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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 땅콩 회항과 타이거 우즈 사건

INSIGHTS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 교수


지난해 12월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기내 난동 사건이었다. 이 사건 하나가 청와대 문건 유출 등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모두 다 덮을 정도였으니 국민적 관심과 공분이 어느 정도였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고작 땅콩 한 봉지가 발단이 돼 결국 항공기까지 되돌리게 한 이 희대의 사건은 대한항공 측의 어설픈 대응이 더욱 화를 키웠다. 국민들은 ‘갑질’로 표현되는 상식을 벗어난 강자의 횡포에, 또 오너의 딸을 보호하기 위해 어영부영 사건을 덮으려 한 대한항공 측의 태도에 분노했다.


땅콩 회항 사건 이후 대한항공은 주가가 폭락하고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등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오너인 조양호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문까지 발표했지만 국민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간 대한항공은 친절한 서비스로 국내 최고 항공사라는 이미지를 쌓아왔으나, 이제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땅콩 회항 사건은 과거 자주 언론 지면을 장식했던 ‘CEO 리스크’의 한 예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CEO 리스크는 CEO 자신의 언행이나 건강 문제 등이 기업의 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쓰이는 용어다. 넓게는 CEO 가족이나 친지 등이 일으킨 사회적 물의까지 포함된다. CEO 리스크를 겪은 기업들은 사건의 당사자가 어떤 자세를 취했느냐에 따라 때론 쉽고 때론 어려운 과정을 겪기도 했다.

재밌는 건 최근에는 CEO 리스크가 ‘임직원 리스크’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이제는 CEO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을 구성하는 모든 임직원의 언행이 모두 기업의 이미지와 직결되는 세상이 됐다. 이는 중견 임원이든 창구 계약직이든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회사 구성원 중 누군가가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말 한마디가 인터넷과 SNS를 통해 확산 되고 재생산되어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오는 사례를 꽤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임직원 리스크에 속하는 ‘임직원’의 범주는 사전적인 의미보다 좀더 광범위하다. 기업과 직접적인 임직원 계약관계를 맺지 않은 건물 관리원이나 주차장 요원, 광고 모델까지 포함된다. 이들 중에선 특히 광고 모델이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기업은 선제 조치를 하곤 한다. 주로 해당 모델이 찍은 광고물들을 전부 회수하거나 중지하는 식이다.

하지만 그런 평범하고 빤한 대응이 아닌, 좀 더 특별한 방식으로 임직원 리스크 데미지를 최소화한 사례도 있다. 타이거 우즈 Tiger Woods와 스포츠용품 회사인 나이키 Nike의 사례가 좋은 예다.

세계 최고의 골프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타이거 우즈는 스포츠용품 회사인 나이키의 전속모델이었다. 나이키는 우즈가 프로로 데뷔하던 1996년, 그와 5년간 광고 모델 계약을 했다. 둘의 첫 계약이었다. 당시만 해도 우즈가 얼마만큼 잘할 수 있을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나이키의 결정은 큰 도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즈는 데뷔 직후부터 우수한 성적을 올리며 골프 황제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이키는 큰 광고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2001년 계약이 만료되자 다시 5년을 추가했고, 2006년에는 연간 3,500만 달러라는 엄청난 모델료를 지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또다시 계약이 연장됐다. 둘은 10년 넘게 관계를 이어가며 ‘나이키 =타이거 우즈’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로 밀착된 이미지를 형성했다.

그러던 중 큰 사건이 발생했다. 2009년 우즈의 교통사고를 계기로 그의 여러 불륜 사건들이 세상에 알려졌다. 톱스타의 은밀한 사생활이었기에 이 사건의 충격은 대단했다. 세계 주요 언론들이 모두 주목할 정도였다. 급기야 우즈 부부는 별거하게 됐고 2010년 8월 이혼 도장을 찍으면서 우즈의 불륜 스캔들은 잠정적으로 마무리됐다.

