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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소 스쿠버다이버

위기에 처한 원자력 업계를 구하기 위해 원자로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전문 잠수부들의 활약상

'원자력 다이버(nuclear diver)'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2010년 미국 맨해튼 중심가에서 이발을 하고 있을 때였다.

머리를 매만져주던 미용사가 인근 주민 같지 않아보였던 필자는 그녀에게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다.

"업스테이트에 살아요. 출근하는 데만 꼬박 두 시간이 걸리죠." 굳이 왜 그렇게 먼 곳에 살고 있냐고 하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제 남편이 조금 이상한 일을 하거든요. 그이는 원자력발전소 전문 잠수부에요. 원전 인근의 방사능에 오염된 물속이 그 사람의 일터죠. 원자로나 폐연료봉 저장조 같은 곳 말이에요."


이발을 하다 말고 필자는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안전한 일인지 묻고 싶은 거죠? 그이 말로는 그렇대요. 늘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요. 수치가 높게 나오면 잠수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물론 저는 남편이 그 일을 그만뒀으면 좋 겠어요. 방사능에 몸을 담근 사람과 한집안에 산다는 게 쉽지는 않거든요."

필자는 그녀에서 신분을 밝히고 남편을 만나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마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원자력 잠수부들은 자기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려한다는 것 이었다. 그리고 상관들도 공개적으로 그런 얘기를 하지 못하게 막는다고 했다.

"그 모든 게 원자력 때문이겠죠. 사람들은 원자력을 무서워하자나요.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남편의 일에서 원자력이라는 부분을 빼내더라도 그리 즐거운 직업은 아닐 거예요.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곳이라도 산업 잠수사들은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어요."

이런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위험은 차치하고라도 인체에 장기적 악영향은 없을까. 그녀는 남편이 가슴이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방사능 때문은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그것 말고는 다른 원인이 뭐가 있겠어요. 그이는 아직 젊은데 말이에요."

필자는 결국 남편의 이메일 주소를 건네받을 수 있었고 메일을 보내 인터뷰에 응해줄 것을 요청했다. 수주일의 시간이 지나서 도착한 답장에는 캘리포니아주의 한 원전에서 일을 하느라 바쁘다는 말만 적혀 있었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뇌리를 스쳤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방사능에 오염된 물인 것을 뻔히 알면서 그 속에 뛰어들 마음을 먹는 걸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수개월간 인터넷을 뒤져 원자력 전문잠수부들을 찾아냈고 일일이 질문지를 보냈다. 하지만 예상대로 그중 누구도 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 사건이 터졌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이 날 하루만에 원자력의 입지는 완전히 바뀌었다. 이 사고가 원자력 잠수부들을 취재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여긴 필자는 원전 직원들과 연락을 취했다. 원자력 잠수부들의 사명감과 중요성을 다룬 기사는 원전 관리자들의 노고를 세상에 널리 알리지는 못할지라도 폭발한 후쿠시마 원전에 헬리콥터로 바닷물을 쏟아 붓고 있는 TV 속 원전의 이미지는 불식시킬 수 있을 거라고 설득했다.

이윽고 미시건주 브리지먼에 위치한 도널드 C. 쿡 원전의 관계자가 협조를 허락했다. 이발을 하며 원자력 잠수부 얘기를 들은 지 1년도 넘게 지나서 드디어 그들의 일상을 취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이 소식이 업계에 돌았는지 예전에 이메일을 보냈던 잠수부 중 한명이 실명을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동료 두명과 함께 인터뷰를 하겠다고 연락해왔다.

필자는 시카고 교외의 작은 식당에서 그들을 만났다. 젊고 강인해 보였으며 하키 선수들처럼 온 몸이 운동으로 다져져 있었다.

대화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제가 방사능으로 옮겨갔다. 세 사람은 방사능으로 오염된 물속에서 몇 년간이나 일했다고 한다. 근육질의 남자들에게 묻기에는 다소 바보스럽다고 느꼈지만 혹시 건강상의 문제를 겪은 적은 없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사람이 대답했다. "몇 년 전 갑상선암에 걸렸죠. 원인이 직업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당시 28살이었고 건강도 완벽했어요. 가족력도 없었고요."

