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 신모델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주기가 매년 빨라지고 있다. 물론 자동차도 예외가 아니다. 20년 전 자동차의 업계의 신모델 개발 주기는 7~10년 이었지만 현재는 그 절반으로 단축됐다. 그런 가운데 슈퍼카와 F1 레이싱카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맥라렌이 특유의 신속한 신모델 개발 능력에 힘입어 이 주기를 더욱 앞당기고 있다. 영국 런던 외곽에 위치한 이 회사의 F1 레이싱카 연구실에서는 엔지니어들이 매 20분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테스트한다. 완성차 메이커들의 관점에서 보면 거의 광속에 맘먹는 연구개발 속도다. 그럼에도 이렇게 완성된 레이싱카는 이전모델과 최대 80%나 다르다.
이런 맥라렌이 수년 전 스포츠카 시장에 뛰어들며 레이싱카에서 쌓아온 광속의 기술개발 능력을 상용차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실제로도 2011년 ‘12C’ 모델을 출시한 이래 매년 신모델 또는 대폭 개량된 모델을 내놓고 있다. 경쟁사 대비 4배나 빠른 출시 속도다. 올 겨울에도 ‘P1’의 업그레이드 모델이 출격한다. 대당 100만 달러가 훌쩍 넘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슈퍼카다. 사실 맥라렌을 특별하게 만드는 진수는 신속한 개발공정이 아니다. 그 이면에 숨겨진 철학에 있다. 이 회사의 경영진은 경쟁사들처럼 경량화나 공급망의 역학구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대신 ‘OODA’를 강조한다. 이는 관찰(observe), 방향설정(orient), 설계(design), 실행(act)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엔지니어링 방법론이다.
예컨대 맥라렌의 컨설팅 법인인 맥라렌 어플라이드 테크놀로지스의 제프 맥그래스 부사장에 따르면 맥라렌의 엔지니어들은 종이 도면이나 캐드(CAD)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시뮬레이터에 인간 드라이버를 태워 주행해보는 것으로 설계를 시작한다. 이후 드라이버의 피드백에 기반해 문제점을 개선해나간다.
“저희는 시제품 테스트에 수백만 달러를 낭비하지 않습니다. 아직 신모델에 필요한 부품을 가공하기도 전에 설계를 완성할 수 있죠. 2016년에 출시될 차량에 대한 느낌을 운전자와 얘기하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현재 맥라렌은 많은 기업들과 교류하며 OODA 방법론을 전파하고 있다. 여기에는 자동차메이커도 포함돼 있다.
“10년 뒤에는 자동차 영업소에서 자신의 운전습관과 주로 다니는 도로에 맞춰 설계된 차량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겁니다. 맥라렌은 이미 그런 세상에 대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물론 그때에도 인간이 직접 운전을 한다면 말이에요.”
02 인터페이스 일체형 인테리어
현재 자동차는 인터넷 접속 능력과 내비게이션, 자체 진단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따라서 차량 내부에는 정보 전달을 위한 많은 스크린과 버튼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업계에선 이런 정보를 정리하고, 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대다수 자동차의 사용자 인터페이스(UI)는 기껏해야 짜증나게, 나쁘면 안전운전에 위협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다행인 것은 약 1년 전부터 완성차 메이커들이 이 문제를 해결할 신기술들을 선보이고 있다는 것.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다. HUD는 1980년대부터 일부 고가형 차량에 탑재됐지만 너무 고가여서 보편화되지 못했는데, 올해 마쯔다가 ‘컴바이너 디스플레이’라는 저가형 HUD를 보급형 모델인 ‘마쯔다3’에 장착한 것. 전문가들은 2020년이 되면 차량용 UI가 전체 HUD 시장의 60%를 점유할 것으로 예견한다.
일부 업체들은 HUD 이후를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올해 뉴욕 국제오토쇼에서 랜드로버는 디스커버리 비전 콘셉트카에 증강현실 인테리어를 채용했다. 차량의 모든 창문을 스크린으로 전환, 내비게이션 등의 정보는 물론 차량 하부의 도로도 볼 수 있다. 여기에다 팔을 흔드는 것만으로 창문을 올리거나 내릴 수 있는 동작 제어 기능도 도입됐다.
