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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력의 힘을 믿다

[VENTURE] How I Got Started<br>Believing in the Power of Potential

한때 일자리조차 못 구했던 글로벌 경영 컨설팅 기업 캘리퍼 Caliper의 창업주가 이제 기업들을 상대로 고용 방법을 조언하고 있다.
Interview by Dinah Eng


허브 그린버그 Herb Greenberg는 차별을 당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잘 알고 있다. 10세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그는 최우수 졸업생으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면접 볼 기회는 별로 갖지 못했다.

그는 결국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기로 했다. 그린버그는 캘리퍼 프로필 Caliper profile이라는 신개념 성격 테스트를 만들었다. 이 테스트의 목적은 어떤 사람이 직무를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는지 예측하는 것이다. 캘리퍼 프로필은 많은 회사들에 ‘경험보다 잠재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현재 뉴저지 주 프린스턴에 있는 그린버그의 글로벌 경영 컨설팅 기업 캘리퍼는 3만 5,000개 기업-보험회사 프루덴셜 Prudential, 렌터카 업체 에이비스 버짓 그룹 Avis Budget Group, 월마트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으며 연 매출은 2,500만 달러에서 5,000만 달러에 이르고 있다. 올해 84세인 그린버그도 캘리퍼 테스트를 치렀다. 테스트 결과는? 그는 자아가 강하고, 절박함이 크며, 아이디어 중심적인 ‘열성적 기업가’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는 신중하지만 세부사항이나 조직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부모님은 폴란드 출신으로 박해를 피해 1920년 망명했다. 그들은 각각 미국으로 이주했고 영어는 전혀 할 줄 몰랐으며 뉴욕에서 처음 만났다. 부모님은 결혼 후 디트로이트로 이사를 했고, 그곳에서 내가 태어났다. 그 뒤 우리는 뉴욕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브루클린에서 자랐다. 당시 기능성 신발을 만들었던 아버지는 기껏해야 주당 100달러를 벌었다. 그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길 희망했다. 다시 말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길 원했다. 덕분에 나도 그런 철학을 배우며 자랄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1남 3녀였다. 그중 한 명이 1938년 13개월 때 패혈성 인두염으로 사망했다. 나는 동생 로슬린 Roslyn이 사망하고 하루 이틀 지난 후 수술을 받아야 했다. 양 귀의 유양돌기 *역주: 귀 뒤에 있는 둥글고 툭 튀어나온 뼈 가 감염됐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병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지 못했다. 당시 아홉 살이던 나는 저체중이었고, 거의 사망 직전까지 갔다. 박테리아가 눈까지 전이되어 이듬해부터 점점 시력을 잃어갔다. 아버지는 내가 돈 스터디 Don Sturdy라는 모험 소설을 읽고 있을 때, 내가 잘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을 거꾸로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내가 시력을 잃을 것이라며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로슬린의 사망이라는 더 큰 일을 겪었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를 그럭저럭 감내할 수 있었다.

당시 교육 당국은 부모님에게 나를 맹인 학교에 보내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내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교육받기를 원했다. 맹인이란 이유로 따로 분리되는 일이 없도록 (교육 당국과) 맞서 싸웠다. 그리고 마침내 일반 학교에 다닐 방법을 알아냈고, 그 후 나는 점자를 가르치는 반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어릴 때 나는 클래런스 대로 Clarence Darrow *역주: 최고 승률을 자랑하던 저명한 미국 변호사 와 페리 메이슨 Perry Mason *역주: E.S. 가드너의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변호사 겸 탐정 을 합쳐놓은 변호사가 되어 소외된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뉴욕시립대학교(City College of New York)에 입학한 후 심리학과 사회학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심리학의 힘이 나를 매료시켰다.

1951년 임상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고 처음 갖게 된 직업은 뉴욕시 복지부(New York City Department of Welfare)에서 생활보호대상자의 고용을 돕는 상담사였다. 1955년 뉴욕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인간관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나는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고 모든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600개 일자리에 지원했고, 그중 85곳으로부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시력 문제에 대해 말하자 면접을 볼 수 있는 곳이 단 세 곳으로 줄어들었고, 결국 그들마저 나를 고용하지 않았다.

