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당신의 자동차 번호판은 안녕하십니까?

자동차 압류 업체들이 도로 위의 자동차 수십억 대의 번호판을 스캔하며, 광범위 개인 감시망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그들이 스캔한 번호판 중에는 당신 것도 있을지 모른다.

미국 클리블랜드주의 자동차 압류 담당자인 스코트 토트가 한 편의점의 주차장에 견인 트럭을 몰고 나타났다. 그리고 주차돼 있던 2012년형 쉐비 크루즈에 견인장치를 연결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젊은 여성이 깜짝 놀라며 나오더니 소리쳤다.
“이봐요! 뭐하는 거예요.”

토트가 아무런 대꾸 없이 견인작업을 이어가는 동안 편의점에서 상기된 표정의 남성 운전자가 뛰어나왔다. 주변에 있던 그의 친구들도 모여들었다.

토트에게 이 상황은 일상다반사였다. 화가 잔뜩 난 운전자를 어떻게 다룰지 잘 알고 있었다. 나이 많은 운전자의 경우 그는 자신의 네 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린다. 어린 딸들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는 34세의 젊은 가장이라는 사실을 드러내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함이다. 그런데 쉐비의 운전자는 혈기왕성한 20대였고, 운동선수처럼 덩치가 컸다. 이런 상대에게 딸 이야기는 통하지 않는다. 토트는 자신의 경험상 강하게 나가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했다. 여기에는 180㎝의 키에, 떡벌어진 어깨, 짧은 헤어스타일을 가진 그의 군대 훈련 교관스러운 이미지도 한몫을 한다.

마음을 다잡은 토트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쉐비 운전자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이윽고 토트가 정중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자동차 대출금을 납부하지 않으셨네요.”
남자는 그런 것 같다고 퉁명하게 답했다.
토트가 다시 물었다. “자동차 키를 주시겠습니까?”
남자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생각 없습니다.”

토트는 예상했다는 듯 별 말없이 견인 트럭에 올라탔다. 주차장을 15m 가량 이동한 그는 쉐비를 내려놓고 차량의 상태를 사진으로 남겼다. 차주에게 키를 달라고 했던 것도 사진 촬영 도중에 차량을 타고 도주하는 것을 막고자 함이었다. 촬영한 사진을 무선으로 회사의 인트라넷에 업로드하는 동안 쉐비의 차주가 큰 소리로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리 화를 내도 저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이미지 업로딩을 완료한 토트는 우렁찬 엔진음을 내며 주차장을 빠져나갔고,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필자는 그의 효율적인 일 처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트가 지금껏 압류한 차량은 4,000대가 넘는다. 입사 당시 1대의 견인트럭 밖에 없었던 그의 회사 리렌틀러스(Relentless)는 현재 20대의 견인 트럭과 고가의 디지털 장비를 보유한 대형 압류 대행사로 거듭났다.
“예전의 제 업무는 대상 차량을 발견하면 압류하는 단순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데이터와 차량 운반이 복잡하게 얽힌 일로 업그레이드 됐죠.”

사실 토트는 이 쉐비 크루즈를 우연히 발견한 게 아니다. 그의 견인트럭에는 수만 달러어치의 카메라와 이미지 프로세서가 부착돼 있다. 덕분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에도 주변 차량의 번호판 스캔이 가능하다. 오늘 아침 그는 쉐비 차량에 대출을 해준 은행으로부터 차량 압류신청과 함께 관련정보를 전달받았는데 그동안 스캔한 차량 정보에 해당 차량이 있었다.
“번호판이 스캔된 위치가 좌표로 표시되기 때문에 이 정보와 운전자의 신상자료를 참고하면 예상 출몰지역을 비교적 정확히 예측할 수 있죠. 오늘 쉐비도 그렇게 발견한 겁니다.”

이렇듯 여러 정보들을 모아서 유의미한 정보를 추출하는 능력은 이제 미국을 위시한 자동차 압류 대행사들에게 기본이 되고 있다. 불과 수년 사이에 리렌틀러스 등의 업체들이 소리 없이 GPS 위치정보와 함께 스캔한 차량 번호판이 수십억 건이나 된다. 지구상에 등록된 전체 자동차의 절반을 넘어서는 수치다.