그는 치료를 위해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하지만 치료 후 다시 잠수를 시작했다.

"잠수가 그립더라고요. 제 일이 암의 원인이라는 증거도 없자나요. 이 친구들도 저랑 같은 곳에서 잠수를 했지만 모두 멀쩡한 걸요."

냉전시대에 소년기를 보낸 필자는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사고와 1986년 체르노빌 사고의 암운을 경험했다. 그렇다보니 과학기술분야 언론인으로서 원자력에 대해 합리적 지식에 기반한 '건전한 공포심'을 갖고 있다. 사실 다양한 에너지 중 원자력만큼 아마겟돈을 초래할 위험이 높은 에너지도 없다. 그리고 9.11 사태 이후 테러공포증을 앓고 있는 지구촌에서 원자력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필자의 맨해튼 아파트는 인디언 포인트 원전과 불과 60㎞ 거리다. 이 원전은 단층선 위에 있는데다 지하수 유출과 작은 폭발사고도 있었다. 9·11 테러 때는 납치된 여객기 중 한 대가 상공을 지나쳐가기도 했다.

특히 1,900만명의 뉴요커들은 인디언 포인트 원전의 '비상계획구역' 내에 자신의 집이 있다. 전 세계 수백개 도시의 시민들 역시 그들처럼 정부관리의 지도 위에 선으로 표시된 잠재적 위험지대에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전은 버릴 수도, 끌어안기도 힘든 뜨거운 감자 같은 존재다. 인디언 포인트 원전만 해도 뉴욕시 전력의 30%를 책임지고 있으며 가동을 중단시키면 대체 전력공급원이 전무하다.

긍정적 관점에서 보면 적어도 현재까지 많은 국가에서 원자력은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원이다. 작년까지는 일본도 그랬지만 말이다.

그러나 원자력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 하나 있다. 바로 노후화다. 미국의 경우 현재 가동 중인 원전 65개소 모두가 1978년 이전에 건설됐다. 경제 불황과 스리마일섬 사고가 연이어 터지며 신규 원전 건설이 전면 중단된 결과다. 최근 우리나라도 1978년 설치된 고리 1호기 사고 은폐 사실이 드러나며 월성 1호기, 울진 1호기 등 노후 원전 문제가 사회이슈로 떠오른 상태다.

"몇 년 전 갑상선암에 걸린 뒤 원자력 잠수부 생활을 관뒀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작했죠. 잠수가 그리웠어요. 게다가
제 직업이 암의 원인이라는 증거도 없으니까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 원자력 업계의 분위기는 좋았다. 유럽과 아시아, 중동 지역 국가들을 중심으로 원자력이 작금의 에너지 위기를 타개할 가장 현실적 대안이라는 시각이 확산되면서 국가적 지원이 커졌다. 이에 힘입어 미국도 2010년 2월 오바마 대통령이 조지아주에 2기의 신규 원자로 건설을 위한 80억 달러의 대출을 연방정부가 보증하는 서류에 사인했다. 무려 35년 만에 처음 건설되는 원전이었다.

이즈음에는 몇몇 환경운동가들조차 원자력에너지에 지지를 보냈다. 원자력을 없앨 수 없다면 지구온난화를 막는 무기로라도 쓰자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여기에 찬물을 끼얹었고 독일이 원자력 발전 중단을 천명하는 등 각국의 노선이 급반전됐다. 해결 조짐이 보였던 노후 원전 문제가 다시 대책을 찾기 힘든 골칫덩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노후 원전은 또 다른 재앙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원전 근로자나 인근지역 거주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고에 따른 방사능 피폭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조차 방사능에 오염된 물속에 뛰어드는 원자력 잠수부들만큼 위험하지는 않다.

비상계획구역 (emergency planning zone, EPZ) - 원자력 재해 발생 시 피해의 최소화를 위해 집중적인 방재대책을 수립해야 하는 구역.