토요타의 경우 운전석을 완전히 새로 설계하는 중이다. 게임 컨트롤러에서 영감을 얻은 촉각 피드백 버튼을 FT-1 콘셉트카의 핸들에 장착한 것. 토요타의 캘티 디자인 연구스튜디오 케빈 헌터 소장은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분면 방식의 입력시스템을 통해 엄지손가락만으로 HUD를 제어할 수 있습니다. 전방에서 눈을 떼지 않고도, 심지어 눈을 감고도 조작이 가능합니다.”
28.9% 최근 5년간 전방주시 태만으로 인해 발생한 교통사고 건수.(출처: 국토교통부)
[PROFILE] 03 엘론 머스크의 전기자동차 표준 플랫폼
지난 6월 테슬라모터스의 엘론 머스크 최고경영자는 전기자동차 기술 혁신을 독려하기 위해 테슬라의 모든 특허기술을 일반에 공개했다. 당시 그는 블로그에 ‘오픈소스로 개발이 이뤄져야 신속한 기술혁신이 가능하다’는 글을 남겼다. 이번 결정은 일종의 선행이자 현명한 사업적 판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큰 견지에서 볼 때 그가 자동차를 개발하는 것 이상의 목표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몹시 그다운 행동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 머스크는 플랫폼 개발자를 지향한다. 그가 설립한 페이팔은 금융서비스를 혁신한 플랫폼, 스페이스X는 우주여행의 개념을 바꾼 플랫폼이 됐다. 테슬라 역시 전기자동차 발전을 가속화할 플랫폼이 될 것이다.
머스크는 이미 이 전략에 깊이 빠져들었다. 전기차 ‘모델 S’의 성공적 출시로 테슬라의 이름을 알린 뒤 오랫동안 염두에 뒀던 ‘기가팩토리(gigafactory)’ 건설을 발표한 것도 그 일환이다. 세계 최대 리튬이온전지 공장인 기가팩토리가 본격 가동되면 전기차의 배터리 단가가 30%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전기차 충전인프라 확산에도 적극적이다. 지금껏 테슬라가 미국 전역에 설치한 전기충전소만 100개소에 달한다.
올해 말까지 미국인 98%의 집에서 160㎞ 이내에 충전소가 설치되도록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이 상태라면 향후 수년 내에 테슬라가 자동차업체에게 검증된 전기차용 동력전달장치와 저렴한 배터리, 충전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다. 자동차 업체들도 이를 연구하고 있지만 설계안이 각자 다르고, 표준화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신생업체는 물론 기존 업체들 또한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테슬라의 플랫폼을 일부 변형해 사용하는 것은 분명 매력적 옵션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는 올 봄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린 바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하나의 전기차 기술 플랫폼이 대량 보급됨으로써 전 세계가 이득을 볼 것입니다.”
테슬라는 현재까지 미 전역에 100개소의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했다. 이 정도면 전기차로 미국 횡단도 가능하다.
04 차대의 혁신
자동차의 외관, 즉 차체는 그동안 무궁한 발전을 거듭했다. 반면 차대의 진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바퀴 4개 위에 사각형 프레임을 얹은 기본 형태가 여전하다. 그런데 작년 도쿄 오토쇼에서 닛산이 ‘블레이드 글라이더(BladeGlider)’ 콘셉트카를 통해 이런 패러다임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 차량의 앞바퀴는 뒷바퀴보다 서로 좁게 붙어 있다. 때문에 외관도 직사각형이 아닌 삼각형에 가깝다. 닛산에 따르면 이를 통해 공기역학 성능이 좋아져 성능의 희생 없이 연비 향상을 꾀할 수 있다.
개발 초기 엔지니어들은 영국 에어리얼 모터스의 경량 스포츠카 ‘아톰(Atom)’의 앞바퀴를 1m 정도 가깝게 붙여서 주행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우스꽝스러운 외관과는 달리 직진 주행성 및 선회 능력이 한층 안정적으로 개선됐다고 한다. 현재 닛산은 2018년을 전후해 이 녀석의 양산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다. 양산 모델에도 인-휠(in-wheel) 전기모터와 지붕 없는 디자인이 유지될지는 알 수 없지만 차대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05 3D 프린팅 자동차
자동차 메이커들은 1980년대부터 시제품 부품의 신속한 제작을 위해 3D 프린터를 이용했다. 하지만 차량 전체를 3D 프린팅하는 것은 아직도 먼 미래의 일로 여겨졌다. 그런데 올 봄 미국 로컬 모터스가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완성한 설계를 활용, 프레임과 바디를 한 덩어리로 인쇄해 동력전달장치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이 꿈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렇게 실제 주행이 가능한 세계 최초의 3D 프린팅 자동차 ‘스트라티(Strati)’가 탄생했다.