이 정보들은 다수의 중앙 집중형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돼 있으며, 관리는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기업들에 의해 이뤄진다. 물론 휴대폰 위치추적, 안면 인식 카메라 등 특정인의 위치를 알아내는 더욱 정교한 방법들이 이미 개발돼 있다. 그러나 이들은 기술적 한계가 있고, 개인정보보호 정책에 의해 많은 제약이 걸려 있기도 하다.

반면 자동차 번호판 스캔은 기술적으로 매우 쉽다. 또한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합법이다. 이로 인해 뜻하지 않게 토트 같은 자동차 압류대행 담당자들이 개인정보 획득 및 감시의 최전선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만일 내 자신이 쉐비의 운전자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면 어떤 기분일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필자의 차량 역시 미국 내 여러 주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돼 있을 것이 확실하고, 바쁘게 살다보면 깜박 잊고 자동차 대출금을 몇 번 밀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상황이 오면 이 정보들은 제2, 제3의 토트에게 필자의 삶의 흔적을 모조리 알려줄 것이다.

용 금융 산업이 보편화된 1920년대 들어 압류 대행사들은 미국 자동차 산업에 불수불가결한 존재가 됐다. 은행과 캐피털들은 대행사에게 채무 불이행자의 차량 압류 업무를 맡겼고, 대행사들은 차량을 1대 견인해 올 때마다 그들로부터 300~800달러를 받는다. 때문에 우수한 실적의 대행사들은 하나 같이 단편적 정보들을 꿰어 맞춰서 운전자를 프로파일링하고, 차량의 위치를 예측하는 전담직원을 운용하고 있다.

프로파일링 기법은 2000년대 초 급속히 발달했다. 예컨대 스킵트레이서(Skiptracers)나 멀린(Merlin) 등의 압류 관련 사이트들은 압류 대행사를 위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운용한다. 이를 이용하면 특정 운전자의 거주지와 군복무 기록, 전기요금 고지서, 배우자 이름, 범죄경력 등의 정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또 2004년에는 미국 최대 온라인 정보서비스 업체인 렉시스넥시스가 이 바닥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가 압류 대행사나 경찰을 위해 만든 ‘어큐린트(Accurint)’ 사이트는 스킵트레이서와 멀린보다 훨씬 다양한 정보들을 유료로 제공한다. 개인 신용정보 조회업체인 트랜스 유니온도 ‘TLO 닷컴’을 오픈하고, 렉시스넥시스에 버금가는 데이터를 건당 1달러의 저렴한 요금에 서비스하고 있다.

특히 2009년부터는 자동차 압류 업계에 번호판 촬영 카메라가 본격 도입됐다. 이후 많은 대행사들이 견인차량에 카메라를 부착, 주차된 차량의 번호판과 채무 불이행자의 명단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번호판 스캐너가 대다수 도시지역 압류 대행사들의 표준 장비로 자리 잡았다. 이때부터 압류 요원들은 거리를 돌아다니기만 해도 많은 압류 대상 차량을 찾아낼 수 있게 됐다.

견인 트럭 1대가 스캔하는 번호판은 하루 최대 8,000개에 달한다. 미 전역에서 견인 트럭에 의해 스캔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는 번호판은 매달 수천만 건을 훌쩍 넘는다. 미국 내 차량 등록대수가 2억 5,000만대나 되지만 동일한 차량이 여러 장소에서 10회 이상 스캔되는 경우가 흔할 정도다. 이렇게 데이터가 쌓일수록 운전자의 집과 직장은 물론 출퇴근 경로, 심지어 자주 다니는 식당까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이터 분석기업인 디지털 인식 네트워크(DRN)는 미국 최대의 자동차 번호판 데이터베이스 보유기업의 하나다. 2,000여대의 견인트럭과 제휴를 맺고 현재까지 18억건 이상의 번호판 스캔 정보를 확보했다.

렉시스넥시스의 부사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DRN의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크리스 메탁사스에 따르면 번호판 스캐너의 도입 이래 차량 압수 건수가 14%나 늘었다.
“이 기술 덕분에 압류 대행사들의 업무 효율성이 일취월장했습니다. 데이터를 분석하면 차량의 위치를 예전과 비교할 수 없는 정확도로 예측하는 게 가능합니다.”