도널드 C. 쿡 원전 입구에 도착하자 견고해 보이는 경비초소와 그 뒤의 숲으로 이어진 2차선 도로가 나타났다. 중무장한 경비원들은 수차례의 전화 확인을 거친 끝에 정문 통과를 허락했다. 숲길을 조금 달려가니 회색으로 칠해진 돔형 원자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왠지 위압적 느낌을 주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잠수부 팀이 머무는 건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필자의 취재를 받아들였던 잠수팀 감독관 키라 리히터가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감독관이 되기 전 7년 넘게 원자력 잠수부로 일했다고 한다. 남성 일색인 이 업종을 개척한 일종의 선각자였다.

작업 일정이 빠듯한지 그녀는 속사포처럼 오늘 스케줄을 읊어댔다. 그녀에 의하면 원자력 잠수부들은 세 가지 형태의 임무를 수행한다. 원자로에 냉각수를 공급하는 호수나 강에서의 토역 작업, 원전 내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는 물속에서의 작업, 원전 내 방사능에 오염된 물속에서의 작업이 그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보트를 타고 미시건 호수로 나가서 냉각수 유입구를 청소할 계획이라고 했다.

보트를 탄다는 말에 흠칫 놀랐다. 배멀미를 심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리히터는 불편해하는 표정의 이유를 오해하고 있었다.

"작업현장이 방사능 물속이 아니어서 실망하셨군요. 하지만 사실은 호수의 진흙탕 속을 잠수하는 게 더 위험하답니다."

주차장으로 향하던 그녀는 거센 바람이 불자 잠시 멈춰서 바람의 세기를 가늠했다.

"어쩌면 오늘은 잠수를 못할 수도 있겠네요. 날씨가 고요해야만 잠수가 가능하거든요. 보트가 출렁거리면 잠수부들과 연결된 산소공급 호스를 제대로 운용하기 힘들어요."

호수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그녀는 이번 잠수가 원전의 응축기로 분당 567만8,000ℓ의 물을 넣거나 빼내는 파이프와 펌프, 불순물 차단망으로 이뤄진 복잡한 송수시스템의 안팎에서 실시될 것이라고 알려줬다. 이런 파이프들은 미시건 호수 속에 400m가 있는데 주기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작업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일단 호수의 진흙 바닥에서 용접과 절단 작업을 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하지만 최대 위험은 냉각수 유입구에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원자력 잠수부 관련 공식 사상자 통계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뉴스나 보고서들을 살펴보면 대다수 사고가 냉각수 유입시설 관련 작업에서 발생했다.

"잠수를 강행해도 괜찮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문제를 운에 맡길 수는 없죠. 저희는 어떤 것도 운에 맡기지 않아요."

2004년 위스콘신주 포인트 비치 원전에서는 보트와 연결된 산소공급 호스가 유입구로 빨려 들어가며 잠수부가 수중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원전측은 잠수부마저 유입구로 끌려가는 사태를 막기 위해 냉각수 펌프의 작동을 중단해야 했고 당연히 원전도 멈췄다. 원자로 작동을 너무 빨리 중지하면 노심이 파손될 수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잠수부는 무사히 구조됐다.

그러나 원자력 잠수부가 늘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1986년 콜로라도주 크리스털강 원전에서도 냉각수 유입구 파이프를 점검하던 잠수부가 물속에 갇히는 사고가 있었다. 잠수팀은 구조를 위해 다른 잠수부를 투입했지만 안타깝게도 두 잠수부 모두 목숨을 잃었다. 특히 최초 사고를 당한 잠수부의 시신은 2시간의 수색 끝에 발견됐는데 유입구로 빨려 들어가서는 발전소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리히터는 이 같은 원자력 잠수부들의 안전 시스템 개선에 많은 애를 썼고, 일부 성과도 거뒀다. 수년간 업계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안전 규정 마련을 위해 활동하던 중 2009년 도널드 C. 쿡 원전에서 지금의 일자리를 제안 받은 것이다. 현재 그녀는 원전 근무자들과 잠수팀을 잇는 연결고리다. 과거에는 원전 근무자와 잠수팀 사이의 의사소통 실수로 상당한 사고유발 가능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가 부임한 이래 이곳에서 잠수부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벤튼 항구에 도착하니 전장 16m의 보트 옆에서 몇 명의 잠수부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작업화 차림의 그들은 필자의 예상보다 훨씬 어렸다. 그리고 날씨 때문인지 웃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수팀 팀장이자 보트의 선장 역할을 하는 키스 킨셀라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그때 리히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늘은 바람이 강하네요. 도박할 날씨가 아니에요."

