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전염병 결핵. 게다가 치료제도 없다는 슈퍼 결핵의 출현에 세계 보건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지난 1월 16일. 인도에서 모든 약이 듣지 않는 '완전 내성 결핵균', 통칭 '슈퍼 결핵'이 발견됐다. 2003년 이탈리아(2명), 2009년 이란(15명)에 이어 이번이 3번째 출현이다.
작년 12월 인도 뭄바이 소재 P.D. 힌두자국 립병원 소속 의료진은 미국 학술지에 현재 시판되고 있는 항결핵제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환자 12명의 사례를 보고했다. 의료진은 논문에서 1차 약물 치료에 실패한 후 2차 치료제까지 모두 10여 종의 약물을 차례로 투여하며 2~3년간 관찰했지만 3명이 사망했고 나머지 환자도 결국 치료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의료진은 이에 따라 이 결핵균을 '완전 내성 결핵'이라 결론내렸다.
바다 건너 이웃나라 인도의 사례라고 무시할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인구 10만명당 결핵 환자가 90명에 달한다. 이는 미국이나 그리스와 비교해 30배에 이르는 수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1위다. 내성이 생겨 일반 결핵약으로 치료가 힘든 다제내성 결핵 환자의 숫자 역시 OECD 국가 중 1위다.
전문가들은 지난 2000년부터 실태 조사까지 폐지할 만큼 결핵을 소홀히 관리해 온 것이 이러한 멍에를 쓰게 된 원인의 하나로 본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결핵 환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결핵정보통합관리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결핵 환자 수는 2006년 4만6,284명에서 2007년 4만 5,597명, 2008년 4만4,174명으로 감소하는 듯했지만 2009년 4만7,302명, 2010년 4만8,101명으로 다시 반등됐다. 2006년과 2010년을 비교하면 환자 수가 2,000여명이나 늘었다. 상황이 이럴진데 과연 우리가 이탈리아와 이란, 인도의 슈퍼 결핵을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결핵과 슈퍼 결핵
슈퍼 결핵을 논하기 이전에 우선 결핵이란 질병의 실체를 이해하는 게 먼저일 것이다. 결핵은 호흡기 분비물에 의해 전염되는 전염성 질환으로 결핵균이 병원균이다. 보통은 위생 상태와 영양 상태가 열악한 곳일수록 발병률이 높다.
그래서 전형적인 후진국형 질병으로 불린다.
이런 결핵은 인체 대부분의 조직과 장기에서 질병을 유발할 수 있지만 폐조직에 감염되는 폐결핵이 대부분을 차지해 일반적으로 결핵이라 하면 폐결핵을 많이 가리킨다. 주된 증세는 감염되는 조직에 따라 다양하다. 가장 흔한 폐결핵의 경우 70~80% 정도가 기침과 객담 증상을 보인다. 이는 폐결핵 환자뿐만 아니라 상기도 감염 등의 대다수 호흡기 질환에서도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로 인해 결핵 증상은 환자 자신이나 의사들에 의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흡연이나 만성폐쇄성 폐질환 또는 다른 종류의 폐질환 증상 등으로 착각되기 쉽다. 신장 결핵의 경우에도 혈뇨, 배뇨곤란, 빈뇨 등 방광염과 유사한 증상이 발현되고 척추결핵은 요통, 결핵성 뇌막염은 두통, 구토 등 타 질병과 분간하기 힘든 증상이 많다.
결핵 가운데 가장 중증은 결핵성 수막염과 급성 속립성 결핵이다. 결핵성 수막염은 주로 소아에게 많이 발생하고 두통, 구토, 발열, 의식혼탁, 경련, 혼수 상태 등의 증상이 발견된다.
급성 속립성 결핵은 다량의 결핵균이 혈액 속에 퍼졌을 때 일어나며 패혈증과 증상이 비슷하다. 이런 이유로 결핵은 환자의 가래, 소변, 위 세척액, 뇌척수액 등을 검사해 결핵균이 있는지 여부로 진단한다.
예방법은 위생과 영양 상태 개선, 환자의 조기 치료, 독성을 약화시킨 결핵균인 BCG 백신 등이 있다. 치료법은 영양 상태 개선과 휴식, 또한 각종 약물요법 등이 있는데 약물로는 스트렙토마이신, 이소니아지드, 파라아미노살리실산의 3가지가 가장 많이 쓰인다.
이 같은 항결핵제 중에서 1차 치료제인 리팜피신과 이소니아지드에 내성을 가진 결핵을 다제 내성 결핵(MDR-TB)이라 부르며, 이들에 더해 2차 치료제인 퀴놀론 계열 치료제에 내성을 가진 결핵이나 카나마이신, 카프레오마이신, 아미카신 등 3종의 2차 항결핵제 중 최소한 하나에 내성을 가진 결핵을 광범위 내성 결핵 (XDR-TB)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된 모든 치료제에 내성을 가진 결핵이 바로 완전 내성 결핵(TDR-TB)이다.
