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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론스타의 망령 그 탐욕을 해부한다

론스타의 실패

론스타는 외환위기의 망령이다. 경제 위기가 불러들인 하이에나다. 부실 채권이 쏟아지고 금융 당국이 사태 해결에만 급급할 때면 론스타 같은 벌처 펀드들이 어김없이 나타나서 차익을 노린다. 론스타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위법과 탈법을 통해 탐욕을 채우려 들었다. 다른 벌처 펀드들이 다 떠나간 뒤에도 론스타만 한국에 발목이 잡혀 있는 이유다. 론스타의 탐욕이 한국 땅에서 진동하고 있다.

신기주 기자 jerry114@hk.co.kr

융만 국경이 없어진 게 아니었다. 시민의 분노 역시 국경을 넘어 전파되고 있었다. 지난 월 일 여의도 금융감독원 정문 앞에선 한국판 월가 점령 시위가 이어졌다. 투기자본감시센터와 금융소비자협회 같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금융감독원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허영구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는 말했다. “결국 첫 번째 목표는 론스타입니다.”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도 말했다. “론스타 사태는 년 외환 위기 이후 한국에 전염된 월가 탐욕 시스템의 축소판입니다. 이런 사태를 계기로 출처가 불분명한 투기 자본을 차단하고 금융 산업 규제를 강화해 금융 산업의 공공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여의도 점령 시위대는 론스타부터 징벌해야 한다고 외쳤다. 결국 론스타였다. 월가에서 리먼 브라더스가 금융 탐욕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여의도에선 론스타가 본보기가 되고 있었다. 론스타 사건은 아직도 정리가 덜 끝난 외환위기의 후유증을 털어내고 금융의 탐욕을 단죄하는 시금석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론스타는 한국의 리먼 브라더스였다. 수치와 분노와 징벌의 본보기였다.

시종의 실패
‘프로젝트 스콰이어 Project Squire’가 론스타의 발목을 잡았다. 론스타는 2003년 8월 27일 외환은행을 인수했다. 금융당국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해주면서 조건을 달았다. 외환카드를 외환은행에 합병시키라 는 명령이었다. 2003년 무렵엔 카드 대란이 한창이었다. 새로 출범한 노무 현 정부가 2003년 3월 신용 카드 종합 대책까지 발표하면서 뒷수습에 나 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카드 자회사들을 모회사인 은행 에 합병시키거나 다른 금융기관에 인수시키는 게 해결책으로 떠올랐다. 그렇게 당대 1위였던 LG카드는 신한은행에 넘어갔다. 국민카드도 국민은 행에 합병됐다. 금융당국은 외환은행 역시 외환카드를 뒷감당해야 한다 고 요구했다. 론스타로선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한국 금융 정책에 휘 말려 든 꼴이었다. 론스타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외환은행을 먹으려면 외 환카드도 삼켜야 했다. 론스타가 외환카드 합병을 싫어했던 이유가 있었다. 론스타는 외환은 행에 1조3,833억 원을 투자해서 지분 51%를 확보했다. 독일 코메르츠방 크와 한국 수출입은행을 밀어내고 1대 주주가 됐다. 정작 외환은행과 외 환카드를 합병하려면 외환카드 주주들한테 외환은행 주식을 교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주가 늘어나는 만큼 론스타의 지분율이 희석될 수 있 었다. 한국 금융 정책을 따르다가 애써 확보한 51% 최대 주주 지위를 상 실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외환카드를 합병하자면 큰돈이 들었다. 수익 률이 최우선인 론스타 같은 사모펀드 입장에선 외환카드의 주주들한테 서 비싼 값에 주식을 사들인다는 게 말이 안 됐다. 외환은행 인수 계약 전체의 수익률을 깎아먹는 짓이었다. 론스타 펀드의 전주들을 납득시키 기도 어려웠다. 론스타 코리아의 스티븐 리 Steven Lee 대표와 외환은행 매각 자문을 맡았 던 시티그룹은 프‘ 로젝트 스콰이어’라는 전략을 세운다. 프로젝트 스콰이 어란 외환카드 주가를 조작하기 위한 세부 계획을 뜻한다. 외환카드 주가 가 폭락한다면 론스타는 외환카드 인수 대금을 그만큼 적게 물 수 있었 다. 그만큼 지분율 희석도 줄일 수 있었다. 론스타는 먼저 외환카드에 대 한 자금 지원을 끊었다. 당연히 외환카드는 자금난을 겪기 시작했다. 