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필자의 집에서 실험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이튠즈 스토어에서 '에픽윈'이라는 앱의 구입. 이 앱은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면 가상세계에서 보상을 해주는 방식으로 동기부여를 제공, 사용자들의 생활개선을 독려하는 판타지 게임이다.
아바타를 선택하자 화면에 임무를 입력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게임 체험 기사를 써야했기에 '기사 시작'을 입력했더니 음산한 음악이 흐르며 '0㎞'라는 게임진행상태 표시와 함께 아바타가 나타났다.
이 실험에 대한 아이디어는 몇 달 전 떠올랐다.
최근 하나의 트랜드를 형성하고 있는 '게임화'에 관심을 가졌던 게 단초가 됐다. 스마트폰 보급 확대와 유비쿼터스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생겨난 새로운 시대상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게임화는 소비자의 행동을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마케팅 도구로 쓰인다.
구글은 구글 뉴스의 파워유저에게 배지를 수여하며, 명품할인사이트를 운영하는 길트 그룹이나 의류종합쇼핑몰 자포스는 우수 고객에게 특전을 주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시장조사기관 M2리서치는 2011년 약 1억 달러로 추산됐던 전 세계 게임화 시장 규모가 2016년 28억 달러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또 유명 게임개발자 제인 맥고니갈은 저서 '누구나 게임을 한다(Reality is Broken)'에서 이렇게 언급하기도 했다. "기후변화와 빈곤 같은 글로벌 이슈를 다루는 게임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행복 추구, 창의력, 치유력 등 인간의 가장 핵심적 능력을 증진시켜 세상을 더 의미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낼 게임도 출현할 것이다."
필자는 게임화의 관점에서 삶의 모든 것이 게임이 될 수 있다고 할 때 정말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했다. 이를 위해 앞으로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 살고 있는 약혼녀 케이티와 보낼 일주일간의 삶을 다방면에서 점수화하고 기록할 것이다. 가능한 모든 모바일 및 웹 기반 게임화 앱을 사용할 것이다.
실험 개시 후 얼마 되지 않아 첫 득점을 올렸다.
컴퓨터를 켜고 20분에 걸쳐 지금까지의 진행상황을 글로 적고는 에픽윈에 기사작성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필자의 아바타는 목표지점으로 향하는 지도 위에서 64㎞를 전진하면서 110개의 금화를 획득했다. 첫 성과여서인지 화면에 보이는 64와 110이라는 숫자는 소소하지만 뚜렷한 성취감을 줬다. 다만 아직은 이 숫자가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게임화 전문가인 게이브 지커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 숫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에요. 피드백을 제공하죠. 피드백은 사람을 도취시킨답니다. 도파민 등 여러 화학물질의 분비를 촉진, 도전과 성취감으로 이어지는 긍정적 선순환 고리를 강화시켜줘요. 성취감을 느끼려고 계속해서 도전하게 되는 겁니다."
전화를 끊고 아바타를 바라보니 그의 말대로 점수를 올리고 싶은 강한 충동이 밀려왔다.
게임화 (gamification) - 비디오게임의 여러 가지 장치, 즉 득점과 미션, 그리고 각 레벨의 마지막 마다 꼭 나타나는 '보스전' 등을 실제 생활에 결합하는 것.
화요일
다음날 아침 더럼으로 가는 여객기 안. 필자는 오늘 침대에서 일어나서 지금까지 에픽윈과 '초어 워즈'에 입력했던 점수를 적었다. 초어 워즈는 어제 가입한 또 다른 게임화 사이트로 아바타를 선택한 뒤 현실에서 이런저런 잡일들을 해낼 때마다 점수를 얻는 방식이다.
필자는 설거지, 재활용품 분리 배출, 공과금 납부 등 3가지 집안일을 게임화했으며 공항으로 떠나기 전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버림으로써 70의 경험치와 19개의 금을 획득했다. 에픽윈의 금화를 얻었을 때만큼 좋은 피드백을 느꼈다.