언론에서 말하는 슈퍼 결핵은 사실 학문적 용어가 아닌지라 간혹 XDR-TB까지 포함하기도 하지만 주된 지칭 대상은 어디까지나 TDRTB다.
쉽게 말해 기존 치료제로는 치료가 사실상 불가능한 결핵이 슈퍼 결핵인 것이다.
소진화의 산물?
TDR-TB는 어떻게 해서 모든 치료제에 내성을 가지게 됐을까. 이 부분은 우선 소진화라는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소진화의 메커니즘을 자세히 파고들어 간다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은 수평적 유전자 이동과 염색체 복제 시 108분의 1의 확률로 나타나는 병원체 게놈의 비동일 연쇄군 점돌연변이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병원체에 대한 항생제의 작용을 환경적 압력으로 본다면 결핵균은 그러한 환경적 압력으로부터 살아남고 번성하기 위해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돌연변이로 인해 얻은 특질을 후손들에게 물려줘 완전한 내성을 가진 군집을 이루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핵균과 같은 미생물들이 항생제에 대해 내성을 띠게 되는 기제는 크게 4가지다. 먼저 약물을 불활성화 또는 변조시킨 것을 들 수 있다. 구체적인 예로 β-락타마아제 효소의 생산을 통해 페니실린 G를 불활성화시켜 페니실린에 내성을 획득한 박테리아가 여기에 속한다.
둘째 목표 위치의 변경이다. 페니실린결합단백질(PBP), 즉 페니실린의 결합 목표 위치를 변경해 내성을 얻는 메티실린내성황색포도상구균(MRSA)을 예로 들수 있다.
세 번째는 대사 경로의 변경. 파라아미노벤 조산(PABA)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부 술폰아미드 내성 박테리아들이 그런 종류다. PABA는 박테리아 내에서 엽산과 핵산의 합성이 이뤄지는 중요한 전구체인데, 술폰아미드는 이 전구체의 활동을 억제해 항생 효과를 얻는다. 이들은 PABA 대신 미리 형성한 엽산을 사용, 술폰아 미드의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약물 축적량의 감소가 있다. 미생물 표면의 약물 삼투성을 감소시키고, 활성 배출을 증가시킴으로써 미생물 체내에 항생제가 축적되는 양을 줄이는 방식으로 소진화가 전개된다.
덧붙여 결핵 치료 시 많이 쓰이는 퀴놀론에 내성을 얻는 기제도 3가지나 알려져 있다. 일부 미생물의 배출 펌프는 퀴놀론의 세포 내 감수성을 저하시킬 수 있으며 그람 음성 박테리아의 경우 플라스미드 매개 내성 유전자가 DNA 기라아제에 결합하는 단백질을 생산, DNA 기라아제를 퀴놀론의 공격에서 지킨다. 그리고 DNA 기라아제 및 토포아이소머라아제 IV의 핵심 부위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퀴놀론에 대한 결합 친화력을 낮춰, 퀴놀론의 효과를 낮추는 기제가 있다.
연구에 따르면 박테리아 단백질 LexA가 퀴놀론 및 리팜피신에 대해 내성을 일으키는 박테리아 돌연변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렇기에 일각에서는 TDR-TB의 출현을 그동안의 항생제 오남용으로 인한 슈퍼 박테리아의 출현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항생제를 너무 많이 사용한 결과, 어떤 항생제에도 내성을 가질 수 있을 만큼 강한 결핵균이 등장했다는 얘기다.
소진화 (microevolution) - 비교적 단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진화. 고등생물에 비해 구조가 간단한 미생물에게서 더욱 빈번하게 볼 수 있다. 이에 대비해 지질학적으로 장기간을 요하는 대규모 진화를 대진화(macroevolution)라 한다.
결핵은 천연두가 아니다.
천연두와 같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질병이 아니라는 의미다.
'사람 탓'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견도 만만치 않다. 우선 TDR-TB의 발병 사례는 그리 흔하지 않다.
