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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창조경제 원천은 실패를 초월한 후츠파정신”

한국형 창조경제 해법 찾기<br>[INTERVIEW] 투비아 이스라엘리 주한 이스라엘 대사<br>“정부의 역할은 큰 나무(대기업)를 조금 흔들어주는 것”

이스라엘은 박근혜 정부 핵심정책인 창조경제의 롤모델이다. 포춘코리아가 투비아 이스라엘리 주한 이스라엘 대사를 만나 이스라엘식 창조경제의 원동력과 성공사례를 들어봤다.
유부혁 기자 yoo@hmgp.co.kr
사진 윤관식 기자 newface1003@naver.com


"한국은 그 자체가 창조경제라고 생각합니다.” 투비아 이스라엘리 주한 이스라엘 대사는 창조경제의 정의에 대한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역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짧은 시간 안에 경제발전을 이룩했기 때문이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한국의 창조성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죠.” 이스라엘리 대사는 “가진 것이 적을지라도 그것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 내는 것이 창조경제”라고 말을 이었다.

이스라엘은 협소한 면적(한국 면적의 5분의 1)과 적은 인구(770만 명)에도 1인당 GDP는 3만 1,600달러(한국 2만 2,708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경쟁력 지수도 19위로 한국(22위)을 앞지른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주변국과의 갈등 속에서 건국 60여 년 만에 이룬 성과다. 한국의 산업발전과도 그 역사적인 궤를 같이한다. 이스라엘리 대사는 “두 나라 사이에는 산업적으로도 닮은 점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두 나라의 국가 경쟁력에서 IT가 차지하는 비중은 서로 많이 닮아 있다. 이스라엘은 GDP에서 차지하는 IT산업 비중이 11%(한국 12%)를 넘고, IT수출액도 전체 수출액의 30%(한국 28%)에 달한다. 하지만 이런 경제지표만으론 이스라엘이 가진 창조경제의 원동력을 파악하기 어렵다.

투비아 이스라엘리 대사에게 이스라엘이 가진 창조경제의 원천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결핍이 낳은 국민성”과 “활발한 창업열기” 그리고 “후츠파 정신으로 대표되는 토론문화와 징집제도”를 꼽았다.“우연히도 우리에겐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결핍이죠. 이를테면 국방이나 자원부족 등이 있겠죠. 하지만 저는 (이 결핍이)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문제가 발생할 때 창조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데 익숙해졌거든요. 그리고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에는 하이테크놀로지가 수반됩니다. 창조적인 문제 해결능력이 자연스럽게 국민성에 배어 첨단산업도 함께 발전했습니다.”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환경들이 오히려 국민들의 창조적 해결능력을 함양시켰고 첨단산업 발전 역시 그 덕분에 이뤄졌다는 말이다.

대사는 말을 이어갔다. “항상 질문하고 무엇이든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나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혁신적인 대답이 필요했죠.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연구개발이 중시될 수밖에 없어요.” 이스라엘은 국민 1인당 R&D 총지출이 세계 1위다. 미국의 3배에 달하고 유럽의 30배에 가깝다. 그리고 교육분야 정부 지출, 기술 이전, 과학 분야 연구 현황, 투자 인센티브 분야에선 세계 2위다. 이스라엘 전반에 연구개발을 중시하는 풍토가 자리 잡은 것이다. 그 결과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구글, 삼성 등 250여 개 글로벌 IT기업의 R&D센터를 이스라엘로 불러들였다.

대사가 꼽은 두 번째 원동력은 ‘창업 육성’이다. 이스라엘은 창업대국이다. 8,200여 개의 벤처기업(인구 950명당 1개)이 수출의 50%를 담당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벤처캐피털을 통해 창업을 적극 지원합니다. 90년대 말까지는 정부 주도였고 그 후로는 사기업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요즈마 펀드가 대표적입니다.”

요즈마 펀드는 벤처캐피털의 스타트업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설립한 정부주도의 펀드다. 초기 2억 달러(정부 1억 달러 지원)로 출범했지만 외국 투자사들과 이스라엘 투자기업의 활발한 참여로 민영화된 후 현재 1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요즈마펀드를 통해 성장한 첨단 기업은 2,600여 개에 달한다. 이 펀드 운용에 있어 정부는 의사결정에 개입하지 않고 기업들의 자율성에 맡기고 있다.

