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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20·30대 "투쟁 일삼는 70·80년대식 '꼰대 노조' 싫다"

[본지 사회초년생 대상 설문조사]

파업보다 근로조건개선 더 선호

82% "굳이 노조 명칭 안써도 돼"

"노조 탈퇴했더니 배신자 보듯"

억압적 분위기에 고충 토로도

"젊은 직원들 동원집회 싫어해"

勞지도부도 변화 필요성 절감

문재인 정부 들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양대노총이 세를 불리고 있지만 20~30대 취업준비생과 사회초년생들은 1970~80년대식 투쟁적인 노동운동과 정치파업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예비·신입 노조원 10명 중 8명은 근로조건 개선 등을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더라도 ‘노조’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상급단체 가입에 대해 절반가량은 부정적이었다. 현재의 노동운동 관행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부정적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양대노총도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파업이나 정치집회에 조합원을 동원하는 식의 이념적·관료적 조직문화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경제가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공동으로 지난달 10~26일 511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노조’라는 말을 쓰지 않는 노동조합이 늘어나는 추세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82.1%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직장인(78%)·구직자(20%)·대학생(2%)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26~34세가 전체 응답자의 95.9%에 달했다. 직장인의 경우 76.9%가 ‘재직기간 5년 미만’이었다.





실제 정보기술(IT) 업체를 중심으로 신규 노조 명칭에 ‘노동’이라는 말을 넣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018년 4월 설립된 네이버 노조의 경우 정식 명칭은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노조 네이버지회’지만 별칭인 ‘공동성명’이 더 널리 쓰인다. 게임업체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노조는 각각 ‘스타팅포인트’ ‘SG길드’를 사용한다. 노조 명칭을 쓰지 않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파업 중심의 기존 노동운동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할 수 있어서’가 37.7%로 가장 높게 집계됐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 세대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면서 ‘평생직장’에 대한 개념이 없어 ‘언제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직장에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개인주의적 근로조건 개선에 집중하니 노조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노동과 자본의 대립’과 같은 이념적 구조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네이버 노동조합인 ‘공동성명’의 마스코트 ‘네이비(BEE)’. 사측 교섭위원이 ‘꿀 먹은’ 듯한 답답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네이버 공동성명은 지난해 ‘네이비와 사진찍기’ 등을 조합원에게 과제로 내는 등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노조’ 이미지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네이버 공동성명 페이스북 캡처


이처럼 ‘젊은 노조’를 지향하는 신세대의 특성은 지난해 노사 갈등을 빚었던 네이버 사례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점심시간 집회에 참여하면 ‘노조굿즈’로 불리는 초록색 후드티와 사원증 목걸이를 줬고 현수막의 내용도 JTBC의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패러디해 ‘단체행동, 감수하실 수 있겠습니까? 조합원을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등으로 구성했다.

특히 이들은 파업 등 투쟁 중심의 강경 노선을 멀리하고 실익에 집중하는 성향을 보이면서 상급단체인 노총 가입에 대해서도 40~50대와 다른 조사 결과를 보였다. ‘취업 후 혹은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 노조에 가입할 의사가 있다’는 응답률은 45.9%로 ‘없다’의 32.5%보다 13.4%포인트 높았다. 노조 가입 의사가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근로조건 향상과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응답률이 68.0%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노조가 설립되면 상급단체(한국노총·민주노총)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느냐’는 응답에는 긍정이 46.7%, 부정이 46.1%로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노총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이유로는 ‘노조가 정치적 파업·투쟁에 휩쓸리기보다 사내 근로조건 개선에 집중해줬으면 해서’가 54.5%였다. 파업만 하고 근로조건 개선에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할 바에야 독립 기업 노조로 실익을 얻는 데 집중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사원·대리급 직원 가운데서는 노조의 억압적·폭력적 분위기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았다. 민주노총이 1노조인 공기업에 종사하는 A씨는 “입사할 때 노동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조에 가입했고 집행부에 들어가 회사 일과 병행하기까지 했지만 사측의 합리적인 요구도 거부하고 파업을 하겠다는 모습을 보고 탈퇴했다”며 “이후 나이 드신 조합원들을 마주칠 때마다 ‘배신자’라고 하며 노려본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종합병원의 사무직 B씨는 “병원 곳곳에 대자보를 붙여놓고 점심시간에는 직원식당 앞에서 노동가에 맞춰 투쟁 춤을 추는데 시끄러울뿐더러 홍보 효과가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 외에 ‘파업 목적에 대해 충분한 설명도 하지 않고 조합비만 올려받는다’거나 ‘입사할 때 일괄적으로 노조가입서를 받는 것이 노조가 의무사항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의견도 있었다. 노조 관계자들도 ‘변화’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민주노총 산하에서 조합원 500명의 노조를 운영하고 있는 C노조위원장은 “우리 사업장에서도 상급단체(민주노총)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며 “젊은 직원들은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집회에 끌려 나가는 것을 싫어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개인 중심의 성향을 노동운동에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해야 하는 단계에 왔다. 재벌타파 식의 권력투쟁 노동운동으로는 동의를 받지 못하는 것”이라며 “노조가 정부나 사측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합의하는 합리적인 전통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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