이처럼 데이터 수집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압류 대행사들도 이에 대한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일례로 리렌틀러스는 아예 별도의 수색 전담 직원을 운용한다. 이들은 업무시간 내내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자동차 번호판을 스캔한다.

클리블랜드의 교외 지역에 거주하는 네 아이의 어머니인 로리 존스도 이 일을 하고 있다. 존스를 포함해 리렌틀러스의 수색 전담 직원 4명이 오하이오주에서 수집하는 번호판 정보만 매월 약 100만건에 달한다. 그녀는 매주 6일 동안 하루 8시간씩 혼다 피트 차량을 몰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평범한 겉모습과 달리 이 차량의 내부에는 2만3,000달러짜리 고성능 카메라 시스템이 장착돼 있다. 20㎜ 렌즈가 이동 중인 차량을, 50㎜ 렌즈가 최대 18m 밖에서 정차돼 있는 차량을 촬영한다. 촬영이 이뤄지면 뒷좌석의 이미징 시스템이 번호판 이미지를 인식·추출한 뒤 촬영 시간, GPS 좌표와 함께 기록한다.
“공용 주차장과 아파트, 사무빌딩을 중심으로 주차돼 있는 차량들을 촬영합니다. 압류 대상 차량이 발견되면 경보음이 울리죠. 그러면 차량식별번호(VIN number)를 확인, 압류 대상 차량 여부를 재검증한 뒤 압류 요원에게 전화로 발견 사실을 알립니다.”

그녀는 점심시간조차 번호판 촬영 업무를 쉬지 않는다고 밝혔다. 쇼핑몰의 입구에 자동차를 주차시켜 놓고 차 안에서 샌드위치나 샐러드를 먹으며 노트북 화면에 뜨는 이미지를 살핀다는 것. 밥 먹는 시간에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서 평범한 개인들을 감시하는 사람다운 위협적 이미지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인 차량 보관소로 가기 위해 20번 도로를 따라 달리는 동안 토트는 압류 요원으로서 체득한 현장 노하우들을 알려줬다. 12달러로 즐길 수 있는 트럭 휴게소에서의 샤워, 사나운 개를 동반한 부랑자들을 달래줄 핫도그 한 팩, 그리고 사람들이 걷기를 꺼려하는 추운 겨울이 압류 요원에게 최고의 계절이라는 것 등이었다.

그가 차량 압류 업계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0여년 전 자신의 자동차가 압류됐을 때였다. 이후 그는 직접 작은 압류 대행사를 운영하다가 리렌틀러스의 현장 요원 책임자로 발탁됐다. 회사가 커지고, 장비가 첨단화될수록 토트가 받는 수수료도 많아졌다.
“운전자에 대해 정보가 없어도 하루 1대 정도는 견인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희는 현장 요원 1명당 하루 최대 5대까지 견인하고 있죠. 게다가 견인에 필요한 모든 것이 제 트럭 안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콘솔에 붙어 있는 전자기기들을 바라봤다. 노트북 화면에는 회사가 자체 압류 포털시스템을 통해 전달하는 운전자의 이름과 주소, 차량 번호 등의 정보가 나타나 있었다. 이 포털시스템으로
압류된 차량의 처리과정도 실시간 추적할 수 있는데, 45일 이내에 내·외부 청소와 성능 검사를 마치고 경매에 넘겨진다고 한다.