필자의 눈으로는 작업을 취소할 정도로 수면 상태가 거칠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날의 잠수는 결국 취소됐고 잠수부들은 2시간의 시급을 받고 돌아갔다. 킨셀라 팀장이 필자의 생각을 눈치 챈 듯 말했다.

"잠수를 강행해도 괜찮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문제를 운에 맡길 수는 없죠. 저희는 어떤 것도 운에 맡기지 않습니다."





갑판 위의 캡틴
잠수팀의 키스 킨셀라 팀장은 잠수부들이 원전의 냉각수 흡입구를 청소하는 동안 보트에서 작업을 진두지휘한다.

원자력 잠수부들의 전직은 다양하다. 아마추어 스쿠버다이버, 군인, 석유시추선 근로자에 심지어 수영선수 출신도 있다. 필자가 만나 본 모든 잠수부들과 마찬가지로 킨셀라 팀장은 처음 잠수부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자신이 원전에서 일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그는 산업 잠수사였던 삼촌으로부터 1989년 3월 일어난 엑슨 발데스호 기름유출 사고 때의 경험담을 들었다고 한다.

"그때가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산업 잠수사라는 직업이 너무 멋져 보였죠."

그렇게 킨셀라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뒤인 1990년 산업 잠수사 학교에 들어가 자신의 천직으로 삼았다.

산업 잠수사가 하는 일은 선박의 수리, 항구의 보수, 교량 점검, 댐 보수 등 매우 다양하다. 석유시추선 관련 작업은 그중 가장 어렵고 긴 시간이 소요되는 축에 속한다. 소수들만 가능한 극도로 난이도 높은 분야도 있다. 독성화학 물질, 하수구, 분뇨 정화조 등의 위험물질이나 심해에서의 잠수·수색·구조 임무다. 원전 관련 임무도 여기에 포함된다.

킨셀라는 산업 잠수사 학교에서 취득한 수중 용접 기능사 자격증 덕분에 대형 잠수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 원자력 잠수부에 대한 얘기는 그곳에서 처음 들었는데 지극히 위험해 보였지만 그만큼 큰 매력이 느껴졌다.

이렇게 원자력 전문 용역 잠수부가 된 그는 골프선수들이 대회를 쫓아 투어를 하듯이 동료들과 함께 미 전역을 돌아다녔다. 작동을 멈춘 원자로를 고치기 위해 앨라배마주에서 1개월, 연료봉 관련 임무 때문에 위스콘신주에서 1주일, 냉각수 펌프를 손보려고 조지아주에서 3주 등의 식이었다.

초기에만 해도 벌이는 변변치 않았다. 심할 때는 시급 12달러를 받고 일하기도 했다. 그나마 고용직이 아닌 용역 잠수부였기에 일이 있을 때보다는 없을 때가 더 많았다.

필자가 만난 잠수부들은 자신들의 시급이 20달러 정도며 오염물질 잠수는 하루 10달러의 위험수당을 더 받는다고 했다. 연 수입은 업무량과 숙련도에 따라 약 2만~6만 달러 사이다.

다만 당시에나 지금이나 원자력 잠수부들은 전국 단위의 조직을 구성하지 못하고 있지만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은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킨셀라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어려운 작업도, 아무리 더러운 물에서의 작업도 거절하거나 포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수년간의 떠돌이 생활을 더한 끝에 킨셀라는 정식직원은 아니지만 도널드 C. 쿡 원전의 상근직 잠수팀 팀장으로서 정착할 수 있게 됐다.