자신감을 얻은 로컬 모터스는 지난 9월 시카고 국제 공작기계 박람회 현장에서 관람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단 44시간 만에 스트라티를 인쇄해 제작하는 시현에도 성공했다. 현재는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ORNL)와 함께 대형 제조시설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이 회사의 공동설립자인 제이 로저스는 스트라티의 가치를 이렇게 표현한다.
“지난 100년간의 기술혁신 가운데 3D 프린팅 자동차가 단연 1등이라 생각합니다.”
40시간 ‘스트라티’의 시제품 제작에 걸린 시간. 로컬 모터스에 의하면 양산 라인이 구축될 경우 제작 시간을 약 20시간으로 줄일 수 있다.
06 차량 공유의 시대
EU의 전망에 따르면 오는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의 66%에 해당하는 63억명이 도시에 거주하게 된다. 이 경우 우리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 즉 극심한 교통체증과 주차공간 부족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많은 시민들이 자동차를 보유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트렌드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 자동차 산업 분석기관 IHS 오토모티브가 미국 내 600개 도시를 조사한 결과, 인구 1,000명당 자동차 보유대수가 10년 전의 3분의 1에서 최대 2분의 1로 낮아진 것. 집카, 그린카, 쏘카 등 국내외를 막론해 차량 공유 서비스가 활황을 누리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차량 공유 서비스에 동참하는 완성차 메이커까지 나왔다. 2008년 다임러가 ‘카투고(Car2Go)’를, 2011년에는 BMW가 ‘드라이브 나우(Drive Now)’를 런칭했다. 일견 이는 완성차 메이커들의 자충수로 보일 수도 있다. 차량 공유가 확대될수록 신차 판매는 줄어들 테니 말이다. 그래서 자동차 업계는 여전히 차량 구매를 원하는 고객들을 위해 한 가지 대안을 마련 중이다. 고객에게 필요에 따라 여러 차종을 골라 탈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다.
올 4월 아우디가 독일 베를린에서 실시한 차량 공유파일럿 프로그램이 그 실례다. 이 프로그램에 가입한 고객들은 차량 임대기간 동안 4종의 모델을 마음대로 바꿔 탈 수 있다. 출퇴근 시에는 소형모델인 ‘A1’이나 ‘TT’, 짐이 많을 때는 ‘Q5’, 주말 나들이에는 ‘A5 카브리올레’를 타는 식이다.
이렇듯 ‘자동차’가 아닌 ‘이동성’을 판매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앞으로 소비자들은 더욱 다양한 옵션의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 확실하다.
앞으로 자동차 제조사들은 고객에게 필요에 따라 여러 차종을 골라 탈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것이다.
[Q&A] 07 앙꾸르 자인 자동차와 소셜 레이어
현재 자동차는 클라우드 서버에 연결된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삶에 연결되지 않았다. 미국의 신생기업 휴민의 설립자인 앙쿠르 자인은 자동차 속으로 소셜 컨텍스트 레이어를 이식, 자동차와 사회적 삶을 하나로 묶고자 한다.
휴민의 철학은 무엇인가?
인터넷은 이제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됐다. 무엇이든 찾아내주는 검색엔진과 SNS의 등장으로 현대인들의 관계 형성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휴민은 이런 변화를 인터넷 이외의 기기에 적용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구현할 앱을 개발했다. 이 앱은 휴대폰의 전화번호부와 캘린더, 이메일, 그리고 SNS 친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인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보여줘 원활한 인맥관리를 돕는다. 예컨대 오늘 처음 만난 A라는 사람이 대학동창인 B의 친구임을 알려주는 식이다. 사용자는 상대방의 전화번호나 이메일만 입력하면 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이름이 가물가물한 지인도 ‘작년 부산에서 만난 사람’, ‘A의 친구’, ‘B 회사에서 근무한 사람’처럼 자연어 검색을 통해 찾아낼 수 있다.
