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Barcelona는 ‘스마트한’ 미래 도시의 진열장이다. 이곳에선 시스코 Cisco와 마이크로소프트, IBM 같은 기술 대기업들이 쓰레기부터 교통, 셀카 등 모든 분야의 데이터를 추적해 정부예산 절감에 일조하며 큰 수익을 얻고있다. 하지만 모두가 새로운 도시환경에 만족하고 있는 건 아니다.
6월의 어느 저녁, 바르셀로나 하늘에는 여전히 해가 높이 떠 있었다. 그날 시스코의 남유럽 사업개발책임자 후안 블랑코 Juan Blanco는 도시의 중세 거리에 필자를 데리고 갔다. 골목은 구불구불했고, 거리 카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수세기 역사를 가진 엘 보른 El Born 재래시장의 자갈 광장으로 들어서자, 그는 “여기 뭐 특별한 게 있나 찾아봐요”라고 불쑥 말을 꺼냈다. 처음엔 눈에 띄는 걸 찾을 수 없었다. 한여름 정취가 느껴지는 전형적인 지중해 도시일 뿐, 특별한 건 없어 보였다. 고개를 들자 약 30피트 기둥에 붙어있는 볼록한 플라스틱 보호 장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각각의 장치에는 금속 상자가 몇 개씩 들어있었다. 나는 “저거 말이에요?”라고 그에게 물었다.
내 말이 맞았다. 이 상자들은 평범한 전기 측량기가 아니었다. 매우 섬세한 컴퓨터 시스템으로 소음, 교통, 공해, 군중, 심지어 거리에서 찍어 포스팅한 셀카의 숫자까지 측정할 수 있는 기기였다. 이는 바르셀로나의 미래이자, 어떤 면에선 우리 모두의 미래다. 이 구조물들은 사실 바르셀로나에서 볼 수 있는 ‘이례적인’ 것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아래를 내려다 보면 디지털 칩이 부착된 쓰레기통도 있고, 주차장 아스팔트 바닥에선 캔 음료 크기의 센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의 변화는 신중히 이뤄지고 발표도 잘되지 않기 때문에, 관찰력이 뛰어난 거주자들과 매년 여름 파스tapas *역주: 식사 전에 술과 곁들여 간단히 먹는 스페인 음식와 음악, 해변을 즐기러 스페인 제2 도시를 찾고 있는 수백만 관광객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의 비밀스러운 변화는 사실 여파도 크고, 잠재적인 범위도 매우 넓어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6월 말까지 바르셀로나의 스마트 시티업무를 총괄한 통신 엔지니어 호세프 라몬 페레르 Josép Ramon Ferrer는 “스마트폰 덕분에 지난 10년간 우리의 삶이 완전히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바르셀로나의 디지털 개혁 책임자였다. “지금까진 도시 관리가 별다른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 그러나 향후 10년 내에 이 도시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엿보고 싶다면, 인구 200만 명을 가진 우아하고도 경쾌한 바르셀로나부터 경험해보는 것이 좋다. 과거 바르셀로나는 화가 후안 미로JoanvvvMiró와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Antoni Gaudeí 같은 혁신적인 예술가들로 유명했다. 그러나 4년 만에 이 도시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혁신을 주도하게 됐다. 도시 집중화가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 지금, 21세기 도시의 청사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번 세기말이 되면 도시 거주자가 약 84%에 이를 것이라는 게 UN의 전망이다.
도시든 마을이든 현대인의 삶은 이미 엄청난 양의 데이터로 가득 차 있다. 파악하기조차 힘들 정도 영역도 광범위하다. 매초마다 10만 4,000건의 유튜브 비디오가 재생되고, 240만 건의 이메일이 전송되고 있다. 이 수치는 이 기사를 쓰고 있는 현재를 기준으로 한 것일 뿐, 그 속도는 앞으로 훨씬 더 빨라질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인터내셔널 데이터International Data Corp는 2020년까지 약 300억 개의 내장형 기기-만물 인터넷(Internet of Everything)-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고 관리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버스를 타는 것부터 냉장고를 채우고, 개를 산책시키고 정원에 물 주는 것까지 모든 활동이 여기에 포함된다.