"수업시간에 원전에서의 수중 용접작업 영상을 봤어요. 세상에 원전이라니! 가고 싶어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죠. 어떻게 해야 일할 수 있는지 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임무 개시
잠수부들은 수중 통로를 통해 천천히 이동, 원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작업장소로 간다. 어떤 때는 1시간 이상 잠수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리히터는 미시건 호수 잠수 임무가 취소되면서 실의에 빠진 필자에게 원전 견학을 제안했다. 이를 승낙한 필자는 1시간 넘게 다수의 검문소와 폭발물 탐지기, 금속탐지기를 통과해 발전소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발전 터빈이 있는 곳으로 가는 미로 같은 복도의 벽에는 '모든 사고는 예방할 수 있다!'와 같은 안전 구호와 지침들이 붙어있었다.



이곳의 직원들은 놀라우리만치 우호적이었다. 이동하는 동안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들의 옷에는 빠짐없이 방사선량계가 달려 있었다. 그것이 없는 사람은 필자가 유일했다.

그들이 말하는 소위 '위험한 장소', 다시 말해 방사선에 피폭될 수 있는 원자로나 폐연료봉 저장조 근처에는 아예 접근할 수 없으며 데려갈 생각도 없다는 의미일 터였다.

그때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여기서 만난 누구도 필자에게 방사능과 관련된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리히터에게 몇 번 얘기를 꺼내 보려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런 것은 별반 중요치 않다는 투였다. 대신 방사능이 아닌 잠수 얘기를 더 풀어 놓았다. 그녀가 처음 잠수 교육을 받은 것은 필리핀에 살던 1993년이었다고 한다.

"퇴직한 산업 잠수사들이 교관으로 계셨죠. 북해에서 일했던 분들로 기억해요. 왕년에 자신들의 활약을 들려줬는데 그 얘기에 푹 빠졌어요. 저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요. 하지만 그때는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마일 뿐이었죠."

성인이 돼서 그녀는 멕시코의 코수멜 섬에서 여행객들을 상대로 잠수와 해저동굴 투어 강사를 했다. 이후 미국 시애틀의 산업 잠수사 학교에 입학, 최고 성적으로 졸업했고 킨셀라처럼 원자력 다이버에 매료됐다.

"수업시간에 원전에서의 수중 용접작업 영상을 봤어요. 세상에 원전이라니! 가고 싶어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죠. 어떻게 해야 일할 수 있는지 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곧 유명한 원전 코팅 전문 다이버로 이름을 날렸다. 미국과 일본의 원전에서 여러 해를 보냈다. 수중에 있는 각종 표면에 페인트 등의 보호제를 칠하는 게 주 임무였다.

여기까지 얘기를 들었을 무렵 우리는 준비 구역에 들어섰다. 안전모와 고글, 귀마개 등 안전장구를 착용한 뒤 리히터가 문을 열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원전이었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 뜨거운 열기와 엄청난 소음이 덮쳤다. 대화는 거의 불가능했다.

방사선량계 (radiation dosimeter) - 방사선의 선량을 측정하는 장치.

처음 본 발전소 내부는 놀라웠다. 엄청난 규모와 복잡성에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리히터는 '스크린 하우스(screen house)'라 불리는 구조물로 인도했다. 냉각수 흡입구로 들어온 물이 발전소로 들어가기 전에 지나는 곳이었는데 그녀는 물속 바닥에 맨홀구멍처럼 생긴 5~6개의 구멍을 가리켰다. 잠수부들이 바로 그 곳으로 올라와서는 원전시스템을 고장 낼지도 모를 냉각수 속 불순물이나 해양생물을 걸러내는 불순물 차단망 및 펌프 구역으로 향한다고 했다. 저 아래에서의 작업은 비상시에도 수직 상승해서는 수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일명 '관통 잠수(penetration dive)'다.

"저도 관통 잠수를 여러 번 해 봤어요. 할 때마다 한동안은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느낌이 엄습하죠. 뭐 하나라도 잘못됐다가는 오늘 큰일 난다는 느낌이랄까요."