롤리-더럼공항에 착륙한 항공기가 게이트로 이동하는 동안 아이폰을 켜고 '포스퀘어' 앱을 클릭했다. 이 무료 앱은 사용자가 레스토랑, 가게, 공공장소에 들어갈 때마다 점수와 배지를 준다.
이 앱의 최대 장점은 막강한 편의성. 에픽윈, 초어 워즈와 달리 길고 자세한 입력 없이 스마트폰이 위치정보만 파악하면 간단히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이와 관련 게임 설계자 케빈 슬라빈도 앞으로 나올 가장 뛰어난 게임화 앱은 최대한 거추장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운 형태로 실제 생활에 녹아들 것이라고 설명한다.
입국게이트를 빠져나온 필자는 케이티를 만나 공항 카페에 들렀다. "아자! 5점이다." 그녀가 웃으며 답했다. "아주 신나셨네요."
그녀의 집으로 가는 동안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쇼핑센터에 들러 필요한 물품도 구매했다. 당연히 그때마다 앱을 켜고 점수를 쌓았다. 실험 이틀째에 불과했지만 어느새 필자의 눈에는 현실세계가 디지털 세상과 연결된 듯 보였다. 점수는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고 그 점수를 얻기 위해 손에는 항상 스마트폰이 들려있었다. 포스퀘어는 가입 후 1주일 내로 50포인트를 모으라는 임무를 부여했는데 필자는 이날 하루 만에 50점을 다 모았다.
수요일
이번 실험의 계획을 짜기 위해 필자는 사전에 뉴욕 소재 게임개발사 플레이매틱스의 설립자인 닉 포투그노와 마가렛 월레스를 찾아갔다.
그때 두 사람은 필자의 연애생활도 게임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현재 무수한 연애사이트에 게임화 요소가 적용돼 있다. 일례로 OK큐피드라는 사이트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특정 사용자의 프로필을 확인했는지를 기록한 뒤 사용자가 댓글을 많이 남긴 사람들을 분석, 이상형을 찾아준다.
하지만 필자는 이미 약혼을 했기 때문에 플레이매틱스팀은 새로운 게임을 설계해줬다.
'멋진 약혼자 되기'라는 이름의 이 게임은 2단계로 진행된다. 첫째 날 10점, 둘째 날 15점을 따면 게임에서 승리한다. 단, 이틀 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점수는 케이티가 직접 정한 5가지 행위를 했을 때 얻을 수 있다. 칭찬, 청소, 애정표현 등이다.
필자만을 위해 앱을 개발할 수는 없었기에 인터페이스는 스마트폰이 아닌 색인카드로 대체했다. 케이티가 색인카드를 항상 휴대하며 필자가 획득한 점수를 기록하는 것이다.
첫날 득점은 형편없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 욕실에 샴푸통을 어질러 놓고 나와 전쟁이라도 치렀냐는 핀잔을 들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강아지와의 산책을 제안했지만 정작 그녀가 애견과 함께 현관을 나설 때까지 필자는 초어 워즈에 기록을 업데이트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녀가 외쳤다. "-1점." 하지만 다행히도 이 게임의 규칙에 감점제는 없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저녁식사를 위해 외출했다.
레스토랑에 도착해 포스퀘어 점수를 올렸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 동안 밀린 설거지를 함으로써 초어 워즈에서는 레벨 상승의 기쁨을 누렸다. 그런데 설거지를 마치며 이 정도는 멋진 약혼자 되기 게임에서도 득점으로 인정해야 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를 들은 케이티가 말했다. "알았어. 1점 추가."
기쁜 마음에 몸을 날려 그녀의 볼에 키스했고 그 덕분에 1점을 더 받았다. 그러나 잠자리에 들 무렵까지 목표점수에 3점이 모자랐다. 조금 뒤 케이티가 다가와 임무 실패를 공식 발표했다.
"내일은 좀 더 노력해봐."
