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아이콘 애플의 간택을 받아 아이폰6에 채용될 것으로 회자되며 주목을 받았던 소재. 하지만 끝내 애플의 버림(?)을 받아 더 유명해진 소재. 사파이어 글래스 이야기다. 이 녀석의 등장은 휴대폰 화면의 취약성과 맥을 같이 한다. 강화유리를 사용했다고는 해도 보호 필름의 도움 없이는 몇 개월만 사용해도 화면 여기저기에 흠집이 난다. 자칫 떨어뜨리면 산산이 깨져버리기 일쑤다. 설령 깨지지 않더라도 휴대폰이 손에서 미끄러지는 순간의 가슴철렁함은 수명을 단축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물론 휴대폰 제조사들이 그동안 두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더 강한 소재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것이 코닝의 ‘고릴라 글래스’다. 2007년 애플의 1세대 아이폰에 처음 사용된 이래 2014년 8월 현재 전 세계 33개 메이저 브랜드의 2,450개 모델에 고릴라 글래스가 채용돼 있다.
고릴라 전성시대
고릴라 글래스의 주성분은 이산화규소(SiO2)와 탄산나트륨(Na2CO3), 석회석, 알루미늄, 산소다. 이들을 혼합한 뒤 용융시키면 알루미노규산염(aluminosilicate)이라는 유리가 된다. 여기까지는 그리 특별한 게 없다. 고릴라 글래스의 핵심은 이후 진행되는 ‘이온 교환’이라는 특수 화학공정이다.
이 공정은 쉽게 말해 알루미노규산염을 약 400℃의 질산칼륨(KNO3) 용액에 담그는 것이다. 그러면 알루미노규산염 내부의 나트륨이온이 방출되고, 칼륨 이온이 그 자리를 메운다. 칼륨 이온은 나트륨이온보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이온 교환이 완료된 알루미노규산염은 분자들 사이의 간격이 훨씬 촘촘해져 강력한 압축강도를 갖게 된다.
고릴라 글래스가 여타 강화유리와 비교해 외부 충격과 흠집에 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닝의 실험 결과에 의하면 3세대인 고릴라 글래스3의 강도는 일반적인 소다석회 유리의 6.5배, 경쟁사 화학 강화유리의 3.4배에 달한다.
이 터프함을 무기로 고릴라 글래스는 무섭게 시장을 장악해나갔다. 휴대폰과 태블릿 PC, 노트북, TV를 막론해 지금껏 판매된 고릴라 글래스 탑재 제품은 총 27억대가 넘는다. 명실공이 디스플레이용 강화유리의 최강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릴라 글래스조차 휴대폰 사용자를 화면 깨짐과 흠집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주지는 못하고 있다. 지금도 휴대폰을 새로 마련하면 가장 먼저 보호필름부터 구입해서 붙이는 우리의 모습이 그 방증이다.
과연 고릴라 글래스를 능가하는 소재는 없는 걸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애플이 포스트-고릴라 시대를 이끌어갈 차기주자로 낙점한 소재가 바로 사파이어 글래스다. 그리고 애플은 지난해 아이폰용 사파이어 글래스의 대량 생산을 목표로 미국 뉴햄프셔주에 본사를 둔 GT 어드밴스드와 독점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5억7,800만 달러의 투자에 합의했다.
사파이어를 향한 러브콜
애플이 어떤 기업인데 6,000억원이 훌쩍 넘는 돈을 허투루 쓸까. 그만큼 사파이어 글래스의 장점은 명확했다. 사파이어는 화학적으로 산화알루미늄(Al2O3)의 결정체다. 순수한 산화알루미늄은 무색투명하지만 자연계에서는 불순물이 함유돼 유색의 광물로 발견된다. 티타늄(Ti)과 철(Fe)이 섞이면 푸른색의 사파이어, 크롬(Cr)이 섞이면 붉은색의 루비가 되는 식이다. 즉 순수한 사파이어는 깨끗하고 투명해 디스플레이 위에 덮는 강화유리로 사용하기에 제격이다.
