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억만장자 vs 거대 석유업체

정치색을 떠나, 점점 더 많은 세계 최고 부자들이 화석 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에 승부를 걸고자 의기투합하고 있다. 그들이 가진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분야에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워드 맥널리 Ward McNally 도 처음부터 친환경 기술의 지지자가 될 생각은 아니었다. 올해로 159년 된 여행 기업 랜드 맥널리Rand McNally 의 창업자 5대손인 그는 1997년 가문의 비즈니스를 매각하는 데 일조한 인물이다. 맥널리(43)는 현재 부자들에게 사모 펀드 투자에 대해 조언해주는 시카고 회사 맥널리 캐피털 McNally Capital 의 공동 창업자로 직접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그의 관심사는 돈이지, 환경 보존은 아니다. 그러나 2010년 어느 날, 석유로 큰돈을 번 한 억만장자가 고민을 안고 그를 찾아왔다. 그 고객은 가족의 핵심 수입원인 화석연료의 위험을 상쇄하기 위해 친환경 기업에 투자하고 있었다. 맥널리는 “우리는 친환경 기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며 “그 고객은 그 투자에 대해 훌륭한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진입 장벽이매우 높다고 불평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억만장자는 지식이 부족해 스마트 그리드 인프라와 태양열, 그리고 풍력 발전 같은 분야에서 예리한 투자 결정을 하기 어렵다고 푸념했다. 그는 시간과 비용을 직접 투자해 대규모 전문가 팀을 꾸리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맥널리는 그 순간 갑자기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억만장자들이 지식과 자금을 공유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투자 기회를 공유할 수 있도록 친환경 투자자 네트워크를 만드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몇 달 후 맥널리는 ‘친환경 기술 조합(the Clean Tech Syndicate)’이라는단체를 출범시켰다. 시카고에 본사를 둔 이 투자 그룹에는 그를 비롯해 친환경 기술 분야에 투자하고자 하는 11개의 가족 자산 운용사들(석유 부자들도 합류했다)이 참여했다. 이 가문들의 순 자산 총액은 무려 600억 달러에 달한다. 현재까지 이 조합은 친환경 기술에 14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맥널리에 따르면 이미 투자한 돈도 수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 가문들의 정체를 밝히지 않을 것이다. 상위 1% 부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들도 자신의 사생활을 지키는 데 열심이기 때문이다.

친환경기술조합은 에너지금융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최신 트렌드 중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이 트렌드란 미국 최상위 부자들이 친환경기술에 엄청난 자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기후변화를 막는 데 자신의 재산을 이용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다. 또 누군가는 이것이 21세기의 가장 큰 투자 기회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이 두 가지 이유 모두 때문에 투자를 진행한다. 동기야 어쨌든, 이들은 모두 큰 수익을 기대한다. 비영리 기구인 에너지 이노베이션 Energy Innovation 의 니콜 슈츠 Nicole Schuetz —그는 이 분야에 관한 몇 안 되는 연구를 진행한다—는 “내가 접했던 모든 가족 자산 운용사들은 경쟁력 있는 수익이나 시장가격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이들은 미래 세대를 위해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주머니가 엄청나게 두둑한 이 사람들은 정확히 누구일까? 확실한 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포춘이 진행한 몇 달간의 취재 끝에 흥미로운 이름들이 꽤 많이 드러났다. 하얏트 호텔 체인으로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인, 개인 자산이 15억 달러나 되는 니컬러스 프리츠커Nicholas Pritzker 도 적극적인 친환경 기술 투자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자신의 타오 캐피털 파트너스Tao Capital Partners 를 통해, 테슬라 모터스 Tesla Motors 와 솔라 시티 Solar City 에 초기 투자를 했다. 암웨이 Amway 의 상속자이자 골수 공화당원인 딕 데보스Dick DeVos 는 쓰레기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하는, 폐열발전기술을 연구하는 회사에 투자했다. 맥널리가 만든 조합 외에, 부유한 친환경 투자자로 구성된 다른 거대 네트워크로는 ‘친환경 기술, 재생 가능 에너지 및 환경의 기회(Cleantech, Renewable Energy, and Environmental Opportunities,CREO)—50개의 가족 자산 운용사로 구성돼 있고, 총 투자 가능 자산은500억 달러다—’라는 긴 이름의 단체도 있다. CREO는 정기적으로 비공개회의를 열어 친환경기술뿐만 아니라 폐수, 습지 복원, 탄소 배출권 및 지속가능 농업 분야의 전망에 대해 논의한다. 억만장자 투자자인 제러미그랜섬Jeremy Grantham뿐만 아니라, 앨 고어 Al Gore 의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을 제작한 이베이 공동 창립자 제프 스콜Jeff Skoll 도 이 회의에 대표단을 보내고 있다.

