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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약했던 신라 왕족 여성 무덤에서 흑·백·회색 바둑돌이 우르르...

경주 쪽샘 44호분 발굴조사

5세기 최상위층 미성년 여성 무덤 추정

약재와 함께 돌절구·공이도 발견

저승길 보필 몸종 네댓명 순장 흔적

바둑돌 200여개·금 장신구도 출토

신라 여성도 바둑 즐겼나...문화사적 연구 기대

경주 쪽샘 44호분에서 피장자가 둘렀던 장신구 일체가 원래 위치 그대로 발굴됐다. 장신구의 형태로 보아 무덤 축조시기는 5세기 후반이며, 무덤 주인공은 몸집이 작은 미성년 여성으로 추정된다. /사진제공=문화재청




평소 허약했거나 병색이 짙었던가. 1,500년 전 요절한 신라의 왕족 여성은 무덤에 약재 빻는 돌절구를 부장했고, 저승길까지 보필해줄 몸종 네댓 명 이상을 순장한 모양이다. 생전에 바둑을 즐겼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지난 달 중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에서 5세기 당시 최고위 계층의 장신구들과 순장 흔적, 돌절구 세트와 바둑돌 등의 부장품을 무더기로 발굴했다고 7일 발표했다. 2007년 존재가 확인된 쪽샘 44호분은 2014년부터 정밀 발굴조사가 진행됐고, 트럭 약 200대 분량의 돌무지 1,000톤을 조심스레 걷어낸 뒤에야 비로소 속살을 드러냈다.

발굴에 참여한 연구원들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무덤 주인의 주변을 밝히는 그윽한 빛에 잠시 아찔했다. 운모(雲母)였다. 화강암에 많이 든 광물로, 도교에서는 운모를 불로장생의 약으로 여겼다. 피장자의 머리맡 부장품 상자 곁에서는 높이 13.5㎝의 돌절구와 손에 쏙 들어오는 공이가 발견됐다. 심현철 학예연구사는 “무덤 주인의 상반신이 반짝이듯 보일 정도로 나뭇잎 모양으로 자른 얇은 운모 조각들 50여 점이 에워싸듯 분포했다”며 “작은 절구는 곡식이 아닌 약제용으로 보이는데, 운모는 선약(仙藥)으로 불리는 광물인 만큼 관련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피장자의 평소 생활과 관련된 유물로 보이며, 병약했던 무덤 주인이 죽어서도 건강을 위해 사용되길 바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신라고분에서 돌절구가 출토된 사례는 황남대총 남분의 돌절구·공이 1묶음, 서봉총의 공이 1점 뿐이다.

무덤의 인골은 형체 없이 사라졌지만 머리 쪽에 출(出)자형 금동관이 남았다. 목 아래께 ‘가슴걸이’는 남색의 유리구슬 4줄 사이사이에 금구슬 4줄, 은구슬 4줄로 장식성을 더하고 가운데 곡옥으로 화려함을 뽐냈다. 팔 자리에서는 여러 개의 금은 팔찌와 반지들이 나왔다. 은 허리띠에는 침을 묶어 솔처럼 만든 장식, 수정으로 만든 곡옥 장식이 매달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출토된 토기와 장신구 구성을 통해 무덤 축조 연대는 5세기 후반으로 추론된다. 피장자의 키는 150㎝ 안팎으로 작은 편이고, 금동관·팔찌·허리띠 등 장신구 크기도 전반적으로 작다. 지난 1924년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금령총에서도 이처럼 크기가 작은 금동관과 장신구가 발견돼 무덤 주인이 어린 남성 왕족으로 추론된 적 있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신장과 장신구들이 작다는 점, 여성용 은장식 도자(刀子·작은 손 칼)를 지닌 것으로 보아 최상위층의 미성년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론했다.

피장자의 곁에서는 무덤 주인의 것이 아닌 금귀걸이 한 쌍도 출토됐다. 함께 묻힌 순장자의 것으로 보인다. 무덤 주인 바로 옆자리 뿐만 아니라 외곽을 둘러싸듯 분포한 4구 이상의 순장자 흔적이 함께 확인됐다. 인골로 순장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는 거의 없으며,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귀걸이 등 유물 분포로 순장을 유추할 수 있었다. 신라는 지증왕 3(503년)년 왕령으로 순장을 금지했다.



비단벌레 금동장식 /사진제공=문화재청


무덤 주인공 머리맡에서 수십 점 확인된 비단벌레 장식도 주목을 끈다. 에메랄드빛 초록에 무지개처럼 영롱하게 반짝이는 비단벌레의 딱지날개 2장을 겹쳐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고, 앞뒤 판 둘레를 금동 판으로 고정한 장식이 우르르 출토됐다. 섬세한 가공이 필요한 비단벌레 장식은 황남대총 남분, 금관총, 계림로 14호 등 최상급 무덤에서 나온 적이 있지만, 1.6×3.0cm 크기의 스팽글 같은 소형 장식이 신라 고분에서 발견되기는 처음이다. 이 비단벌레 장식은 안장 등 말 장신구로 추정된다.

무덤에서 출토된 바둑돌 /사진제공=문화재청


더 놀라운 것은 200개가 무더기로 쏟아진 바둑돌이었다. 피장자의 발치 아래 토기들 사이에서 발견된 지름 1~2㎝의 바둑돌들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 삼국에 바둑이 전래된 것은 4세기 경이며, 신라 고분에서 바둑돌이 출토된 것은 황남대총 남분(243점), 천마총(350점), 금관총(200여점), 서봉총(2점) 등 최상위 돌무지덧널무덤 사례만 존재한다. 바둑돌은 최상위 남성 무덤에서만 출토됐기에 바둑이 남성 어른의 전유물로 여겨졌으나 이번 발굴을 계기로 여성도 바둑을 즐겼는지에 대한 문화사적 연구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약용 재료인 운모와 함께 도교 및 신선사상과의 연관성을 추측해볼 수도 있다.

어창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섬세하게 발굴을 진행해 이제 절반 정도 밝혔을 뿐이지만 유물 외에도 봉토 조성방법, 적석 조성방법, 목조 가구상태의 결구방식 등 무덤 만드는 과정과 구조에 관한 상세한 내용이 밝혀지고 있어 의미가 크다”면서 “발굴 진행상황을 최대한 공개할 계획이며 내년 조사를 통해 적석부구조 전체를 완벽하게 파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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