이어 서 주식 시장에 허위 감자설을 유포했다. 모회사인 외환은행의 최대 주주 가 자회사인 외환카드의 경영난을 유발한 다음 주가 하락까지 유도한 셈 이었다. 일부러 심장마비를 일으킨 다음 심장을 도려내 간 격이었다. 프로 젝트 스콰이어를 통해 론스타는 큰 힘 들이지 않고 외환은행과 외환카드 합병을 성사시켰다. 대신 외환카드의 소액 주주들은 큰 손실을 봤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 작전에 ‘프로젝트 나이트 Project Knight’라는 이름을 붙였다. 시종을 뜻하는 프로젝트 스콰이어란 이름 역시 기사를 뜻하는 프로젝트 나이트에서 나왔다.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데 선결해야 하는 과제인 외환카드 합병을 해결해서 본 계획을 시중 드는 작전이란 뜻이었다. 프로젝트 스콰이어를 완수한 덕분에 프로젝트 나이트도 성공 했다. 프로젝트 스콰이어는 과욕이었다. 론스타는 1조 원 남짓한 돈으로 자 산 규모 63조 원의 은행을 인수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박이었다. 금융 당국이 인수 승인을 해주면서 외환카드 합병을 요구한 건 벌 만큼 벌었으니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란 뜻이었다. 하지만 론스타는 한국 경제 의 애로 사항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털끝만큼의 손실도 입지 않겠다 며 소액 주주들한테 덤터기를 씌웠다. 론스타가 세간의 화제 거리가 된 건 정작 프로젝트 나이트보단 프로 젝트 스콰이어 탓이 컸다. 프로젝트 나이트는 납세자의 눈먼 세금을 훔치 는 일이었지만, 프로젝트 스콰이어는 시퍼렇게 두 눈을 뜨고 있는 투자자 의 쌈짓돈을 강탈하는 짓이었다. 뒤늦게 속았다는 사실을 안 외환카드 소 액 주주들은 가만 있지 않았다. 결국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와 함께 2005년 론스타를 주가 조작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론스타 사건이 시작됐다. 6년 만이었다. 2011년 11월 6일 론스타는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에 대한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론스타는 일주 일이 지난 13일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유죄를 인정했다. 은 행법에 따르면 주가 조작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대주주는 10% 이상의 은 행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받게 된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최대 주주 지위를 잃었다. 론스타는 또 6개월 이내에 10% 이상 한도 초과 지분 41% 를 매각해야 한다.

기사의 성공
“JP모건과 칼라일과의 합작 형태로 가는 방안에 대해 론스타는 왜 안 된 다고 합니까? ABN AMRO가 안 된다면 등에 붙여서 가야 하는데 금감 위에 올려서 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 책 1국장은 변양호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변양호 국 장이 대답했다. “텍사스에서 ABN AMRO안은 승인하지 않을 겁니다. 결국 등으로 가는 것이 현실적 아닙니까?” 김석동 국장은 말했다. “규정 해석에 있어 원래 등은 적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등에 걸고 넘어 가려면 삼라만상이 다 등에 해당되고 결국 독소조항이 되고 맙니다.” 2003년 7월 15일 조선호텔에선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관련된 10인 비밀대책회의가 열렸다. 애초에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가 없었 다. 자격 미달이었다. 은행법은 산업 자본이 은행 지분을 10% 넘게 인수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금산분리원칙이다. 산업 자본이 금융 자 본을 지배하게 되면 은행이 기업의 사금고처럼 쓰일 수 있다는 우려 탓 이다. 산업 자본과 금융 자본은 서로 견제하고 협조해야지 담합해선 안 된다. 기업 부실화의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은행 불법 대출인 게 현실이 다..게다가 은행법은 누군가 은행을 인수하려면 해당 은행이 부실 은행 이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은행이 기업 사냥의 대상이 되는 걸 막기 위 해서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려면 론스타는 산업 자본이 아니어 야 하고 외환은행은 부실 은행이어야 했다. 