최상위 부자들의 청정에너지 투자가 전례 없는 일은 아니다. 수년간 빌 게이츠Bill Gates , 조지 소로스 George Soros , 리처드 브랜슨 Richard Branson, 전 뉴욕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 Michael Bloomberg , 그리고 억만장자 헤지 펀드 매니저 톰 스테이어Tom Steyer 등 일부 유명 기후변화 운동가들이 주로 자선활동을 통해 청정에너지를 지원해왔다. 그들은 때때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자하기도 했다(게이츠의 테라파워Terra Power 지원이 가장 유명한 예다. 이 회사는 새롭고 더 안전한 차세대 원자력 발전소를 개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흐름은? 규모는 작지만, 점점 더 많은 억만장자가 비공개로 청정에너지 기업과 프로젝트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며 수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가 수년 안에 저탄소 경제로 이행할 것이라는 거대한 예측을 바탕으로 한다.

맥널리는 고객들에 대해 “이 조합에 속한 가문들은 친환경 기술을 물부족, 중국과 인도의 공기 정화 및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하기 위한 에너지 절약의 필요성 등 거시적 문제로 촉발된 주제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 미국 서부의 심각한 가뭄이나 중국의 지하수면 감소가 보도되는 상황에서, 폐수 정화용 나노기술 필터나 에너지 효율적인 바닷물 담수화 기술에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공익사업, 자동차, 조명, 물 그리고 식품을 비롯한 많은 에너지 관련 산업도 비슷한 기술 혁신을 맞이할 시기가 됐다. 전 세계은행 총재이자 투자자 제임스 울펀슨 James Wolfensohn의 아들 애덤 Adam 울펀슨—이 가문 역시 CREO네트워크의 일원이다—도 “새로운 친환경 기술 시장은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라며 “이 분야는 구(舊) 경제를 탈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강력한 기득권 세력들은 듣기에 좋은 이 이야기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보수진영 정치인들은 일부 부유한 투자자들에 대해 ‘오마바 행정부 인맥으로 얻은 친환경 기술 보조금에 기생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지난해 여름, 유명한 기후변화 회의론자 제임스 인호페James Inhofe ( 오클라호마 주 공화당 상원의원)가 의장으로 있는 상원 환경공공사업위원회(Senate Environment and PublicWorks Committee)는 ‘환경적 요구의 사슬: 억만장자 단체와 재단이 환경 운동과 오바마의 환경보호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EPA)을 통제하는 방식’이라는 67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인호페 캠페인 후원자 중에는 찰스 코흐Charles Koch 와 데이비드 코흐 David Koch 형제도 있다. 이들은 에너지 기업 코흐 인더스트리스 Koch Industries 를 운영하고 있으며, 재산의 상당 부분을 화석 연료로 축적했다.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차기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거의 8억 8,900만 달러를 쓸 예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현 상황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는 정치인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거대 석유업체들도 에너지 혁신에 그다지 열정적인 태도를 보이진 않는다. 석유업계의 마케팅은 청정에너지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태양열, 풍력 및 다른 친환경 기술이 규모를 형성하게 되기까진—혹시 그렇게 되더라도—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며, 친환경 에너지의 잠재적 영향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석유 회사 CEO들은 약 27조 달러의 화석 연료가 아직 땅속에 매장돼 있기 때문에 에너지 경제의 어마어마한 셈법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학계에 따르면 전 세계가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 블랙 골드’ 를 대부분 그 자리에 놔둬야 한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물론, 엑손 모빌Exxon Mobil , 셰브런 Chevron , 셸 Shell 같은 회사들이 엄청난 액수의 돈을 놓고 그냥 보고만 있진 않을 것이다.