견인 트럭의 외부 적재함에는 모서리마다 카메라가 1대씩 장착돼 있어 1분당 최대 1,800대의 번호판을 스캔할 수 있다. 각 카메라는 적외선 LED와 일체화돼 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최대 18m 떨어진 번호판 인식이 가능하다. 이 카메라의 제조사인 비질런트는 단속을 막기위해 번호판에 부착하는 반사 필름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번호판 스캔 과정은 이렇다. 카메라가 흑백 사진을 촬영하면 이미징 소프트웨어가 사진 속에서 번호판을 찾아내고, 문자인식 소프트웨어는 정확한 번호를 추출한다. 그러면 번호판 이미지와 번호, 촬영 시간, GPS 좌표가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위치한 DRN의 데이터베이스로 무선 전송된다. 다만 토트는 차량 압류 업무에서 번호판 스캔이 아직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여전히 그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차량을 확보하고, 화가 난 운전자를 통제하는 것이다.
“데이터는 차량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지만 현장에서 사람을 대할 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오늘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는 결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의 말이 끝나는 순간 갑자기 견인해 가던 쉐비 차량에서 전조등이 번쩍거렸다. 경적도 시끄럽게 울려댔다. 사이드미러로 보니 흰색 픽업트럭이 바짝 따라붙고 있었다. 쉐비의 운전자가 친구의 차를 타고 우리를 뒤쫓은 게 분명했다. 아직 키를 가지고 있었기에 원격으로 시동을 걸고, 전조등과 경적을 제어했던 것이다. 토트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했다.
“꼭 저렇게 바보짓을 하는 사람이 있답니다. 도로를 막고 힘으로 차량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을 많이 상대해봤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토트는 차량 보관소에 도착하기 전에 그들을 따돌려야 한다며 속도를 시속 80㎞로 높였다.
“우리 본거지까지 따라오게 해선 절대 안 됩니다. 보관소 내부로 들어오기라도 하면 저런 사람들에게 유리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어요.”



15분간의 추격전(?) 끝에 토트는 그들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차량 압류는 채무 불이행자 입장에서 유쾌하지도 않고, 쉽게 용인하기도 힘든 일이다. 특히 번호판 스캔을 통해 한층 신속 정확하게 이뤄지는 오늘날의 압류 절차는 차량 소유주와의 불화를 더욱 키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자신의 개인정보를 누군가가 수집해 보유하고 있는 상황은 현대인으로서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일지 모른다. 신용기록이야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지 오래며 최근에는 위치정보, 안면 인식 데이터, 인터넷 방문기록, 상점 구매기록, 클라우트 지수 등의 정보도 타인의 손에 넘어갔다.

하지만 이런 정보들은 원격지에서 추적이 이뤄진다. 때문에 기술적·법적 장벽을 치고 추적을 막을 수도 있고, 사용자에게 추적을 거부할 권리도 부여돼 있다. 그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최소한 이 데이터들이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반면 수집된 데이터를 활용해 누군가가 당신을 추적, 재산을 압류해 버린다면? 게다가 데이터 수집과 추적을 막을 수도, 거부할 권리도 없다면 어떨까. 이는 지금까지의 개인정보 유출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된다.

비 차량을 안전하게 보관소로 인계하고 몇 시간이 지나 토트는 어느 으슥한 주차장에서 2011년형 카마로 차량을 추적하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메시지가 떴다.
‘전 직원은 도심으로 모여주세요.’

우리는 얼마 안 있어 쿠야호가강 인근의 한 선상 베트남 음식점에 도착했다. 리렌틀러스의 존 지브로 CEO가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줬다. 그의 옆에는 친동생이자 공동대표인 데이비드 지브로와 또 다른 공동대표 에이미 베드나르가 서 있었다.

음식을 기다리며 필자는 3명의 사주들과 번호판 스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민간 기업에 의한 번호판 스캔은 꽤 민감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였다. 미국 내 17개 주는 이 행위를 제한적으로 허용 중이며 뉴햄프셔주와 메인주, 버몬트주는 아예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들은 다소 방어적 태도를 취하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일에 자부심을 표명했다.

존 지브로는 이 기술에 힘입어 은행들이 수백만 달러의 돈을 절약하면서 그만큼 더 많은 돈을 저금리로 고객들에게 빌려줄 수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압류 대행사들의 번호판 스캔 능력을 범죄수사에 활용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리렌틀러스에 카메라를 납품하는 비질런트가 지난 2013년 미국 내 500여개 경찰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민간기업에 번호판 스캔을 요청해서 해결한 범죄가 2,180건에 달했다는 것. 이중에는 살인, 마약운반, 유괴 등의 강력범죄들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4만여대의 도난 차량 발견 성과를 거뒀어요. 최근 유타주가 민간기업의 번호판 스캔 금지법을 폐지한 것이나 캘리포니아주에서 제안된 민간기업 번호판 스캔 금지법이 부결된 데는 이러한 법집행 기관들의 실적이 한 몫을 했습니다.”

