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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 꿈꿨던 공학도…'섬유의 반도체' 개발해 세계 1위로 키워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 별세]

日서 중화학 전공·美 박사과정

부친 뜻따라 경영인으로 전향

나일론사업 제안해 사세 확장

민간기업 첫 기술연구소 설립

타이어코드 등 혁신소재 개발

조석래 명예회장이 1987년 12월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효성




‘우리만의 기술’로 한국 섬유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일으킨 효성(004800)의 기술 경영 근간에는 공학도 출신인 조석래 명예회장이 있다. 1935년 고(故)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난 조 명예회장은 당초 경영에는 뜻이 없는 ‘학구 청년’이었다. 경기고 1학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대 이공학부를 졸업했다. 당시 여느 부잣집 자제들과 달리 중화학을 전공하며 공학도의 길을 걷던 조 명예회장은 미국 일리노이대 공과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까지 밟으며 대학교수의 꿈을 품었다.

하지만 사업을 도우라는 부친의 부름을 받고 1966년 귀국해 효성물산에 입사하면서 경영인으로 진로를 바꿨다.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한 조 명예회장은 부친에게 “앞으로 석유화학산업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나일론 사업을 제안하고 그해 동양나이론을 설립했다. 1973년 동양폴리에스터, 1975년 효성중공업(298040)을 연이어 세우며 사세 확장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가 부친에 이어 ‘창업 1.5세대’로 평가받는 이유다. 조 명예회장은 그룹의 주력 계열사를 맡아오다 창업주가 별세하기 2년 전인 1982년에 효성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조 명예회장은 공학도답게 기술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 대표적인 일화가 신혼여행이다. 동양나이론 울산 공장을 짓고 있던 1967년 고(故) 송인상 전 재무장관의 딸인 송광자 여사와 결혼한 그는 신혼여행지로 이탈리아 포를리를 골랐다. 당시 이름도 생소했던 이곳을 택한 것은 동양나이론 기술진이 포를리에서 생산 기술 연수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 명예회장은 이곳에서 직원들과 밤새 기술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기술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집념으로 1971년에는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기술연구소’도 설립했다.

회장에 취임한 후에는 ‘경제 발전과 기업의 미래는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력에 있다’는 철학에 따라 기업을 경영했다. 누구보다 기술을 잘 알고 확신이 있었기에 신사업 개척에도 과감한 모습을 보였다. 조 명예회장은 1980년대 후반 합성수지인 폴리프로필렌 사업에 도전하기 위해 미국의 한 회사가 개발한 ‘탈수소 공법’이라는 신기술을 사들였다. 입증되지 않은 신기술에 참모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난색을 표했지만 조 명예회장은 “안 되는 이유 100가지보다 되는 이유 한 가지가 더 중요하다”며 사업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구창남 전 동양나이론 사장은 “조 명예회장은 품질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기술진과 주말까지 반납하며 전력을 기울였다”며 “기술에 대한 그의 강한 집념이 오늘의 효성을 일궜다”고 회고했다.



효성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는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는 기술에 대한 조 명예회장의 집념과 뚝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성과다. 효성은 1989년 조 명예회장의 지시로 타이어에 들어가는 필수 섬유 소재인 타이어코드 국산화에 성공했고 2000년에는 미국 하니웰을 제치고 세계 시장 1위에 올랐다. 1992년에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스판덱스 개발에 성공해 2010년 미국 듀폰의 라이크라를 제치고 세계 시장 1위가 됐다.

이후에도 혁신 소재 개발을 지속하며 2011년에는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고강도 소재인 탄소섬유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세계 최초로 친환경 고분자 신소재인 폴리케톤을 상용화(2013년)하는 데도 성공했다.

신기술을 기반으로 효성을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시켰다. 조 명예회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을 시작으로 베트남과 인도·튀르키예·브라질 등에 생산 공장을 세워 전 세계 고객들에게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를 기반으로 효성은 현재 전체 매출의 약 80%를 해외시장에서 거둘 만큼 수출 역군으로 성장했다.

조 명예회장은 ‘조대리’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꼼꼼하고 세심한 경영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팀장이나 과장급 직원에게 직접 전화해 ‘날 것 그대로인’ 정보를 듣고 경영 판단을 했다. 회장직을 내려놓은 후에도 지난해 말까지 회사 경영 상황을 보고받으며 마지막까지 회사 일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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