조건은 딱 두 가지였다. 사모펀드 뉴브리지 캐피털은 2000년 1월 5,000억 원에 제일은행을 인수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외환위기를 수습하느라 여념이 없던 무렵이 라 은행 인수 조건이 덜 까다로웠다. 산업자본인지 금융자본인지는 따지 지도 않았다. 사려고 하는 대상이 부실은행이면 인수를 승인해줬다. 제 일은행은 1998년과 1999년에 두 차례나 금융 당국으로부터 경영 개선 권고를 받았다. 부실 은행이라고 볼 수 있었다. 뉴브리지 캐피털의 제일 은행 인수는 산업자본과 부실은행의 결합이었다. 당시로선 불법성은 없 었다. 반면에 사모펀드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는 좀 더 난해했다. 칼라 일 역시 산업 자본이었다. 한미은행은 부실은행이 아니었다. 이때 칼라 일은 금융 자본인 JP모건과 합작하는 방식으로 한미은행을 인수했다. 합작을 통해 인수 주체가 금융 자본으로 변신한 셈이다. 여전히 한미은 행은 부실은행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둘 중 하나의 조건은 충족시켰다. 론스타는 두 가지 조건 가운데 어느 것도 충족시키기 어려웠다. 네덜 란드 은행 ABN AMRO와의 합작 방식이 거론됐지만 론스타가 거부했 다. ABN AMRO와의 합작은 안전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수익을 나눠가 져야만 했다. 론스타는 과욕을 부렸다. 그냥 산업 자본인 채로 외환은행 을 인수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들었다. 프로젝트 나이트의 목적이었 다. 은행법 시행령 8조 2항이 무기였다. “금융감독위원회는 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항의 규정에 의한 부실금융기관의 정 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제5조(한도초과보유주 주의 초과보유 요건)의 요건을 갖추지 아니한 경우에도 그 승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등’으로 가자면 금융 당국의 암묵적 동의가 필요했다. 예외 조항인 만큼 예외 심사를 맡는 감독 당국의 판단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조선호텔에서 10인 비밀대책회의가 열린 것도 그래서였다.

"내년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지면 론스타 청문회와 국정감사를 통해 비리여부를 파헤치게 될 겁니다. 금융위원회가 지금 주식 처분 명령을 내리는 것은 사법 체계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그러나 지난 18일 금융위는 조건 없는 매각 명령을 내렸다. 론스타의 퇴로를 열어줬다.
그 자리에는 재경부와 금감위와 외환은행과 청와대 관계자들이 두루 모 였다. 정책적 담합의 현장이었다. 론스타한테 인수 자격을 부여해도 나 머지 한 가지 조건이 남았다. 외환은행이 부실은행이어야 했다. 외환위 기를 거치면서 외환은행 역시 상당한 부실 채권을 떠안았다. 현대그룹 의 주거래 은행이었던 탓에 하이닉스의 부실까지 함께 뒷감당해야 했다. 정작 2003년 무렵엔 숨통이 트여가고 있었다. 외환위기의 후유증을 극 복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론스타는 2000년 뉴브리지캐피털이나 칼라 일이 제일은행이나 한미은행을 인수했던 때와 같은 조건으로 외환은행 을 인수하려고 떼를 썼다. 외환은행의 BIS 비율을 지나치게 낮춰 잡아 서 부실을 과장했다. 외환은행의 BIS 비율은 2003년엔 9.33%는 될 걸 로 전망됐지만 론스타는 6.16%로 낮춰봤다. BIS비율이 8% 미만이면 부 실은행으로 본다. 금융 당국 역시 론스타의 전망치를 그대로 인용하다 시피 했다. 게다가 론스타는 실사를 통해 외환은행이 의외로 건전하다 는 사실이 드러나자 되레 그걸 감추기에 급급했다. 등에 올라타기 위한 꼼수였다. 2003년 9월 26일 금융감독위원회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 인해주면서 이렇게 입장을 정리했다. “투자전문회사인 론스타 펀드는 금 융기관이 아니어서 제5조가 정하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나 잠재부실 규모를 비롯한 외환은행 경영 상태를 감안할 때 대규모의 자본 확충이 필 요해 은행법시행령 제8조 2항에서 정하는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고 이를 승인한다.” 기사가 말의 등에 올랐다. 프로젝트 나이트는 성공했다.