이와 관련 필자가 DRN의 메탁사스 CEO를 찾아갔을 때 그는 그동안 축적된 번호판 스캔 데이터를 이용해 소비자의 재정 문제를 예측, 고객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키는 게 DRN의 최대 관심사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은행들은 고객이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지기 전에 DRN의 데이터를 통해 그 징조를 알고자 한다는 것.
“저희의 궁극적 목표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자동차 압류가 아닙니다. 번호판 스캔 데이터를 고객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차량이 차주의 직장 인근에서 더 이상 발견되지 않고, 집 주변에서만 스캔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은행은 고객이 직장을 잃었음을 감지하고 월납임금을 낮추거나 유예해주겠다고 먼저 제안할 수 있다. 이 경우 번호판 스캔 데이터는 감시의 도구가 아닌 서비스의 도구로 격상된다. 그 일환으로 메탁사스 CEO는 보험사, 신용카드사, 자동차압류 대행사 외에 다른 기업들에게도 데이터베이스 접속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렇지만 번호판 스캔은 아직은 잠재적 효용성보다 잠재적 위험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 데이터를 활용하는 기업이 확대된다면 운전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온갖 마케팅에 광범위하게 쓰일 개연성이 다분하다. 영국의 한 자동차 오일 제조업체는 고속도로에서 번호판을 불법 스캔한 뒤 차량의 제조사와 모델을 파악, 전광판에 해당 차량에 적합한 제품을 홍보한 적도 있다. 게다가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민간기업의 취약한 데이터 보안성에도 우려를 표시한다. 경찰이나 정부기관과 달리 법적관리가 허술한 탓에 유출 위험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DRN은 자사의 데이터베이스가 고도의 보안수준으로 유지·관리된다고 강조하지만 샌프란시스코 소재 비영리단체 전자프런티어재단(EFF)의 선임 법률가인 제니퍼 린치를 비롯한 개인정보 보호론자들은 민간기업의 보안시스템이 공공 감사의 대상이 아님을 지적한다.
“일반인들은 그들의 보안시스템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누가 접속하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그 회사가 하는 말을 믿어야 하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보안에 구멍이 뚫려 방대한 번호판 스캔 데이터가 유출되더라도 피해는 의외로 적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데이터를 악용하려면 차주의 개인정보와 매칭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주정부의 자동차 등록 정보망까지 해킹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DRN이나 리렌틀러스처럼 차주의 개인정보 파악이 가능한 민간기업들의 합법적인 번호판 스캔 정보 사용이 이 논제의 핵심이라고 린치는 설명한다.
“세상에는 자신이 어디를 갔었는지 알리고 싶지 않은 공공장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낙태 클리닉이나 게이 바, 숙박업소 같은 곳에서 번호판이 스캔된 사람들의 개인정보가 누출돼선 안 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대중은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고 믿으면 권력에 대항하려는 욕구를 내면에 감추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즉 대출 여부와 금리를 결정하는 은행이나 보험사가 자동차 번호판과 관련된 정보들을 알고 있다고 사람들이 믿는다면 일부러 부촌(富村)으로 차를 몰고 가거나 민감한 장소는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등 이동의 자유가 침해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원치 않는 사생활이 알려질 수 있다는 것도 문제지만 사생활이 알려졌다는 사실조차 인지할 수 없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그때는 본인도 모르게 타인에 의해 삶이 통제될 가능성까지 배재하기 어렵다.

어도 지금까지 개인정보는 일정 수준의 교환적 가치를 지녔다. SNS 업체들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연락이 끊겼던 고교 동창생을 찾을 수 있는 식이다. 그러나 번호판 스캔은 일방적이다. 은행은 자동차 대출의 위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운전자는 아무 것도 얻는 게 없다.

향후 이 같은 일방적 관계를 탈피, 고객과의 균형점을 찾는다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지도 모른다. 예컨대 번호판 스캔 정보가 신용카드 거래내역처럼 비밀번호와 보안기술로 보호받는 사이트에서 투명하게 공개되고, 정부와 민간에 의해 부당한 활용이 감시될 경우 부모들은 10대 자녀가 어디에서 차를 몰고 다니는지 알 수 있다. 다만 아직까지 민간 번호판 스캔 기업들은 스캔 데이터가 일반에 오픈되면 정보 오용이 일어날 것이라며 미온적 반응을 견지한다.