자동차에는 어떻게 적용되나?
자동차에 타는 것은 소셜 컨텍스트와 관련된 행위라 생각한다. 회의 참석, 가족 모임 등 사회적 관계 형성을 위한 이동이기 때문이다. 휴민의 앱을 이용하면 운전석에 앉자마자 회의 자료, 미팅 상대, 회의장소까지의 이동 경로 등의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휴민에게 있어 자동차는 인터넷 접속기기의 미래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시계 만큼 중요한 위치를 점할 것으로 본다. 현재 기업들은 앱 운영체제(OS)의 패권 다툼에 올인하지만 휴민은 그보다 상위 개념인 소셜 OS를 지향한다.
08 연료 패권 전쟁
최근 완성차 메이커들은 엄격해진 각국의 유해 배기가스 배출기준을 준수할 새로운 동력 전달장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그 결과, 올해와 내년에 전례 없이 많은 플러그인과 하이브리드, 청정 디젤, 그리고 수소연료전지 모델들이 출시된다. 과연 누가 왕좌를 차지하게 될까.
하이브리드
포르쉐 918 스파이더
포르쉐는 단 5년만에 하이브리드 기술의 리더로 부상했다. 918 스파이더가 바로 그 방증이다. 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는 친환경 주행을 위해 2대의 전기모터에 더해 역대 가장 강력한 배터리 시스템을 장착했다. 독창적 수냉식 리튬이온 배터리팩이 V8 엔진에 추가 동력을 제공, 제로백이 2.8초에 불과하다. 특히 여타 하이브리드카와 달리 엔진의 힘으로만 주행할 때도 배터리의 완충이 가능하다. 덕분에 전기모터의 효용성을 십분 누리면서 따분한 배터리 충전시간은 최소화할 수 있다.
수소
토요타 FCV
수소는 에너지 밀도가 높은 미래 무공해 연료의 대표주자다. 이미 현대차는 지난 6월부터 투싼ix 수소연료전지차의 미국 판매를 개시했으며, 토요타도 내년 3월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약 700만엔의 가격에 수소차 ‘FCV’를 출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수소차는 충전 인프라의 미비가 상용화의 아킬레스건으로 남아 있다. 내년부터 본격화될 상용모델들의 출시를 앞두고 미국, 독일, 일본 등 몇몇 국가들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충전소를 확충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기대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
청정 디젤
폭스바겐 골프 GTD
보통 운전자들은 디젤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두 가지를 떠올린다. 미국의 도로를 질주하는 덩치 큰 픽업트럭, 또는 유럽에서 판매되는 저렴하지만 힘이 부족한 자동차가 그것이다. 그러나 골프 GTI의 청정 디젤 버전인 GTD는 이런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녀석이다. 복합 공인연비가 ℓ당 16.1㎞로 가솔린 엔진 대비 30%가량 연비가 우수하면서도 4실린더 터보차저 엔진에 힘입어 GTI 수준의 퍼포먼스를 발휘한다. 현재 국내에서도 구입이 가능하며, 판매가격은 4,200만원대다.
[PROFILE] 09 메리 바라가 보여준 자동차 제조사의 책임
올 1월 미국 자동차 업계 최초로 여성 CEO가 탄생했다. GM의 메리 바라가 그 주인공이다. 100여 년간 자동차 업계의 수장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을 변화의 서막으로 받아들인다. 사실 미국 빅3 자동차 메이커인 GM은 복잡하고 미묘한 조직구조로 인해 변혁이 어려운 기업으로 꼽혔다. 관료주의의 장벽에 싸여 있는데다 기업문화는 평범함을 중시했다. 그런데 올해 초 차량의 점화스위치 결함으로 최소 13명이 숨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조직구조의 단점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GM의 경영진과 엔지니어, 사내 변호사들은 10여년 전부터 이 결함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해결하지 않고 덮으려고만 했던 것.