목요일
오늘의 주된 실험 목표는 게임화가 정말 건강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침에 스포츠 용품점을 찾아가 나이키+를 사용하기 위한 용품들을 샀다.
나이키+는 사용자의 일일 운동량을 체크해 게임화하는 일종의 건강상태 체크시스템.
나이키 운동화의 바닥에 소형 가속도계를 부착하고 러닝을 하면 속도와 거리, 칼로리 소모량 등의 데이터를 아이팟이나 아이폰, 또는 USB 드라이브가 장착된 전용 스포츠 밴드 팔찌에 보내준다.
필자는 에어맥스 운동화와 스포츠 밴드를 선택했다. 운동을 마친 후에 스포츠 밴드에서 USB 드라이브를 꺼내 노트북에 끼우면 데이터가 업로드된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이용해 주간, 월간 목표를 세울 수 있으며 수백 만명의 다른 나이키+ 사용자들과 경쟁도 가능하다. 특히 이를 통해 나만의 문제점을 찾을 수도 있다. 필자의 경우 문제가 아주 많았다.
원래 잘 뛰지도 못하는데다 뛸 때마다 큰 고통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담에 따르면 스포츠 밴드 착용의 힘은 생각 외로 크다고 한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힘겨웠던 운동이 머지 않아 즐거운 게임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집에 돌아와 초기 목표를 설정했다. 3일간 24㎞ 러닝, 9분 이내 1.6㎞ 주파가 타깃이었다. 당연히 아바타도 만들었다.
이윽고 집을 나서서 오솔길을 통과했다. 이로써 포스퀘어에서 기본 5점과 오솔길 첫 방문에 따른 보너스 점수까지 얻었다. 물론 러닝은 다른 때와 다름없이 호흡곤란의 고통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노트북에 옮긴 데이터를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리막길이었다고는 해도 8㎞의 러닝을 하는 동안 1.6㎞를 불과 6분 49초만에 주파했기 때문이다. 마치 비디오게임의 끝판왕을 물리치고 화면 가득히 올라오는 크레디트를 보는 듯 황홀했다.
금요일
실험기간 내내 필자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닉과 마가렛의 권유에 따라 이번 기회에 수면습관 개선에도 도전했던 탓이다.
수면을 게임화해주는 앱이 아직 출시되지 않았기에 부득이 맥고니갈이 개발한 ‘슈퍼베터’라는 게임을 차용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나 가족들이 빨리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온라인 게임인데 사용자들 스스로 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최적화가 가능하다.
그래서 '최상의 행복한 수면'을 지향점으로 삼아 6시간 이상의 수면이라는 목표를 정했다.
또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악당으로 업무와 스트레스를, 동기유발 요소로는 뜨거운 커피와 비디오게임, 버본 위스키 등을 넣었다.
그러자 여러 가지 임무가 하달됐다. 첫 번째는 7시간 동안 내리 자라는 것이었다. 임무를 잘 수행할수록 치유력 점수는 높아져 갔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면 추가 점수를 얻었고 임무 달성도를 의미하는 배지도 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레벨이 올라가면 다음 임무, 즉 더 긴 수면을 취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러는 동안 러닝도 계속됐다. 어제의 기록을 경신하기 위해 더 열심히 뛰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샤워를 하고, 샴푸통을 잘 정리한 뒤 재활용품을 내놓은 다음 개를 산책시켰다.
케이티를 포함한 누구도 말하기 전에 스스로 한 일이었다.
"4점 줄게." 케이티가 미소를 지었다. 필자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당신은 너무 아름답다고 속삭였다. "알았어. 2점 더 줄게."
저녁이 되자 우리는 포스퀘어가 특별한 혜택을 주는 극장에 갔다. 이곳을 세 번 방문하면 팝콘 한 봉지를 무료로 준다.