애플이 가장 주목한 점은 경도(硬度)였다. 모스 척도를 기준으로 사파이어의 경도는 9, 고릴라 글래스는 6.8이다. 특히 사파이어보다 경도가 높은 물질은 다이아몬드와 탄화텅스텐 밖에 없다. 둘 외에 사파이어의 표면에 흠집을 낼 수 있는 물질은 지구상에 없다는 얘기다. 즉 이론상 사파이어 글래스가 채용된 디스플레이는 아무리 험하게 다뤄도 처음과 같은 맑고 투명함이 유지된다. 쇠도 자른다는 티타늄합금 소재의 ‘장미칼’을 가지고 일부러 긁어대도 팔만 아플 뿐이다. 이와 관련 GT 어드밴스드는 사파이어 글래스가 화학적 공정을 거친 기존의 어떤 알루미노규산염 유리보다 역학적으로 3배 가까이 강하다고 설명한다.
또한 사파이어 글래스는 최근 개발된, 다시 말해 공정기술이 개발돼 있지 않거나 산업적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신소재가 아니다. 이미 고급 LED 조명의 소재로 각광받고 있으며, 다수의 명품 또는 하이엔드급 손목시계의 유리에도 채용돼 있다. 휴대폰만 해도 노키아의 럭셔리 브랜드인 베르투의 ‘티(Ti)’와 교세라의 ‘브리거디어(Brigadier)’, 중국 화웨이의 어‘ 센드 P7(Ascend P7)’ 모델에 사파이어 글래스가 쓰였다.
천연이 아닌 인공 사파이어
사파이어 글래스는 천연 사파이어가 아니다. 천연 사파이어로는 산업적 수요를 충당할만한 양을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불순물 때문에 가공 및 대량생산이 불가하다. 비용은 둘째치더라도 말이다. 때문에 산업용 사파이어 글래스는 인공 합성 사파이어를 활용한다.
GT 어드밴스드, 루비콘, 모노크리스털 등 제조사에 따라 일부 공정에 차이는 있지만 인공 사파이어는 기본적으로 작은 사파이어 결정을 씨앗삼아 커다랗게 ‘성장’시키는 형태로 생산된다. 일례로 GT 어드밴스드는 크게 3단계 공정을 운용한다. 1단계에서는 씨앗 역할을 할 하키퍽 크기의 사파이어 결정을 밀폐형 고온·고압 용광로에 넣고 원료물질을 채운다. 여기서 원료물질은 아직 결정화되지 않은 사파이어 원재료와 산화알루미늄 분말의 혼합물이다.
2단계에선 용광로의 뚜껑을 닫고 진공상태로 만든 뒤 약 2,100℃의 고온으로 가열, 원료들을 용융시키게 된다. 마지막 3단계는 냉각이다. 용융물을 2주일여에 걸쳐 천천히 식히면 물리·화학적 작용에 의해 결정화가 이뤄지면서 대형 인공 사파이어 원석을 얻을 수 있다. 사파이어 글래스는 이 원석을 용도에 맞춰 다이아몬드 커터로 절단·가공한 것이다. 이런 사파이어 글래스는 동일 크기의 고릴라 글래스 대비 1.6
배가량 더 무겁다. 하지만 탁월한 경도 덕분에 더 얇게 가공이 가능해 디스플레이의 중량이 증가될 우려는 없다는 것이 GT 어드밴스트의 주장이다.
다만 인공 사파이어는 100% 순수한 산화알루미늄 결정체이어야지 공정과정에서 불순물이 들어가는 등의 결함이 생겨서는 안 된다. 그때 는 작은 충격에도 손쉽게 부서질 수 있다.
고릴라와의 진검승부
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파이어 글래스는 결국 아이폰6에 채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GT 어드밴스드는 애플과의 계약 파기로 파산위기에 몰렸다.
