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BTS)을 탄생시킨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의장은 어린 시절 독서광이었다. 그의 아버지 방극윤 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한 인터뷰에서 방 의장을 “어릴 때 자기 방에서 하루 종일 책만 읽던 아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다독(多讀)하다 보니 독파력과 이해력이 남달랐다”던 방 의장은 다섯 살 때 한글을 깨쳤고, 초등학교 입학 전에 플루타르크 영웅전 등 청소년 들이나 읽을 책들을 읽었다고 한다. 방극윤 전 이사장은 “아이들에게 한없이 많은 책을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책을 많이 읽으면 공부가 쉬워지고, 자기 결정능력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책을 좋아하던 방 의장은 음악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해 인문학적 상상력을 키운 그는 대학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1997년에는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를만나 비의 ‘나쁜 남자’ 등 잇따라 히트곡을 내놓으면서 존재감을 나타냈다. 그리고 2013년, 그는 BTS라는 전에 없던 아이돌 그룹을 선보이며 K팝의 새 역사를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멤버들 스스로 작사·작곡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음악에 녹여내는 BTS는 ‘21세기의 비틀즈’로 불리며 K팝 가수 최초, 최고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K팝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기록했으며, 미국 3대 음악 시상식 중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와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에는 K팝 가수 최초로 세계 팝의 성지로 불리는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 무대에 올랐다. 연내 증시 상장이 예상되는 빅히트의 예상 기업가치는 최소 3조 9,000억, 최대 5조 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된다.
방 의장의 ‘독서 DNA’는 그가 키워낸 아티스트들에게도 이어졌다. BTS 멤버들의 남다른 책 사랑은 팬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BTS는 앨범 제작에 영감을 준 책을 직접 소개하기도 하는데, 지난해 4월 발매한 앨범 ‘맵 오브 더 솔: 페르소나’(MAP OF THE SOUL: PERSONA)는 머리 스타인 박사의 융 심리학 개론서 ‘융의 영혼의 지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방탄책방’이라는 트위터 계정에서는 BTS 멤버들이 읽은 책이 리스트로 정리돼 공유되기도 한다. 멤버들이 인터뷰 등을 통해 소개했던 책 등이 언급된 날짜와 함께 꼼꼼히 정리됐다. 중복된 책을 포함해 지금까지 총 192권이 소개됐는데, 여기에는 무료로 볼 수 있는 전자책 목록도 함께 제시돼 있다. 다독가이면서 예술에 관심이 많은 멤버 RM은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 등 특히 예술 관련 책을 많이 소개하며, 지난 4월 팬 커뮤니티에 책장 사진을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리스트에는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호밀밭의 파수꾼’ 등 청춘들을 위한 필독서로 꼽혀온 책은 물론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카프카의 ‘변신’ 등 세계 문학, 이상 소설 전집과 백석 시집 같은 한국 고전도 포함됐다. 동화와 만화는 물론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정치철학서도 눈에 띈다.
이러한 BTS 멤버들의 책 사랑은 BTS 팬클럽인 ‘아미(ARMY)’를 비롯한 전 세계 팬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친다. BTS가 언급하거나 이들의 콘텐츠에 등장한 책이 팬들 사이에서도 주목을 받으면서 출판계에도 ‘BTS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김수현 작가의 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BTS 멤버 정국이 읽은 책으로 알려지면서 팬들의 관심을 끌어,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김 작가의 신작 에세이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는 일본에 한국 출판물 사상 최고가인 2,000만 엔(약 2억 2,000여 만원) 이상의 선인세로 수출이 확정된 상태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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