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단독]'꽃가루'로 '미세플라스틱의 역습' 해결한다

난양공대(NTU) 조남준 교수팀, 꽃가루 활용 세계최초 플라스틱 연성물질 개발

알레르기 유발 단백질·내막 유전물질 제거..알칼리성 용액에 배양하면 젤로 변화

조 교수 “미세플라스틱 문제 심각..석유화학에서 뽑아낸 플라스틱 대체의 길 터”

다양한 꽃가루를 현미경으로 확대한 모습. /사진=난양공대




꽃가루는 수백만년이 넘도록 아주 비슷한 물리적·화학적 특성을 유지해 왔다. 이는 꽃가루 바깥쪽의 벽(외막)을 이루는 주성분인 스포로폴레닌이 굉장히 단단해 내막의 세포와 유전물질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꽃가루가 고(古)기후학, 산림학, 지질학, 화석학 등에 유용하게 쓰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기체의 다이아몬드’라고도 불릴 정도로 파괴하기 어려운 꽃가루 입자는 식물 번식을 위한 주요 수단이다. 구형, 달걀형, 타원형, 부속물이 달려 있는 형태 등 다양한데 크기는 지름 15~200μm (1μm는 100만분의 1m)이며 같은 종류의 꽃가루는 거의 균일한 크기를 지니고 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NTU) 연구팀이 최근 6년간 이 꽃가루를 부드럽고 유연한 물질로 바꾸는 연구를 진행, 플라스틱 등 새로운 형태의 소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논문을 20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게재했다. 꽃가루에서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단백질을 제거하고 내막 안의 유전물질 등도 없애 속이 빈 꽃가루 알갱이를 만들어 플라스틱 등의 재료인 마이크로캡슐로 활용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플라스틱이 자연풍화에 의해 잘게 부서지거나 세안제와 치약에 들어 있는 스크럽제, 공업용 연마제 등이 바다로 흘러들어 물고기가 먹고 이를 다시 사람이 먹는 미세플라스틱의 역습을 해결할 단초가 마련되는 셈이다.

수브라 수레시(오른쪽) 난양공대 총장이 조남준(왼쪽) 난양공대 재료과학과 교수와 공동제1저자인 박수현 박사과정생과 함께 꽃가루를 활용한 연성물질을 들고 웃고 있다. /사진=난양공대


조남준 난양공대 재료과학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세계 최초로 화학적 변화와 자극을 통해 하모메가시와 발아 과정의 신비를 밝히고 이를 이용해 단단한 꽃가루 입자를 부드러운 마이크로 겔 입자로 변환시키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하모메가시는 건조한 환경에서 꽃가루 알갱이들이 수분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발아구를 닫는 과정을 일컫는다. 이렇게 꽃가루를 접으면 습한 환경에 도착할 때까지 수분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이를 관찰해왔지만 딱딱한 꽃가루 외벽이 어떻게 접히고 구부러지는지에 대해 정확히 규명하지 못했다.

난양공대 연구팀은 비누 제조의 기본적인 단계와 유사한 매우 간단한 화학 공정을 사용해 단단한 꽃가루 껍질을 유연하고 자극에 반응하는 물질로 변형시키는 방법을 찾았다. 꽃가루 외막과 내막에는 다당류(펙틴)과 같이 에스터(-COO-) 그룹이 존재하는데 이 작용기가 강한 염기(수산화 칼륨)와 반응하면서 카복실산(-COOH)이 주가 되는 펙틴산(pectate)을 만들었다. 카복실산은 이온이나 pH 등의 변화에 수소 이온이 이동하면서 전체적인 전하가 바뀌면서 주변 환경에 반응한다. 이 과정은 식물 효소가 꽃가루 외벽껍질의 특성을 변화시키는 방식을 모방했는데 자연 식물의 특성을 넘어서는 물리적 특성을 갖춘 새로운 재료를 만든 것이다.



해바리기 꽃가루 입자를 알칼리성 용액에 배양하며 전통적인 비누제조 방식으로 물성을 변화시키는 과정. /사진=난양공




연구팀은 끈적한 오일 기반의 ‘꽃가루 시멘트’ 층을 제거한 해바라기 꽃가루를 알칼리성 용액에서 최대 12시간 배양해 꽃가루의 외막과 내막이 유연해지고 입자가 부풀어 올라 젤처럼 변하는 것을 관찰했다. 꽃가루 입자들을 더 오랜 시간 배양할수록 더욱 젤처럼 바뀌었다. 꽃가루 구조의 계산 모델을 통해 외막과 내막의 기계적 성질에 따라 미묘한 화학적 변화를 주면 꽃가루의 수축과 팽창 등 여러 반응을 촉진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조 교수는 “이 변형된 꽃가루 입자는 환경 변화에 따라 가역적으로 수축, 팽창한다”며 “해바라기, 관목, 양귀비 등 다양한 종류의 꽃가루를 비누를 만드는 것처럼 간단한 화학 과정을 통해 다양한 자극에 반응하는 부드러운 마이크로겔 입자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3D·4D 프린팅이 발전하면서 언젠가는 꽃가루를 고분자 젤 뿐만 아니라 종이, 스펀지 등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로 바꿀 수 있다고도 했다.

연구팀은 꽃가루 입자를 활용하면 지구촌의 심각한 환경 이슈인 미세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존 석유화학 원료로 만드는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면 가히 혁명적 변화가 예상되는 것이다. 소프트 로봇, 에너지 발전기, 센서 등의 혁신 소재도 외부자극에 민감한 꽃가루 천연 재료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습기에 민감하고 두께와 표면 거칠기 등의 조정이 가능해 구동기 역할을 할 수 있는 꽃가루 기반 종이도 만들 수 있다. 연구팀은 이같은 활용방안에 관해 최근 미국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논문 게재를 신청했다.

조남준(왼쪽 두번째) 난양공대 재료과학과 교수가 연구원들과 같이 꽃가루를 활용한 연성물질 개발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난양공대


조 교수와 함께 공동교신저자인 수브라 수레시 난양공대 총장은 “딱딱한 꽃가루 입자를 공정처리해 부드러운 마이크로겔 입자로 전환시킬 수 있었다”며 “지속가능하고 경제적으로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의 공동 교신저자는 수브라 수레쉬 총장, 조남준 교수, 송주하 조교수이고, 공동제1저자는 리화 부교수, 판 텅페이 박사, 시 첸 박사, 박수현 박사과정생, 모하메드 샤루딘 이브라힘 박사과정생, 양윤 연구원이다. 난양공대에 몸담았던 장싱유, 류치민, 송유현, 진호균, 나탈리아 모크레제카 연구원도 이번 연구를 같이 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