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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조용노 파타고니아코리아 대표

"환경보존이 회사 성장보다 더 중요<br>꼭 필요할 때만 우리 제품 사세요"

'리액턴스 효과(Reactance Effect)' 라는 말이 있다. '리액턴스'란 전기 저항을 뜻하는 물리학 용어에서 비롯된 말로, 사람들이 선택의 자유를 제약당할 때 느끼게 되는 심리적 반작용을 뜻한다. 우리말로는 '청개구리 심리'가 리액턴스와 유사한 뜻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73년 회사 설립 후 줄곧 자사 상품을 사지 말라(?)고 강조해왔음에도 오히려 더 잘 팔리는 브랜드가 있다. 마케팅이 아닌 기업철학을 내세워 성장한 이 독특한 기업은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다. 파타고니아는 2013년 파타고니아코리아를 설립하며 한국 아웃도어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미국 등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별다른 광고는 하지 않고 기업철학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조용노 파타고니아코리아 대표에게 파타고니아 한국 입성기와 기업철학을 들어봤다.
유부혁 기자 yoo@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2011년 봄, 일본 도쿄도 시부야 하라주쿠 시내를 거닐던 한 사내가 파타고니아 재팬 직영점 앞에 멈춰 섰다. 가만히 매장 안을 들여다보던 사내는 흥미롭다는 듯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제품과 인테리어를 샅샅이 훑어본 그는 매장 직원에게 파타고니아 브랜드에 대해 꼼꼼히 물었다. 한참을 지나 매장을 나선 사내는 결심이 선 표정이었다. 그는 혼잣말로 되뇌었다. "아웃도어 사업 해봐야겠다."

이 사내는 조용노 네오미오 사장이었다. 그는 반스, 잔스포츠, 팀버랜드, 뉴발란스 등 해외 스포츠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와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지금은 파타고니아코리아 대표도 맡고 있다. 네오미오는 조 대표가 해외 스포츠 브랜드를 국내에 유통시키기 위해 만든 회사다. 일본에 갔던 이유도 네오미오에서 유통시킬 또 다른 브랜드를 물색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하루주쿠에서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를 발견하곤 그 브랜드에 매료됐다.

"사실 파타고니아를 국내에 처음 들여온 건 제가 아닙니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조용노 대표가 내뱉은 첫마디다. 의외였다. 그동안 언론뿐 아니라 업계 관계자들도 파타고니아를 국내에 처음 들여온 건 조 대표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1992년 서울 중구 무교동 코오롱빌딩 지하 1층에 위치했던 파타고니아 매장이 국내 1호점이다. 23년 전 파타고니아를 국내에 들여온 인물은 전병구 안나푸르나 회장. 그는 국내에 등산용품을 수입·판매하기 시작한 1세대 산악인으로, 2010년부터 작년까지 한국산악회 회장을 맡았다.

조 대표는 "당시 코오롱빌딩에 입주해 있던 코오롱스포츠에 근무하고 있었지만, 그 시절에 파타고니아를 접했던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그때는 아웃도어 열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훨씬 전이었다. 게다가 파타고니아 제품 가격도 저렴한 편이 아니었다. 조용노 대표가 파타고니아에 처음 관심을 가진 2011년 당시 국내 파타고니아 매장은 고작 8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조 대표는 파타고니아의 브랜드 가치와 잠재력을 주목했고, 지난 2013년 파타고니아와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파타고니아 입장에선 창사 이래 첫 합작법인 설립이었다. 조 대표는 당시 국내에 있던 파타고니아 매장 8곳 중 6곳을 인수했다.

파타고니아 창립 후 첫 합작법인
조용노 대표는 "파타고니아 측과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고 회상했다. "2011년 당시만 해도 파타고니아는 합작법인을 설립한 경험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국내에서 아웃도어 열풍이 거세지자 제일모직, LF(당시 LG패션), 영원무역, 코오롱스포츠 등 국내 유수의 패션 · 스포츠웨어 기업들이 해외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를 들여오기 위해 경쟁하던 때였어요. 이들 기업은 파타고니아에도 관심이 많았죠. 주변에서는 다들 파타고니아와의 계약이 어려울 거라며 말렸습니다. 제 회사가 대기업에 비해 자본력이나 영업력, 유통망 등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파타고니아라는 기업의 철학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자본력, 영업력, 유통망은 크게 중요하지 않겠더라고요. 무엇보다 파타고니아가 성장이라는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자신감을 갖게 됐죠."

