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웃은 자는 독일 차들이었다. 2000년대 중반 한국 수입 차 시장을 주도했던 일본 차들을 밀어내고 독일 프리미엄 자동차들이 승기를 잡았다.
2011년에도 BMW와 메르세데스-벤츠가 판매 순위 1위와 2위를 다퉜다. BMW와 벤츠를 타 보면 그들이 한국 지형에 강한 이유를 알 수 있다.
1위
BMW 코리아
크리스 뱅글이 BMW의 수석 디자이너로 처음 영입됐을 때 일이다. 아직 크리스 뱅글이 유명한 BMW의 궁둥이를 디자인하기도 전 얘기다. 궁둥이 덕분에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칭송받기도 전 일화다. BMW의 헬무트 판케 회장이 피아트에서 막 영입한 수석 디자이너에게 BMW를 소개하기로 했다. 판케 회장이 크리스 뱅글을 부른 곳은 디자인 연구소나 역사 박물관이 아니라 경주용 서킷이었다. 판케 회장은 크리스 뱅글을 BMW 조수석에 앉힌 다음 서킷을 돌기 시작했다. 판케 회장은 무지막지하게 운전을 했다. 급회전을 하고 급가속을 하고 엄청난 속도로 질주를 계속했다. BMW의 한계를 시험이라도 하는 듯했다.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결승선에 다다랐을 때쯤엔 크리스 뱅글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판케 회장은 크리스 뱅글에게 이렇게 말했다. “봤나. 이게 BMW야. 이렇게 디자인하게.”
야사 같은 이야기다. 분명한 건 이 일화에 BMW의 본질이 들어 있단 사실이다. BMW는 타협하지 않는다. 일반 운전자가 BMW를 몰고 경주용 자동차처럼 도로를 질주할 일은 많지 않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엔진성능의 한계를 체감해야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BMW에선 모두 필요한 일이다. BMW는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최고이고자 한다. 항상 자동차산업의 첨단에 있고자 한다. 한계란 없다. 한계란 스스로와 타협할 때 나타난다.
X드라이브는 타협하지 않는 BMW의 고집이 빚어낸 구동 방식이다. 2륜 구동은 앞바퀴 굴림이거나 뒷바퀴 굴림이다. 엔진의 힘이 네 개의 바퀴 가운데 앞의 두 개나 뒤의 두 개에만 전달되는 구조다. 4륜 구동은 말 그대로 네 바퀴 굴림이다. 엔진의 힘이 앞과 뒤 네 개의 바퀴 모두에 전달된다. 이론상으론 4륜 구동이면 바퀴 네 개에 일정하게 힘이 전달되기 때문에 자동차가 가장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도로 상황은 수시로 바뀐다. 도로 위 빙판이라도 지나려고 하면 앞바퀴가 빙판 위에 올라갔을 땐 헛바퀴가 돌 수 밖에 없고 앞바퀴가 지나가고 뒷바퀴가 다시 빙판 위를 지날 때도 헛바퀴가 돌 수밖에 없다. 그만큼 구동력이 상실된다는 뜻이다. 오프로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울퉁불퉁한 산악 지형을 돌파할 땐 앞바퀴나 뒷바퀴가 들리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빙판길을 지날 때처럼 허공에 뜬 바퀴는 차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한다. 4륜 구동이라고 해도 실제론 온전히 4륜이 아닌 순간이 자주 발생할 수 있단 얘기다.
고집스런 BMW는 그런 4륜 구동의 한계와 타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X드라이브를 만들었다. 자동차의 주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인지해서 네 바퀴 각각에 최적의 힘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마치 네 바퀴가 땅을 잡아끌 듯 달릴 수 있게 된다. 단순하면서도 섬세한 클러치와 플레이트 합판을 배열해서 수 초마다 자동차 구동을 수시로 변주하게 만들었다. X드라이브는 평탄한 일반 도로에서도 효과적이다. 차체가 도로에서 벗어나려는 오버 스티어링이나 언더 스티어링 현상이 발생했을 때 BMW의 X드라이브는 네 바퀴의 힘을 조정해서 차체를 힘껏 제어해준다. 그만큼 안전하다.
