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가 만들면 다르다. CLS슈팅브레이크는 또다시 벤츠의 자동차 만들기 실력을 확인해주었다. CLS슈팅브레이크는 세단형 쿠페 CLS에 트렁크 공간을 확대한 우아한 왜건이다. 짐도 많이 싣고 잘 달리면서 스타일도 좋은 멋쟁이다.
하제헌 기자 azzuru@hk.co.kr
“이 차 벤츠네? 특이하다.” CLS슈팅브레이크는 메르세데스 벤츠가 만든 아름답고 크고 비싼 차다. 도로에 나선 와인빛 CLS슈팅브레이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CLS슈팅브레이크는 좀 색다른 차다. 태생부터 그럴 수밖에 없다. CLS슈팅브레이크는 2003년 4인승 쿠페형 세단이라는 새로운 세그먼트를 시장에 선보인 CLS를 기본으로 만든 차다. CLS는 메르세데스 벤츠 전체 라인업 가운데 가장 파격적인 모델이었다. CLS가 나온 뒤 폭스바겐, 아우디, BMW가 앞다퉈 세단형 쿠페를 내놓았다. 그만큼 CLS는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메르세데스 벤츠는 세단형 쿠페라는 새로운 세그먼트를 개척한 CLS의 성공 신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CLS에 실용성을 결합한 모델인 CLS슈팅브레이크가 탄생한 배경이다.
올해 국내 출시한 CLS슈팅브레이크는 CLS가 지닌 럭셔리하고 스포티한 외형에 실용성까지 더한 모델이다. CLS 뒤에 붙은 낯선 단어 ‘슈팅브레이크’는 쉽게 말해 왜건으로 이해하면 된다. 영어사전에서는 슈팅브레이크를 ‘영국 귀족들이 사냥을 할 때 필요한 도구와 잡은 짐승들을 실어나르던 마차’라고 설명하고 있다. 스테이션 왜건과 같은 뜻인 셈이다.
덩치 큰 SUV는 부담스럽지만 넉넉한 적재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CLS슈팅브레이크는 제격이다. 왜건형 차량답지 않은 아름다운 외관은 슈팅브레이크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CLS슈팅브레이크는 CLS가 지닌 우아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그대로 따랐다. 뒤로 늘린 부분만 제외하면 겉모습에서 CLS와 다른 부분이 없다. 길게 뻗은 보닛, 뒤쪽까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이어진 우아한 루프 라인을 포기하지 않았다. 옆 라인을 타고 가다 불룩하게 솟은 뒷 펜더와 19인치 휠, 그리고 시원하게 그려 넣은 리어램프가 글래머러스한 매력을 발산한다.
아름다운 겉모습을 감상하고 나서 운전석 문을 열었다. 묵직하게 열린 문 안쪽은 우아했다. 가죽과 나무가 주는 따뜻함. 정갈한 실내 구성. 인테리어 디자인 역시 CLS를 그대로 따랐다. 도어트림과 대시보드는 바느질로 마감한 가죽으로 싸여 있고 곳곳을 물푸레나무로 치장했다. 얇은 크롬으로 감싼 송풍구와 단정한 아날로그 시계는 고급스러움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편의사양에서도 벤츠가 보여줄 수 있는 고급스러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CLS슈팅브레이크를 깨우기 전에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면 CLS슈팅브레이크 실내는 또 한 번 변신한다. 3가지 색상으로 바꿀 수 있는 간접 조명은 은은한 실내 분위기를 살린다. 오디오, 내비게이션, 전화, 차량 기능 설정은 통합 컨트롤키인 커맨드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전자동으로 움직이는 앞좌석은 메모리와 열선, 통풍 기능이 들어가 있다. 뒷좌석에도 열선 시트를 기본으로 적용했다.
공조버튼 중 에어플로(AIR FLOW) 버튼이 눈에 들어왔다. S클래스에도 들어가 있는 기능이다. 공기 흐름을 승객에게 집중(FOCUS)할 것인지, 전반적으로 퍼지게(DIFFUSE) 할 것인지, 아니면 그 중간(MEDIUM)으로 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CLS슈팅브레이크가 럭셔리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스피커에 붙어 있는 ‘하만카돈’ 레이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만카돈은 S클래스와 마이바흐에 탑재되는 명품 오디오 시스템이다. 이런 고급 오디오는 라디오가 아닌 CD로 들어봐야 한다. 다양한 장르의 CD 6장을 골라 다시 CLS슈팅브레이크로 돌아왔다. 디스크 투입구에 CD 6장을 한꺼번에 넣고 볼륨을 높였다. 첫 번째로 재생되는 CD에서 비발디의 사계가 흘러나왔다. 스피커 14개가 밀폐된 공간으로 쏟아내는 현악기 소리는 누가 들어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음악을 틀어놓고 다시 차 밖으로 나왔다.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CLS슈팅브레이크는 4인승인 CLS와 달리 5인승이다. 뒷좌석을 접으면 최대 1,550리터에 달하는 적재 공간이 생긴다. 트렁크 내부는 툭 튀어나온 곳 없이 네모반듯하다. 용적만 큰 게 아니라 실제 활용할 수 있는 공간 활용성이 좋다는 뜻이다. 전동식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테일 게이트와 적재한 물건을 가릴 수 있는 스크린도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 테일 게이트 안쪽에는 전동식 트렁크 개폐버튼과 도어락 버튼을 함께 달아놓았다. 주차 후 짐을 꺼낸 뒤 간단히 테일 게이트에 붙어 있는 도어락 버튼을 누르면 차 문이 잠긴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편리함이 느껴졌다.
