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는 결코 평범한 목수가 아니다. 자산가치가 100억 달러에 이르는 설계 소프트웨어 기업 오토데스크의 최고경영자(CEO)다. 그의 공방 역시 절대 평범한 차고가 아니다. 크기부터 남다르다. 목공 작업 공간만 1,850㎡나 된다. 그 옆에는 그만한 넓이의 금속 작업 공간이 또 있다.
게다가 그곳은 초현대식이다. 띠톱과 플레이너, 3D 프린터에 CNC 라우터까지 최신 장비들이 즐비하다. 배스는 ‘섬우드 90(Thermwood 90)’의 제어 스크린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말했다.
“이거야말로 여기서 제일 대단한 물건이죠.”
섬우드 90은 거구의 사나이인 배스조차 난쟁이처럼 보이게 만드는 CNC 라우터다. 5축 헤드가 1.5×3×1.2m공간 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무엇이든 만들어낸다. 완벽한 구(球)는 물론이고, 우주왕복선 모형이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도 문제없다.
“극도로 복잡한 기계여서 전문 교관으로부터 사용법을 배워야합니다. 이 녀석을 독학으로 익힐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봐요.”
그는 다른 CEO들이 빈티지 와인이나 보트에 투자하는 만큼의 돈을 이 공방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 오전 6시부터 11시까지 홀로 틀어박혀 여러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이는 누구에게 뽐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 만의 취미생활이지만 그가 제작한 작품들은 메이커 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수년전 배스는 메이커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칠 2가지 움직임을 인지했다. 메이커 스페이스 내에서 부쩍 활발해진 온라인 공유와 아날로그 제작방식으로의 회귀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오토데스크는 더 뛰어난 CAD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는 가상공간에서의 임무에 주력하고 있었지만 배스는 오토데스크가 향후 일반인들을 위해 디지털 설계와 물리적 생산 사이의 틈을 메워줄 가교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를 구현할 첫 소비자용 제품은 모바일용 모델링 프로그램 ‘스케치북’이었다. 무료 앱으로 배포된 스케치북은 출시 50일만에 100만건의 다운로드가 이뤄졌다. 그래서 오토데스크는 디자인과 DIY, 실내 인테리어 등에 활용할 새로운 제품들을 내놓았고, 3년 만에 소비자용 상품의 등록 고객수가 1억명을 돌파했다. 이 회사가 30여 년간 축적해온 전문가용 상품 등록 고객수가 1,200만명임을 감안하면 가히 폭발적 반응이었다.
사람들은 오토데스크의 제품을 놀랍도록 다양한 곳에 응용했다. 예를 들어 케냐의 유명 고생물학자인 루이즈 리키 박사는 서로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조합해 3D 이미지로 변환해주는 무료 앱 ‘123D 캐치’를 활용, 자신이 찾아낸 두개골들을 3D 모델로 제작해 인터넷에 공개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한 새끼오리의 기형적인 발을 대체할 의족의 제작에 오토데스크의 소프트웨어가 쓰이기도 했다.
배스는 메이커들을 도와주는 새로운 역할에 흐뭇해 했다. 사실 그는 인디언 보호구역의 주택건설 현장과 보트 조선소에서 목수로 일하면서 학비를 벌어 대학을 졸업했다. 이런 경험을 덕분에 그는 회사에 손으로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불어넣기가 쉽다는 것을 알아챘다.
“오토데스크에는 뭔가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가득해요. 설득하고 이해시킬 필요가 없었죠.”
작년 9월 그는 직원들을 위해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 2,500㎡ 면적의 메이커 스페이스를 열어 줬다. 목재 공방, 금속 공방, 전자기기 공방, 3D 프린팅 연구소, 심지어 맞춤복 제작소와 요리 실험용 주방까지 마련돼 있다. 이곳이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직원들은 높이 4m의 트로이 목마를 직접 설계·제작했다. 눈을 껌벅이기도 하는 이 목마는 샌프란시스코의 마켓 스트리트에 전시됐는데 제작목적은 단순했다. 만들 수 있으니까 만든 것이다.