대사는 이스라엘의 벤처캐피털의 특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이스라엘 벤처캐피털은 대부분 대출이 아닌 투자로 사업을 운영합니다.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전에는 철저히 검증을 하죠. 사업 콘셉트나 아이디어가 좋다고 생각하면 자금손실이나 어려움은 감내하고 기다립니다. 투자 실패를 해도 교훈으로 삼고 가죠.” 혁신적, 모험적인 기업에 대한 투자와 실패에 대해 용인하는 문화가 창업 활성화를 가져왔다는 얘기다. 이 말을 하는 대목에서 투비아 이스라엘리 대사의 표정에서 대단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우리나라는 창업기금의 대부분이 정부 주도하에 이뤄지는 반면에 이스라엘은 창업기금과 운용에 대한 정책이 상향식(Bottom-up)으로 이뤄진다. 이스라엘은 기업 중심의 벤처캐피털이 88개에 달하며 이들의 투자금액은 GDP 대비 2.7%(세계 1위)에 이른다. 한국도 정부 주도의 공공 정책자금 지원이 계속 늘고 있지만 민간투자 규모는 계속 하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캐피털 운영이 투자 회수 안정성에 기반하고 저 위험·저 수익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의 방식과 대조를 이룬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창업지원 펀드 요즈마 펀드는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한국에 지사를 설립했다. 이원재 요즈마 한국지사장은 “한국의 제조기술 능력과 이스라엘의 창업정신을 융합해 국내벤처의 해외진출을 돕기 위해서 지사가 설립됐다”고 말했다.

이스라엘리 대사는 말한다.“이스라엘엔 유교사상이 없다는 점이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나이나 계급, 성별과 관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며 토론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죠. 이것이 후츠파(Chutzpah·히브리어로 당돌하다는 뜻) 정신입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생각을 여과 없이 이야기하면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대사는 어느새 이스라엘의 세 번째 경쟁력에 대해 말문을 열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에 머무르지 않고 발전시키기 위한 당돌한 태도가 후츠파 정신입니다. 하지만 자칫 당돌함이나 도전적인 정신만 앞세우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그래서 로시가돌(Roshgadol·히브리어로 머리가 익었다는 뜻)도 필요합니다.” 대사가 말한 로시가돌은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 도전하고 국가와 가족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합해 보면 후츠파와 로시가돌 정신을 통한 활발하고 수평적인 소통 문화가 이스라엘의 유연한 사고체계를 마련했고,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한 도전적 창업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대사는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후츠파 정신과 함께 특별한 징집 문화도 창업에 일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남녀 모두 징집대상이라는 점과 군대문화를 통해 창업이 더욱 활성화된다는 점도 이스라엘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대사의 말은 의외였다. 군대를 가는 것과 창업이 무슨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걸까? 하지만 대사의 답을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스라엘은 군사기술이 상당히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민간기술에 이전하는 사례가 많죠. 군대에 가서 기술을 습득한 젊은이들이 제대 후 창업전선에 뛰어듭니다.”

대사가 설명한 것은 탈피오트(Talpiot·히브리어로 ‘최고 중의 최고’라는 뜻으로 첨단기술부대를 통칭)였다. 이스라엘은 18세가 되면 남녀 학생 누구나 군대(남자 3년·여자 2년)에 가게 되는데, 그중 우수학생들을 선발해 육성하는 프로그램이 탈피오트에서 진행된다.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례는 없지만 대부분의 군사전문가와 관련국가들은 이스라엘을 핵 보유국으로 간주하고 있다. 중요한 건 이스라엘의 군사기술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기술을 탈피오트에 선발된 젊은이들이 배우고 익혀 제대 후에 민간기술에 응용해 창업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탈피오트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700명의 탈피온(Talpion)들이 이스라엘 벤처업계와 학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부분이다. 이스라엘은 군대가 창업 인큐베이터 역할도 하고 있다. 한국의 군대와 여러 민간 기업들이 이스라엘의 탈피오트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한 이유이기도 하다.