BMW X6 3.0 디젤은 2011년 1월부터 10월까지 561대가 팔렸다. 2010년 같은 기간에 비해 25%나 늘어났다. X3 2.0 디젤 모델은 898대가 팔려나갔다. BMW는 X시리즈를 SUV(Sports Utility Vehicle) 대신 SAV(Sports Activity Vehicle)로 차별화시켜서 부른다. SUV는 높고 크고 단순한 4륜 구동차를 의미하지만 SAV는 전후륜 동력을 가변적으로 변화시켜주는 X드라이브 기능이 장착된 차를 뜻한다. SUV는 차체가 크고 높은 대신 하체가 부실한 반면에 SAV는 하체까지 단단한 근육질 체형 차량인 셈이다.
실제로 X6를 몰아보면 단단하다. 일반 도로를 달릴 때도 코너를 돌 때도 쏠림 현상이 전혀 없다. 급하게 차선 변경을 해도 여느 SUV에서 느껴지는 출렁거리는 불안감이 없다. X6는 X드라이브가 적용된 SAV이기 때문이다. X3를 몰고 오프로드를 달려보면 X드라이브의 참맛을 알 수 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 위에서도 마치 일반 포장 도로에 있는 것처럼 찰지게 달린다. BMW는 X드라이브를 SAV인 X시리즈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전차종으로 확대했다. 750 X드라이브와 GT X드라이브에 이어미니 올4 모델에까지 적용시켰다. 750 X드라이브는 도로 위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다. 롤스로이스나 벤틀리 같은 럭셔리 차종들이 호화로움으로 자신을 뽐낸다면 750 X드라이브는 성능의 왕자다. 힘 좋고 몸매 좋고 게다가 팔다리 근육까지 균형이 잡힌 운동선수 같다. 춘천에서 설악에 이르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려보면 단단한 질주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강원도의 힘이 X드라이브 안에 있다.
BMW는 2011년 10월까지 2만565대를 팔았다. 시장 점유율은 23.39%다. 당연히 1등이다. 2009년과 2010년에도 BMW는 판매왕이었다. 2005년과 2006년 렉서스, 2008년 혼다에게 세 차례 1위 자리를 내준 것만 빼면 2003년부터 6차례나 수입 차 판매 순위 정상에 섰다. BMW는 단골 우승 후보다. 게다가 최근 몇 년 동안 분명한 상승세다.
X드라이브 같은 월등한 품질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BMW는 이피션트 다이내믹 Efficient Dynamic을 표방한다. 높은 연비와 힘찬 주행성을 겸비하겠단 의미다. 그래서 BMW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BMW는 타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벤츠가 최고인 건 벤츠의 자긍심을 소비자들이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긍심은 단순히 벤츠라는 이름값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2위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S350 블루텍은 제주도에 썩 잘 어울리는 차다. 맑은 공기와 풍요로운 풍광과 평지와 산길을 오가는 도로 환경은 친환경적이고 세련되고 힘 좋고 안정적인 S블루텍 같은 차한텐 안성맞춤이다. S350블루텍은 1km를 달릴 때 고작 214g의 이산화탄소만 배출한다. 연비는 12.6km/L다. S350블루텍의 매력은 막강한 토크에서 나온다. 63.2에 달하는 최대 토크 덕분에 도로를 축지법 쓰듯 달릴 수가 있다. 엔진 마력이 힘이라면 엔진 토크는 보폭이다. 토크가 클수록 성큼성큼 걸을 수가 있다.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에 비해 설계구조상 토크가 크다. 하지만 더럽다. 매연이 많이 발생하고 연비도 낮아진다. 진동도 심하다. 보폭이 큰 만큼 촘촘하게 걸을 때보다 흔들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젤 기술이 눈길을 끄는 건 그래서다. S350 블루텍은 2,987cc의 디젤 엔진을 달고 있다.
