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30대그룹은 지금] 삼성그룹

이재용의 삼성<br>어디로 향하나

삼성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재용의 삼성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계열사 구조조정에서 최근 인사에 이르기까지, 삼성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새 삼성의 과제는 무엇일까?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변화보단 안정을 선택했습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최근 인사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2월 초 발표된 삼성전자 인사에선 변화의 폭이 크지 않았다. 삼성전자 안팎에서 예상했던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었다.

현재 삼성그룹은 숨 가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제일모직이 패션사업을 떼어내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에 넘겨주는 것을 시작으로 같은 달 삼성SDS가 삼성SNS를 흡수합병했고, 10월엔 삼성디스플레이가 코닝에 삼성코닝정밀소재 지분을 매각했다. 11월에는 삼성에버랜드가 급식 식자재 사업을 ‘삼성웰스토리’로 물적분할하고 건물관리사업을 에스원에 넘겼다. 올 3월엔 삼성SDI가 옛 제일모직 합병을 결의한 데 이어 4월엔 삼성종합화학이 삼성석유화학을 합치기로 결정했다. 삼성종합화학과 삼성 SDI 통합법인은 각각 6월과 7월에 출범했다. 9월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을 결정했지만 주주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11월엔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을 한화에 매각할 것이라는 발표가 이어졌다. 또 11월 삼성SDS 상장에 이어 12월 18일에는 제일모직이 상장됐다. 보는 이조차 숨 가쁠 정도로 이합집산과 IPO가 계속됐다.

그중에서도 주변을 가장 놀라게 한 건 계열사 매각이었다. 이건희 회장이 투병 중인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단독으로 2조 원대 초대형 빅딜을 수행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고 이병철 선대 회장도, 이건희 회장도 이처럼 대규모로 회사를 처분한 선례가 없었다. 재계 관계자는 이는 다른 말로 “이재용 부회장 체제가 본격 가동했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실권을 잡지 않고선 칼자루를 이렇게 크게 휘두를 수 없다”는 게 그의 논지였다. 동시에 이 부회장의 과감한 결단력을 엿볼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자연히 사람들은 연말 인사에 촉각을 세웠다. 이건희 회장이 심장마비로 쓰러진 5월 이후 첫 정기 인사였다. 이 부회장이 실권을 잡은 뒤 집행하는 첫 정기 인사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대규모 인사조정을 예상했다. 특히 삼성전자, 그중에서도 모바일 사업부에 초점이 모아졌다. 사업재편을 위한 필요와 명분이 모두 맞아떨어졌다.

삼성전자는 삼성그룹의 핵심이다. 그룹이 벌어들이는 돈(영업이익)의 92%가 삼성전자에서 나온다(상장사 2013년 실적 기준). 이 부회장이 그룹을 장악하려면 먼저 삼성전자를 장악해야 한다. 최대주주가 된다고 그룹을 저절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과거 이건희 회장은 “회장에 취임한 이후 가족과 회사 구성원을 설득하는 데 5년이 걸렸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40대인 이 부회장보다 삼성전자에 더 오래 근무했고, 삼성전자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영진들이 없을 수 없다. 이 부회장에게 이들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 부회장에겐 자기 편이 필요하다. 자기 사람을 얻거나, 혹은 자기 사람을 집어 넣어야 한다.

사업재편 명분도 맞아 떨어졌다. 삼성전자 모바일 사업부는 올해 내내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신상필벌로 유명한 삼성이니, 조직이 개편되더라도 반발할 수가 없다. 새 주인에게 칼자루가 쥐어졌고, 그걸 휘두를 명분도 있었다. 더구나 이 부회장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계열사를 매각하는 결정력까지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아니 못 휘둘렀을 수도 있다. 여기에 이 부회장의 고민이 있다.

이는 이건희 회장이 그룹을 승계했을 때 상황과 유사하다. 이 회장은 1988년 취임 후 여러 차례 경영 철학과 포부를 임직원에게 제시했지만 시원한 반응을 얻지 못했다. 선대 회장과 호흡을 맞춰온 경영진은 선례와 타성에 머물러 있었다. 삼성은 여전히 선대 회장의 그늘 아래 있는 존재였으며, 선대 회장과 함께한 경영진의 영역이었다.

이 회장이 삼성을 장악할 수 있던 계기는 반도체 사업이었다. 이 회장이 직접 주도한 반도체 사업은 후발주자로 시작했음에도 1993년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1등으로 올라섰다. 경영 능력을 입증한 이 회장은 반도체에서 성공한 경영 방식으로 그룹을 근본부터 바꿔나갈 수 있었다. ‘삼성웨이’를 공동집필한 송재용,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책에 이렇게 기술했다. “이건희 회장은 승계 이후 ‘수성’보다는 새로운 창업, 즉 제2창업을 선택했으며, 그에 따른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이런 면모는 혁신 초기에 임직원에게 매우 생소하게 보일 수 있었으나, 혁신이 지속 되자 임직원이 진심으로 참여하는 촉진제로 작용했다.” 기존의 주력 사업을 개혁하며 에너지를 소진하는 대신, 신규 사업을 핵심사업으로 키운 것이다. 마치 가신들의 영향력이 큰 구 도읍을 개혁하는 대신 새 도읍으로 천도해 새나라를 만들어간 것이다.