결국 텍사스 공대(Texas Tech)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돼 그곳에서 2년간 머물렀다. 당시 어린 나이에 브루클린에서 서부 텍사스로 이주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사귀는 데 약간의 문제를 겪었다. 그래서 1957년 러트거스 대학교(Rutgers University)에서 심리학을 가르칠 기회가 왔을 때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러트거스 대학교에서 근무할 때 한 동료가 내게 심리학 테스트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물어봤다. 내가 이름을 언급하지 않기로 약속한 어떤 보험 대기업은 매출성장을 예측할 수 있는 테스트를 찾고 있었다. 우리 연구팀은 그런 테스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맨해튼에서 마켓 사이콜로지 Market Psychology라는 소기업을 운영하던 데이비드 메이어 David Mayer를 만났다. 수요가 있다는 것을 안 후 데이비드와 나는 비즈니스 파트너가 돼 직무수행능력을 예측할 수 있는 테스트를 개발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테스트를 구상하는 데 4년이 걸렸다.

1961년 우리는 마케팅 서베이 앤드 리서치 Marketing Survey & Research Corp.(MSRC)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우리는 뮤추얼 펀드와 저가 투기 주식인 페니 스톡 penny stock을 파는 밥 슈워츠 Bob Schwartz와 모리스 기틀맨 Morris Gittleman에게 1만 5,000달러를 빌렸고, 월스트리트 37번가에 위치한 이들의 사무실 뒤편으로 이사를 했다. 하지만 2개월이 지나도 매출이 없자 그들은 우리에게 나가달라고 했다. 우리는 3개월치 월세가 무료인 저렴한 아파트를 찾아내 둥지를 옮겼다.

생활비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생명보험과 뮤추얼 펀드를 묶어 판매했다. 또 MSRC를 운영하면서 물물교환 회사를 설립해 도매 가구도 판매했다.

당시에는 우리가 만든 테스트를 판매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우리는 기껏해야 “이제까지의 고용 방식은 잊어라. 우리가 만든 테스트를 믿고 사용해봐라”라고 말하는 풋내기일 뿐이었다. 초창기 우리는 미국 최고 기업으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그들은 우리를 비웃었다. 마침내 GM의 상품기획 부사장인 게일 스미스 Gail Smith가 미국 전역에 있는 30개의 뷰익 Buick 대리점에서 이 테스트를 시도해보기로 우리와 계약을 했다. 3개월의 무료 월세 기간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계약 시기는 매우 적절했다.

1963년 우리는 회사 이름을 퍼스낼리티 다이내믹스 Personality Dynamics로 바꿨다. 이 이름이 성격을 테스트하고, 이를 직무수행능력과 연관시키는 우리 일을 잘 설명해주기 때문이었다. 테스트의 핵심 즉, 어떤 사람이 성공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그가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현재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동기가 있느냐는 것이다.

요즘엔 경력을 바탕으로 고용이 이뤄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구직자들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가를 따져보는 것보다 단순히 경력을 보는 것이 더 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관리자들에게 “10년 경력을 보고 고용을 했지만, 결국 그 사람이 1년짜리 서툰 업무 처리를 10번이나 반복했다는 것을 알게 된 적이 많지 않았냐”고 묻고 있다.

70%의 사람들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 그들은 자기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을 하기 위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음은 몸에서 가장 중요한 근육이다. 만약 뇌가 무언가 자극되는 일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뇌는 결국 무기력해지고 잘 작동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면 생산 과정 전반이 향상된다.

