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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범벅 칠판·카드뮴 학용품…학교는 언제쯤 안전해지나요?[지구용 리포트]

[십수년째 유해물질 노출된 아이들]

안전 관리 기준 제시한 학교보건법

게시판·오래된 교구 등은 사각지대

초등학교 비품 40% '유해물질 위험'

안전제품 교체땐 수치 10분의1 급감

지자체 지원조례 제정불구 유명무실





“우리한테 안 좋은 물건이 왜 학교에 있어요?”

칠판, 환경 미화 게시판에서 납·카드뮴이 검출된다는 사실을 배운 초등학생들의 질문이다. 학교조차 안전하게 지키지 못한 어른들은 어떻게 답해야 하는 것일까. 초등학교의 책걸상과 우레탄 트랙에서 유해물질이 뿜어져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 십수 년이 지났다. 그러나 법의 사각지대 속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환경보건법’은 초등학교 교실과 도서관의 환경 안전 관리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벽·바닥재·문·창호에만 기준이 적용된다. 학교의 유해 중금속 관리 기준을 담은 ‘학교보건법’은 탄성 포장재(우레탄 트랙)나 인조 잔디에만 적용된다. 학습 교구는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의 영역이지만 2016년 6월 이후 생산된 물품부터 규제 대상이다.

법의 빈틈은 생각보다 넓고 깊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가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 의뢰해 지난해 10월 실시한 유해물질 조사에 따르면 서울 초등학교 15곳의 비품 38.3%는 유해물질 ‘위험’ 수준으로 나타났다. 납·카드뮴·브롬·염소 등의 농도가 ‘위험’으로 판명 난 제품은 칠판(64.3%), 충격 보호대(57.1%), 게시판(30%), 소파(24.2%) 순으로 많았다. 한 칠판은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상 기준치(100ppm)의 501배에 달하는 5만 100ppm의 납이 검출됐다.

도서관의 소파 33개 중 5개에서는 기준치의 최대 450배에 달하는 납이 검출됐다. 모두 폴리염화비닐(PVC) 소재가 포함된 제품들이다. PVC 제품은 제조 과정에서 납과 프탈레이트 등 내분비계 교란 물질이 사용된다. 납은 발달장애·자폐 등을 일으킬 수 있다. 건축자재·학용품 등에서 검출되는 프탈레이트는 아토피 등 피부 질환, 천식, 불임, 태아 기형 등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게다가 성장기인 어린이들은 어른보다 유해물질을 더 많이 흡수한다. 어린이들이 접하는 물건에 더 엄격한 안전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이유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대표적 환경성 질환인 성조숙증으로 진료를 받은 유소년의 수는 2015년 7만 6000명에서 2019년 10만 9000명으로 5년 사이 43% 증가했다.



제도가 아이들의 건강을 방치하는 동안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름다운재단이 2020년 ‘유자(유해물질로부터 자유로운 환경)학교’, 2023년에는 ‘유자를 찾습니다’ 캠페인을 시작한 이유다. 지난 4년 동안 전국 초중고의 150개 학급을 방문해 3531명의 학생들에게 학교 유해물질을 피하는 법을 가르쳤다. 34개 학급에서는 휴대용 X선 형광분석기(XRF)로 교실 등 학교 시설 구석구석을 점검하고 유해물질이 많은 학습 교구는 안전한 제품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유자를 찾습니다’ 캠페인에 참여한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물품 교체 후 위험 수치가 54.1%에서 5.4%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시민들의 후원으로 일궈낸 변화다.

캠페인을 이끌어온 이지희 아름다운재단 매니저는 “XRF로 아이들의 학용품을 검사해주기도 하는데 안전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휴 다행이다’라며 안도하는 모습이 귀여운 한편 왜 아이들이 이런 일들을 걱정해야 하나 싶다”며 “아이들이 긴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자 공공의 영역인 학교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유해물질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우개·필통·슬라임·화장품까지 일상 속의 유해물질에 대해 배운 아이들은 오히려 “어른들은 괜찮냐”고 되묻는다. 어른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소비자의 권리를 행사하기도 한다. 이 매니저는 “PVC보다 에틸렌초산비닐(EVA)이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배운 아이들이 문구점에 몰려가 EVA 실내화를 찾다 보니 사장님도 EVA 제품만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아름다운재단은 ‘유자학교’ 홈페이지에 안전성이 인증된 학교 비품 및 어린이용 물품 리스트를 공개하고 있다. 이 매니저는 “학교 물품을 구매할 때 환경부의 환경 표지 인증 마크,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의 KC 마크를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학교 유해물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2023년까지 서울시·세종시·전라남도·광주시·인천시·충청북도·경상북도·경기도에서 학교 유해물질 예방 안전 관리 조례를 제정했다. 서울시는 학교 관계자들이 안전한 학교 용품을 구매하도록 ‘안전한학교용품지원센터’를 설치, 운영하겠다는 조항도 2021년 추가한 바 있다. 그러나 8곳 모두 관련 조례의 이행 계획이 수립되지 않아 유명무실한 상태다. 어떤 물품에서 얼마나 유해물질이 나오는지, 어떤 물품을 교체 우선순위로 둬야 하는지 등 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매니저는 “교장·선생님들의 역량에만 의존할 필요가 없도록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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