2003년 그런 사고가 실제 발생하기도 했다. 스크린하우스의 구멍으로 내려간 젊은 잠수부가 길을 잃고 엉뚱한 방향으로 이동했고, 닫혀 있어야 할 비상흡수밸브가 열려져 있으면서 물살에 휩쓸려 밸브로 빨려 들어갔다. 구조팀의 신속한 대응으로 잠수부는 구조됐지만 킨셀라 팀장은 다시는 그 같은 사고를 겪지 않기 위해 안전절차를 대폭 강화했다. 리히터 역시 잠수부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모든 밸브와 스 위치를 직접 점검하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물고기 떼가 발전소를 습격하기도 했다. 산란을 위해 난류를 따라온 수백만 마리의 청어들이 원전의 외곽 차단망을 뚫고 냉각수 흡수시스템을 막아버리면서 원자로 2기의 가동이 중단됐다.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기괴한 사고였지만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일으킬 수도 있는 가슴 철렁한 순간이었다. 당시에도 잠수부들이 원인조사를 비롯해 수개월에 걸친 사고수습의 선봉에 섰다.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이 사고가 원전 운영팀이 제대로 준비를 못한 결과라는 판단을 내렸고 앞서 언급한 사고들과 맞물려 도널드 C. 쿡 원전이 사고뭉치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이후 강도 높은 운영시스템 개선을 통해 최근 5년 동안에는 NRC가 분류한 가장 안전한 원전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리히터도, 킨셀라 팀장도, 아니 이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입에 담지 않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이 시설이 지어진 지 39년이 넘은 노후 원전이라는 부분이다. 발전소 내부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초창기 임무통제센터가 연상되는 무미건조한 황록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신규 원전이 거의 건설되지 않고 있는 많은 국가들에게 있어 노후 원전의 원활한 가동이 갖는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원전의 노후화가 진행될수록 유지관리는 더 어려워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작금의 우리 현실인 셈이다.

같은 이유로 원전의 많은 핵심 장치들이 물속에 잠겨 있기 때문에 잠수부들이 원전의 수명 연장에 기여하는 비중과 역할은 계속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견학을 마치며 리히터에게 이런 필자의 생각을 말했더니 이렇게 답했다.

"이제야 문제의 핵심에 제대로 접근하기 시작했네요."

신규 원전이 거의 건설되지 않고 있는 많은 국가들에게 있어 노후 원전의 원활한 가동이 갖는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원전의 노후화가 진행될수록 유지관리는 더 어려워진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작금의 우리 현실이다.



방사능 수영장
키스 킨셀라 팀장[좌측사진 가운데]은 노후한 케이블의 교체를 위해 방사능에 오염된 폐연료봉 이송 수로에 잠수했다. 원자로의 노심[우측사진]은 방사능 오염도가 더 높다.

다음날도 미시간 호수에는 거센 바람이 불었다. 한숨을 내쉰 리히터는 결국 필자를 '위험한 장소'에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지난번보다 훨씬 더 오랜시간 보안브리핑과 출입과정을 거치고 방사선량계도 지급받은 후에야 두터운 문을 열고 원전의 방사능 통제 구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몇 발자국을 떼기도 전해 본능적으로 방사선량계를 살폈다.

아무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왠지 분위기는 한층 무겁게 느껴졌다.

폐연료봉을 담은 거대한 보조동에 도달했을 때도 방사선량계의 수치변화는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리히터가 허락한 가장 가까이에서 아래쪽의 폐연료봉 저장고를 내려다봤다. 폐연료봉들은 필자의 불안감과는 사뭇 다른 청아한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10여 명의 직원들이 각자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리히터가 알려줬다.

이윽고 우리는 깊이 13m의 폐연료봉 이송 수로로 갔다. 기술자들이 원격조종 수중 카트를 활용해 원자로에서 폐연료봉을 꺼내 저장고로 옮기는 통로였다. 사람은 결코 들어가서는 안 될 장소처럼 보였다. 하지만 리히터에 의하면 잠수부들은 때때로 이 수로로 들어가 카트 또는 카트의 케이블을 손본다.