또 공식 발표를 봐도 TDR-TB가 폭넓게 확산됐다는 징후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 세계보건 기구(WHO) 결핵 · 폐질환공동센터의 지오반니 미글리오리 소장은 TDR-TB가 지난 수십년간 꾸준히 보고돼온 강력하고 치사율 높은 신종 결핵균일 뿐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TDR-TB는 전혀 새로운 결핵균이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1960년대 이래 결핵 치료의 표준 약제로서 이소니아지드와 리팜피신 등 2가지가 군림해오 고 있다. 이들에 대한 내성 사례는 그동안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특히 1990년대에 들어 XDRTB의 사례가 대폭 증가했다. WHO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XDR-TB가 58개국에서 발견됐으며 연간 2만5,000여명의 환자가 새로 생기고 있다고 한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역학자 캐롤 미트닉 박사 역시 TDR-TB는 새로운 결핵균이 아니라는 데 동의한다. 그는 이런 주장의 근거로 XDRTB를 든다. XDR-TB가 처음 명명된 것은 불과 2006년에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XDR-TB는 꾸준히 존재해 왔으며 다만 누구에게도 주의를 끌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후진국병이라는 결핵의 특성상, 선진국 연구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결핵균의 내성 증대의 원인은 부적절한 치료에서 찾기도 한다. 아무리 '가난한 자의 질병'이라지만 치료 과정만 적절했다면 이렇게까지 강한 내성을 발휘하는 균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한다.
실제로 2011년 WHO 보고서에 따르면 기존 결핵환자, 그리고 새로 결핵으로 진단받은 사람 중 약제 내성 테스트를 받은 사람은 5%에 불과했다. 그로 인해 약제 내성 결핵 환자 중 단 16%만이 그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으로 추산된다. 앞서 언급했던 미글리오리 박사 역시 부적절한 치료와 요양, 치료기간이 결핵균의 내성을 더 키웠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정확한 진단과 정확한 처방으로 치료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 결핵을, 잘못된 처방으로 인해 애당초 낳게 하지도 못할 약을 쓰다가 결핵균의 내성만 키웠다는 말이다.
결핵 검사 방법에도 어느 정도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WHO에서 결핵 표준 검사법으로 권하는 객담도말 검사법은 사실 100년 이상 예전에 개발된 구시대의 유물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 검사법은 저렴하기는 해도 오진의 위험성이 높다. 가짜 음성 반응이 나올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게다가 환자의 항결핵제 수용성 정보는 전혀 제공받을 수 없으며 진단결과가 나오려면 수주일이나 걸린다. 이 정도면 환자가 잘못된 약제를 처방받아 결핵균의 내성을 증대시키거나 주변 사람에게 결핵균을 전파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와 관련 WHO는 2010년 X퍼트(Xpert)라는 새로운 자동화 검사 기법을 승인했다. 이 기법은 진단속도가 빠른데다 환자가 1차 치료제인 리팜피신에 내성이 있는지의 측정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2011년 7월 현재 X퍼트 기법을 사용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단 26개국에 불과하다.
객담도말 - 환자의 가래를 통해 결핵균의 배출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 방법.
일각에서는 항생제를 너무 많이 사용한 결과 어떤 항생제에도 내성을 가지는 강력한 슈퍼 결핵균이 등장했다고 본다.
만만치 않은 미생물
이외에도 결핵에 대처할 신약이 제때 개발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주장 역시 힘을 얻고 있다.
1960년대 이래 새로운 결핵 1차 치료제는 전혀 개발되지 않은 것. 이를 지지하는 연구자들은 동일한 약을 너무 오랜 기간 사용한 탓에 내성을 가진 결핵균의 출현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라 여긴다.
실제로도 결핵은 AIDS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전염병이지만 의학계와 제약업계는 결핵에 대해 무신경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주지하다시피 빈곤한 국가의 질병이라는 인식 때문에 신약을 개발해봐야 정작 환자들은 구매력이 없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존스홉킨스 공공보건대학 결핵연구센터의 리처드 차이슨 소장도 항결핵제 시장이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매력적 시장이 아닌 탓에 제약업계가 수십년 동안 결핵을 무시해 왔다는 견지를 표명한 바 있다. 그나마 학계와 업계의 추세가 조금이라도 개선된 것은 불과 10년 정도 전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결핵은 천연두가 아니다. 천연두와 같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질병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것이 빈자이든, 부자이든 여전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더욱이 글로벌화 시대를 맞아 후진국형 질병이 선진국에 상륙, 창궐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북아시아만 보더라도 바로 윗동네인 북한의 결핵환자 수가 작년 기준으로 인구 10만명당 345명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4배나 되는 수치다. 만에 하나 북한 정권이 붕괴한 뒤 결핵 환자들을 포함한 북한주민들이 우리나라 사회로 유입된다면 국내 결핵 환자수는 급반등할 개연성이 높다. 미리 특단의 방역대책을 세워놓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결핵균이라는 미생물이다. 무생물이 아니다. 비록 지능은 없더라도 소진화를 통해 주어진 환경에 철저히 적응할 수 있는 존재다. 이번 인도에서의 TDR-TB 발견은 어찌 보면 이렇듯 평범한 진실을 외면한 오만한 인간에게 깨우쳐 주는 미생물들의 반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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