도시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빠듯한 예산과 치솟는 지출에 골머리를 앓는 전 세계 공무원들은 비용을 절감하고 수십 년간 정체된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해 ‘데이터 쓰나미’에 주목하고 있다. 올해 바르셀로나를 세계 최고의 스마트 시티로 선정한 주피터 리서치 Juniper Research는 스마트 가로등이나 주차장, 그리고 휴지통 센서 같은 장치 덕분에 도시들이 2019년까지 연간 약 170억 달러의 에너지 예산을 절약할 것으로 추산했다. 주피터의 선임 연구원 슈테펜 소렐 Steffen Sorrell은 “스마트 시티 콘셉트는 아직 첫발도 떼지 않은 상황”이라며 “최종 단계에는 훨씬 더 큰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매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 McKinsey Global Institute는 지난 6월 보고서를 통해‘새로운 디지털 시스템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면, 도시들이2025년까지 서비스 비용을 연간 1조 7,000억 달러까지 절감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놀랄만한 비용 절감 예측에도, 금전적 효과는 아직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도시들은 계약에 서명하면서-이중 상당수는 아주 적은 비용을 투자했다-엄청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유럽 EU의 경우 실제 들어가는 비용은 숨긴 채 일부 도시의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위한 자금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미국 분석기업 내비건트 리서치 Navigant Research의 런던지사 연구소장 에릭 우즈 Eric Woods는 “이들 중 상당수는 공급업체나 R&D 자금으로 지원되는 파일럿 프로젝트”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폐기물 처리장에 센서를 부착하는 비용과 데이터를 수집하는 비용이 매우 저렴해지기 때문에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기본적으로 이 센서를 부착하게 될 것이다.”
도시 공무원들은 비용 절감 예측이 현실화되길 바라고 있다. 예를 들어, 보스턴은 교통과 주차, 그리고 에너지 사용 관찰을 위한 센서를 부착하고, 태양열 벤치를 통해 오염과 소음을 측정하고 있다. 런던은 서로 다른 공공사업 회사들이 같은 곳을 몇 번씩 파는 일이 없도록 지하 전선과 파이프의 3D 지도를 개발하고 있다. 연간 1만대의 선박이 드나드는 함부르크 항구는 디젤 가스를 뿜어대는 교통 체증을 줄이기 위해 동시 하역을 위한 적재시스템을 전산화했다.
스마트 시티 붐은 부유한 서구 국가에만 국한돼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 Narendra Modi는 지난해 선거 당시, 2022년까지 1조 달러를 투자해 100개 도시를 전산화하고 개량하겠다고 약속했다. 인도 정부는 지난 6월 기업들을 대상으로 경쟁을 통해 스마트 시티시스템의 주요 모델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당국의 ‘관심 요청(request for interest)’ 보고서에는 기술 회사들이 매력적으로 느낄만한 수치가 들어 있었다. 인도 정부는 2030년까지 인구의 40%인 약 5억 명이 도시에 거주할 것이라 추산하고, 그들에겐 최첨단 인프라가 절실히 필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도시가 주는 혜택은 분명해 보인다. 사람들은 저렴한 비용에 더 질서있고, 깨끗하고, 체계적인 서비스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신규 인프라를 구축하는 기술 회사들은 더 큰 혜택을 누릴 전망이다. 인프라 개발과 제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해온 IBM과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는 도시를 성장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다. 내비건트의 추산에 따르면, 기술 회사들은 2023년까지 스마트 시티 사업에 연간 275억 달러를투자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같은 상황은 시스코의 남유럽개발책임자 블랑코의 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전 세계에선 고대 도시 국가들이 대립했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19세기에는 제국들이, 20세기에는 국가들이 경쟁을 했다”며 “그러나 21세기에는 도시에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 노트를 한 장 찢더니 위로 쭉뻗은 사선 그래프를 그렸다.
블랑코는 “지난 20년간 시스코의 매출은 인터넷 사용 확대 추세와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라며 “이는 어려운 수학이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성장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스코가 2011년 바르셀로나에서 자사 아이디어를 처음 시험할 때만 해도 ‘스마트 시티’ 라는 단어는 생소한 용어였다. 시스코는 인천 송도-처음부터 최첨단 실험으로 설계된 한국의 비즈니스 도시다-에 많은 투자를 했다. 사람이 탈 때만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부터 다른 나라의 학교와 원격 접속할 수 있는 교실 등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센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러나 투자를 할 수 있는 신규 미개발 지역(Green field)은 제한돼 있었다. 시스코는 스마트 시티 사업을 키우기 위해 낡은 도시에도 시스템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대 로마부터 존재했던 바르셀로나는 이상적인 후보지였다. 시장 하비에르 트리아스 Xavier Trias-지난해 포춘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지도자 5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가 2011년 선거 당시 공공 서비스의 디지털화에 더 많이 의존하는 바르셀로나의 경제적 미래 청사진을 밝힌 바 있었다. 당시 스페인은 수십 년 만에 닥친 최악의 불황과 부채에 시달리고 있었다. 청년 4명중 1명이 실업상태일 정도였다. 스스로를 분노한 시민들이라는 뜻의 인디그나도스 indignados라 부른 수십만 명의 시위대들이 정기적으로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바리케이드를 불태우고 긴축 정책에 분노를 표하고 있었다.