탐욕의 패배
지난 11월 7일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선 ‘산업자본 범죄자 론스타 징벌을 촉구하는 야5당과 시민노동단체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민주당과 자 유선진당과 민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과 진보신당을 비롯해 참여연대와 외환은행되찾기범국민운동본부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한목소리로 론스타는 산업 자본이 틀림없는 만큼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원인 무 효라고 주장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이렇게 선언했다. “내년 총선에서 여 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지면 론스타 청문회와 국정감사를 통해 비리여부를 파헤치게 될 겁니다. 금융위원회가 지금 주식 처분 명령을 내리는 것은 사 법 체계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앞서 외환은행 소액주주 12명은 헌법재 판소에 금융위를 상대로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냈다. 외환은행 소액주주 들은 금융위가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를 심사하지 않고 매각 명령을 내 리면 주주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론스타는 프로젝트 나이트가 성공하면서 외환은행의 등 위에 올라탔 다. 프로젝트 스콰이어가 실패하면서 등 위에서 내려와야 할 처지가 됐다. 하지만 말에서 내리는 건 론스타도 원하는 바였다. 애초에 론스타는 등 위에 오래 탈 작정이 아니었다. 칼라일의 경우 한미은행을 인수하고 4년 만인 2004년 시티은행에 매각했다. 뉴브리지 캐피털의 경우엔 제일은행 을 스탠다드 차타드에 매각하는 데까지 5년이 걸렸다. 론스타는 2년이란 매각 금지 기간이 풀리자마자 인수 대상자를 물색했다. 처음엔 KB국민은 행이었다. 다음엔 HSBC였다. 하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프로젝트 스콰이 어가 실패하면서 론스타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버린 탓이었다. 뉴브리 지 캐피털과 칼라일한테 당했다는 국민적 울화가 론스타한테 쏠려버렸다. 론스타의 탐욕이 자신을 망쳤다. 론스타는 너무 늦게 너무 큰 욕심을 부렸다. 론스타는 1998년 한국에 처음 진출했다. IMF 구제 금융을 받는 대가로 금융 시장이 개방된 덕분에 론스타가 한국에 상륙할 수 있었다. 론스타한테 한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론스타는 텍사스에서도 부실 채권 을 헐값에 인수해서 비싼 값에 되파는 벌처 펀드로 성장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전주곡이라고 할 수 있는 1990년대 초반 저축대부조합 부 실 사태가 론스타한텐 기회였다. 거꾸로 클린턴 행정부가 빚어낸 1990년 대 호황은 론스타한텐 불황이었다. 론스타는 부실 채권을 찾아 전 세계를 떠돌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 경제 위기야말로 론스타가 찾 던 금맥이었다. 론스타를 안방으로 끌어들인 건 외환위기를 자초한 한국 경제였던 셈이다. 처음에 단순히 자산관리공사(KAMCO)가 떠맡았던 금융권 부실 채 권을 나눠 맡는 정도에만 머물던 론스타는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은행 과 부동산에 주목했다. 1999년 평화은행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2001년 엔 강남 스타타워를 매입했다. 평화은행과 스타타워 투자는 론스타에겐 손실만 끼쳤다. 2001년 평화은행이 정리된 데다 스타타워 역시 불경기 때 문에 임대가 잘 되질 않았다. 론스타는 스타타워를 6,000억 원에 사서 9,000억 원에 되팔았다. 3,000억 원 가까운 시세 차익을 거뒀다. 그러나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고 버텼다가 1,000억 원을 세금으로 추징당했다. 