하지만 바라 CEO는 달랐다. 지난 2월 결함 문제를 알게 된지 2주일 만에 77만8,562대의 리콜을 발표했다. 얼마 후 리콜 대상 차량은 160만대로 늘었고, 6월말 다시 735만대의 추가 리콜을 실시했다. 이렇게 올해 GM이 리콜한 차량은 무려 3,000만대에 육박한다. 바라 CEO의 대처는 실로 명예롭고, 우아했다. 의회 청문회에서 진실을 밝혔고, 대중에게는 철저한 조사를 약속하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고위 임직원 15명도 해고했다.
그녀는 또 잠재적 문제점을 지적한 임직원에게 포상하는 ‘안전문제 소리 높여 말하기(speak up for safety)’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때문에 과거의 GM에서는 침묵이 미덕이었지만 지금은 말을 하는 것이 의무가 됐다.
신기술 개발이나 이윤의 확대로 CEO를 평가하기는 쉽다. 반면 기업의 문화적, 조직적 혁신은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이 점에서 106년 역사를 가진 포드의 문화를 혁신한 바라 CEO는 획기적 자동차를 개발한 것 이상의 값진 일을 해냈다고 평가된다. 그녀의 활약은 좁게는 GM, 넓게는 전 세계 자동차 업계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10 자율주행 능력 제고
지난 5월 구글이 미래 자율주행 자동차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프로토타입 모델을 공개했다. 핸들도, 페달도 없는 이 2인승 차량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 조사에선 자율주행 자동차 분야에 미치는 구글의 영향력이 GM의 20배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을 정도다. 포드나 토요타는 아예 순위에도 들지 못했다.
분명 구글은 현재 이 분야의 선두주자다. 하지만 자율주행 자동차의 개발에 처음 뛰어든 곳은 구글이 아닌 완성차 메이커들이었다. 이런 가운데 올해에만 글로벌 6대 완성차 메이커들이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 프로그램의 세부 내역을 잇달아 공개하며 주도권 되찾기에 두 팔을 걷어 붙였다. 이들 대부분의 목표는 구글보다 이른 시점에 대량생산에 성공하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완성차 메이커들은 다양한 자율주행 시스템을 연구·개발해 하나씩 상용 모델에 접목해왔다. 카메라와 레이더, 센서 등을 활용한 주차 보조시스템, 차선 이탈 방지시스템, 충돌 방지시스템이 그 실례다. 덕분에 운전자들도 시나브로 자동차에 자율성을 주는 것에 적응해가고 있다.
미약하지만 제도적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일례로 미국 4개 주에서는 운전석에 운전자가 앉아 있는 조건 하에 자율주행 자동차의 일반 도로 운행을 허용하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실질적 보급은 더디기 그지없다. 완전한 자율주행을 이뤄줄 정확하고, 정밀한 매핑 데이터와 이 데이터를 분석할 처리능력의 부재 때문이다. 이 장벽들만 사라진다면 기존의 차량에도 지금보다 뛰어난 자율성의 부여가 가능하다. 완성차 메이커 중 자율주행이라는 의미에 걸맞은 차량을 선보인 업체는 볼보가 최초일 것이다. 이 회사는 올 4월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자율주행 자동차로 일반 도로를 주행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2017년까지 혼잡한 도심을 통과하는 50㎞ 구간의 도로에서 총 100대의 차량을 자율주행 시키는 게 목표다. 닛산도 2020년 시판을 목표로 ‘리프’의 자율주행 버전을 개발해 테스트에 돌입했으며, 벤츠는 2020년 이전에 관련모델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외에 토요타, BMW, GM도 자율주행 자동차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올해 늦여름 구글의 자율주행 프로토타입 200여대가 캘리포니아주의 주택가와 산업단지를 누볐다. 최고 시속이 40㎞에 불과하고, 교통량도 적은 곳이었지만 사람들의 눈길만큼은 확실히 잡아끌었다.
7,000달러 자율주행 기능의 채용에 따른 신차 가격 상승분.(2025년 기준)
크라우드 소싱 (crowd sourcing) 제품이나 서비스의 개발 과정에 다수의 일반 대중이 참여토록 하는 방식.
소셜 컨텍스트 (social context) 웹과 모바일 환경에서 사용자들의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정보 공유, 인맥 형성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구축·강화하는 환경.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