만약 전 세계가 기후 온난화의 영향을 늦추기 위해 화석연료 경제에서 벗어나길 원하면, 억만장자 투자자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일부 전문 투자자들이 친환경 기술 분야에 등을 돌리는 와중에서도, 부자 개개인과 가문들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많은 벤처 자본가들과 기관 투자자들은 긴 투자 기간과 큰 투자 금액 때문에 친환경 기술을 경계하게 됐다. 컨설팅업체 PwC에 따르면, 미국의 친환경 기술 벤처 자본 투자는 2011년 43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작년에는 20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부유한 개인 자산 운용사들은 이 틈을 메울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장기 투자도 겁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냇 사이먼스Nat Simons 는 “우리를 포함한 많은 가문이 친환경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매우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이 분야는상당히 큰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부친 제임스 사이먼스 James Simons 는 헤지펀드 기업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 Renaissance Technologies 를 설립하고, 순 자산 140억 달러를 조성한 인물이다. 현재의 기후변화를 매우 우려하는 아들 제임스는 그의 샌프란시스코 투자 회사 프렐류드 벤처스Prelude Ventures 를 통해 가족의 재산을 투자하고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수익성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가족 자산 운용사가 정확히 얼마나 많은 돈을 친환경 기술에 쏟아붓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친환경 기술 투자가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JP 모건과 비영리 단체 국제네트워크(Global Impact Investing Network, GIIN)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125명의 투자자가 무려 127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전년 대비 19%나 증가한 수치다. 여기에는 친환경 기술, 지속가능 식품 및 여느 사회적 책임을 위한 투자 펀드와 기부금도 포함된다. 이들은 현재까지 총 460억 달러를 투자했다. 가족 자산 운용사들이 여기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은 편이다.

이 금액 중 많은 부분이 벤처 자금으로 쓰이고 있다. 블랙 코럴 캐피털 Black Coral Capital ( 가족 자산 운용사로 친환경 에너지 조합의 창립을 도왔다)의 보스턴 지사를 운영하는 랍 데이Rob Day 에 따르면, 작년 미국에서 가족 자산 운용사가 제공한 종잣돈은 탄탄한 벤처 자본 기업—클레이너 퍼킨스Kleiner Perkins , DBL 인베스터즈 DBL Investors , 록포트 캐피털Rockport Capital 등—이 제공한 금액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데이는 “가족 투자자들은 벤처 캐피털 회사와 헤지 펀드에 자산의 2%, 수익의 20%씩 투자하는 데 점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제 그들은 친환경 기술에 직접 투자하고 있다.”

넥스트 스텝 리빙Next Step Living—보스턴에 소재한 태양열 및 에너지 효율 신생기업이다—의 창립자이자 CEO 제프 채핀Geoff Chapin은 억만장자 벤처 자본가가 특정 기술에 관심을 가지면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증언하고 있다. 채핀은 엔젤 투자를 받았음에도, 블랙 코럴이 2010년 시리즈 A 투자를 결정하기 전까지 회사 규모를 키우지 못했다. 그 이후, 가족 자산 운용사인 블랙 코럴은 이 회사의 성공을 위해 깊이 관여했다. 채핀은 “블랙 코럴은 30명의 다른 잠재적 투자자들을 소개해줌으로써, 우리가 총 7,000만 달러를 유치하는 데 일조했다. 또 지배구조문제에 대한 가이드 라인도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후 다른 가족 자산 운용사들도 블랙 코럴을 따라, 채핀의 회사에 투자했다. 이 중에는 억만장자 투자자인 제러미 그랜섬Jeremy Grantham이 후원하는 이스턴 선캐피털 파트너스Eastern Sun Capital Partners 도 있었다. 2014년 넥스트 스텝 리빙은 전년 대비 70% 오른 1억 달러 매출을 달성했다.

