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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 자리에 누가 오든 한일관계 달라지지 않을 것”

[서경이 만난 사람]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대담=황정원 경제부차장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 하는 즉시 설비·기계 겨냥 추가보복 예상

로봇 핵심부품 대부분이 일본산...산업정책 정밀하게 가다듬어야

코로나 백신 개발 늦어지면 세계경제 길게 늘어진 W자 회복 가능성





지난 2018년 대법원 징용 판결이 나온 뒤 한일 관계는 극으로 치달았다. 판결에 반발한 일본의 수출규제가 뒤따랐고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로 맞불을 놓았다. 무릎을 맞대고 협상하는 대신 상대를 향해 굴복을 강요하기를 2년째. 대한(對韓) 보복을 진두지휘하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돌연 사임 의사를 밝혔다. ‘포스트 아베’의 등장으로 한일 관계가 변곡점을 맞을 수 있을까.

“아베 총리 자리에 그 누가 온들 한일 관계는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전범기업의 자산 현금화 조치에 돌입하는 즉시 후임자는 한국을 향해 포문을 열 것입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권력층 안에서 ‘역적’으로 몰리고 지지 기반을 상실할 테니까요.”

30일 세종시 본사 집무실에서 만난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강성인 아베 총리가 물러난 후 한일 관계를 점쳐달라는 말에 ‘악화 일로’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 대법원 판결이 한일 관계의 근간을 뒤엎은 중대한 문제’라는 시각이 집권당 안에 깊게 뿌리내려 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자민당 내 정치지형이 어느 때보다 오른쪽으로 치우친 터라 후임자가 누가 되든 한일 관계를 두고 지금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1시간가량 진행된 이날 인터뷰에서 김 원장은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 중국의 상황을 짚어가며 눈앞에 닥친 위기 국면을 조목조목 분석했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유력 후임자들의 면면을 뜯어본 김 원장은 ‘포스트 아베’는 ‘제2의 아베’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뒤를 이을 후임자로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을 비롯해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과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고노 다로 방위상,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김 원장은 “후임자에 따라 아베 총리가 필생의 과업으로 삼던 평화헌법 개헌 논의는 다소 시들해질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한국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강온의 차이만 있을 뿐 아베 총리와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전했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서 패소한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를 위한 사법절차가 본격화하면 그나마 있던 차이마저 희석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력 후보 중 아베 정부와 각을 세워온 이시바 전 간사장 등이 한일 과거사 이슈에서 유연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해결됐다는 입장은 여느 후보와 다르지 않다. 김 원장은 “2009년 집권 당시 미숙한 국정운영과 뒤이은 동일본 대지진에서의 실망스러운 대응으로 각인된 민주당이 자민당의 독주를 견제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현금화 조치에 반발한 일본이 수출 통제 품목을 확대해 보복 수위를 높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수출 통제를 두고 협상을 벌이는 한일 실무진은 강대강 대결보다는 대화를 통해 상황을 개선하려는 것 같다”면서도 “실무진의 바람과 달리 양국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고 했다. 김 원장은 예상되는 추가 보복 타깃으로 첨단 제조업 공정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일본산 설비·기계를 꼽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산업용 로봇의 경우 대일 수입 비중이 58.6%에 달할 정도로 일본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김 원장은 “얼마 전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을 들러 수소전기차 넥소 생산공정을 둘러보고 왔는데 공정 대부분을 사람이 아닌 ‘로봇 팔’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며 “국내 제품을 쓰고 싶어도 성능이 받쳐주질 않으니 전부 일본제 로봇을 쓰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일본의 추가 보복을 대비해 리쇼어링(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회귀) 등 각종 산업정책을 보다 정밀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원장은 “정부는 싼 인건비를 보고 해외로 나간 기업들이 돌아오도록 공정을 ‘스마트화’해주겠다고 한다”며 “첨단 로봇과 설비를 지원해서 인건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것인데, 로봇 핵심부품이 대부분 일본산이라 되레 일본 의존도를 키우는 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부품·장비 역량을 고려하지 않은 리쇼어링 정책이 공정의 불안정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노동집약 산업은 해외에 두면서 중국과 일본에 있는 고부가가치 기업을 들여오는 데 초점을 맞춘 니어쇼어링(인접국으로 생산라인 분산)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뿐 아니라 미국발(發) 리스크 또한 커질 것이라고 김 원장은 경고했다. 