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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강국 일본의 원동력을 찾아서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1949년 교토대학 유카와 히데키 박사가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이래 지금까지 과학분야에서 총 1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 중 15명이 기초과학분야며 2000년대 들어서만 10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또한 일본은 향후 50년간 3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는 장기 플랜을 설정한 상태다. 기초과학 및 부품소재 산업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일본 과학연구 현장을 찾아 그 경쟁력의 원천을 살펴봤다.


교토=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

전문가들은 일본의 잇따른 노벨상 수상의 이유로 기초과학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 도출을 위한 환경 조성을 꼽는다.

반면 아직까지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단 한명도 없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경제발전을 위해 기초과학보다는 응용과학에 주력해왔다.

선도적 연구보다는 선진국 추격형 연구에 집중하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원천기술이 아닌 지금 당장 돈이 되는 응용기술 확보를 지향해 온 것이다. 이는 선진국과 비교해 연구 자금 규모가 크게 뒤처지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탓에 국내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최소 10년 이상이 걸린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도 국제과학비즈니스 벨트 조성이 추진 중이고 중이온 가속기와 같은 새로운 첨단 연구장비 도입이 가시화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기초과학 강국 일본은 우리의 훌륭한 벤치마킹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최대 방사광가속기 스프링-8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과 함께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 투자를 단행해 왔다.

이 같은 풍토 속에서 도출된 혁신적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기초과학과 부품 소재 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특히 여기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가속기들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오래전부터 나노과학에서 바이오테크놀로지(BT)에 이르는 다양한 산업분야에 이들을 광범위하게 활용, 주목할 만한 결실을 맺고 있는 상태다.

일본 교토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효고현 하리마과학공원.

이곳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방사광가속기연구소인 일본 이화학연구소 하리마연구소와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자랑하는 방사광가속기 '스프링-8(SPring-8)'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의 20% 정도가 가속기에 기반한 연구업적으로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만큼 가속기는 원자핵이나 그보다 작은 소립자 등을 연구해 미시 세계의 물리법칙을 규명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핵심 연구시설이다.

가속하는 입자의 종류에 따라 방사광(전자) 가속기, 중이온 가속기, 양성자 가속기로 구분되며 이중에서도 강력한 빛을 발생시켜 물질의 구조를 연구·분석하는 방사광 가속기는 생명· 화학·물리·기계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된다.

미국과 일본만 보유하고 있는 최신 4세대 방사광 가속기의 경우 3세대보다 최대 100억배 이상 밝은 빛을 생성, 펨토(1,000조분의 1) 수준의 극 미세 부분까지 분석이 가능하다.

스프링-8은 3세대에 속하지만 설치 이후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원자 단위의 물질구조와 수십 피코초(1조분의 1초) 정도의 순간적인 화학 반응을 해석하고 극미량의 물질 검출을 가능케 했다.

이시카와 테치아 소장은 "1,436m의 원형가속기와 총 62개의 빔 라인 등으로 구성된 스프링-8은 8기가전자볼트(GeV, 1GeV=109eV)의 가속 성능을 구현한다"며 "암, 에이즈 등 난치병 치료제 개발, 신에너지 연구처럼 생명과학이나 나노기술을 위시한 최첨단 연구분야 발전의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벨상 수상자의 20% 정도가 가속기에 기반한 연구업적으로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만큼 가속기는 미시 세계의 물리법칙을 규명하는 핵심 연구시설이다.



국내외 러브콜 잇따라
이시카와 센터장에 따르면 현재 일본 내 대학들과 제약사, 철강회사 등 약 30여개 산업체들이 연구개발을 위해 스프링-8을 이용하고 있다.

2008년에는 타사와 공동으로 빔 라인을 이용하던 토요타자동차가 단독기업으로는 최초로 전용 빔 라인을 신설했으며 해외 연구기관들의 이용이 많아지면서 별도의 전용 빔 라인이 설치되기도 했다.

이시카와 센터장은 "스프링-8의 전자레벨 측정 빔 라인은 약물 등 분말시료의 전자밀도와 전자분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며 "0.1㎜ 의 시료로도 측정이 가능하고 최대 30개의 시료를 한번에 처리할 수 있다"고 전했다.