1964년 데이비드와 나의 이야기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크게 실려 큰 관심을 얻게 됐다. 그 해 11월 우리의 연 매출은 약 30만 달러였고 회사는 꾸준히 성장했다. 1968년에는 빈곤추방을 위한 교육 및 직업훈련을 담당하는 경제기회국(Office of Economic Opportunity)이 푸에르토리코 실업자들의 고용을 도와달라며 우리에게 20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우리가 이 일을 아주 성공적으로 끝냈기 때문에 다음 해 경제기회국은 보조금을 두 배로 늘려주었다. 마침내 큰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뒤이어 우리는 미 노동부(U.S. Department of Labor)에서도 288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고 뉴욕 주에서 만성 실업자들의 고용을 도왔다. 보조금은 다음 해 469만 달러로 늘었다. 이는 존슨 대통령이 추진한 ‘빈곤과의 전쟁(War on Poverty)’의 일환이었다.

1970년 나와 데이비드는 좋게 헤어졌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내가 그의 지분을 모두 매입했고 회사는 계속 발전해 나갔다. 1980년대 초에는 너도나도 역동적이란 의미의 다이내믹스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우리는 전문가에게 의뢰해 사명을 바꾸기로 했다. 그는 캘리퍼라는 이름을 만들어줬다. 캘리퍼는 정밀 측정 기계를 의미하고,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들과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밀하게 측정하는 것이어서 의미가 통했다. 우리는 1987년 사명을 캘리퍼로 바꿨다.

우리가 평가해보지 않은 일자리는 거의 없다. 우리는 인기 종목 스포츠 팀과도 일했다. 80년대 미식축구, 야구, 농구 및 하키 팀과 일했다. 우리는 선수들의 경쟁력, 절제력, 팀워크-이런 요소들은 재능과 관계없이 훌륭한 선수들과 별볼일 없는 선수들을 구별해준다-를 평가할 수 있었다.

나는 스포츠를 좋아한다. 그래서 1999년 트렌턴 슈팅 스타스 Trenton Shooting Stars라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야구 팀을 인수해 2년 정도 운영했다. 하지만 그 일은 재정적 실수였다. 돈을 200만 달러도 넘게 잃었기 때문이다(그 팀은 현재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인터내셔널 바스켓볼 리그 international basketball league라는 마이너 리그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선수 선발에 대한 내 이론이 효과적이라는 사실만큼은 입증했다. 내가 뽑은 팀 선수들이 단 한 골 차이로 우승을 놓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350만 명도 넘는 사람들을 평가했다. 우리는 현재 경영자 코칭과 몇 단계 훈련 프로그램을 여러 회사에 제공하고 있으며, 다른 컨설팅 회사들과도 제휴하고 있다.

고용은 과거보다 신체적 장애, 인종 및 성차별 철폐 측면에서 훨씬 개선됐다. 그러나 차별은 아직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걷지 못하는 것이 전화를 받는 것과 무슨 상관인가? 그 사람의 장애는 잊고 능력을 잡아라. 그리고 그 능력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활용하라.

나는 일이 즐겁다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절대 은퇴하지 않을 것이다. 회사는 수익을 내고 있고, 내 보수는 높으며, 직원들도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 우리는 수천 개 회사와 함께 일하고 있고, 우리가 테스트한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를 매일매일 전해 듣고 있다. 정말 보람찬 일이다.


나의 조언
허브 그린버그
캘리퍼의 창립자이자 CEO

잠재적 승계 계획을 염두에 두고 직원을 고용하라.
재무에 지원한 구직자가 리더십에 잠재력을 보이는가? 그렇다면 이를 염두에 두고 그를 더 높은 자리에 앉힐 수 있도록 키워라.

면접 때 틀에 박힌 질문은 피하라.
구직자에게 판매에 실패한 경험과 거기서 배운 점을 묻고, 다음 도전과제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었는지를 확인하라.

추천인들에게 업무 능력 이상의 질문을 던져라.
“그가 어떤 사람이었나?”와 “그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일했나?”와 같은 것을 물어라. 기술은 언제든지 가르칠 수 있지만, 태도는 가르칠 수 없다.


나는 기업가 체질일까? 포춘 홈페이지(fortune.com/caliper)에 있는 캘리퍼 퀴즈 Caliper quiz를 통해 확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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