일반적으로 친환경 기술 투자는 넓게 두 가지 범위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벤처 캐피털로, 다소 리스크가 있는 벤처기업에 종잣돈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음으론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있는데, 공익사업 규모의 풍력 및 태양열 발전소, 담수 공장, 그리고 에너지 효율 프로젝트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투자는 벤처 캐피털 투자가 왜소하게 보일 만큼 규모가 크고 위험도가 낮은 투자로 인식되고 있다. 연구기관인 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이낸스Bloomberg New Energy Finance 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2,640억 달러가 친환경 에너지에 투자되고 있다. 그중 상당 부분은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해 이뤄진다. 이 금액이 인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인터내셔널 에너지 에이전시 International Energy Agency 의 추산을 들으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최악의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신속히 저탄소 경제로 이행하길 원한다면, 연간 1조 달러는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목표는 ‘청정 1조 달러 (cleantrillion)’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가족 자산 운용사들이 이 격차를 모두 메울 수는 없지만, 도움을 줄 수는 있다. 전략 자문 회사 퓨어 에너지 파트너스Pure Energy Partners 의 경영 파트너이자 CREO의 공동 창립자 니컬러스 아이젠버거Nicholas Eisenberger 는 “벤처 캐피털과 자본 집약적인 에너지 기술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며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규모를 키워야하는데, 가문들은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컨설팅 업체 패밀리 웰스 얼라이언스Family Wealth Alliance에 따르면, 한 단독 가문 자산 운용사는 현재 1조 2,000억 달러를, 기타 복수가문 자산 운용사들은 5,000억 달러를 관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는 이 중 극히 일부만 청정 기술에 투자하고 있지만, 그 규모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투자의 매력은 대규모 태양열 및 풍력 프로젝트에 투자함으로써 투자자들이 과도한 위험 부담 없이 연간 10~15%에 달하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태양열과 풍력 발전소의 경우, 공공사업체가 보통 20년 장기 계약을 맺고 전력을 매입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절한 프로젝트를 찾고, 이를 순조롭게 출범시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억만장자 펀드 매니저 스테이어Steyer 가 후원하는 스탠퍼드 대학교 스테이어-테일러 에너지 정책 및 재정 센터(theSteyer-Taylor Center for Energy Policy and Finance)의 상임이사 댄라이처Dan Reicher 는 “성공과 선행을 할 기회는 많지만, 실패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대규모 태양열과 풍력 프로젝트를 위해 개발 자금을 모으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라이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데에만 무려 2,000만~3,000만 달러가 필요하고, 이후에도 자금 지원에 10억 달러가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가족 자산 운용사들은 오바마 행정부로부터 두둑한 지원을 받을 것이다. 지난 2월 오바마 행정부는 다양한 개인 투자자들과 자선사업가들이 에너지부의 지원뿐만 아니라 연방 친환경 기술 R&D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 청정 에너지 투자 계획( the Clean EnergyInvestment Initiative)’이라 불리는이 프로그램은 부유한 투자자들을 도와 20억 달러를 모금하고, 새로운 친환경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다.

부유한 친환경 기술 투자자들이 늘고는 있지만,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건 여전히 매우 어려운 도전과제다. UN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the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에 따르면, 현재까지 알려진 석유와 가스, 석탄 매장량을 모두 태우면 가장 일반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3,863기가톤가량 배출된다. 과거로 시각을 바꾸면, 산업화 시대의 에너지 수요로 지난 150년간 이미 약 580기가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됐다. 최악의 기후변화를 피하기 위해선—금세기 동안 지구 온도 상승이 2°C를 넘어가지 않도록 하려면—2050년까지 전 세계는 알려진 연료 매장량의 3분의 1 이상을 태워서는 안 된다. 산업 분석가들은 이 연료를 이도 저도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좌초자산(stranded assets)’이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속도로 계속 화석 연료를 태우면, 2050년 훨씬 이전에 3분의 1을 모두 태우게 된다.

이것이 화석 연료 산업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비영리단체 카본트래커 이니셔티브Carbon Tracker Initiative 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상위 100대 석유·가스 상장 기업과 100대 석탄 상장 기업의 시장 가치가7조 달러를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 세계 상장 기업 시장 가치의약 12%에 해당하는 수치다. 사우디 아람코Saudi Aramco , 페트로차이나PetroChina , 러시아의 로스네프트 Rosneft 같은 국영 에너지 기업의자산을 제외하고도, 밝혀진 화석 연료 매장량의 총 시장 가치는 현재 27조 달러를 넘고 있다. 만약 IPCC의 말이 맞다면, 그리고 전 세계 화석 연료 공급량의 3분의 2가 그대로 매장돼 있어야 한다면, 무려 18조 달러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거대 석유업체들은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에너지 수요 연구를 위해 일단의 유능한 애널리스트들을 고용하고 있는 엑손 모빌은 2040년이 돼도 전 세계가 화석 연료에서 에너지 수요의75%를 충당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업계 애널리스트들은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현재 에너지 시스템이 얼마나 크게발전했는지, 저렴하고 믿을 수 있는 에너지에 전 세계 사람들이 얼마나 중독됐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하루에 9,300만 배럴의 석유를 태우고, 개도국에서도 석탄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신흥국들은 꾸준히 석탄공장을 짓고 있다. 저렴하고 믿을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함으로써, 빈곤 타파에 일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자원연구소(the World Resources Institute)에 따르면, 계획 단계에 있는 석탄 공장만 해도 거의 1,200개—대부분 개도국에 있다—에 이르고 있다.