분광 측정 빔 라인의 경우 물질 내 원자레벨의 구조 측정에 쓰인다. 파나소닉이 이 빔 라인을 활용, DVD의 정보가 삭제될 때 구조 변화 원리를 규명한 바 있고 일본 자동차업체 다이하쓰는 자동차 배기가스 처리 과정 분석을 통해 새로운 촉매를 개발하기도 했다. 또한 수백 나노까지 관찰이 가능한 산업 협동 빔 라인은 일본 내 많은 산업체들이 공동 활용하고 있다.

아시카와 센터장은 또 스프링-8이 과학 분야를 넘어 범죄 수사에도 효용성을 발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995년 발생한 '경찰청장 저격사건' 용의자의 코트와 안경에 묻은 물질을 분석, 범인 검거에 직접적 역할을 했고 1998년 일어난 '와카야마 독극물 카레 사건'의 독물 분석에도 활용됐다.

특히 스프링-8 인근에는 원자의 세계를 상세히 분석하는 일본 최초의 X선 자유전자 레이저(XFEL) 시설 '사클라(SACLA)'도 위치해 있다. 과학자들은 원자 크기의 물질을 연구할 때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빛의 파장보다 더 작은 구조를 볼 수 없는 근본적 제한에 직면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사클라는 빛의 파장에서 오는 제한 조건을 극복, 강력한 빔을 이용해 개별 원자와 분자를 관찰할 수 있다.

지난 4월 이후 본격적인 가동을 위한 다양한 초기실험을 수행 중에 있으며 내년 3월쯤이면 새로운 연구결과를 도출해 낼 것이라는 게 이시카와 센터장의 설명이다.

하쿠비 프로젝트는 5년간 중간평가가 없고 보고서 제출 등 외부 간섭이 없어 좋은 연구 성과를 도출할 수 있다.

창의 연구의 산실, 하쿠비 프로젝트
일본에서 가장 많은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곳은 어딜까. 우리나라의 서울대에 해당하는 도쿄대학을 떠올렸다면 오답이다. 정답은 교토대학이다. 일본의 첫 번째 노벨과학상 수상자인 유카와 박사를 포함, 총 7명이나 되는 수상자가 교토대 출신이다.

유카와 박사는 1934년 중간자 이론의 구상을 발표하고 1935년 '소립자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라는 논문을 통해 중간자의 존재를 예언했다. 그는 이 연구로 194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일본에서는 기초과학에 대한 많은 투자가 이뤄졌고 지금에 이르러 세계 선두의 기초과학 연구 국가가 됐다.

타이치로 쿠고 교토대 기초물리학연구소장은 "교토대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것은 기초과학에 매진하는 학풍 덕분"이라며 "앞으로도 신형 만능세포로 불리는 인공 다능성 간세포(iPS)를 연구 중인 야마나가 신야 박사 등의 노벨상 수상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근 교토대는 젊은 연구자들의 창의적 연구 환경 조성을 목표로 한 '하쿠비(白 眉) 프로젝트'를 출범, 기초과학 연구를 한층 장려하고 있다. 이는 학교나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자신이 연구하고 싶은 분야에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프로젝트로서 시행 후 지난 2년간 총 36명의 젊은 과학자를 지원했다. 또한 매년 국제 공모를 거쳐 연구자를 선발하기 때문에 일본을 넘어 해외의 유망한 젊은 연구자들을 교토대학으로 끌어들여 일본 기초 과학의 자양분을 만드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일례로 작년 하쿠비 프로젝트에 선정된 생물·생태학 연구 박사과정의 토즈 히로카즈 박사는 숲 속 생명체들의 상호 영향 관계에 관한 연구에 한창이다. 대학에서 연간 400만엔, 정부로부터 3년간 1억6,000만엔의 지원이 결정됐으며 연구원들을 직접 선발해 운용하는 교내 개인 연구실에서 창의적인 연구를 수행 중이다.

토즈 박사는 "하쿠비 프로젝트는 5년간 중 간평가가 없고 매년 논문 리스트만 제출하면 된다"며 "보고서 제출 등 외부 간섭이 없어 좋은 연구 성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포스닥(박사후 과정)을 밟으면 대개는 자기 연구분야에만 집중하지만 하쿠비 프로젝트를 통해 물리, 생물 등 다양한 연구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어 새롭고 창의적인 발상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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