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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연료전지 레이싱카 그린 GT H2

수소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궁극의 에너지원으로 불린다. 때문에 에너지 산업 전반에서 수소 활용 기술 개발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이는 자동차라고 예외일 수 없다. 전 세계 완성차 메이커들은 이미 관련기술 개발을 완료하고, 수년 내 수소연료전지자동차의 상용화를 천명한 상태다.

이런 시대적 조류에 부응하듯 자동차 기술의 정점에 서 있는 레이싱 업계에도 수소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휘발유 값이 머잖아 ℓ당 2,000원을 돌파할 기세다. 중동 등 특정 지역에 편중된, 그리고 언젠가 고갈될 것이 분명한 화석연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현 자동차 업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전체 석유 소비량의 무려 35%가 운송용 연료다. 유가 인상이 교통비와 물류비의 상승을 이끌고, 이는 다시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직결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수소연료전지 자동차는 이 끈질긴 악연의 고리를 끊어줄 희망의 메신저다. 화석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데다 연소 후 배출되는 것은 오직 물 뿐이다.

게다가 현재 연구자들이 지향하는 수소제조법, 다시 말해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자연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해 물을 전기분해하는 제조공정이 완성되면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무한에너지를 갖게 된다. 태양과 대기의 이동, 바다는 적어도 인류가 지구상에 머무는 동안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현대·기아차는 포함해 GM, BMW, 벤츠, 혼다, 토요타 등 세계 유수의 완성차 메이커들이 오랜 기간 수소연료전지차의 개발과 실증에 심혈을 기울여 온 근간이 여기에 있다. 수소연료전지차 없이는 자동차의 미래도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재 기술력은 완성단계에 와있다. 벤츠는 2014년, 나머지 기업 대다수도 2015년이면 양산형 상용모델을 출시, 본격적인 수소경제시대를 열어젖힌다는 계획이다.

수소연료전지 레이싱카의 등장은 수소연료전지차의 기술력이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성숙했음을 의미한다.

차세대 레이싱 다크호스
이 같은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럽과 미국에서는 수소연료전지를 탑재한 레이싱카들이 속속 선을 보이고 있다. 사실 모터스포츠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현존 최고, 최강, 최신기술들의 경연장이자 각축장이다. 때문에 수소연료전지 레이싱카의 등장은 수소연료전지차의 기술력이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성숙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스위스의 그린 GT가 내놓은 '그린 GT H2'도 바로 그런 존재다. 지난 수년간 총 500만 유로(약 71억원)를 투자해 완성시킨 이 레이싱카는 수소연료전지가 열어줄 미래 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제조사인 그린 GT는 지난 2008년 4월 결성된 프로젝트팀에 가까운 소규모 독립형 자동차기업이다. '르망 24시'를 비롯한 여러 모터스포츠 대회에서 활약해 온 기계 공학자 장 프랑소아 베베르가 주축이 되어 설립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린 GT가 당초 계획했던 건 수소 연료전지가 아닌 리튬이온전지를 장착한 전기 레이싱카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엔지니어들의 검토 끝에 수소연료전지의 채용이 최종 결정됐다. 리튬이온전지로는 베베르가 원했던 주행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후 개발팀은 2011년 레이싱카와 일반 상용차에 모두 탑재할 수 있는 100㎾급 수소연료전지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그리고 시험 주행을 통해 레이싱카로서 실제 운용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르망 24시 대회를 주최하는 프랑스의 서부자동차클럽(ACO)이 그린 GT H2를 기술 혁신 프로젝트로 선정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개발팀의 다음 과제는 400㎾급 고출력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의 개발. 이는 시간당 264㎾의 출력을 낼 수 있는 것으로 리튬이온전지와 비교하면 5배나 뛰어난 것이다.

수소연료전지는 엄밀히 말해 연료도, 그렇다고 전지도 아니다. 수소와 공기 중의 산소를 반응시켜 전기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발전소라고 할 수 있다. 작동온도는 연료전지의 소재나 타입에 따라 다르지만 차량용의 경우 보통 60~120℃ 사이다. 그린 GT팀은 휴대기기에도 많이 쓰이는 고분자 전해질 연료전지(PEMFC)와 2기의 전자 식 터보차처를 이용해 시스템을 완성했다.

전기모터의 경우 200㎾급 2기를 채용, 총 400㎾의 힘을 내도록 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파워트레인을 위시한 전력 저장에서 전자제어에 이르는 모든 기술력을 확보했다. 특히 전기 모터의 신뢰성은 대단한 수준이다. 부품 개수가 내연기관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효율은 98% 이상 우수하다. 크기도 작아 경량화에 도움을 준다.

그린 GT H2는 부품개수가 내연기관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효율은 98% 이상 우수하다.