임박한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대외환경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김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엉뚱하면서도 개인적 친소관계 따라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일 것”이라며 “최악의 경우 퇴임 이후를 생각해 자신의 공적 영향력을 사적 이익과 결부시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민주당에서 이를 물고 늘어져 특검 정국까지 간다면 글로벌 질서를 지탱하던 미국의 리더십이 사라지게 돼 극심한 혼란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하고 선거 결과에 불복해 재선거를 요구할 경우에도 리더십 공백이 길어질 수 있다고 봤다. 논란을 넘어 바이든 전 부통령이 권좌에 오르더라도 대외 불확실성은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 원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피해가 심화하자 미국 내 반중(反中) 정서가 폭넓게 자리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바이든 전 부통령 역시 대선 전략의 일환으로 ‘중국 때리기’에 동참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동맹의 가치를 중시하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승리한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동맹국과의 연대를 통해 중국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에도 대(對)중국 전선에 확실히 동참할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간 패권 다툼이 치열해지는 와중에 한국의 ‘줄타기 외교’가 피할 수 없는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는 것이다. 김 원장은 “다만 전통적인 동맹국에도 무역확장법 232조(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와 같은 보호무역 조치를 꺼내 들던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전 부통령은 적어도 우군을 몰아붙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이후 얼어붙은 중국과의 관계가 회복돼가는 점은 그나마 위안거리다. 김 원장은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는 동안 중국은 주변국과 유대관계를 쌓아 우군을 확보했어야 했다”며 “중국의 코로나19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해온 호주에 경제보복을 하는 등 독선적인 행태를 이어가니 되레 국제사회에서 더 고립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취해온 덕분에 중국이 우리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이 얼마 전 한국을 직접 찾은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했다. 김 원장은 “당초 말끔히 풀리지 않은 사드 보복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우리 측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을 추진해왔지만 이제는 오히려 중국에서 더 원하는 형국”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하는 가운데 세계 경제전망을 묻는 질문에는 백신 개발이 조기에 이뤄지지 않을 것을 전제로 “길게 늘어지는 ‘더블유(W)’ 회복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답했다. ‘V’자 혹은 ‘U’자 형태처럼 경기 침체와 반등이 단번에 그치는 게 아니라 오르내림이 반복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코로나19 대처능력이 점차 나아지고 있는 만큼 경기 진폭은 차츰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김 원장은 “내년 말까지 코로나19 국면이 이어지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나 비대면 근로가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어 처음 코로나19가 발생할 때보다 혼란이 덜하다”며 “내년이면 지난해 수준의 성장세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완만한 성장세를 점치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의 회복세다. 김 원장은 세계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단단한 내수를 바탕으로 올해 2%대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5월 IMF·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글로벌 경제연구기관보다 한 달 앞서 중국의 경제 반등을 예측(2.6% 성장)할 정도로 중국 동향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원장은 “중국은 확진자가 나오면 주변 지역을 완전 봉쇄하는 식으로 대응을 하다 보니 확산세가 확연히 꺾이고 있다”며 “일각에서는 중국에서 발표한 통계를 못 믿겠다고 하지만 현지 얘기를 종합해보면 길거리나 쇼핑센터에 사람이 몰리는 등 코로나19 발생 전 수준의 일상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리=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He is...]

△1964년 서울 △경복고 △서울대 경제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과 △2007년 한국국제통상학회 부회장 △2007년 외교통상부 한·EU FTA 자문위원 △2010년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2020년 한국EU학회 차기 회장 △2020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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