지만 이 같은 상황은 기술 회사들과 무관한 문제였다. 바르셀로나에선 이미 신생기업들이 번창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에는 1992년 하계 올림픽 주최를 위해 버려진 섬유공장 지역을 ‘@22’라는 이름으로 재탄생 시킨 기술 허브가 존재하고 있었다. 현재 이곳에는 수십 개의 신생기업이 들어서 있고, 310제곱 마일 규모의 지역에 광섬유 케이블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다. 페레르에 따르면, 이 광섬유 케이블만으로 스마트 시티 프로그램의 초기 비용을 3억 유로에서 약 3,000만 유로로 절감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바르셀로나가 기술 대기업들에게 금광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기량이 뛰어난 바로셀로나 풋볼 클럽 Barcelona Football Club과, 매년 3월 무려 9만여 명의 기술회사 임원들과 기자들이 모여드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Mobile World Congress가 바로 그것이다. 블랑코는 “이 도시에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있다. 우리가 무엇을 개발하든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다른 도시처럼, 바르셀로나도 지난 수십 년간 무계획적으로 서비스를 늘려왔다. 카탈루니아 선진건축협회(Institution for Advanced Architecture of Catalonia) 회장 비센테 길리아트 Vicente Guillart는 “처음에는 스마트 시티 기술을 단지 기업들이 물건을 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회의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의 복잡한 서비스들을 연구하고, 트리아스시장 당시 최고 설계자로 계약하면서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전에는 도시의 구조가 각각 분리돼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조명은 교통과 분리돼 있었고, 교통은 수자원과 동 떨어져 있었다. 분야별로 각각 자체 예산과 자체 데이터, 자체 시각이 있었다.”
지하에선 낭비가 더 심했다. 블랑코는 “5년 전 바르셀로나의 터널에는 4~5개의 서로 다른 전화선들이 깔려 있었다”며 “이 광섬유 선들은 각각 용량의 약 5% 정도만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해결책은 단일 회사-스페인의 송신탑 운영기업 셀넥스 텔레콤 Cellnex Telecom이 낙찰됐다-가 이들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잔여 용량을 팔아 시의 매출을 올려주는 것이었다.
현재까지 배선을 다시 깐 곳은 바르셀로나의 일부 지역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시적인 성과가 이미 드러나고 있다. 휴지통이 얼마나 찼는지 센서로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쓰레기차가 바로 쓰레기 통을 비울 수 있다. 주차장 센서는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운전자들에게 어디에 빈 공간이 있는지 알려주고 있다. 그 결과 운전자들이 주차 공간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게 됐다. 또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기존 버스 노선을 효율적인 격자 형태로 바꿔, 4년 만에 버스 승객을 30%나 늘려놓았다. 현재 사람들은 전자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스케줄과 지역 명소를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론 지역 맞춤형 광고도 이 곳에서 볼 수 있게 된다.
바르셀로나 대로의 매끈한 신규 가로등도 심미적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안은 텅 비어있고, 광섬유 케이블이 위로 쭉 올라가 있다. 각각의 기둥에는 자체 IP 주소가 있어 통신 탑 역할을 해준다. 꼭대기에 있는 와이파이 라우터는 군중, 소음, 날씨 및 교통도 측정하고 있다. 술 취한 여행객 무리가 새벽 2시에 엘 보른 주민들을 깨워도(빈번히 들어오는 민원이다), 경찰에 신고할 필요가 없다. 경찰들이 이미 데시벨 수치를 정확히 꿰고 있기 때문에 즉각적인 처리가 가능해졌다.
이 기술들은 일단 설치만 되면 관리하기가 매우 편리하다. 어느 날 오후 셀넥스의 상업 전략 책임자 요르디 알빈야 Jordi Alviny?가 철저한 보안을 자랑하는 바르셀로나의 통제센터로 필자를 데리고 갔다. 훌륭한 전망을 자랑하는 이곳은 올림픽을 위해 건설된 노먼 포스터 Norman Foster 타워와 인접해있었다. 실내에는 반바지 차림에 스니커즈를 신은 약 10명의 엔지니어가 스크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거리 등이 꺼져있는지, 파이프가 새는지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신호음과 깜빡이를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나가는 길에 알빈야가 냉장고 크기의 상자를 힐끗 보며 “이 시의 모든 정책과 안보가 바로 이 안에 있다”고 설명했다.