관련업계는 이를 놓고 디스플레이용 강화유리로서 사파이어 글래스가 지닌 맹점들이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실제로 일부 전문가들은 사파이어 글래스가 아직 많은 단점을 지니고 있으며, 알려진 것처럼 금강불괴의 존재도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사파이어 글래스는 제작시간이 고릴라 글래스의 4,000배에 달하고, 제조공정에 투입되는 에너지는 100배 이상이다. 그만큼 양산이 어렵고, 환경 유해성도 크다. 또한 이는 제조비 상승으로 이어져 고릴라 글래스보다 약 10배 비싸다. 사파이어 글래스를 채용하면 아이폰의 제조단가가 최소 100달러 상향될 것이라는 조사결과도 나와 있다.
빛 투과도도 사파이어 글래스가 비교열위에 있다. 그래서 기존과 동일한 화면밝기를 유지하려면 더 많은 배터리 전력을 소모해야 한다. 특히 코닝은 자체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사파이어는 경도가 강할 뿐 강도는 고릴라 글래스가 낫다고 강조한다.
두께 1㎜의 두 글래스를 45분간 스크래치 실험한 뒤 압력을 가했더니 고릴라 글래스는 198㎏까지 버틴 반면 사파이어 글래스는 73㎏에서 파손됐다는 것.
이에 코닝은 손목시계와 달리 크기가 크고, 외부 충격에도 자주 노출되는 휴대폰의 경우 사파이어 글래스 채용이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시‘ 기상조’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사파이어 글래스도 이온 강화 공정과 유사한 화학처리를 통해 주목할 만한 강도 향상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릴라 글래스와 사파이어 글래스의 진검승부는 시간의 문제다.
이 싸움에서 소비자는 손해 볼 것이 없다.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두 진영의 치열한 기술혁신 경쟁이 가져다줄 혜택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남겨질 테니 말이다.
고릴라 vs 사파이어
고릴라 글래스
구조 이온 강화 알루미노규산염 유리
모스 경도 6.8
특징 디스플레이 강화유리 시장 49% 점유
사파이어 글래스
구조 합성 산화알루미늄 결정체(인공 합성 사파이어)
모스 경도 9
특징 강력한 스크래치 내성
사파이어 글래스 스마트폰
휴대폰 화면에 사파이어 글래스를 채용하려는 시도는 애플이 처음이 아니다.
베르투 티(Ti)
1,000만원대의 명품폰
3.7인치(9.4㎝) 사파이어 글래스 터치스크린을 탑재한 ‘티’는 럭셔리 휴대폰 브랜드인 베르투의 제품답게 구석구석 명품의 품격이 배어있다. 바디는 티타늄, 스피커는 뱅앤올룹슨의 작품이며 카메라를 제외한 휴대폰 뒷면 전체가 고급 가죽으로 마감돼 있다. 기본모델인 ‘블랙’의 가격이 무려 9,600달러로 악어가죽을 사용한 ‘블랙 엘리게이터’는 1만2,800달러, 최상위 모델 ‘티타늄 레드 골드’는 1만,9,900달러에 이른다. 과연 누가 살까 싶겠지만 호텔예약, 골프장 부킹 등 베르투 고객들에게 제공되는 고품격 컨시어지 서비스에 힘입어 유럽, 중동, 중국의 상류층과 부호들로부터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교세라 브리거디어(Brigadier)
러기드 스마트폰
유명 탐험가 베어 그릴스와 공동 개발한 러기드 스마트폰. 4.5인치(11.4㎝) 사파이어 글래스 터치스크린, 업계 최고 수준인 IP68 등급의 방수·방진 성능 등 아웃도어 환경에 최적화된 설계를 갖췄다. 특히 펜타곤이 지정한 내구성 표준인증에서 810G 등급을 획득해 충격과 진동, 고온, 저압, 다습한 환경에서도 정상작동을 보장한다. 특징적 사실은 이 휴대폰에 스피커가 없다는 점이다. 대신 터치스크린 뒤쪽의 액추에이터가 진동을 통해 소리를 전달하는 골전도 방식을 채택했다. 덕분에 시끄러운 곳에서도 선명한 통화품질을 느낄 수 있다.
100달러 사파이어 글래스를 채용하면 아이폰의 제조단가가 최소 100달러 상향될 것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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