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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위안화 평가절하 지속 한국 경제의 환율 해법은?

[FORTUNE'S EXPERT] 윤창현의 '글로벌 전망대'


현재 일본과 중국은 자국 통화 가치 절하를 시행 중이다. 우리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켜지는 게 당연하다. 현재 우리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1990년대의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 1985년 엔화 절상을 통해 미국 무역적자를 해소하자는 ‘플라자 합의’ 시행 후 일본은 수출이 줄고 경기가 둔화되었다. 엔절하와 위안 절하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원화의 절하도 필요해 보인다.

얼마 전 세계적 신용평가사 S&P의 폴 시어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최근 중국의 경제 상황이 ‘1990년 대 일본’이 아니라 ‘1960년 대 일본’ 을 더 닮아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중국의 실물경기 둔화와 이로 인한 주식시장 급락이 1960년대 일본의 상황과 많이 흡사하다고 분석했다. 1960년 초반 일본에선 도쿄올림픽(1964년)을 앞두고 고속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 투자가 급증하고, 주택건설 붐이 일어나 가파른 두 자릿수 성장세가 나타났다. 기업 투자가 활발해지고 경기가 과열되자 일본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통화 긴축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 일본 증시는 1963년 초 급락세로 돌아섰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은행들을 통해 증시안정 기금을 조성했다. 이를 통해 시장 개입에 나서 주식시장을 부양하자증시가 다시 회복되었다. 금융시장이 안정되면서 1965년 5.82%까지 하락했던 성장률이 1966년부터 다시 두 자릿수로 돌아섰고, 주식시장도 대세상승 국면으로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금융시장을 안정시켜 시스템 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막고 실물경제도 회복시킬 수있었다.

S&P는 1960년대 일본의 경험을 중국에 비유하면서, 중국 증시 급락 이후 중국 정부 대응이 적절했고 실물위기로의 전이도 막아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반대의견도 많은 게 사실이다. 우선 1960년대 일본은 노령화되지 않았지만 지금 중국에선 상당 수준의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또 당시 일본 자본시장은 그다지 개방된 상태가 아니었고 세계화 흐름도 강하지 않아 독자적인 정책을 시행하기가 유리했지만, 중국은 지금 부동산 거품, 제조업 공급과잉, 정부부채 급증 등의 이유로 장기불황 가능성이 일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소수의견에 가깝다. 여전히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이 1960년대 일본을 닮았다면 우리는 1990년대의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1985년 ‘플라자 합의’가 커다란 역할을 했다. 30년 전 1985년 9월 22일 미국·일본·영국·독일·프랑스 5개국 재무장관들이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회동을 한 끝에 그 유명한 플라자 합의가 발표되었다. 뉴욕 플라자 호텔이 회담 장소로 이용됐기 때문에 호텔 이름이 역사적 합의의 이름이 된 것이었다. 핵심 내용은 엔화와 마르크화 절상을 통해 미국 무역적자를 해소하겠다는 것이었다.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가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제임스 베이커 미 재무장관이 중심이 되어 이 같은 조치를 기획하고 실행했다. 당시 미국 무역적자의 38%는 대일적자로 인한 것이었다. 이 조치가 발표된 후 엔화 가치는 수직 상승하기 시작해 1달러 당 240엔 하던 환율이 3년여에 걸쳐 거의 120엔까지 하락했고, 소위 엔고(円高)의 일본어 발음인 ‘엔다까’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환율로 인해 힘들어진 일본기업들은 달러 표시 가격을 올리기 시작하자 결국 수출이 줄고 경기가 둔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일본당국은 하는 수 없이 금리를 올리고 돈을 풀었다. 경기부양책이 시행된 것이었다. 문제는 이 돈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두 시장에 동시에 버블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빚내서 집 사고 주식을 사다가 버블이 터지니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모두 하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금융이 부실화 되면서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겪게 된 것이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플라자 합의가 초래한 엔고 국면이 우리에겐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일본 물건 값이 올라가자 한국 제품의 수출량이 늘기 시작했다. 중화학 공업을 육성해 일본과 비슷한 분야를 발전시킨 것이 이 시기에 주효하게 작용했다. 일본제품의 대체품 역할을 하면서 우리 제품의 수출이 늘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졌다. 1986년부터 본격적인 무역흑자를 내기 시작하더니 2,000달러 수준이었던 일인당 국민소득이 1995년 1만1,000 달러 수준까지 수직 상승해 한국경제의 기적이 실현되었다.

중국이 최근 위안화를 본격적으로 절하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통화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따라 세계 경제도 불안해지고 있다.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미국의 제이콥 루 재무장관은 중국의 지나친 위안화 절하를 비판하는 발언까지 했다. 물론 일본도 아베노믹스의 첫 번째 화살을 통해 엔저를 꾸준히 유도하고 있다. 엔저에 저위안화까지 가세한 1990년 대 중반 이후 우리는 외환위기를 겪은 바 있다. 현재 한국·중국·일본은 산업구조가 비슷한 상황이다. 혁신의 부재가 이어지면서 주요산업에서 포화상태가 나타나고 있다. 삼성이 앞서 가는 스마트폰 분야를 중국의 샤오미가 맹추격하는 모습에서 세 나라의 현실을 잘 볼 수 있다. 물론 뒤처지기는 했지만 소니도 다시 추격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곧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환경이 어려워지다 보니 한국 30대 그룹의 2014년 순익이 5년 전에 비해 반 토막이 나는 등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경우 한국 상장기업의 순이익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20% 가까이 감소했다.
엔 절하와 위안 절하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선 원화의 절하도 필요하다. 이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시장에서 원화 약세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지만, 이를 잘 유지해 통화전쟁에서 패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나아가 한중일 간 환율 공조체제를 구축해 근린궁핍화정책(다른 국가의 경제를 희생시켜, 즉 궁핍하게 만들어 자국의 경기회복을 도모하려는 경제정책으로, 세계경제가 전체적으로 침체돼 어려움을 겪을 때 흔히 행해진다. 예컨대 이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는 무역상대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줄이는 대신 자국의 수출량을 늘림으로써 자국의 경기를 부흥시키고자한다. 이를 위해 환율 인상·임금 인하·수출보조금 지급·관세율 인상 등의 수단을 사용한다)을 피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조치들을 통해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어내야 할 때이다.


윤창현 교수는 …
▲1960년 충북 청주▲1979년 대전고 ▲1984년 서울대 물리학과 ▲1986년 서울대 경제학과 ▲1993년 미 시카고 대 경제학박사 ▲1993~1994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 1995~2005년 명지대 경영무역학부 교수 ▲2005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2012년~2015 한국금융연구원장 ▲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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