바르셀로나 관리들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인터페이스로 도시 전체를 운영할 수 있는 운영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구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곧 퇴직을 앞둔 스마트 시티 책임자 페레르는 바르셀로나의 파세이지 데 그라시아 Passeig de Gr?cia 거리의 한 카페에서 아이폰6를 꺼내 어떻게 이 콘셉트를 생각해냈는지 필자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도시의 미래가 마치 스마트 폰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드웨어가 아무리 많아도 OS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200개의 플랫폼과 200명의 서비스 제공자만 있다면, 시스템은 엉망이 되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2012년 바르셀로나는 OS 개발을 위해 기술 회사들을 대상으로 입찰 공고를 냈다. 경쟁은 매우 치열했다. 몇 개월간 이어진 입찰에서 18개 회사가 경쟁했다. 페레르는 지난 5월 결국 엑센추어 Accenture와 지디에프 수에즈 GDF Suez, 그리고 셀넥스 Cellnex로 이뤄진 컨소시엄과 단 160만 달러에 서비스 구축 계약을 했다. 페레르는 이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기업 입장에선 전 세계 수많은 도시에 솔루션을 제공할 기회가 될것이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디지털 시스템으로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건 분명 논리적인 말이다. 그러나 스마트시티의 세계는 추상적인 예측으로 가득 차있고, 기술도 너무 새로운 것이라서 제시 가능한 구체적인 데이터가 없다.
시스코는 2025년까지 바르셀로나의 누적 경제 효과를 추가 관광 수익 8,640만 유로를 포함해 8억 3,200만 유로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 수치를 도출했는지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이 붙어 있지 않았다.
때문에 바르셀로나는 이제 막 시작된 이 변화의 실험실이 되고 있다. 시스코가 바르셀로나에 투자한 지 4년이 지난 지금, 블랑코는 발렌시아 Valencia 해변 아래에 위치한 그의 집과 바르셀로나를 수시로 오가며 수많은 시 공무원들과 만남을 갖고 있다. 이들은 이 스마트 시티 도입을 위해 뉴욕, 로스앤젤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 두바이, 카타르, 중국, 카자흐스탄 등 여러 지역에서 온 공무원들이다.
지난해만 해도 약 200여 개에 달하는 대표단이 이곳을 방문했다. 블랑코는 “굳이 바르셀로나를 통해 돈을 벌 필요는 없다”며 “우리는 다른 도시에서 수익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OS가 작동되고, 새로운 기술로 수집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에서 유의미한 내용이 도출되면, 앞으로 투자 기업들은 수십억 달러를 벌 수 있다. IP주소를 가진 와이파이 적용 가능한 가로등이 어떤 기능을 할지 잠시 생각해보라.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려준다)으로 올리는 페이스 북 게시물, 트위터 메시지 또는 신용카드 이용 횟수 뿐만 아니라 현금을 인출하고, 신발을 사고, 탄산음료를 마시고 박물관에 가는 것 등 모든 것들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셀넥스의 알빈야는 “유람선을 타고 오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이나 되는데, 그 중 상당수는 소득이 높은 미국인들”이라고 말했다.
나는 움직임을 추적당하는 걸 원치 않는다고 알빈야에게 말하자, 그는“그럼 현금을 사용하고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가라”고 말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알빈야는 결국 이 도시가 이용하게 될 ‘데이터 금광’을 묘사하며 “여행객들이 자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사진을 전송하지 않을 순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에서 언제 쇼핑했는지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느꼈듯이, 빅 브라더가 부활할 수 있다는 전망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지난해 열린 리우데자네이루 월드컵을 위해 IBM은 30여 개의 서비스 에이전시를 연결, 홍수와 산불, 그리고 여타 잠재적인 재난까지 모니터링할 수 있는 지휘본부를 세운 바 있다. 이 이야기는 처음엔 시민들에게 긍정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에두아르도 파에스 Eduardo Paes 시장이 “시 구석구석에서 하루 24시간 1주일 내내 시 구석구석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 후 상황이 달라졌다. 그의 말은 일부 주민들을 분노케 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지금까지 사람들의 분노를 잘 피해왔다. 그리고 2021년이 되면 이 도시는 역사상 가장 큰 데이터 허브를 구축할 것이다. 바르셀로나 풋볼클럽의 최신 구장이 그 역할을 할 것이다. 구단주 주제프 마리아 바르토메우 Josep Maria Bartomeu에 따르면, 네이마르 주니어 Neymar Jr.와 리오넬 메시 Lionel Messi 같은 스타플레이어가 소속된 이 팀은 매 게임마다 9만여 석의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 덕분에 매년 6억 유로의 매출을 거두고 있다. 앞으로 10만 5,000여 석 규모의 신규 경기장이 개장하면 팬들이 와이파이로 실시간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어 새로운 수입원이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54에이커 규모의 경기장을 둘러싼 울타리가 제거되면, 연간 170만여 명의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어 바르셀로나 중심부에 스마트 시티를 건설할 수 있다. 