S클래스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최고급 차종이다. 가솔린 모델이 주를 이루는 이 차종의 생명은 정숙성이다. 디젤 엔진을 단 S350 블루텍도 정숙하다. 그러면서도 디젤의 장점인 토크를 겸비했다. 축지법을 쓰듯 미끄러지며 달릴 수가 있다. S350 블루텍이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7.1초다. 게다가 깨끗하다. 차량이 정차하면 엔진이 알아서 멈춘다. 공회전으로 날리는 연료를 막아주고 매연도 줄여준다. 블루텍은 메르세데스-벤츠가 심혈을 기울여온 클린 디젤 내연기관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제주도 나인브릿지 골프장에서 섭지코지까지 굽이굽이 이어지는 주행 코스는 블루텍을 만끽하는 데 제격인 길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젤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23년 디젤 트럭을 처음 선보인 이래 90년 동안 디젤 엔진 개발에 매달려왔다. 다른 자동차 메이커들이 간편한 가솔린 엔진으로 만족할 때도 메르세데스-벤츠는 디젤을 포기하지 않았다. 프리미엄 자동차 메이커인 벤츠가 디젤을 접지 않은 건 의외였다. 디젤은 그저 대형 트럭이나 중장비에나 쓰이는 시끄러운 엔진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을 때였다. 디젤 엔진이 벤츠의 자긍심이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1936년 세계 최초로 디젤 승용차 260D를 선보였다. 2.6리터 배기량에 V4엔진을 달았다. 벤츠는 디젤 엔진으로 자동차 경주에도 출전했다. 1955년엔 밀레 밀리아 경주에서 우승도 차지했다. 그 뒤로 메르세데스-벤츠는 디젤 엔진 분야를 선도해왔다. 진동을 줄이고 실린더 개수를 늘리고 다시 배기 가스 배출을 줄이고 다시 토크를 늘리는 실험을 거듭했다.
1997년 메르세데스-벤츠는 CDI(Common-rail Direct Injection) 방식을 개발하면서 디젤 엔진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다. CDI는 벤츠만의 디젤 직분사 방식이다. 직분사 방식 자체는 엔진 성능을 향상시킨다. 벤츠의 CDI는 기존 엔진에 비해 출력을 30%나 늘려줬다. 무엇보다 토크를 100%나 끌어올렸다. CDI 덕분에 낮은 엔진 회전 수에서도 막강한 토크를 발휘할 수 있게 됐다. 심장에 무리를 주지 않고도 보폭을 크게 해서 달릴 수 있게 됐단 뜻이다.
GLK 200 CDI 4MATIC 블루이피션시는 메르세데스-벤츠의 CDI기술을 만끽할 수 있는 차종이다. GLK 200 CDI는 디젤 SUV에 대한 모든 선입견을 깨부순다. 주행성은 웬만한 세단 못지않다. 170마력에 달하는 출력과 40.8에 이르는 토크 덕분이다. 출발할 때부터 순발력이 발군이다. 고속 주행을 할 때도 추월쯤은 문제가 없다. CDI 기술의 매력은 디젤 엔진으로 가솔린 엔진에서나 느낄 수 있는 운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ML 300 CDI 4MATIC 역시 마찬가지다. ML 300은 육중한 녀석이다. 하지만 CDI 덕분에 덩치는 커도 움직임은 재빠른 차가 됐다. 길 위에서 날쌘돌이 C220 CDI를 따라잡고도 남을 정도다. ML300처럼 덩치가 큰 SUV차종에서 느껴지기 마련인 둔함도 없다. 시내 주행에서 교통 신호가 바뀌어도 재빠르게 치고 빠지며 건널목을 지나기에 충분하다. 그럴 때 디젤 엔진은 용을 쓰느라 검은 매연을 뿜어내기 일쑤다. 옛날 버스들이 다 그랬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젤 기술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소비자들이 먼저 벤츠 디젤을 알아보고 있다. 2011년 10월까지 벤츠의 클린 디젤 차종들은 3,000대 가까이 팔렸다. GLK와 ML 같은 SUV 차종뿐만 아니라 S나 E같은 세단 차종에서도 디젤 엔진의 인기가 높다. E200 CDI의 경우엔 S클래스에 비해 크기와 성능에 부담이 없어 더 주목받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자긍심으로 만들어졌다. 세계 최초로 디젤 승용차를 양산했고 오랫동안 디젤 개발에 몰두해왔다는 자긍심이야말로 벤츠의 본질이다. 1987년 수입 차가 처음 한국에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벤츠는 줄곧 시장을 선도해왔다. 그동안 사브, 렉서스, 혼다 같은 북유럽과 일본 차종들이 부침을 거듭했지만 벤츠는 한 차례도 선두권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벤츠의 자긍심을 소비자들이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긍심은 단순히 벤츠라는 이름값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클린 디젤처럼 소비자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선택지를 끊임없이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한국 수입 차시장에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결국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