넘버4의 반란
개발팀에 따르면 이 같은 강력한 동력장치와 구동시스템에 힘입어 그린 GT H2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최적의 주행성능과 코너링을 보장한다. 또 수소 연료 8㎏만 충전하면 최대 40분간 레이싱 트랙을 질주할 수 있으며 최고시 속은 무려 300㎞에 달한다.

사실 그린 GT H2는 세계 최초의 수소 레이싱카는 아 니다. 다국적 완성차 메이커로만 대상을 한정해도 BMW 와 포드, 토요타가 먼저 수소를 연료로 쓰는 레이싱카를 세상에 선보였다. 그린 GT와 같은 중소업체를 제외하더 라도 순서상으로 네 번째다.

BMW의 작품은 이름하여 'H2R'. 이 회사의 플래그십 리무진인 760Li를 대폭 개조해 제작됐으며 세상에 이름을 알린 최초의 수소레이싱카도 이 녀석이다.

H2R의 최대 특징은 고압기체수소가 아닌 액체수소를 연료로 충전한다는 것. 지금은 고압저장용기의 기술 발전 덕분에 기체수소로도 600㎞이상의 주행거리를 뽑아낼 수 있지만 H2R이 개발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액체수소와 기체수소 중 무엇이 유리한지 경쟁관계에 있었고 액체수소 저장기술을 보유했던 BMW가 미는 것은 당 연히 액체수소였다.

아무튼 H2R은 정지상태에서 6초만에 시속 100㎞에 도달할 수 있었으며 최고시속 300㎞의 성능을 지녔다.

2004년 9월에는 수소(연료전지)차 중 최초로 시속 300㎞ 를 돌파했으며 11.993초만에 1㎞를 주파하는 등 총 9가지의 속도 신기록을 수립했다.

이런 H2R의 명성을 무너뜨린 것이 포드의 '퓨전 하이 드로겐 999(Fusion Hydrogen 999)'다. 포드의 인기모델인 퓨전을 개조한 것으로 400㎾급 연료전지를 장착, 전기모터의 출력이 웬만한 슈퍼카에 버금가는 770마력의 막강 파워를 자랑한다. 이 차량은 2007년 8월 고속 자동차경주 장소로 유명한 미국 유타 주의 보너빌 솔트 플랫에서 최고 시속 207.279마일(333.58㎞)을 기록하며 세상에서 가장 빠른 수소자동차가 됐다. 이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

하지만 H2R이나 퓨전 하이드로겐 999는 일반도로나 레이싱 트랙을 주행하기 위한 것이 아닌 속도기록을 경신, 성능을 과시하기 위한 차량이다. 퓨전 하이드로겐 999만 봐도 공기저항 최소화를 위해 차량 좌·우측 사이드미러와 전면부의 라디에이터 그릴까지 제거했다.

반면 그린 GT H2는 이들과는 다르다. 다른 차량들과 경쟁하며 이리저리 굽어있는 트랙을 질주하기 위해 개발된 실제 레이싱카다. 최고속도 등 몇몇 부분의 비교열위 는 그린 GT H2가 지닌 비교우위적 요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목욕재계
그린 GT H2는 올 6월 개최된 르망24시 경주대회에서 일반에 공식 공개됐다.

내년 르망24시의 56번 선수
구체적으로 그린 GT H2의 차대는 국제자동차연맹(FIA)의 규정과 안전기준에 부합하도록 특별 설계·제작됐다.

르망 24시의 팬이라면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제라드 벨테르와 뱅상 솔리냐가 설계했다.

특히 베베르가 가장 주안점을 둔 친환경성에 있어 여타 화석연료 차량들과는 비교조차 불허하는 우위를 점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자연이 만든 깨끗한 에너지로 달리며, 연소 후의 부산물은 사람이 마셔도 무방할 정도의 물 밖에 없다.

안정성도 마찬가지다. 그린 GT H2의 좌우 양측 하단부에 탑재된 350bar 수소저장용기는 FIA 기준의 10배에 달하는 내구성을 지녔다. 기존 레이싱카라면 연료탱크가 파손돼 불이 붙을 정도의 충격이 용기에 가해져도 끄떡없다는 얘기다.

베베르는 그린 GT H2를 통해 두 가지의 포부를 실현하고자 한다. 하나는 수소연료전지시스템과 파워트레인의 고성능을 입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친환경 연료, 그중에서도 수소에너지의 잠재력을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은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트랙을 압도하지는 못했지만 올 6월 르망24시 대회에서 그린 GT H2의 존재를 공식 공개했고 8월 영국에서 개최된 FIA의 세계 내구성 챔피언십(WEC) 개막식에도 멋들어진 모습을 내비치며 언론과 대중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공식 데뷔 무대는 내년 르망 24시가 될 전망이다. 올해 대회 때 큰 주목을 받았던 닛산의 고연비 초경량 레이싱카 '델타윙(DeltaWing)'과 마찬가지로 공식 출전은 아니며 순위가 매겨지지 않는 56번째 선수로 트랙에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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