론 스타에겐 큰 거 한 방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론스타는 대형 시중 은행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론스타처럼 텍사스 출신인 뉴브리지 캐피털이 제일은행을 인수하고 칼라일이 한미은행을 인수한 것도 자극이 됐다. 론스타는 서울은행과 조흥은행 인수에 매달렸다. 론스타로선 운이 없 었다. 제일은행과 한미은행과 달리 서울은행과 조흥은행엔 하나은행과 신 한은행이라는 유력한 인수 경쟁자가 있었다. 금융 당국 역시 국내 시중 은행이 인수 의사를 밝힌 이상 론스타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웠다. 론스타 로선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외환위기의 여진이 다 사라지기 전에 더 큰 재미를 봐야 했다. 일본에서 도쿄소와은행을 인수하면서 은행 인수에 자 신감도 붙은 터였다. 론스타로선 외환은행이 한국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결정적인 승부처 였다. 론스타는 론스타 펀드 2호와 3호를 운영하면서 이미 한국 관가와 금융가에 상당한 인맥을 구축해놓은 상태였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 전에 금력과 인맥을 총동원했다. 론스타 코리아의 유회원 사장과 론스타 의 재무 자문사인 살로만스미스바니의 김은상 대표와 재경부 변양호 금 융정책국장은 모두 경기고 출신이다. 세 사람의 인맥은 론스타가 맨 처음 외환은행에 1조5,000여 원 투자 의사를 밝히고 인수 협상을 시작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됐다. 문제는 론스타가 외환은행 거래를 끝판으로 봤다는 데 있다. 론스타 는 태생이 벌처 펀드다. 부실 채권이 있어야 벌처 펀드 비즈니스가 가능하 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데 혈안이 돼 있던 2003년엔 한국을 강타했던 외환위기도 수습되는 분위기였다. 론스타가 폐장 시간이 임박해 서 가장 큰 거래를 시도했던 셈이다. 론스타는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상 륙했던 칼라일이나 뉴브리지 캐피털처럼 큰 건 하나를 터뜨리지 못한 상 태였다. 론스타가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면서 무리수를 뒀던 이유다. 외환 은행을 끝으로 한국 사업은 정리할 요량이었다. 결국 론스타의 무리수가 론스타의 발목을 잡았다. 금융 자본 시늉조 차 하지 않은 탓에 금산분리 시비에 휘말렸다. 인맥과 로비를 통해 일을 벌여서 감사원과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는 걸 자초했다. 결국 론스타코리 아의 스티븐 리 본부장은 해외로 도주했다. 유희원 사장은 구속됐다. 막 차를 탄 탓에 시민 단체와 여론의 집중 감시 대상이 됐고, 본보기가 됐다. 이제 한국 시장도 모두가 우왕좌왕하던 위기 국면이 아니었다. 론스타 사건은 한편으론 시민 권력이 금융 감독에 성공한 드문 사례 다. 론스타는 그 점을 간과했다. 론스타의 한국 탈출 시도는 번번이 좌절 될 수밖에 없었다. KB금융지주와의 매각 협상이 좌절된 것도 HSBC와의 매각 협상이 좌초한 것도 사회적 감시 탓이었다.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론스타는 외환카드 주가 조작 혐의를 시인하면서 외환은행 지분을 매 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어차피 론스타도 원하는 일이다. 프로젝트 나이 트의 마무리는 결국 말에서 내려오는 것까지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스 콰이어의 실패는 실패가 아닐 수도 있게 된다. 시종이 진흙탕 위에 몸을 엎드려서 기사가 말에서 내릴 수 있게 해주는 꼴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 의 분위기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던 2003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론스타에 대한 징벌적 매각 명령을 요 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론스타는 등 위에 올라는 탔지만 등 위에서 내려오 진 못했다.