오늘 오전 필자는 캘리포니아의 젊은 기업가 브라이언 윙과 얘기를 나눴다. 그는 게임 앱 개발사와 판촉을 위해 자사 제품을 상품으로 제공할 기업을 연계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사람은 원래 목표 지향적이에요. 목표가 그저 점수뿐이라면 동기유발이 크게 되지 않죠. 그런데 실물로 보상을 받는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번이 이 극장의 첫 번째 방문인지라 우리 커플은 공짜 팝콘의 혜택을 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영화관에 들어가며 케이티에게 문을 열어주고 의자를 조정해주는 등 멋진 약혼자 노릇을 멈추지 않았다. 영화관을 나올 때쯤 색인카드는 20점을 넘겼다. 첫날 목표를 초과달성한 것이다.
귀가 후 침대에 앉아 슈퍼베터 게임의 파워업 아이템인 뜨거운 커비와 버본 한잔을 마셨다.
옆에 있던 케이티에게 트레이닝복을 입은 모습이 오늘따라 사랑스럽게 보인다고 칭찬도 했다. 그때 그녀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는 점수를 얻기 위해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처럼 들리네."
"앱들이 지시한 임무를 수행한 시간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앱에다 임무 결과를 기록하며 보냈어요."
토요일
실험 6일째 케이티와 작별을 고하고 뉴욕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게임화 실험에 심대한 차질이 생겼다.
필자는 보통 하루 평균 1시간씩 진짜 비디오게임을 즐긴다. 그런데 게임은 도대체 어떻게 게임화해야 하지? 답을 찾을 수 없었지만 비디오게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는 불행한 결정이었다.
일전에 닉은 실험에 임하는 한 가지 마음가짐을 권유한 적이 있다. 사실 필자는 게임을 시작하면 가급적 빠른 시간에 결승점에 도착하려고 노력하는 게이머다. 이를 인식한 닉은 수집가 유형의 게이머가 돼 보라고 했다. 무조건 게임을 빨리 끝내려 하지 말고 주변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비밀 아이템을 찾아 획득하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스코어만 높은 게이머가 아닌 훌륭한 게이머, 결과적으로 더 행복하고 세상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게 닉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뉴욕공항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바보스럽게도 비디오게임 '배트맨: 아캄 시티'를 구입한 것이었다. 게다가 실험이 아닌 진짜 비디오게임에서 수집가 유형의 게이머가 됐다.
결국 집에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필자는 무려 6시간이나 쉬지 않고 미친 듯이 화면 속 아캄 시티를 헤매고 다녔다. 게임하는 성향을 바꾼 때문인지 과거에는 절대로 찾지 못했을 아이템들을 습득했고 적지 않은 보스들도 한층 손쉽게 물리쳤다.
새벽 2시 30분이 돼서야 필자는 붉게 충혈 된 눈을 비비며 X박스 360의 전원을 껐다. 당시의 계기는 고작 3을 가리키고 있었다.
당연히 이때까지 게임화 실험이라는 본연의 임무는 완전히 잊었다. 주방 싱크대에는 설거지를 기다리는 그릇들이 널려 있었고 케이티에게는 잘 도착했다는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
일요일
실험 마지막 날. 오전 9시 30분경 6시간의 수면을 마치고 눈을 떴다. 슈퍼베터에 이를 입력하자 레벨이 상승했다. 이어서 밀린 설거지와 원고 작성을 한 후 에픽윈과 초어 워즈에도 해당 내용을 기록했다. 그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동안 임무를 수행한 시간만큼 많은 시간을 앱에다 임무 결과를 기록하면서 보냈다는 사실을.
오후가 다가오면서 실험의 마지막 피치를 올렸다. 러닝을 하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개키고, 욕실을 청소했다. 그리고 3시경.
이 행위들을 각각의 앱에 점수화시켰다.
아이폰으로 포스퀘어를, 아이팟터치로는 에픽윈에 접속했으며 나이키+ USB 드라이브를 컴퓨터와 연결했다. 컴퓨터 화면에는 슈퍼베터와 초어 워즈를 위한 탭을 두 개 더 열었다. 마지막으로 어제 시작한 멋진 약혼자 만들기 게임의 점수를 워드 문서에 더했다.