CLS슈팅브레이크는 그냥 짐차가 아니다. 스포티한 주행감은 겉 모습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다. 짧은 오버행과 19인치 휠, 사각 듀얼 머플러는 늘씬한 CLS슈팅브레이크를 스파이크 신은 육상선수로 꾸미고 있다. 놀라운 점은 겉모습만 그럴싸한 선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시동을 걸었다. 묵직한 엔진 회전음이 들린다. 국내에 출시된 모델은 2,143cc 4기통 디젤엔진을 달고 있다. 디젤차는 시끄럽고 진동이 심해 꺼리는 운전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CLS슈팅브레이크는 이런 선입견을 허용하지 않았다. 디젤엔진임에도 조용하다. 이제까지 경험한 디젤엔진 승용차 중 가장 조용하다고 자신할 수 있다.
드디어 가속페달에 발을 얹었다. 정숙성은 물론 엔진 회전도 매끄럽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가솔린 엔진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정도로 우수하다. 큰 차체에 2,143cc 엔진이 조금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은 기우였다. 달리는 데 전혀 아쉬움이 없었다. 최고출력 204마력에 토크 51kg.m를 내는 디젤엔진은 자동 7단 기어와 맞물려 최고 시속 235km를 낸다. 디젤엔진답게 토크가 높아 순간 가속도도 출중하다. 순발력이 요구되는 도심 주행에 알맞은 세팅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7.8초에 주파한다. 고속에서도 꾸준한 가속력이 유지돼 장거리 여행을 하기에도 적합하다. 1.8톤이 넘는 몸체를 움직이지만 정차 시 자동으로 시동이 꺼지는 엔진 스타트 앤 스톱 기능이 있어 연비도 우수하다. 복합연비를 기준으로 연료 1리터당 15km를 달릴 수 있다. 고속도로 연비는 17.8km다.
CLS슈팅브레이크는 잘 달렸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초기 반응은 벤츠임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차체가 무겁고 뒤가 길어 코너링이나 급차선 변경 시 출렁이지 않을까 하는 예상은 빗나갔다. 마음먹고 가속페달에 힘을 주어도 전혀 불안하지 않다. 도로 곳곳에 보이는 수입 세단들이 백미러 뒤로 사라진다. 주행 모드를 이코노믹에서 스포츠로 변경했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차가 바짝 웅크린다는 느낌이 몸으로 전해진다. 본격적으로 달릴 준비가 됐다고 운전자에게 알린다. 가속페달과 변속기가 예민해지고 핸들링은 무거워진다. 배기음도 조금 거칠어진다. CLS슈팅브레이크는 자신이 짐차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저 앞에서 달리고 있는 차량을 순식간에 따돌린다. 더 놀라운 점은 승차감이다. 보통 독일차는 승차감이 딱딱하다고 알려져 있다. 독일차들이 코너링이나 고속 주행에서 안전성이 두드러지는 이유 중 하나다. CLS슈팅브레이크는 딱딱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부드럽게 달렸다. CLS슈팅브레이크는 후륜에 에어서스펜션을 기본으로 장착했다. 덕분에 짐칸의 적재량과 관계 없이 편안하고 민첩한 주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더 안락하고 안정감 있는 주행을 원하는 운전자들은 전륜에도 에어서스펜션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 시승차는 앞 뒤 모두 에어서스펜션이 달린 모델이었다. 주행 상황에 맞게 에어서스펜션이 자동으로 차고를 조절해 지면으로부터 오는 소음과 진동을 최소화시켜준다. 경우에 따라선 운전자가 버튼 조작으로 차체 높이를 조정할 수도 있고 서스펜션의 성격(Comfort 또는 Sport)을 선택할 수 있다. 브레이크는 저속에서 조금 무거운 듯하지만 역시 고속에서 믿음직하게 속도를 줄인다. 고속 주행을 하면서도 부드러운 승차감을 잃지 않는 것. 부드럽게 달리지만 출렁이지 않는 것. 벤츠가 가진 기술력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건형 차량은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인기가 높다. 특히 유럽시장에서 왜건은 세단 못지않게 경쟁이 치열하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물론, 양산 브랜드들도 대부분 왜건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선호도가 낮은 편이다. 현대 기아차는 과거 왜건형 차량을 내놓았다가 실패한 뒤 한동안 손을 뗐었다. 현대차가 i40을 내놓고 다시 왜건 시장을 노크한 게 2011년이다. 소비자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파악한 것이었다. 레저를 즐기고 가족 중심 사회로 변하면서 점차 트렁크 공간에 대한 욕구가 생겼다. SUV의 강세도 이를 증명한다. 야외활동을 할 수 있는 차라면 SUV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에는 도심과 야외에서 모두 사용 가능한 크로스오버형 차량이 인기다. 수입차 업계가 해치백이나 왜건 형태의 모델을 많이 선보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CLS슈팅브레이크는 벤츠가 보일 수 있는 고급스러움, 우아함, 주행성능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있다. CLS가 지닌 화려한 스타일에 고급 옵션, 넓은 적재공간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가족용 차다. 가솔린 엔진이 아닌 디젤 모델로 출시한 것도 연비를 중시하는 최근 국내 시장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벤츠인 만큼 가격은 만만치 않다. CLS슈팅브레이크 판매가격은 부가세를 포함해 8,900만 원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가족과 함께 CLS를 편하게 탈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CLS 최저 옵션 모델 가격은 1억 원이 조금 넘는다. CLS슈팅브레이크는 CLS의 탈을 쓴 SUV라고 할만하다.
CLS슈팅브레이크는 벤츠가 보일 수 있는 고급스러움, 우아함, 주행성능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