오래전부터 미래학자들은 언젠가 개인이 가정에 필요한 대다수 물품을 직접 제작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배스의 개인 공방과 오토데스크의 메이커 스페이스는 그 시대가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증거다. 힘들고 비싼 대가를 치러야하지만 그런 미래를 향한 발걸음은 계속되고 있다. 물론 배스는 낙관적 전망만 하고 있지는 않다. 자신의 앞길에 어떤 장애물이 놓여있을지 잘 알고 있다.
“개인 생산 시대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당장 지금도 구글의 3D 모델링 프로그램 ‘스케치업’으로 만든 설계도는 CNC 라우터에 입력할 수 없다.
“파일 포맷을 일일이 바꿔줘야 합니다. 매 단계마다 진이 빠지는 작업이죠. 이만한 자원과 인맥, 장비를 갖춘 제게도 버거운데 다른 사람이야 말할 필요도 없어요.”
그는 개인들의 지속적인 체험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믿는다. “오토데스크는 제품에 문제가 발견되면 언제든 즉각 해결에 착수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더 사용하기 편한 제품을 내놓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시나브로 메이커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관점에서 배스의 공방은 2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하나는 메이커들의 성지다. 여기서는 나무토막을 깎아 만드는 소파부터 복잡한 망사구조의 3D 조각품까지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 이곳은 또 테스트베드 역할도 한다. 끊임없는 도전과 체험 끝에 성공을 일궈낸 교훈의 역사가 서려 있기 때문이다.
배스가 뭔가를 만드는 것은 그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물건을 만듦으로서 고객을 위한, 더 나아가 모두를 위한 소중한 체험을 하고 있다.
그는 필자에게 자신의 작품 몇 가지를 더 보여줬다. 그중에는 자녀들과 함께 만든 야구방망이도 있었다. 완벽한 선반 가공과 고광택 연마로 완성된 야구방망이들이 거치대에 줄지어 있었다. 인터뷰를 마친 그가 조명을 껐다. 마치 항공기 격납고에서 소등이 이뤄지듯 공방의 조명등들이 차례로 꺼졌다.
“지금 바라는 게 하나 있어요. 더 넓은 공간이에요.”
10만개 온라인 메이커 커뮤니티 ‘인스트럭 터블스(instructables.com)’에 업로드 돼 있는 설계도 숫자. 칼 배스도 이곳의 열성 회원으로 다수의 설계안을 올렸다.
칼 배스의 공방을 차지한 장비들
샌더
“이 대형 드럼식 겸용 디스크식 샌더는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 매직(ILM)에서 구입했어요. 영화 ‘스타워즈’의 특수효과를 담당한 회사죠. 1940년에 생산된 제품이지만 아직도 연마해내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선반
“재미있고, 사용하기도 편한 장비에요. 대개는 야구방망이나 의자 다리, 지팡이 등을 만들 때 사용합니다.”
끌
“이베이에서 구입한 표준형 끌 세트입니다. 중고품이었지만 날을 날카롭게 연마한 다음에 지금껏 잘 쓰고 있답니다.”
손 대패
“35년 전에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이처럼 오래전에 만든 도구를 아직도 사용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에요.”
칼 배스 프로필
나이: 56세
직업: 최고경영자
학위: 수학과 학사
취미: 만들기
구입 예정 장비: 일본 모리 세이키의 11축 금속 밀링머신
플레이너 (planer) 평면절삭용 공작기계의 일종. 대형 전동 대패라고 할 수 있다.
메이커 스페이스 (makerspace) 개인발명가나 화이트 해커들이 각자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상호 협업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비들을 갖춰놓은 오프라인 공동 작업 공간. ‘해커 스페이스’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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