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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구원을 찾아, 거꾸로 걷는 순례자

■리뷰-국립극단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

산티아고서 출발 시베리아까지

종교·문명 등에 대한 회의 담아

잦은 암전 '점멸하는 세계' 표현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의 한 장면. 사진 제공=국립극단




종교적 깨달음과 구원을 찾으며 걷는다는 서유럽 끝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거꾸로 걷다가 시베리아까지 온 순례자가 있다면 어떨까. 국립극단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공동 제작한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은 이 설정에서 출발해 인간 실존과 구원 등에 대한 회의를 전한다.

극은 ‘2020년 그 이후 언젠가’를 배경으로 가상의 온라인 게임에서 한 이용자가 종착지인 스페인 북서부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출발해 거꾸로 걷는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원래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 동부의 프랑스 국경마을 인근에서 시작해 스페인 서부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약 800㎞의 길이다.

이 게임 이용자는 스페인과 프랑스를 지나고 유라시아대륙을 가로질러 태평양 오호츠크해를 떠다니는 기후탐사선의 레이더에 의해 극동 시베리아에서 포착된다. 게임에서도 많은 이용자들이 순례자를 따라 걷게 되면서 화제가 되고, 기후탐사선의 연구원 AA와 BB는 위성을 통해 동선을 체크하는 임무를 안게 된다.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의 한 장면. 사진 제공=국립극단


연극은 AA와 BB가 순례자의 행로를 지켜보면서 하는 대화, 중간 중간 등장하는 순례자의 독백으로 채워진다. 순례자는 독백을 통해 삶과 인간의 구원에 회의를 느끼고 길을 떠난 것으로 나온다. 극의 작·연출을 맡은 정진새 연출가는 “희곡을 쓰며 의뢰를 받은 ‘온라인 여행’이라는 키워드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이 느꼈을 구원과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 믿음과 문명의 유효성 같은 질문을 얹었다”고 말했다.

AA와 BB의 대화는 수시로 등장하는 암전 속에 맥락이 끊기며, 서사적 흐름이 뚜렷하지 않다. 온·오프라인 순례길 속 풍경을 비롯해 기후위기, 인간 실존의 구원 등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무의미하고 시시껄렁하다. 이야기를 진행할수록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무엇이 가상이고 실재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논리적이지 않은 서사와 파편적 대사로 인간 존재의 허무를 그렸던 부조리극을 연상케 한다. 정 연출가는“팬데믹 같은 전 지구적 고통의 순간을 연극적으로 기록하는데 부조리극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의 한 장면. 사진 제공=국립극단


작품 속 암전은 재난 속 점멸하는 세계를 은유하는 장치로, ‘세상이 깜박거리는데 분명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극중 대사처럼 기후위기, 팬데믹 등 위기상황의 와중에 어떤 전망도 무의미해진 시대의 모호함을 비춘다. 정 연출가는 “잘 짜여진 SF·스릴러가 대개 밝은 미래 혹은 휴머니즘을 말하는데,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27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을 만든 정진새 연출가. 사진 제공=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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