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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타는 영화&경제] (3)‘쇼핑걸’과 블랙프라이데이

백화점 점원인 여주인공 미라벨에게 백만장자인 레이가 다가왔다. /출처=네이버영화





#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에 빛과 그늘이…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10월1~14일)가 끝났다. 정부 주도 행사로 관심과 기대가 컸던 것 못지않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대규모 할인행사에 쇼핑객이 몰리면서 ‘한국판 블프’ 기간에 백화점과 대형마트들은 20%를 웃도는 놀라운 매출증대 효과를 거뒀다. 이 여세를 몰아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15~18일 별도의 ‘블프’ 행사까지 마련했다. 관제(官制) ‘블프’에서 민(民) 주도 ‘블프’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한국판 블프’엔 그늘도 있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중소상인들은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그나마 뜸했던 손님마저 뺏겼다고 울상이다. 백화점·대형마트에 입점한 상인들 또한 ‘강제할인’ 때문에 출혈이 크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영화 ‘쇼핑걸’을 보면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는 주인공 미라벨(클레어 데인즈)에게서 다양한 소비심리를 읽을 수 있다. 이 백화점에서 최고급 장갑을 파는 시골 출신 아가씨 미라벨은 상류층 사람들의 씀씀이를 보며 대리만족이나 하는 처지다. 갚을 길이 요원하기만 한 대학 학자금 대출금에 빠듯한 월급으로 그런 소비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돈 쓰는 일에 유능한 레이는 안타깝게도 사랑에는 불능에 가깝다. /출처=네이버영화



# 시골 출신 미라벨, 백만장자와 만나 단꿈을

그러던 중 백만장자 50대 이혼남 레이(스티브 마틴)가 그녀 앞에 나타난다. “내겐 돈으로 하는 일이 제일 쉽다”는 이 사나이는 연일 선물공세다. 그녀가 일하는 매장에서 판매하는 최고급 장갑은 물론 알마니 드레스에, 호화판 파티 초대에, 뉴욕행 항공티켓까지 선물한다. 미라벨의 해묵은 학자금 대출도 레이가 갚아준다. 그 뿐 아니라 백만장자 레이는 기호논리학자라는 품격있는 직업에 매너 또한 완벽한 수준이다. 이렇듯 멋진 레이를 만나면서 시골출신 처녀 미라벨은 단꿈에 젖는다. 돈과 지위와 사랑까지 한 손에 움켜줬으면 하는, 미혼 여성이라면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그런 꿈 말이다. 그러나 꿈은 이내 물거품이 되고 만다. 한 차례 이혼 경험이 있는 레이는 사랑 자체에 회의적이다. 미라벨과의 나이 차가 너무 부담스럽고 늘 미안하기만 하다. 안타깝게도 레이는 돈에 유능할지 몰라도 사랑엔 ‘불능’에 가까운 사람이었던 셈이다.

이 때 옛 남자친구 제레미(제이슨 슈월츠먼)가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미라벨에게 돌아온다. 말끔한 흰색 정장에 잘 빗어넘긴 헤어스타일, “주인님을 특별한 존재로 대해주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서 미안하다”는 사죄의 말까지 감동 그 자체다. 과거의 찌질남 제레미는 온데간데없다. 데이트를 하면서 여친 돈이나 빌리고 영화표 살 여력이 없어 밖에서 서성이게 만들었던 제레미였다. 심지어 잠자리에선 “콘돔인줄 알았는데 박하사탕을 잘못 샀네”라는 어처구니없는 멘트나 날리는 구제불능 수준이었다. 세상 어떤 여성이 이런 남성에게서 사랑을 느낄 수 있겠는가.



‘찌질남’ 제레미가 데이트 중에 돈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출처=네이버영화



# 정부 ‘한국판 블프’ 성공적이라고 자평

경제학에서 말하는 소비심리 중 하나로 ‘스놉(snob) 효과’라는 것이 있다. 명품 소비를 통해 자신을 일반 사람들과 구분 지으려는 과시적 소비행태다. 명품 소유를 통해 자신의 신분이 상승한 양 허위의식을 갖는다는 점에서 ‘속물 효과’로 지칭되기도 한다. 영화 속 미라벨이 백만장자가 선물한 명품 속에서 느꼈던 행복이 이와 유사한 것 아닐까. 반면 ‘한국판 블프’를 통해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매출증대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밴드웨건(bandwagon) 효과’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이 기간 국내 주요 백화점과 대형마트에는 파격적 할인 제품을 확보하려는 충동적 구매행렬이 줄을 이었고 유통업체들은 이에 힘입은 편승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판 블프’는 성공적인 편이다. 무엇보다 이 기간 백화점(24.7%), 온라인쇼핑몰(26.7%), 가전유통업체(18.7%) 등의 매출증가 효과가 상당하다. 그러나 시장의 체감은 여전히 싸늘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994개 소매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올해 10~12월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는 96으로 기준치(100)을 밑돌았다. 소비심리에 대한 정부와 시장의 체감에 차이가 이렇게 크다면 정부는 시장의 실상을 제대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난 제레미는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출처=네이버영화



# 경제의 주인은 시장과 국민이라는 자각 있어야

블랙프라이데이는 본래 1920년대 미국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세일시즌’이다. 미국에선 매년 추수감사절(11월 넷째 목요일) 다음날인 11월의 마지막 금요일이면 매장의 규모나 온·오프라인을 가릴 것 없이 전국 대부분의 상점들은 특가품이나 저가품을 사려는 소비자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에 비하면 미국을 본뜬 ‘한국판 블프’는 급조된 측면이 있는데다 관(官)주도라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수치에 고무된 정부는 ‘코리아 블프’를 연례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긍정적인 성과가 있기 바란다. 다만 꼭 유념했으면 하는 것은 ‘시장’을 중심에 둬야 한다는 점이다. 시장을 살리겠다고 만든 ‘한국판 블프’에 그늘이 있다면, 중소상인과 납품업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면 정부가 귀를 닫아선 곤란하다. 누가 뭐래도 경제의 주인은 시장이지 정부가 아니다. 정부는 국민과 시장의 대리인이지 주인이 아니라는 점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영화 ‘쇼핑걸’의 찌질남도 각성하고 뉘우치지 않았는가. “주인님을 특별한 존재로 대해주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서 미안하다”라고. /문성진기자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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