세상에서 가장 살 떨리는 견학을 마치고 그녀의 사무실로 돌아온 뒤 방사능의 위협 속에서 근무하는 기분이 어떤지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여전히 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전문가인 그녀의 입장에서 선뜻 대답하기에는 질문 자체가 너무 광범위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시카고의 식당에서 만난 3명의 잠수부들은 방사능에 오염된 물속으로의 잠수는 그들이 하는 업무 중 가장 안전한 작업이라 밝혔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관통 잠수를 하면서도 안전하다고? 원자력 잠수부들은 자신들이 방사능 걱정을 하고 있다는 말을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입에 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도 분명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체중 증가에 신경을 쓰듯이 그들도 방사능 피폭선량을 끊임없이 체크한다. 사람들이 달콤한 음식을 끊지 못하듯 잠수부들도 그 일의 위험성과는 관계없이 쉽사리 그만두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현재 원전을 감독하는 미 정부 기관은 최소 5곳. 방사선 피폭 허용량 기준치가 가장 엄격한 곳은 어딜까. 이들 중에는 없다. 정답은 원전의 자체 규정이다. 각 원전들은 ALARA 기술자들을 고용해 위험한 곳에서의 모든 활동을 기획· 관리하고 있다.

사람의 방사능 피폭량은 시버트(Sv) 단위로 표시한다. 1Sv는 1,000밀리시버트(mSv), 1mSv는 1,000마이크로시버트(μSv)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성인 1인의 연간 피폭 허용선량은 1mSv. 참고로 X레이 촬영 시 0.1mSv에 노출되며 1년간 태양 등에 의해 받는 자연방사선이 2.4mSv 정도다.

단지 원자력 잠수부들에게 이 숫자는 지키기 어려울 때가 있다. 작업을 끝내기 전 피폭량이 기준치에 근접했음에도 작업시간 연장을 요청받을 때가 그렇다. 이와 관련 도널드 C. 쿡 원전의 ALARA 선임 기술자 레이 바노이는 이렇게 전했다.

"현재 방사선 방호 관리자들이 잠수부 한명을 더 보낼 때 어떤 장점이 있는지 논의할 계획입니다. 지금도 임무에 따라서는 두명이 투입되기도 해요. 혼자서 장시간 피폭되는 것보다는 두명이 조금씩 나눠서 피폭되는 게 현명하니까요."

작업시간 연장 요청을 거절하면 되지 않을까. 잠수부들은 받아들이는 쪽을 택한다. 그들은 언제나 그래왔다.

물론 잠수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팀들은 예기치 못한 방사능 피폭 등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사고에 대해서도 강박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큰 위협은 따로 있다. 다름 아닌 시간이다. 수개월, 수년, 혹은 수십년 동안 적지만 일반인보다 많은 방사능에 피폭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작업 현장 곳곳에 숨어 있는 위험요소를 찾아내고, 제거하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해 온 킨셀라 팀의 잠수부들에게도 이 같은 장기적 위험은 아직 남아있는 셈이다.

ALARA -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1965년 권고한 방사선 방호의 기본 사고방식을 나타내는 개념. '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합리적 수준의 피폭 최소화)'의 약자다.



치명적 유혹
방사능에 오염된 원자로의 노심과 폐연료봉 저장조에서는 남태평양의 바다와 같은 청아한 푸른빛이 뻗어 나온다.

어쨌든 필자는 방사능에 오염된 물속은 커녕 잠수부들이 실제로 작업하는 모습은 코빼기도 보지 못한 채 원전의 취재를 끝내야 했다. 이 사실에 미안함을 느꼈는지 리히터는 몇 주후 원자로의 정기검사가 있다며 다시 와도 된다고 했다.

정기검사 때는 원자로의 작동을 멈추고 연료를 재보급 받는다. 모든 주요 장치 및 시스템의 점검과 수리도 이뤄진다. 그래서 잠수부들에게는 가장 바쁜 시기며 필자가 고대하던 방사능에 오염된 물속으로의 잠수 임무도 추진될 수 있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원전을 다시 방문했을 때 미시건 호수에서 만났던 잠수부들이 2개팀으로 나뉘어 원전 내부에서 작업에 한창이었다. 한 팀은 직경이 7m가 넘는 초대형 밸브의 교체를 위해 터빈동 아래에 있는 6m 깊이의 터널과 수조 속으로 까다롭기 그지없는 2인 관통 잠수를 하고 있었고 다른 팀은 쓰레기가 잔뜩 널려진 냉각수 흡입구 차단망을 청소 중이었다.

