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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숫자 세기 신공

THE SECRET OF MASS CROWD COUNTING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큰 시위나 집회가 열리고 나면 보통 뉴스에서는 "이번 집회의 참가자 수는 경찰 추산 ○○명, 주최측 추산 △△명입니다"와 같은 보도가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도대체 그 많은 사람 수를 어떻게 세는 것일까. 출입구를 만들어 그곳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직접 일일이 센다면 확실하겠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근 파퓰러메카닉스에 게재된 군중 숫자 세기의 비밀을 소개한다.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작년 6월 홍콩 빅토리아파크에서는 중국 천안문 광장 학살 22주년 추모 집회가 열렸다. 집회는 무사히 치러졌지만 집회의 규모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일부 언론에서는 집회 참가자가 7만7,000명이라 추산한 반면, 또 다른 언론에서는 그 두 배에 달하는 15만명이라고 보도한 것이다.

이 같은 차이는 왜 나타나는 것일까. 알고 보니 7만7,000명은 경찰 추산치고, 15만명은 집회 주최측 추산치였다. 물론 주최측은 참가자 수를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 발표했을 여지가 다분하다. 이에 호주 멜버른대학 레이 와트슨 교수와 홍콩대학 폴 입 교수는 두 개의 수치 중에 어느 것이 더 정확한지를 알아보고자 검증에 들어갔다. 그리고 집회를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15만명은 비현실적이라고 밝혔다. 사람 한 명이 차지하는 면적을 0.243㎡로 보고 수학적 계산을 거쳐 내린 결론이었다.

두 교수는 학회지인 시그니피컨스에 발표한 인원수 산출 기술 관련 논문에서 15만명설을 놓고 "록밴드의 스탠딩 공연장에서나 가능한 빽빽한 인구 밀도"라고 표현했다.

면적×밀도=총 인원
이처럼 특정 행사에 모인 인원수에 대해 이견이 난무하는 것은 비교적 흔한 일이다. 아무리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도 한꺼번에 모인 수많은 사람 또는 물체의 수를 세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군중 중에는 신발 끈을 고쳐 매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사람도, 양산을 쓰고 있는 사람도 있다. 집회에 늦게 도착한 사람, 일찍 자리를 뜨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종류의 인원수 측정에는 측정자나 발표자의 불순한(?) 조작 의도가 개입되는 경우도 배재키 어렵다.

따라서 군중의 숫자 측정은 통계적 정확성과 정치적 속임수, 그리고 측정값을 늘리거나 줄이고 싶은 측정자의 욕구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로 '명쾌하지 못한 과학'인 셈이다. 수학과 물리학 관련 저서를 집필했던 미국 뉴욕대학 신문방송학과 찰스 사이프 교수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군중의 수를 측정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측정값의 결과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숫자를 통해 사람들은 때때로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도 속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프 교수는 정밀한 계산법을 동원하면 군중의 수를 약 천명 단위까지 정확하게 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와트슨 교수와 입 교수 같은 연구자들도 새로운 전략을 이용해 군중의 수를 현재보다 더 정확하게 추산하는 게 가능한지를 심도 깊게 연구 중에 있다.

지난 196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신문방송학과 허버트 제이콥스 교수는 현대적인 군중 인원 수 측정기술로 명성을 얻은 바 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연구실 창가에 앉아 대학광장에서 열린 베트남 전쟁 반대 집회 참가 학생들을 지켜봤다. 운 좋게도 광장 바닥의 콘크리트에 격자 모양의 금이 그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는 몇 개의 격자 안에 들어가 있는 학생 수를 직접 세는 방식으로 격자 한 칸의 평 균 학생수를 산출했다. 그런 다음 광장 전체의 격자 숫자를 곱해서 전체 인원을 추산할 수 있었다.

제이콥스 교수는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집회에 참가한 사람 한 명이 차지하는 면적을 계산해내기도 했다. 인구밀도가 낮은 집회는 0.9㎡, 인구밀도가 높은 집회는 0.405㎡라는 측정값을 얻었다. 50년이 지난 오늘날 군중 인원수 추산 방식은 여러 모로 발전했지만 그 기본은 여전히 제이콥스 교수의 이론과 같다. 면적에 밀도를 곱해 총 인원을 구하는 것이다.

인원수 측정에는 측정자나 발표자의 불순한(?) 조작 의도가 개입되는 경우도 배재키 어렵다.

보다 정확한 방법
그러나 이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집회 장소의 인구 밀도가 어디나 똑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지점은 밀도가 높은 반면 어떤 지점은 낮다. 이를 감안해 최근의 측정 기술은 한층 더 섬세해졌다.

미국의 디지털 디자인 앤 이미징 서비스(DDIS) 등 몇몇 기업들은 현재 집회 장소의 인구 밀도 차이를 감안해 인원을 산출한다. DDIS는 얼마 전 미국 워싱턴 소재 내셔널 몰에서 개최된 대규모 행사의 참가 인원수를 측정하며 자신들이 10%의 오차범위 내에서 정확한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때문에 CBS는 지난 2010년 8월 미국의 대표적 보수 논객인 글렌 벡이 주도한 링컨기념관 집회의 참가 인원수 측정 용역을 DDIS에 맡기기도 했다.



