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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K-R&D 2.0’을 향한 도전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윤석진 KIST 원장




한글은 이론의 여지없는 우리 민족 최고의 발명품이다. 단 24개의 자음과 모음만으로 조합할 수 있는 글자가 무한하다. 혀의 위치, 입술 모양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말소리와 글자가 일치하도록 한 문자라서 가능한 일이다. 이런 한글이 2009년 인도네시아의 한 부족에게 전해졌다. 고유 문자가 없던 이들은 한글을 통해 비로소 자신들의 생각과 말을 읽고 쓸 수 있게 됐다. 인구 7만여 명의 작은 부족에게 전해진 한글은 규모면에서 드라마, 음악, 영화, 웹툰까지 전 세계 수십억 명이 주시하는 K-콘텐츠에 비해 보잘것 없다. 하지만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한류의 시작이었다.

K는 이제 한국만의 국지적 현상을 뜻하는 접두사가 아니다. 세계인이 즐기고 공유하는 독창성을 의미한다. 필자는 지난 두 달간 칼럼을 통해 한국의 R&D도 세계 중심 국가로의 성장을 상징하는 ‘K’ 물결에 합류할 때라 말해왔다. 그간 우리 R&D는 모방과 재현에 치중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선진국의 발전 경로를 무조건 답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현실에 맞게 개선하고 응용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 왔다. 베트남이 KIST를 모델로 V-KIST를 설립해 한국의 경험을 배우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의 선배와 동료 연구자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K-R&D 1.0’의 완성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심장 격인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는 대한민국의 일원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과학자로 가득했다. 그들은 모든 일상을 연구 활동으로 만들었고 새로운 성장동력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실패도, 정답 없는 반복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덕분에 좁은 국토, 빈한한 자원에도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에 올라섰다.



이제는 ‘K-R&D 2.0’의 새로운 대항해를 준비할 때다. 과거의 추격형 연구를 뒤로 하고 선도형 연구의 신대륙으로 향해야 한다. 한국의 R&D 투자 비중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여전히 미국의 1/6, 중국의 1/4에 불과하다. 이런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려면 세계의 권력지도를 뒤바꾼 신항로 개척시대처럼, 우리 기업들이 평판 디스플레이라는 혁신기술로 소니의 아성을 무너뜨린 것처럼 기술혁신 기반의 창조적 파괴에 힘써야 한다.

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한 연구는 이제 과감히 민간에 맡기고 공공 부문은 더 크고 미래지향적인 R&D에 나서야 한다. 특히 미세먼지, 기후변화, 코로나 팬데믹 등의 위기요소로부터 국민의 안전과 삶의 질을 지키는 빅사이언스가 필요하다. D·N·A(디지털·네트워크·AI) 기반의 자율실험실처럼 공격적인 디지털 전환으로 연구 효율도 높여야 한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첫 번째 퍼즐은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지원, 마지막 조각은 자율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연구 문화의 정착이 될 것이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우선 그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소설 데미안의 유명한 문장처럼 한국의 공공 R&D는 이제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파괴하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K-R&D 2.0’은 대한민국을 더 이상 변수가 아닌 세계사의 상수로 발전시킬 가장 강력한 지렛대가 될 것이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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