바르토메우는 “우리는 기술과 영구적인 관계를 맺을 것”이라며 “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 수집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9월 ‘ 바르셀로나에서 4일간 열린 연례 페스티벌에 참가한 200만 여 명의 방문객 중 일부의 지출을 분석해 달라’ 고 스페인의 빅데이터 신생기업 비스마르트 Bismart에 요청했다. 회사는 관광객 44만 8,000명의 신용카드 사용 횟수를 모니터링했다. 그 결과 흥미로는 사실이 드러났다. 비스마르트의 CEO 알베르트 이세른 Albert Isern은 “프랑스 사람들은 호텔에 묵기보단 야영을 하고, 영국 사람들은 돈을 쓰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마케팅 회사들은 여행객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진행해 이러한 사실을 알아냈을 것이다. 이세른은 “직접 조사로는 대개 데이터의 1%밖에 분석하지 못한다. 우리는 50%나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4년 동안 바르셀로나의 스마트 시티 프 로그램은 막을 수 없는 대세처럼 보였다. 그리고 5월 시민들은 트리아스 시장을 축출하고, 아다 콜라우 Ada Colau를 차기 시장으로 선출했다. 그녀는 전임자와 거의 정반대였다. 올해 41세인 아다 콜라우는 친기업 성향의 트리아스보다 스물 여덟 살이나 어렸다. 분노한 시민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해 유명세를 얻은 인물이었다. 그녀는 아파트 강제퇴거 시위 기간에 몇 번이나 체포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바르셀로나를 집어 삼킬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주택지구 고급화와 관광을 억제하겠다고 약속도 했다.
아다 콜라우는 지나치게 기업과 결탁한 트리아스 시정부가 바르셀로나를 기술 회사를 유인하는 매력적인 도시로 광고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한 덕분에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녀는 4월 한 기자에게 “우리는 단지 ‘ 스마트 시티’ 라는 TV 광고를 넘어, 진정으로 신기술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필자가 6월 중순 콜라우 취임 다음 날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땐 스마트 시티 브랜드가 한풀 꺾였다는 사실이 분명해 보였다. 취임 한 달간 콜라우는 바르셀로나의 2026 동계 올림픽 개최국 입찰을 취소하고, 채무 불이행자들을 퇴거시키는 은행과는 함께 일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다. 비스마르트의 CEO 이세른은 “우리는 빈 아파트를 분석하는 것 같은 사회적 문제로 관심을 돌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데이터는 칼과 같다”며 “음식을 자를 때도 쓸수 있고, 사람을 죽이는 데도 쓸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까지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스마트 시티 기술이 어떤 칼이 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아침 콜라우를 회의장 밖에서 만났을 때, 그녀는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연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전날 밤 바르셀로나의 부시장 헤라르도 피사렐로 Gerardo Pisarello는 자신들이 축출한 스마트 시티 옹호자들과는 매우 다른 관점에서 새 정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스마트한 시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단순한 스마트 시티 차원을 넘어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논하는 대화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스마트 시티’다.”
바르셀로나의 정치적 변혁은 도시 디지털화에 대한 모든 정치인들의 생각이 스마트 시티 신봉자들과 같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지금처럼 자금부족 문제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비단 바르셀로나 뿐만이 아니다. 인도 역시 모디 총리의 스마트 시티가 가난한 사람을 배제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다. 런던 시민들도 세금 낭비라며 일부 디지털 개혁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스마트 시티 기술은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물론 대규모 프로젝트가 성공할 것인지 시간을 두고 지켜보기 전까진 불가능하다). 내비건트의 우즈는 “수요는 분명히 있다”며 “그러나 분명치 않은 것은 도시들이 어떻게 이 솔루션을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어떻게 자금을 충당할지 밝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르셀로나 신임 시장이 시계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때가 너무 늦은 듯하다. 많은 스마트 시티 프로그램이 이미 진행 단계에 와 있기 때문이다. 당면 과제는 이를 통해 수익과 사회적 선의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느냐 여부다. 건축가 길리아트는 “만물 인터넷은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질문은 ‘누가 그것을 지배할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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