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인류 생존의 필수요건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 급격한 인구 증가와 도시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물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의 조사결과, 현재 약 26억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물 부족 때문에 큰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같은 현상은 상수도, 하수처리장 등의 사회 기반 인프라가 정비돼 있지 않은 후진국과 저개발국에서 더욱 심화한 실정이다.
경기과학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김수빈, 김보경 학생은 이런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저개발국 주민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우리나라의 전통 그릇인 옹기를 떠올리고는 '이거다!'싶었다. 진흙을 구워 만든 옹기는 그 자체로 불순물 흡착과 항균, 탈취효과를 지닌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수빈 양은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아프리카와 같은 저개발국의 주민들은 아직도 정수되지 않은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어요. 때문에 수인성 질환, A형 간염, 노로바이러스 같은 다양한 질병에 노출돼 있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상수도 시설을 갖추기는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런데 옹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저개발국에서도 흔하게 사용하고 있자나요."
이렇게 전통 옹기가 저개발국의 수인성 질병 문제를 완화시킬 이른바 적정기술의 재료로써 상당한 가치를 지녔음을 깨닫고,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했다. 주제를 정하고 두 사람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부천의 옹기박물관이었다. 이곳을 견학하면서 전통 옹기의 특성을 분석하며 사전연구를 수행했다.
일반적으로 옹기에 항균물질을 첨가하는 방법은 이산화티타늄(TiO₂)이나 구리를 흙에 직접 추가하거나 유약에 넣어 옹기에 바르는 방법이 주로 사용된다. 하지만 두 학생은 TiO₂가 항균 효과는 높지만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살균 효과는 다소 떨어져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구리를 혼합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결정했다.
수빈 양은 "구리는 경제성과 기능성을 모두 고려한 최적의 선택"이었며 "이온구리, 환원구리, 산화구리 등 3가지 항균물질을 만들어 TiO₂와 혼합했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검증하기 위해 옹기도 직접 제작했다. 햇빛에 완전히 건조시킨 옹기 흙을 체로 걸러낸 뒤 혼합해 반죽하고 1,200℃의 가마에서 구웠다. 이 옹기의 살균력 검증에는 증류수와 대장균 배양액을 희석시킨 물을 사용했다. 그 결과, 구리와 혼합한 TiO₂은 약 95%의 높은 살균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개발국 주민들이 이 방식으로 필터를 제작해 일상생활에서 사용한다면 질병예방에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특히 옹기를 굽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산화환원 반응이 진행돼 구리의 과다 용출도 막을 수 있었다. 또한 흙에 시료를 첨가했을 때보다 유약에 시료를 넣는 것이 살균력이 더 크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두 학생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불가사리와 숯 조각을 항균 옹기와 결합한 새로운 필터까지 실험했다. 수빈 양은 "불가사리는 구리산화물의 용출액을 흡수해주고 숯은 미생물과 오염물을 제거해주는 역할을 한다"면서 "면보에 숯과 옹기, 불가사리를 순서대로 올려놓아 필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 실험에서 필터는 약 83.7%의 대장균 제거 효과를 발현했다.
이번 실험에서 특히 고무적인 사실은 단순한 이론적 가능성이 아닌 실질적인 상용화에 근접한 결과를 도출한데다 경제적 타당성도 살폈다는 점이다. 실제로 현재 항균물질로 많이 활용되는 라이프 스트로우(LifeStraw)와 은나노는 2~3만원대에 달하지만 수빈 양에 의하면 구리를 첨가한 TiO₂ 항균물질은 5,000원이면 500g을 얻을 수 있다.
이 같은 성과를 거두기까지 두 학생은 약 3개월간 거의 매일 밤 12시가 넘도록 실험에 몰입했다고 한다. 수빈 양은 "사실 전통옹기를 이용한 항균력 검증 시험은 선행연구가 없었기 때문에 참고사례조차 찾을 수 없었다"며 "처음 한 달간은 제대로 된 실험데이터가 나오지 않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고 실험초기에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런데 둘의 팀웍은 어땠을까. 영재교육원 동기인데다 학교에서 매주 실시하는 RNE라는 연구프로그램에서도 한 팀을 이뤄 다양한 분야의 과학실험을 진행해 왔던 만큼 팀웍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는 게 두 학생의 설명이다. 이 환상 팀웍은 앞으도 한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이번 실험 데이터에 기반해 항균력은 물론 불순물 제거에 포커스를 맞춰 추가 연구를 진행해 내년 인텔국제과학경진대회(ISEF)에 참가한다는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이다.
한편 수빈 양은 향후 대학에 진학해 화학 또는 생물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다. 보경 양의 경우 생명공학 분야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보경 양은 주변에서 과학전반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재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시상식도 참가하지 못하고 국제지구과학올림피아드에 한국대표로 출전하기 위해 급히 짐을 꾸렸다.
학생들의 지도를 맡았던 김순근 교사는 "1학년 학생답지 않게 참신한 아이디어를 구상해 실제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까지 실험을 수행했다"며 "향후에도 과학에 관심이 많은 우수학생들을 발굴·지도해 나가는데 더욱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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