갖가지 정보들이 줄줄이 적히며 스크린을 채워갔다. 숫자, 인물, 금화, 경험치, 배지, 트로피, 계기, 파워업 아이템 등.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다른 가치로 환산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필자가 한 게임화 체험의 일부분을 계량화한 것일 뿐이었다.
갑자기 격투게임 리틀파이터의 제작자 마티 웡의 예측이 떠올랐다. 그는 머지않은 미래에 통합형 데이터베이스가 개발돼 모든 게임화 앱의 점수가 그곳에 등록된다고 내다봤다. 또 이 점수의 합계가 개인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둔 성공의 크기를 대변하는 지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화가 과연 그 정도까지 진척이 될까.
게임설계자인 이안 보고스트 같은 사람들은 게임화가 별다른 생각 없이 만들어진 포인트 기반 마케팅 전략이라고 일축하기도 한다.
어쨌든 일주일 간의 실험을 종료하며 필자는 그동안 얻은 점수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서로 다른 분야의 점수를 어떻게 합산해 통합적으로 계량화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실험 결과
비록 일주일에 불과했지만 일상 속에서 필자의 인생을 지배했던 게임의 흔적을 여실히 체감했다. 설거지와 재활용품 배출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해 휴대폰의 포스퀘어를 지우지 않고 남겨뒀고 지금도 러닝을 할 때는 반드시 스포츠밴드를 착용하고 있다. 반면 아캄 시티 게임은 이제 원래의 방식대로 플레이한다. 꼭 필요한 보스들만 때려눕히고 복잡 미묘한 보조 미션은 해결하지 않은 채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초어 워즈, 슈퍼베터는 아예 삭제해 버렸다.
지커먼이 실험 설계 때 예측했던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에픽윈과 초어 워즈에서 획득해놓았던 경험치와 금을 포기하는 것이 살짝 아쉽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약혼자와 점수 걱정 없이 편안히 만나고 대화할 수 있게 되면서 얻게 된 기쁨이 더 컸다.
심지어 에픽윈의 아바타가 괴성을 지르며 난리를 치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 이 기사도 예정보다 늦게 작성했다. 책상 앞에 앉아 글쓰기 자체를 즐기면서 말이다. 돌이켜보면 필자는 어떤 일들은 꼭 해야 했기 때문에 그 일들을 즐겼다.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슬라빈에게 앞으로 수년에 걸쳐 게임화가 어떤 방식으로 진화할지를 물었다. 그의 답은 이랬다.
"게임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려면 인증 프로그램, 전문가, 컴퓨터 전문서적들이 필요해요.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들 말이에요. 그에 반해 실제 물건들은 여전히 굳건하죠. 게임화는 앞으로 광채를 잃어버린 유행어가 될 겁니다."
물론 게임화의 개념을 페이스북이나 새로운 건강 보조 전자기기에 결합하는 것은 가능할지 모른다. 슬라빈도 이에 동의했다.
"전자상거래 사이트들은 포인트에서 실물 상품에 이르는 게임화의 요소를 지속적으로 받아들일 거예요. 소셜네트워크 또한 점차 게임화가 가속되며 이용자들은 보상이나 인정을 받기 위해 경쟁할 것이고요."
이날 오후 닉에게 전화를 걸어 최종 점수를 알렸다. "총점이 3,494점입니다." 그가 놀라며 되물었다. 어떻게 점수를 합산한 것인지에 대해서였다. "모든 점수를 그냥 더해버렸어요. 아캄 시티 게임의 계기판 숫자까지 말이에요."
웃음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한동안 이어진 뒤 그의 평가가 내려졌다.
"엄청난 숫자네요.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어요."
STORY BY Matthew Shaer
PHOTO-ILLUSTRATIONS BY iloved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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