탐욕의 승리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 금융 당국은 론스타를 조건부 금융자본 으로 분류했다. 근거는 미약했다. 론스타 펀드 4호만 대상으로 구분하면 금융 자본으로 볼 수도 있단 해석이었다. 전체 자본의 25% 이상이 산업 자산이면 전체를 산업 자본으로 본다. 론스타 펀드 4호는 21.26%가 극동 건설과 극동요업 같은 산업 자산이었다. 하지만 론스타 전체를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론스타 펀드 2호와 3호와 5호에 론스타 오퍼튜너티 펀 드까지 모두 6개 펀드가 보유한 자산 총액을 기준으로 하면 론스타는 명 백하게 산업 자본이다. 게다가 외환은행노동조합은 론스타가 보유한 산업 자산을 추가로 찾 아내서 금융위원회에 제출했다. 외환은행노조에 따르면 론스타 펀드 4호 의 산업 자산 합계액은 2조 원이 넘는다. 론스타뿐만 아니라 외환은행 인 수에 직접 동원된 론스타 펀드 4호도 더 이상 산업 자본으로 분류될 수 없단 뜻이다. 게다가 은행법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6개월마다 대주주의 산 업 자본 여부를 가늠해서 적격성 심사를 해야 한다. 한 번 금융 자본으로 분류됐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적격성을 가진다고 볼 수는 없단 얘기다. 지난 11월 4일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선 론스타를 어떻게 떠나 보낼 것 인가를 주제로 공청회가 열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우제창 의원과 박 선숙 의원이 주도한 자리였다. 공청회의 핵심 주제는 론스타가 산업 자본 이란 사실을 묻고 갈 것이냐 짚고 갈 것이냐였다. 묻고 가면 론스타는 외 환은행 지분을 정상적으로 매각할 수 있게 된다. 어차피 팔 작정이었던 지 분이다. 이미 하나금융지주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 51%를 4조5,059 억 원에 사기로 입도 선매한 상태다. 법원 판결 덕분에 오히려 팔기가 더 수월해졌다. 이러면 정말로 프로젝트 스콰이어가 실패가 아닌 성공이 될 수도 있다. 짚고 가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론스타가 산업 자본이란 사실을 문제 삼게 되면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체가 무효가 된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을 모두 뱉어내야 한다. 한 푼의 이익도 챙 기지 못한다. 2003년 인수할 당시 지불한 원금과 이자만 돌려받을 수 있 다. 애초에 경영권이 없었던 게 되는 만큼 경영권 프리미엄도 받을 수 없 게 된다. 프로젝트 나이트 자체가 수포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4일 공청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말했 다. “금융위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할 당시에 대주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예외적으로 인수를 승인한 게 사실입니 다. 이제 와서 다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해서 대주주 자격을 잃었 다고 말하는 것은 위법입니다.” 프로젝트 나이트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 다는 뜻이다. 역시 발제자로 나선 권영국 변호사는 말했다. “론스타가 산 업자본으로 판명될 경우엔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대주주로서 맺은 하나 금융지주와의 매매 계약을 금융위가 승인해주는 건 불가능해집니다. 론 스타에겐 외환은행에 대한 아무런 법적인 권리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움직임에 대체로 정치권도 동참하는 분위기다. 집권 여당인 한나 라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11월 7일 트위터를 통해 이렇게 발언했다. “론스 타 자본이 산업자본인지 여부를 판단하고 난 뒤 강제 매각 명령을 내려도 늦지 않습니다. 최소한 경영권 프리미엄은 막아야 합니다.” 론스타는 저축 은행 부실 사태로 커져버린 금융권에 대한 불신을 해소해줄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론스타가 이미 충분히 미움받을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론스 타는 이미 배당금과 지분 블록 매각을 통해 2조9,024억 원의 수익을 거 뒀다. 하나금융지주에 지분 매각까지 한다면 외화은행 거래로만 5조 원 이상을 남기게 된다.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은 금융 당국이 론스타에 징벌 적 매각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미 거둔 수익까지 빼앗아 야 한단 얘기다. 기사를 말에서 끌어내려서 창과 방패까지 빼앗아야 한단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난 11월 18일 금융위원회는 론스타 에 대해 무조건적인 매각 명력을 내렸다. 시한은 6개월을 줬다. 김석동 금 융위원장과 금융위원들은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 징벌적 매각 명력 역시 내리지 않았다. 덕분에 론스타는 경영권 프리미엄 까지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일단은 론스타가 원하던 데로 됐다. 8년이 걸렸다. 8년 동안 론스타는 한국의 금융 질서를 교란시켰다. 앞으로 6개월 이다. 시민단체들과 외환은행노조는 즉각 관련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 다. 정치권도 들썩이고 있다. 남은 6개월이야 말로 론스타 사건의 대미다. 반년 안에 탐욕의 마지막 뒷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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