DDIS는 인원수 산출을 위해 가장 먼저 집회 장소를 여러 구역으로 나눈 뒤 3D지도를 만들어 각 구역 중에서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을 찾아냈다. 그리고는 이를 과거에 링컨기념관에서 열렸던 동일 행사의 사진과 비교, 교차 검증함으로써 집회 장소에 사람들이 모이는 양상을 파악했다. 이 회사의 커트 웨스터가드 사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회사의 목표는 집회 장소에 사람들이 모이는 방식을 예측하는 것입니다. 겨울에 열리는 집회는 바람막이가 있는 곳에, 여름에 열리는 집회는 그늘진 곳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경향이 강하죠. 또 사람들은 무대나 스크린을 향해 몰리는 반면 확성기 쪽으로는 잘 다가가려 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DDIS는 정확한 추산을 위해 집회장 상공에 원격조종 카메라를 탑재한 계류형 기구를 띄우고는 60m, 120m, 240m 등 다양한 고도에서 360도 전 방향의 군중 사진을 촬영했다. 고도에 차이를 두고 여러 사진을 찍은 것은 나무 아래처럼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서 있는 사람들까지 정확히 잡아내기 위해서다.

이후 이렇게 촬영한 사진들은 3D지도 위에 합성시켜 그곳의 사람 수를 세 번씩 셌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의 경우 2명으로 간주했다. 또한 집회 장소를 여러 칸의 격자로 나누면 각 칸마다 인구 밀도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인구 밀도에 따라 각 칸을 여러 카테고리로 나누고, 특정 인구밀도 카테고리에 속한 칸, 다시 말해 단위 면적의 수를 파악하면 전체 집회의 인원수가 비교적 정확하게 산출된다는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DDIS는 글렌 벡의 집회 참가자 수를 8만7,000명으로 추산했다. 이 회사에 의하면 이는 약 10%의 오차가 있지만 군중을 가장 정확히 카운팅하는 현존 최적의 방법이다. 그러나 이 숫자에 모두가 동의한 것은 아니다. 한국 회의원은 무려 100만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했고, NBC 방송국은 30만명이라 보도했다. 벡 본인은 30~65만명이라 추정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들 중 누가 맞는지, 혹은 모두 틀렸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굳이 이렇게까지 군중의 숫자를 파악해야 하는 걸까? 이는 사실 사회적으로 매우 필요성이 높은 작업이다.

인원수 측정의 미래
사진은 한 곳에 모인 군중의 수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려준다. 단, 군중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면 사진에만 의존할 수 없다. 때문에 와트슨과 입 교수는 아예 군중 속으로 들어가서 숫자를 파악하는 편이 좋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들은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실질적인 방법론을 마련했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집회 장소에 별도의 인원 계산대 하나를 운용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이 계산대를 두 개 운용하는 것이다.

전자는 주어진 시간 내에 그곳을 통과하는 군중의 수를 헤아리면 된다. 하지만 이 기법은 그리 이상적이지 않다. 계산대를 통과하기 전에 걸음을 멈추고 집회를 지켜보는 군중이 있을 수 있고, 계산대를 지나친 뒤 집회에 참가하지 않고 사라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군중들 개개인에게 전화를 걸어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를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보다는 적절한 거리를 두고 두 개의 인원 계산대를 활용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정확할 수 있다는 게 두 교수의 판단이다. 인원을 파악하는 사람을 행렬 앞쪽의 계산대에 배치하고 거기를 지나는 사람의 수를 세면서 뒤쪽 계산대를 지나왔냐고 물어보는 식이다. 혹시 계산대 3개를 운용하는 것은 어떨까. 와트슨 교수는 비용 상승분에 비해 정확도 향상 효과가 크지 않아 비효율적이라는 입장이다.

한편 DDIS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방법의 정확도를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여기서 나온 비책의 하나가 다수 대중을 활용하는 '크라우드소스(crowd-source)'다. 군중이 촬영된 항공사진을 직접 분석하지 않고 아마존닷컴의 '메커니컬 터크(Mechanical Turk)'에 맡기는 것이다. 메커니컬 터크는 일정한 비용을 받고 작업을 대신해주는 전 세계 사람들의 네트워크로 일종의 온라인 노동인력시장에 해당한다.

이 경우 DDIS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계산한 수십개의 측정결과를 신속히 얻은 다음, 부정확한 것은 버리고 나머지의 평균값을 내기만 하면 된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제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탁상공론으로 보일 수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숫자를 파악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군중의 숫자 파악은 매우 필요성이 높은 작업이다. 특히 화재, 테러 공격, 건물 붕괴 등 대규모 응급상황에 대처해야 할 때는 군중의 수를 올바로 파악했는지 여부가 상황대처에 큰 변수로 작용한다. 일례로 대형사고 발생 시 신속하게 응급 구조요원들에게 구조 및 치료를 요하는 사람을 알려줄 수 있다. 덧붙여 이는 특정 행사나 집회가 정치적으로 왜곡되는 것을 근절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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