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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스토리人] 재벌 저격수서 '상생 마당발' 된 박영선

■기업 도우미로 변신한 정치 달인

공정위원장에 한밤 문자 등

관련 부처와 협조로 해답 찾고

공영홈쇼핑·아리랑TV 연계

중기 수출 지원하는 발상 전환

'네이버 상생 1호 기업' 선정 등

대기업과 소통에도 적극 나서





지난 9일 오후11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박 장관은 이날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를 찾아 LG그룹 사내벤처들과 간담회를 했는데 여기서 나온 얘기를 꼼꼼히 메모했다가 김 위원장에게 전달한 것이다. 당시 현장에서는 사내벤처를 스핀오프(spin off·분할)할 경우 지분 배분 문제와 지식재산권(IP) 소유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한 민원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가 내용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박 장관이 김 위원장에게 직접 민원을 전달한 것이다. 내용을 전달받은 김 위원장은 곧바로 기업정책 담당 국장에게 중기부와의 업무협의를 지시했다.

취임 한 달을 맞이한 박 장관이 ‘중소기업 해결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박 장관은 현장 민원을 해당 부처에 전달하는 등 적극적으로 부처 간 공조를 이끌어내고 있다. 기존 관료사회의 발상을 전환한 신선한 정책을 내놓는가 하면 형식에 치우친 관행도 거부한다. 삼성·LG·롯데·네이버 등 대기업을 직접 만나 상생을 독려하기 위한 발걸음도 바쁘다.

13일 중기부에 따르면 박 장관은 취임식 다음날인 4월9일 강원도 산불 피해 현장을 찾았다. 당시 중기부는 기존 대출 확대 외에 어떤 피해대책을 내놓을지 막막해했다는 후문이다. 박 장관은 현장에서 ‘일대일 맞춤 해결사’ 아이디어를 꺼내 들었다.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피해기업에 전담 공무원을 붙여 복구 완료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파격적인 정책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이런 방식의 정책은 처음”이라며 “346개 피해업체를 밀착 지원하기로 했고 지금까지 해당 기업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대구 주얼리 업체들이 해외 수출 애로를 타개하기 위한 실질적인 지원방안을 요청하자 박 장관은 “공영홈쇼핑·아리랑TV와 연계한 수출 지원방안을 찾겠다”고 화답했다. 중기부 안에서는 “공영홈쇼핑은 당연히 언급될 수 있지만 아리랑TV로까지 생각이 미칠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왔다. 판로 지원은 홈쇼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기존 정책을 뒤집는 동시에 해외에서 영향력이 큰 아리랑TV를 지렛대로 삼아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돕겠다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박 장관은 현장의 답을 부처 공조에서 찾고 있다. 의원 시절 여러 부처와 직접 부딪히면서 뜨거운 논쟁을 벌였고 소관 법령을 오랜 시간 다룬 경험 덕분이다.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계와의 간담회에서는 산업별 경영 애로를 해결해달라는 건의가 쏟아졌다. 통상적으로 이런 자리에 참석한 장관들은 “검토하겠다”는 답변만 내놓고 구체적인 행동이 뒤따르지 않기 마련이다. 하지만 박 장관은 ‘A라는 문제는 중기부가 해결하고, B라는 문제는 소관부처인 C부처에서 맡고, D라는 문제는 법령 개정이 필요한 만큼 국회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식으로 역할을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중소기업부터 벤처, 소상공인까지 정책 영역이 넓은 중기부인 만큼 답을 찾는 범위도 더욱 확장해야 한다는 게 박 장관의 생각이다. 실제로 박 장관은 최근 몇몇 경제부처 장관들과 오찬을 한 자리에서 중기부 성격을 ‘잡화상’이라고 표현하며 긴밀한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청업체가 절반을 차지하는 중소기업과 연관성이 높은 대기업 정책부터 금융지원정책, 산업구조정책, 수출정책, 공정거래정책, 벤처 육성정책까지 오히려 다른 부처와 엮이지 않은 업무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박 장관의 이런 인식은 중소기업 정책을 이끌 ‘컨트롤타워’ 출범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지난달 25일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될 중소기업정책심의회 첫 회의에 당연직 위원인 14개 부처 차관 대부분이 참석해 박 장관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보여줬다는 평가다.

특히 ‘재벌 저격수’로 불리던 박 장관의 가장 두드러진 행보는 대기업과의 긴밀한 협조다. 박 장관은 이날 네이버를 ‘자발적 상생 1호 기업’으로 선정했다. 네이버가 2013년부터 개소한 ‘파트너스퀘어’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소상공인을 지원해온 점을 높이 산 것이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기존 정권의 방식은 네이버나 카카오 등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의 물질적 협조는 요청하면서도 이들의 공(功)에 대해서는 무심한 태도를 보였는데 박 장관은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협조를 구하는 ‘대인배’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평이 나왔다.박 장관은 사전 각본 없이 현장에서 적절하게 필요한 메시지를 내놓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장관의 축사나 인사말은 부처를 통해 사전에 배포되고 장관이 이를 그대로 읽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박 장관은 다르다. 현장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적절한 답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빡빡한 일정 때문에 눈도장만 찍는 기존 방식과 달리 필요할 경우 이후 일정을 연기하면서까지 자리를 지키는 행보도 눈길을 끈다.

실제로 3일 서울 쉐라톤팔레스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기업가정신 포럼’에 참석해서는 후속 일정 때문에 예정된 30분을 넘겨 1시간가량 자리에서 강연을 들었다. ‘소규모 포럼인데 다른 장관들처럼 축사를 하고 이동할 것’이라는 현장의 선입견을 보란 듯이 깨버렸다. 그는 여러 현장을 다녀온 후 발언과 생각을 여과 없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유한다.

그렇다고 ‘사람 좋은 장관’에 머무는 모습도 아니다. 지난달 22일 광주진곡산단에 위치한 수소스테이션을 방문할 때는 수소차 민간 전문가와 동석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전문 분야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중기부를 통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섭외했다는 후문이다. 언론인 출신답게 ‘팩트(사실) 확인’을 거치기 위해서다. 이 전문가에게 “(현장 브리핑처럼) 우리나라 수소차 부품기술이 정말 최고 수준이 맞느냐”는 식으로 오히려 되묻는 모습을 보여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처럼 철저한 면모를 보이는 그지만 서민에게는 딸 같고 누나 같은 모습을 보인다. 지난달 11일 충남 당진전통시장에서의 파격적인 행보가 대표적이다. 당시 시장 내 한 순댓국집 안으로 박 장관이 들어서려고 하자 “장관님, 여기는 지나서 가시죠”라며 한 수행원이 만류했다. 안에는 어르신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수행원의 만류는 혹시나 박 장관이 곤란한 상황을 맞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나온 것이다. 박 장관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순댓국집 문을 열고 “안녕하세요”라며 어르신들과 일일이 손을 잡았다. 중기부 관계자는 “박 장관을 보면 즉문즉답이라는 말이 떠오른다”며 “답을 찾으려고 현장을 가는 게 아니라 답을 미리 생각하고 간다. 정책이 어떻게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스토리’를 제시한다”고 말했다. /양종곤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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