투비아 이스라엘리 대사는 이스라엘의 창조경제 사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물 부족이 심각하죠. 적은 양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나라 면적의 10%에 불과한 이스라엘은 국토 절반이 사막이고 나머지도 공해와 가뭄 때문에 물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이스라엘 연강수량은 300mm정도로 우리나라의 약 4분의 1 정도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선진농업기술로 유명하다. “식물 품종별로 잎의 두께 등을 체크해 스트레스 지수를 분석한 후 그에 맞춰 물을 공급합니다. 그리고 지중해의 해수를 민물로 바꿔 식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 정화 기술이 발전해 네게브 지역(사막지역)에서도 농업이 가능해졌어요. 4계절 농사로 유럽에 겨울 딸기를 공급해 부가가치를 더욱 높였습니다. 지형적 한계를 혁신적인 방법을 통해 해결한 사례죠.”

투비아 이스라엘리 대사가 든 사례는 ‘U-Farming’ 농업기술이다. 농업에 IT와 생명공학 첨단기술을 융합해 지형적 한계를 극복한 것으로 ‘제2의 농업혁명’이라 불린다. 이 기술을 통해 토마토 생산량이 40% 증가했다. 이스라엘은 이 기술을 축산업에도 접목할 준비를 하고 있다.

대사는 군사기술의 응용사례도 들었다.“타격지점을 정확히 비추던 미사일 전방 카메라 기술을 의학에 접목했어요. 우리가 작은 캡슐을 삼켜 수술을 하지 않고도 몸 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건 이 기술 덕분입니다.” 대사가 사례로 든 기술은 ‘캡슐 내시경’으로, 1981년 이스라엘 미사일 연구소 가브리엘 이단 박사가 미사일 유도기술을 위해 개발했던 기술이 시초가 됐다. “전기자동차를 다시 혁신적으로 해석한 사례도 있어요.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아예 교체해 주는 거죠. 전기자동차의 충전 시간이 오래 소요된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고안했습니다. 이 역시 공군의 미사일 교체기술을 응용한 겁니다.”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주유소에 가듯 배터리 교환소에 가서 손쉽게 교체하는 이 사업은 이스라엘 정부에서 의욕적으로 민간기업과 시작한 사업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잠정적으로 중단됐다. 시장의 반응이 아직 차갑기 때문이다.

“이 기술은 상용화 단계에서 중단됐다고 알고 있다”고 기자가 지적하자 대사는 빙그레 웃으며 답변을 이어갔다. “배터리의 효율성과 사람들의 인식전환의 한계 때문입니다. 배터리를 자주 교체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을 해소하고 청정에너지 사용에 대한 인식이 확산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는 덧붙였다. “이스라엘에선 실패가 스포츠와 같다고 여겨집니다. 지금은 실패라도 콘셉트와 아이디어만 좋다면 언젠가 성공할 수 있다는 거죠. 전기자동차 배터리 교체 사업 역시 추진할 기업을 다시 선정해 정부가 계속 지원할 겁니다. 40년 전에는 비싸서 실패할 것이라고 했던 담수화 기술이 대중화되고 성공했듯이 말입니다.” 그는 특히 이스라엘이 실패에 관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패를 뒷받침하는 역할은 정부나 성공한 기업들이 합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도록 말이죠.” 대사의 말에서 창조경제의 성공은 거듭되는 실패를 통해 이뤄진다는 단순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강조한 게 한 가지 더 있다. “과거에는 창업자금을 국가가 나서 지원했지만 지금은 사기업이 운영하는 벤처 캐피털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벤처기업이 축적한 기술을 지원해주며 성공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준다는 점이죠. 한국과 이스라엘은 이 같은 콘셉트의 캐피털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사가 말한 캐피털은 코릴펀드(KORIL Fund)라 불리는 한국-이스라엘 공동연구개발 지원금이다. 매년 사업파트너를 선정해 100만 달러를 지원한다. 사업이 성공하면 투자금만 회수하고 실패에 대해선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투비아 이스라엘리 주한대사는 한국의 창조경제 성공을 위해 진심 어린 조언도 해주었다.“창조경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선 젊은이들의 꿈을 지원해야 합니다.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말이죠. 좋은 교육을 받은 한국 젊은이들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업이나 젊은이들에게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합니다. 정부의 역할은 큰 나무(대기업)를 조금 흔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밑의 작은 나무나 풀에도 빛이 들 테니까요. 그리고 이스라엘과 파트너가 되는 것이 창조경제를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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