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전기항공기의 '넘사벽'
이동수단에게 있어 속도는 생명과도 같다. 항공기, 자동차, 열차, 선박 등 육해공을 막론하고 우리의 뇌리에는 '빠름=좋음'이라는 등식이 성립돼 있다. 이 점에서 보면 순수 전기항공기는 현 항공업계의 환경유해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존재임에는 틀림없지만 마냥 '좋은' 항공기는 아니었다.
실제로 기존의 가장 빠른 순수 전기항공기는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이 개발한 1인승 '크리-크리(Cri-Cri)'로서 작년 6월 시속 175마일(281.6㎞)을 기록했다.
레이싱카는 차치하고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부가티 베이론, 페라리 FF 등 상용 슈퍼카들과 견줘도 명함조차 내밀 수 없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전기모터를 채용한 유인 순수 전기항공기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미국 UFM의 '솔라 라이저(Solar Riser)'가 1979년 첫 비행에 성공한 이래 30여년 이상 전기항공기 엔지니어들에게 시속 300㎞는 이처럼 '넘사벽'에 가까운 가치였다.
그러던 지난 7월 1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의 인요컨 공항 33번 활주로에 전장 5.12m, 전폭 7.96m의 2인승 순수 전기항공기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막에서 이룬 쾌거
'롱-ESA(Long-ESA)'로 명명된 이 항공기의 조종석에는 전기항공기 개발기업 FOTC(Flight of the Century)의 설립자이자 파일럿인 칩 예이츠가 앉아있었다. 그는 작년 8월 FOTC가 개발한 전기모터바이크 '슈퍼바이크 프로토타입'로 시속 196.9마일(316.89㎞)에 도달, 세상에서 가장 빠른 전기바이크 기네스 기록을 경신한 인물이다.
활주로를 이륙한 롱-ESA는 전기모터의 출력을 최대치로 올렸고, 수평비행을 통해 최고 시속 202.6마일(326.05㎞)를 기록했다. 시속 300㎞는 물론 전기항공기의 한계속도라고 불렸던 시속 200마일(321.8㎞)의 경계를 단번에 돌파한 것이다. 그것도 하루 전날 처녀비행에 성공한 뒤 첫 번째 실전비행에서 이룬 쾌거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성공이 전기항공기의 실용화를 가속화할 획기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본다. 추가적인 기술 고도화를 거쳐 전기모터 출력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한다면 1~2인승 경량 스포츠 항공기(LSA)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기술혁신을 유발, 전체항공산업으로 파급력을 넓힐 초석이 될 수 있다.
더 웅대한 야망
전기항공기 역사의 새장을 열어젖힌 롱-ESA는 유명 우주항공 설계자인 버트 루탄의 '롱-EZ' 항공기를 개조한 모델이다.
자세한 스펙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FOTC는 기존 엔진기관을 제거하고 253마력 전기모터, 453V급 리튬-이온 폴리머 배터리 등을 장착해 순수 전기항공기로 환골탈태시켰다. 동체 후방의 2엽식 프로펠러도 자체 개발한 3엽식으로 교체했다.
그러나 롱-ESA는 사실 속도기록 경신이나 상용화를 위해 개발된 녀석이 아니다. 예이츠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일종의 실험기다. 그 목표는 바로 공중에서 배터리 교체가 가능한 무한 체공 전기항공기(IREF)의 개발이다.
구체적으로 IREF는 롱-ESA와 같은 초소형 무인기(UAV)를 대형 전기항공기의 배터리팩으로 활용하는 개념이다. 완충된 배터리팩을 채운 UAV를 결착한 채 비행하다가 전력이 소진되면 UAV가 분리돼 석유시추기지 등 인근 해상(또는 지상)에 구축된 충전스테이션으로 귀환하는데, 이와 동시에 충전스테이션에서 새로운 UAV가 이륙해 공중 도킹함으로써 무착륙 배터리 교체를 실현하는 것. 이 기술이 완성되면 전기항공기는 짧은 비행거리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항공산업의 주류로 부상할 수 있게 된다.
Long-ESA 제원 탑승인원 : 2명 전장 : 5.12m 전폭 : 7.96m 전고 : 2.4m 전기모터 출력 : 258마력 (55.3kg·m) 배터리 : 리튬.이온 폴리머 (2.4 kW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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