 키스’ ‘납뜩이 머핀’처럼 캐릭터의 이름을 딴 메뉴는 기분 좋은 웃음을 자아내고 시나리오 북과 스틸 컷 세트 등의 기념품도 마련돼 있다. 계단을 걸어 2층으로 올라가면 시원하게 트인 풍경을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는 옥상정원이 나온다. 영화에서 한가인이 일에 지쳐 깜빡 잠든 엄태웅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던 그 장소다. 정원의 테라스에 서서 추억에 잠기듯 눈을 감으면 바람에 실려 날아온 바다 내음이 콧속을 간질이고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상쾌한 감각도 온몸을 휘감는다.

건축학개론은 ‘대부분의 첫사랑은 실패하기 마련’이라는 연애의 오랜 명제에 관한 꽤 정확한 심리학적 통찰을 담고 있다. 스무 살의 승민은 괜한 자격지심과 사소한 오해를 떨치지 못하고 감정 표현에 적극적인 서연을 밀어낸다. 답답함이 치밀어 오른 관객은 당장 스크린으로 뛰어들어가 승민의 멱살을 잡고 “왜 속내를 털어놓지 못해!”라고 외치고 싶다가도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어쩌겠나, 우리도 저 나이 때는 딱 승민만큼 바보 같고 어리숙했던 것을. 온통 그 사람 생각뿐인데도 정작 어떻게 마음을 살지 몰라 쩔쩔맸던 것을. 승민보다 의연하고 당당했던 서연은 관계가 소원해지고 첫눈이 내린 그해 겨울에도 약속대로 둘만의 비밀 공간이었던 동네 빈집으로 향했다. 흰 눈이 집 앞마당에 소복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도 승민이 나타나지 않자 서연은 두 사람이 막 친해질 무렵 같이 들었던 전람회의 앨범과 CD플레이어를 빈집 마루에 놓아두고 자리를 떠났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장면들을 담은 전시물이 카페 ‘서연의 집’ 벽면에 걸려 있다.


사랑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집 짓는 과정에 비유한 ‘건축학개론’의 에필로그를 장식하는 것은 역시 ‘서연의 집’이다. 노쇠한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고향에 내려와 있는 서연에게 어느 날 택배 한 상자가 배달된다. 얼마 전 직장 동료와 결혼한 승민이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외국으로 떠나면서 보낸 그 상자 안에는 15년 전 서연이 두고 간 CD플레이어와 앨범이 담겨 있다. 이 애틋하고 가슴 짠한 결말은 네가 홀로 외로이 기다리던 그 자리에 실은 나도 함께 있었음을, 네가 나를 사랑한 만큼 나도 너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전하는 수줍은 고백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해독 불능의 암호문을 이제야 풀었다는 듯 안도하며 과거를 깔끔히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한다. 하지만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천천히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를 지켜보는 우리는 옛사랑의 기억에 괜스레 심란해지고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둥둥 떠오른다. “많은 날이 지나고 나의 마음 지쳐갈 때” 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때 “너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볼 수만” 있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글·사진(서귀포)=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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