조 대표는 당시 일을 떠올리자 신이 난 듯 환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는 안 돼도 좋다는 심정으로 합작법인을 제안했습니다. 자연을 중시하는 파타고니아의 정신에 백 퍼센트 공감했기 때문이었어요. 이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파타고니아가 추구하는 철학과 원칙에 대해 묻고 공부했습니다. 1년 정도 지나니 제 진정성을 알아주던군요. 합법적인 설립 양해각서(MOU)를 맺은 날, 파타고니아 측이 곧바로 통장에 자본금을 입금했더라고요. 보통 본계약 이후 자본금을 입금하는데 말입니다. 신뢰를 표시한거죠. 일본에서 파타고니아의 매력에 빠진 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매장을 열기까지 2년 8개월이 걸렸습니다." 조 대표는 이 말을 하곤 잠시 몸을 등받이에 기대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파타고니아가 그토록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기자의 물음에 조 대표는 다시 몸을 앞으로 숙이며 답했다. "간단합니다. 자연이 없으면 기업도 존재할 수 없다는 거죠. 파타고니아 입장에선 자연이 기업의 '최대주주'입니다.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해 상장도 하지 않습니다. 저도 이 점이 궁금해서 언젠가 이본 취나드 Yvon Chouinard 파타고니아 창업자 겸 회장께 질문했더니 '상장하면 기업은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려면 불필요한 물건을 만들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면 낭비가 발생하고 환경에도 해롭다. 수요에 맞춰 성장해야지 공급을 늘려 시장을 키우는 데는 반대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파타고니아에는 '철학 담당 부사장'과 '환경 담당 부사장'이란 직책도 있습니다. '환경을 지키자'는 구호가 리더뿐 아니라 전체 직원 그리고 소비자에게까지 정확히 전달되게 하기 위해섭니다."

그런데 현재 국내 아웃도어 시장 상황이 묘하다. 파타고니아가 출사표를 던진 2013년 정점을 찍은 아웃도어 업계가 뚜렷한 매출 하락세를 보이며 정체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아웃도어 업계 동향에 대해 조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아웃도어 업계 매출 규모가 5,000억 원대에서 6조 원대로 성장하는 데 12년 정도 걸렸습니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빠르게 성장했죠. 하지만 작년 대부분 아웃도어 브랜드가 두 자릿수 이상의 매출액 감소율을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 시내 주요 백화점은 20% 이상 매출이 줄었다고 해요. 아웃도어 시장은 한동안 국내 의류업계의 성장을 이끌어왔지만, 이제는 변동성이 큰 시장이 돼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내 아웃도어 기업들은 고액을 들여 유명 연예인 모델을 기용해 경쟁하고 있어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길뿐더라 소비자 가격만 상승시키잖아요."

기자: 그럼 파타고니아코리아는 국내 대다수 아웃도어 브랜드와는 다른 마케팅 전략을 쓴다는 겁니까?
조 대표: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와 기업철학을 알리는 데만 충실할 겁니다.
기자: 파타고니아코리아 역시 파타고니아 본사와 마찬가지로 매출 성장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는 뜻인가요?
조 대표: 정말 필요한 구매 수요가 아니라면, 저희 회사는 제품을 많이 팔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제 아무리 미국 2위 아웃도어 브랜드라지만 국내 시장 매출이 500억 원에도 못 미치는 기업 대표의 다짐이 매출액 증가가 아닌 기업철학 공유라니? 조 대표는 기자의 의구심을 알아챈 듯 파타고니아의 광고 이미지 몇 개를 보여줬다. 거기에는 이런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Don't Buy This Jacket(이 재킷은 사지 마세요)', 'Buy Less Buy Used(적게 사고 헌 옷을 사세요)', 'Better Than New(새 상품보다 좋아요)'.

철두철미한 친환경 브랜드 철학 눈길
조 대표는 말했다. "상품 불매운동 슬로건이나 환경단체 캠페인 문구가 아닙니다.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아 브랜드를 홍보하려는 속셈도 아니고요. 게다가 'Don't Buy...'라는 광고 문구는 2011년 블랙프라이 데이 아침, 뉴욕타임스에 게재되기도 했습니다. 파타고니아는 왜 이 제품을 사지 말아야 하는지를 제품 하단에 설명해두었죠. 꼭 필요하다면 자사 제품을 사서 평생 보증제도를 이용하되 환경을 오염시키는 불필요한 소비는 하지 말라는 취지로 기획한 광고 캠페인입니다."

파타고니아는 1993년부터 아웃도어 업계 최초로 플라스틱병을 재활용해 플리스 Fleece 원단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으며, 1996년부터는 제초제, 살충제, 고엽제, 합성비료 등을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 목화에서 얻은 면만 사용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또 2013년에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Wornwear(낡아빠진 옷) 캠페인'을 통해 헌 옷을 새 옷으로 교환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나아가 작년부터는 모든 다운 제품에 '트레이서블 다운 Traceable down'을 사용하겠다고 밝히면서 또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트레이서블 다운이란 죽은 거위나 오리의 깃털만 사용해 만든 다운 제품을 뜻한다. 사료를 강제로 먹여 키웠거나 살아있는 거위와 오리에서 얻은 다운은 사용하지 않는다.

'환경을 해치면서까지 성장하고 싶지 않다'는 이 철두철미한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는 그토록 관심 없다(?)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08년 이후부터는 글로벌 시장 매출이 매년 50%씩 급성장하고 있다. 조 대표는 "한국 시장도 아직 점포는 25개에 불과하지만 점포당 매출이 눈에 띄게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파타고니아가 정체기에 접어든 한국 아웃도어 시장에서 어떤 성과를 올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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