현재 재생에너지 규모는 화석연료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예컨대 태양열과 풍력을 모두 합해도 미국 총 전력량의 5%도 안 되고, 선진바이오 연료가 전체 교통 연료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셸의 CEO 벤 반 뷰르덴Ben van Beurden 은 최근 연설에서 “에너지 수요의 증가—특히 중국과 인도에서—때문에 석유회사는 오랫동안 존속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좌초자산 이론은 에너지 수요 상승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 또, 세계 에너지 시스템에서 천연가스의 역할—특히 석유 화력 발전소의 대체 에너지로서의 역할—을 얕잡아봤다. 탄소포집과 저장 같은 혁신 기술의 잠재력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 화석 연료 산업을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들은 “태양열과 풍력발전 같은 기술은 석탄과 천연가스보다 비싸기 때문에, 잡 킬러(job killer)역할을 하게 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들은 탄소 생산량을 급격히 늘리지 않고선 경제를 성장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에너지기구(the International Energy Agency)에 따르면, 2014년 GDP는 3% 늘었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년도에 2.5% 상승한 후 2014년에는 보합세를 기록했다. 이산화탄소가 감소한 원인은 일부 유럽과 중국의 경제 둔화에 있었다. 그러나 상당 부분은 전 세계적으로 태양열과 풍력 발전소가 기록적으로 늘고, 자동차 연비 개선 및 적극적인 에너지 효율 프로그램을 시행한 덕분이었다. 오염을 심화하지 않고도, 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기후변화를 우려하는 부유한 투자자들 중 상당수는 화석연료 산업과 이 산업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이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18조 달러에 달하는 중요한 화석 연료는 결국 좌초자산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친환경 기술에 적극 투자하는 한 친환경주의 억만장자는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수익이 우리를 소외시키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투자자들이 거대 석유업체를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지 요인은 정치적 분위기의 변화다. 최근 많은 국가가 탄소 배출 제한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과 중국시진핑 주석이 온난화 가스 감축을 위한 합의에 도달한 것만 봐도 이를알 수 있다. 오는 12월에는 196개국이 파리에 모여, 교토 의정서(KyotoProtocol)를 대체할 새로운 기후변화 협정의 서명을 위한 준비 작업을 할것이다. 더 강력한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 마련은 각 국가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전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인 미국과 중국이참여하는 새로운 협정의 존재 자체만 해도 지구 온난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 의회는 기후변화에 대해 별달리 하는 일이 없다. 반면 오바마 행정부는 집행권(executive power)을 활용해 자동차 연비 기준을 급격히 강화하고, 미국 내 580여 개의 석탄 화력 발전소에 이산화탄소 배출 제한을 엄격히적용할 예정이다. 주 단위 조치도 하고 있다. 예컨대 최근 제리 브라운Jerry Brown 주지사는 2030년까지 캘리포니아 에너지 분야에서 재생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의 20%에서 50%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와 동시에, 일부 기관 투자자들도 화석연료 투자를 재고하고 있다. 록펠러 브라더스 펀드Rockefeller Brothers Fund 와 스탠퍼드 대학교도 석탄 투자를 철회하고 있다. 시와 주 단위 연금 펀드의 투자도 머지않아 끝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철회된 투자의 금액은 매우 적어 단기적으론 거대 석유업체나 석탄 기업에 이렇다 할 영향을 주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투자 철회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사실은 반(反)화석연료 기조가 득세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베이비 붐 세대가 기후 위기를 후대에 물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밀레니엄 세대 사이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화석연료 산업에 더 위협적인 존재는 ‘ 열대 우림 행동네트워크Rai nforest Action Network, RAN)’ 같은 환경 단체의 캠페인 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은행을 압박해 지구 온난화를 악화시키거나, 환경을 오염시키는 기업에 대출을 해주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3월 미국에서 7번째로 큰 은행인 PNC 파이낸셜은 애팔래치아Appalachia 산꼭대기에서 석탄을 캐는 광산 회사들에게 더는 자금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발표한바 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 , 시티그룹 Citigroup,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 , JP 모건 체이스 J.P. Morgan Chase , 웰스 파고Wells Fargo , 크레디트 스위스 Credit Suisse 같은 은행들도 이미이들 광산 기업에 자금 지원을 줄이기 시작했다. 스탠퍼드 대학처럼 기후변화를 우려하는 투자자들이 석탄 주식을 매도할 때, 기후변화를 나 몰라라 하는 누군가는 그 주식을 살 것이다. 그러나 은행이 프로젝트에 자금 지원을 거부하면, 산업에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기후변화를 우려하는 억만장자들에게 기득권 세력이 틀렸음을 증명할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가격과 효율성 면에서 화석 연료에 버금가는 청정에너지기술에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에너지를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다른 방법은 더 많은 최상위 부자들이 음지에서 나와, 자신들이 하는 일과 명분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세계 최고 부자들이 청정에너지 투자로 더 큰 부를 쌓으려 한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청정에너지 투자는 큰 인기를 얻게 될 것이다.


by BRIAN DUMAINE
Illustration by VLADIMIR SHELEST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