선상 음식점에서 리렌틀러스의 사주 3명과 벌였던 토론은 자정이 지나서야 마무리됐다. 그리고 곧이어 그날 밤의 메인이벤트가 펼쳐졌다. 고해상도 카메라가 장착된 쿼드콥터 드론의 시험비행이었다. 드론이 촬영한 실시간 영상이 나오는 모니터를 바라보던 데이비드 지브로가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 드론이 앞으로 우리 회사의 중요한 장비가 될 겁니다.”

그는 압류 대상 차량의 30% 이상이 압류 대행사의 눈으로부터 완전히 은폐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대부분이 사유지의 높은 담장 안에 숨어 있어 번호판 스캔도, 압류도 거의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미 연방항공청(FAA)이 2015년부터 미 영공 내에서 상업적 목적의 무인기 운용을 허가할 예정이에요. 그때는 소형 드론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하늘에서 개인주택과 사유지를 촬영, 압류 대상 차량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쿠야호가강 상공을 날아다니는 쿼드콥터를 바라보며 필자는 압류대행사들의 미래가 프라이버시의 범위를 합법적으로 좁혀나갈 방법을 찾는 데 달려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와 1주일을 함께 보낸 리렌틀러스의 직원들은 언제나 법규를 준수했고, 예의바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가급적 많은 압류 대상 차량을 발견하는 것이다. 과연 그들이 채무 불이행을 저지르지 않은 99% 이상의 시민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그 임무를 수행해낼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이 질문의 해답을 찾아나서야 할 때다.

컴퓨터 시각의 역사
인간의 시각적 인식 능력을 기계를 통해 재현하는 컴퓨터 시각은 트랜지스터의 개발 이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매년 더 빠르고, 소형화된 제품이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나온다. 57년에 걸친 컴퓨터 시각의 역사를 간략하게 되짚어 본다.


1957년 러셀 A. 키르슈가 최초의 디지털 이미지 스캐너 개발. 당시 그는 5㎝ 크기의 아들 사진을 스캔했다.

1964년 우디 블레드소, 헬렌 챈 울프, 찰스 비숑이 익명의 미 정보기관을 위해 안면 인식시스템 개발.

1976년 영국 경찰이 차량 번호판 인식 시스템 개발. 이 시스템은 1993년 IRA의 폭탄테러에 대비, 런던 주변에 대규모로 배치됐다.

1985년 록히드 마틴 등이 최초의 자율주행 자동차를 공동 개발. 동영상 이미징 시스템에 힘입어 도로를 따라 5㎞/h 속도로 주행했다.

2004년 화성 탐사 로버 스피릿과 오퍼튜니티가 컴퓨터 시각으로 거리와 위치를 계산하면서 화성 표면에 강하.

2008년 최초의 3D 피자 검사시스템 ‘스콜피온’ 개발. 이 장치는 시간당 피자 7,200개의 형상을 3D로 인식, 불량품을 선별한다.

2010년 MS의 동작인식 컨트롤러 ‘키넥트’ 출시. 20개 인체 부위를 초당 30회씩 추적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다.

2014년 패턴인식이 가능할 만큼 프로세서의 성능이 향상됐다.

97회 2013년 보스턴 경찰당국이 6개월간 차량 1대의 번호판을 반복 스캔한 횟수.
7,000만건 디지털 인식 네트워크(DRN)와 제휴를 맺은 2,000여대의 견인 트럭이 미 전역에서 매월 스캔하는 번호판의 숫자.

클라우트 지수 (Klout Score)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클라우트 지수 (Klout Score) SNS)에서 개인의 영향력을 계량화한 지수.
쿼드 콥터 (quadcopter) 4개의 로터를 가진 항공기.
IRA (Irish Republican Army) 아일랜드 공화국군(軍).
패턴 인식 (pattern recognition) 문자, 음성, 물체의 형상 등을 인식(판별)하는 것.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