이 회장에게 반도체가 있었다면, 이재용 부회장에겐 사물인터넷(IoT)이 있다. 사물인터넷은 미래의 먹거리로 각광 받고 있는 산업인 동시에 삼성전자가 경쟁력을 가진 분야다. 통신과 가전의 컨버전스 산업으로 두 가지 모두 삼성전자가 현재 리드하는 분야다. 하지만 이는 곧 이건희 회장 시대의 핵심 경영진이 포진해 있는 곳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그림자가 짙은 곳이다. 때문에 이 부회장의 활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이다. 주식 절반이 해외 투자자의 손에 있다. 오너 가족 지분은 4.07%로 계열사가 가진 지분까지 합치면 15.30%다(12월 5일 기준). 오너가가 순환지배구조를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지만, 주주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희 회장은 주주들의 탄탄한 신뢰를 얻고 있었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아직 검증 단계다.

주주들에게 더욱 친숙한 얼굴은 신종균 삼성전자 IM부문 사장이다. 신 사장은 갤럭시 신화의 주인공이다. 갤럭시 S1부터 S5까지, 개발에서 출시 판매까지, 스마트폰 후발주자에서 세계 1위에 오르기까지 언제나 신 사장과 이건희 회장은 함께 있었다. 그를 대신할만한 카드는 아직 찾기가 쉽지 않다.

스마트폰 사업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파죽지세 같던 이전 성장세를 기대할 수 없다. 경쟁업체들의 진출로 가격경쟁은 치열해지고, 수익성은 더욱 떨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새로운 대안이 나오기까지 하강 국면을 벗어나기 어렵다. 인사를 서둘렀다간 1년 뒤 자칫 비난이 이 부회장에게 돌아올 수 있다. 이 부회장은 변화보단 안정을 택했다.

12월 삼성전자 인사와 조직개편은 소규모에 머물렀다. 디지털솔루션(DS), 소비자가전(CE), 정보통신모바일(IM)부문으로 나뉜 사업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대표이사도 권오현 부회장과 윤부근 사장, 신종균 사장 체제가 그대로 유지됐다.

IM부문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은 이하 경영진이 짊어졌다. IM 산하 무선사업부 소속 사장 7명 가운데 3명이 퇴임했다. 무선사업부의 이돈주 전략마케팅실장과 김재권 글로벌운영실장, 이철환 개발담당 사장이 물러났다. 홍원표 미디어솔루션센터(MSC) 사장도 글로벌마케팅전략실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MSC는 차세대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타이젠’ 개발 등을 주도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MSC 주요 부서는 연관 사업조직 안으로 재배치됐다. 무선관련 기능은 무선사업부로, 빅데이터센터는 소프트웨어센터로 이관됐다. 가전이나 반도체 부문은 큰 변화가 없었다. 그룹 사장단 인사 역시 11명으로 예년 16~18명에 비해 적었다.

신설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사물인터넷 조직은 등장하지 않았다. 사물인터넷은 통신과 가전의 컨버전스 산업이다. 그런 까닭에 일각에선, 소비자가전 부문과 정보통신모바일 부문의 조직이 일부 통합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조직이 어떻게 구성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렇지만 사물인터넷 사업부를 독립 조직으로 두고, 이 부회장이 직접 운영하는 방안도 예상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기존 경영진과 충돌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부회장 자신의 성공 신화도 기록할 수 있다. 마치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라는 코뚜레로 그룹을 움직일 수 있었다면, 이 부회장은 사물인터넷이란 새 코뚜레로 삼성을 얻는 시나리오가 가능해진다.

사물인터넷은 창조 산업이다. 가전 사업이나 스마트폰 사업의 연장이 아니다. 이전까지 삼성전자가 선도해온 하드웨어 산업과는 전혀 다른 산업이다. 삼성전자가 타이젠을 비롯한 소프트웨어 사업에서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도 하드웨어 중심의 기업 문화 때문이다.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선 새로운 DNA가 필요하다.

창조 산업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대규모 시설투자나 머릿수로도 얻을 수 없다. ‘창의 정신’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도 불가능하다. 창의 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조직문화와 경영시스템이 필요하다. 실패가 용인되고, 실패로부터 학습하는 것이 권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CEO가 지속적으로 이 조직을 뒷받침해주고 실험을 보장해줘야 한다. 때문에 삼성웨이의 저자들은 “기존 조직은 ‘오른손잡이’ 조직으로 유지하되, 창조 경영에 맞는 별도의 왼손잡이 조직을 만들어 신성장동력을 주도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최근연구에 따르면, 양손잡이 조직을 도입한 기업 중 90% 이상이 창조적 혁신제품 개발에 성공하며 높은 성과를 보였다. 삼성전자, 아니 삼성그룹 전체에 필요한 혁신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선대의 삼성을 뜯어 고치며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변신시켰다. 좀처럼 ‘양에서 질’로 변하지 않는 기업 문화를 바꾸기 위해, 전화기 10만 대를 불태우는 퍼포먼스까지 보여주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을 얻기 위해선, 창의의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물인터넷이 그 시금석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