불륜 사건 이후 우즈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 우즈는 전 부인에게 약 5억 달러로 추정되는 위자료를 지급하고 빈털터리가 됐다. 우즈를 모델로 쓴 광고사는 모두 큰 피해를 보았다. 특히 우즈와 긴밀한 관계였던 나이키는 주가까지 급락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PGA의 인기가 급전직하하며 골프 경기를 중계하는 TV 방송국들마저 시청률이 뚝 떨어지는 타격을 입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우즈가 필드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땐 주위 환경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를 경외하던 시선은 차가운 경멸의 눈초리로 변해 있었다. 우즈 자신의 기량도 예전만 못했다. 예선 컷오프를 당하는 등 수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초라한 복귀였던 셈이다.

우즈와 그를 둘러싼 환경이 너무나도 많이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은 것도 있었다. 우즈의 캡모자 앞에 큼직하게 박힌 나이키 로고였다. 많은 광고주가 불륜 스캔들이 터진 후 우즈를 떠났지만 나이키는 묵묵히 그 곁을 지켰다. 우즈가 복귀할 때 그를 다시 광고 모델로 기용한 곳도 나이키뿐이었다.

당시 나이키가 우즈 복귀전에 맞춰 제작한 광고는 충격적이었다. 흑백 화면 속에 등장한 우즈는 카메라 정면을 응시했다. 슬픈 듯 침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우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우즈의 아버지 얼 우즈 Earl Woods의 내레이션이 등장했다. 우즈를 훈계하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에 그는 우즈에게 “이번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었니? (Did you learn anything?)”라고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이 광고가 다른 의미로 충격적인 이유는 얼이 이미 고인이 된 후에 나왔다는 점 때문이었다. 나이키는 얼의 목소리를 2004년에 방송된 우즈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일부 내용을 따왔다. 나이키가 우즈에게 그의 아버지 목소리를 빌려 훈계를 한 셈이다. 나이키는 우즈에 대한 막연한 동정과 연민을 이끌어내는 대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한편 우즈로선 진정성 있는 반성의 모습을 내비칠 수 있었다.

이 광고는 큰 화제가 됐다. 광고주였던 나이키로서도 성공적인 광고였지만 우즈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 이미 작고한 부친의 목소리가 등장해 우즈를 꾸짖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나이키나 우즈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상당히 잦아들게 할 수 있었다. 교훈을 얻었느냐는 마지막 질문은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반성과 사죄, 재발 방지의 각오까지 함축적으로 담아낸 핵심 카피였다.

만약 나이키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멋진 자세로 골프를 치는 우즈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이 같은 효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비난 세례에 못 이겨 광고 자체를 중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당시 우즈가 다시 광고에 나서는 것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비판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우즈 입장에서 상당히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준 광고였기에 그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우즈가 어려워졌을 때에도 꾸준히 옆을 지킨 나이키였기에, 이 광고에서 기업과 광고 모델 간의 ‘우정’을 떠올린 시청자도 많았다. 이는 사건의 당사자와 기업 모두 진정성 어린 모습을 보여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시 우리나라의 임직원 리스크와 그 대응 사례로 되돌아와 보자. 땅콩 회항 사건은 사건의 주체가 임원이자 오너의 가족이란 점에서 우즈 불륜 사건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인물이 지닌 영향력이나 사건의 파괴력 측면에선 상당히 비슷한 측면도 있다. 물론 사건 당사자와 기업이 보여준 대응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땅콩 회항 사건에서 잘 드러난 바와 같이 우리나라 기업들은 진정성 어린 사과에 인색한 경우가 많다. 최고 책임자나 사건 당사자가 직접 등장하기 이전에 아랫사람이 먼저 나서 사건을 무마하거나 축소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나서야 비로소 고위임원이나 사건의 당사자가 등 떠밀려 언론에 나오는 경우도 많다. 이는
비단 기업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이 모든 과정을 매우 집약적으로 보여준 이번 땅콩 회항 사건을 기업들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국민들이 왜 이토록 성을 냈는지, 애초에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었던 사건이 왜 이렇게 커졌는지 제대로 살펴볼 일이다.

대한항공이 이번 사건을 수습하고 이전의 이미지를 회복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명성을 쌓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이를 잃는 것은 한순간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련자들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 사내 문화의 개혁이 뒷받침된다면 그 시간은 의외로 상당히 짧아질 수도 있다. 미국의 나이키와 우즈 사건이 좋은 예다. 물론 그런 반성과 개혁 내용을 외부에 잘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 대한항공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 지켜보는 일도 흥미로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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