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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담] 北김여정이 '위임통치'라니, 최고존엄은 뭘 하길래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국정원 "김여정이 국정 위임통치" 곧장 파장

"2인자지만 후계자 아냐...김정은 건강이상無"

전문가들 "잘못된 용어...김정일도 썼던 방식"

일각에선 "박지원 원장, 또 정치하나" 쓴소리

김정은은 각종 회의 주재하며 연일 건재 과시

경제실패 인정하고 美대선 후 새 5개년 계획

김여정. /연합뉴스




지난 20일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 비공개 업무보고. 국정원이 사용한 단 한 단어에 정관계는 물론 국민들까지 곧바로 발칵 뒤집혔다. 바로 ‘위임통치’였다. 정보위 여야 간사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에 의해 국정원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국정 전반의 권한을 위임받아 통치하고 있다’고 보고한 내용이 전해지면서 논란은 급속히 확산했다. 여야 간사는 “위임통치는 북한에서 쓰는 용어가 아니고 국정원에서 만든 용어”라고 해명했지만 북한의 통치 시스템이 바뀌었다고 정보당국이 인식한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권력과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왜 국정원에서 위임통치란 용어를 사용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국정원의 대북관을 의심하는 시각부터 “박지원 국정원장이 ‘정치’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왔다. 김정은의 통치 방식 변화를 두고는 ‘시스템 통치’ ‘역할 분담’ ‘책임 회피’ ‘김정일식 통치의 변형’ ‘권력 자신감’ 등 각종 해석이 난무했다.

김정은과 김여정. /연합뉴스


국정원 “김여정이 2인자이지만 후계자 통치는 아냐”

20일 김병기 의원과 하태경 의원에 따르면 국정원은 “김정은이 여전히 절대 권력을 행사하지만 과거에 비해 조금씩 권한을 이양했다”며 “김여정이 사실상 2인자이지만 후계자를 결정하거나 후계자 통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위임통치는 김여정 1인에게만 다 된 것은 아니고 김여정은 대남·대미정책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하고 가장 이양받은 게 많을 뿐”이라며 “경제 분야에서는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겸 당 부위원장과 김덕훈 내각총리에게, 군사 분야에서는 당 군정지도부의 최부일 부장에게, 당 중앙군사위원회 이병철 부위원장에게 각각 부분적으로 권한이 이양됐다”고 덧붙였다.

여야에 따르면 국정원은 그 배경에 대해 “첫째는 김정은이 9년간 통치하면서 통치 스트레스가 많이 높아졌는데 그것을 줄이는 차원이고 둘째는 정책 실패 시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에 위임받은 쪽에 책임을 돌리려는 차원”이라며 “근본적으로는 9년간 통치하면서 갖게 된 자신감의 발로”라고 분석했다. 여야 간사는 그러면서 “위임통치는 북한에서 쓰는 용어가 아니고 국정원에서 만든 용어”라고 해명했다. 김정은의 건강에 대해서는 “(이상이) 전혀 없는 것 같다”며 “여러 출처 상 없는 것으로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정일과 김정은. /연합뉴스


전문가들 “위임통치란 용어 말도 안돼... 김정일도 썼던 방식”

대다수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이 같은 통치 방식을 국정원이 위임통치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위임’이라는 말을 쓰려면 권력 구도에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징후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다. 일각에서는 국정원 분석과 유사하게 경제실정에 더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수해, 국제 제재, 불확실한 북미관계 등으로 통치 리스크가 높아진 상황에서 김정은이 혹시 모를 실패에 대한 책임을 아랫사람들에게 분산하거나 전가하려는 의도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김정은이 권력 안정화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른바 ‘시스템 통치’에 나선 것이라는 진단도 내놓았다. 김여정이 대남·대미업무를 총괄하는 2인자라는 사실은 수차례에 걸친 담화문과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이미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아직 김정은과 권력을 나눌 수준은 결코 아니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이 집권 초기에는 스스로 하나하나 챙기면서 통치를 학습했다면 이제는 업무 파악이 됐기 때문에 책임 부담을 덜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코로나19와 불안정한 대외환경으로 리스크가 높아졌다는 점이 김 위원장의 통치방식 변화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평가하며 “중간책임자들에게 업무를 분산시켰다가 잘못될 경우 책임을 묻는 방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도 썼던 방식”이라고 말했다.