각 잠수팀은 조를 짜서 교대로 입수하면서 한번에 세명 이상이 수중에 있지 않도록 조율했다. 일정 시간마다 물벌레들이 잔뜩 붙어있는 채로 물 위로 올라온 잠수부들은 탈진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자신은 양호하다는 신호였다. 리히터는 두 팀을 바쁘게 오가며 모든 것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원자로 재가동 시간에 맞춰 일을 끝낼 수 있는지 확인했다.

이날의 작업장소는 모두 방사능에 오염된 곳은 아니었다. 리히터는 필자에게 이틀 전 방사능에 오염된 곳에서 잠수가 있었다고 말해줬다. 킨셀라 팀장이 그 임무를 맡았다고 했다.

"와서 보라고 연락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어요. 워낙 긴급한 사안이었거든요."

필자가 물었다. "비상사태가 있었나요?"

그녀는 답했다. "저희는 그런 용어를 쓰지 않아요."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간 그는 수로의 바닥을 향해 잠수했다. 조금씩 풀려나가는 생명 유지선만이 그의 존재를 알려줬다.

당시를 재구성해보면 이랬다. 최초 상황은 원자로의 연료 보급 준비 과정에서 시작됐다. 이송 수로의 폐연료봉 카트와 연결된 강철 케이블이 낡아 교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작업자가 발견한 것. 문제는 예정되지 않은 시간에 원자로를 정지할 경우 하루 100만 달러 이상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예정된 정기검사 시점까지 버티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신속한 교체가 불가피했다.

원전측은 두 가지 옵션이 있었다. 수로의 물을 비우거나 잠수부를 투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방사능 차폐재 역할을 하는 물을 비웠다가는 수많은 직원들이 방사능에 노출될 우려가 있었기에 잠수부 투입이 결정됐다.

킨셀라 팀장의 자원으로 투입 준비는 한층 빨라졌다. 수많은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그는 크레인에 달린 철제 케이지에 조심스레 올라가 물속으로 뛰어들 채비를 했다. 그의 드라이슈트 잠수복에는 여러 개의 방사선량계가 부착됐고 머리에는 고풍스러우면서도 괴기스러운 구리소재의 원형 헬멧이 씌워졌다. 그의 손에는 방사선 측정기도 들려 있었다. 이 기기로 작업 중 방사선 피폭량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나머지 잠수팀원들은 흰색 방호복을 입고 이런 팀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케이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몇 m 떨어진 곳에서 생명유지장치 담당자가 산소공급 호스와 통신선, 수심측정선, 그리고 이들 선들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강화로프 등을 한데 묶은 생명 유지선을 조금씩 풀어냈다. 이 선이 킨셀라 팀장과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도구였다.

케이지와 함께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간 그는 가슴 깊이에서 케이지를 벗어나 수로의 바닥을 향해 잠수했다. 계속해서 풀려나가는 생명 유지선만이 그의 존재를 알려줬다. 지상 요원은 무전으로 팔과 다리를 움직이라고 지시했다. 물속에는 방사성 입자들이 덩어리로 뭉쳐서 떠다니고 있어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급작스럽게 많은 피폭을 당할 수 있어서다.

다행히 킨셀라 팀장은 사고 없이 바닥에 도착했고 케이블 교체작업을 개시했다. 손에 땀을 쥐는 시간이 흘러 작업은 성공리에 마무리 됐다. 카트에 새 케이블이 장착되면서 폐연료봉 이송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고 원자로 작동중지도 모면할 수 있었다.

그 대가로 킨셀라 팀장은 0.16mSv의 방사능에 피폭 당했지만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무장한 그에게 이는 그저 일상일 뿐이다.

STORY BY DAVID GOODWILLIE
ILLUSTRATION BY JESSE LE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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