김 부부장에 대해서는 “김 부부장이 대남·대미업무를 총괄한다 해도 경험이 일천해 온전히 다 결정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대남 부문은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고문 역할을 해주고 외교 부문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보좌 역할을 아직도 한다고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유일영도체제인 북한에서 위임통치는 비상체제에서나 가능한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건재한 정상 상황에서는 정치는 김 위원장 자신이 직접 관장하고 경제·사회·군사·대외 등은 분야별로 책임자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위임통치가 아니라 역할 분담이고 이는 김 위원장의 정치적 관리 용병술”이라며 “김 위원장의 권력이 안정화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지원 국정원장. /연합뉴스


정부 ‘대북인식’에 쓴소리 이어져... “박지원, 또 정치 하나”

국정원이 ‘위임통치’란 용어를 스스로 만들어 사용한 것을 두고 전문가 집단과 정계 곳곳에선 연이어 비판이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해당 용어를 국정원에서 만들었다는 점에 비춰 정부가 앞에서만 한반도 평화를 얘기하고 실제로 북한을 바라보는 인식은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냐는 쓴소리도 나왔다. 또 “국정원장이 되면 정치를 하지 않겠다던 박지원 국정원장이 결국 정치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과 “김정은을 최고존엄으로 여기는 북한을 쓸데없이 자극할 수 있는 표현”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위임 통치 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을 보면 아직도 우리 정보당국에서 북한을 불안하고 불완전하고 비정상적인 국가로 바라보는 인식이 보인다”며 “북한 인민 생활이 변했으므로 이를 반영해 통치 방식도 바뀔 수밖에 없는 건데 우리 정부의 인식은 김정일 시대의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북한을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이번과 같은 보고가 청와대로 계속 올라가니 대북정책도 잘못되는 게 아닌가 싶다”고 우려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21일 페이스북에서 “음지에서 일하는 대한민국 정보기관 수장이 아직도 정치인 습성과 관종(관심종자)병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며 “김여정 위임 통치라는 헤드라인만으로도 김정은의 신변 이상이나 수령의 유고 사태나 권력 핵심에 변동 상황이 있는 것으로 상상하게 마련”이라고 꼬집었다. 김기현 미래통합당 의원 역시 같은 날 페이스북에서 “세습독재인 북한체제의 특성상 ‘위임통치’는 있을 수도 없고 이뤄진 적도 없다”며 “제 아무리 백두혈통을 이어받았다 하더라도 권력에 걸림돌이 되는 순간 가차 없이 처단됐다”고 반박했다. 이어 “정권 지지율이 하락하니 대북 이슈로 국면 전환을 하려는 것 아닌지 의문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평화통일포럼 참석 뒤 기자들에게 관련 질문을 받고 “국정원이 위임이라는 단어를 썼겠느냐, 하태경 의원이 쓴 것 아니냐”며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옆에 있던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이 “국정원에서 문서를 배포했다고 한다”고 설명한 뒤에도 “위임통치란 말을 진짜 국정원이 썼대?”라며 당황해 했다.

김정은. /연합뉴스


김정은, ‘경제실패’ 공식 인정... 美대선 후 새 5개년계획

이런 가운데 김정은은 여전히 각종 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자신의 건재를 알렸다. 특히 지난 19일에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경제목표 달성 실패를 공식화하기도 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를 지켜본 뒤 내년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를 열고 새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제시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일 “전원회의에서는 노동당 제8차 대회를 주체110(2021)년 1월에 소집할 것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당 대회 개최를 제의하며 “당 8차 대회에서 올해의 사업 정형과 함께 총결기관 당 중앙위원회 사업을 총화하고 다음해 사업방향을 포함한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당 전원회의 결정서에서는 “혹독한 대내외 정세가 지속되고 예상치 않았던 도전들이 겹쳐드는 데 맞게 경제사업을 개선하지 못해 계획됐던 국가경제의 장성 목표들이 심히 미진되고 인민생활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못하는 결과도 빚어졌다”고 그 배경을 명시했다.

북한이 당 대회를 여는 것은 지난 2016년 제7차 대회 이후 4년8개월 만이다. 당 대회는 노동당의 공식적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당의 규약을 규정하며 당의 노선과 정책·전략전술에 관한 기본문제 등을 결정한다.

노동당 대회는 198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식 데뷔한 6차 이후 2016년 5월까지 36년 동안 열리지 않았다. 1985년 김일성 주석이 “인민들이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될 때 7차 당 대회가 가능하다”고 언급한 게 영향을 줬다.

내년 1월에 열릴 당 대회는 미국에서 새 대통령 선출이 마무리된 직후라는 점에서 대미·대남 정책 등 향후 대외전략도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이 아직 밝혀지지 않아 의도를 분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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