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힐 SC은행장은 잘 알려진 '지한파(知韓波)'다. 이를 잘 드러내는 게 그의 한국어 실력이다. 힐 행장은 은행 행사에서 10여분간 한국어로 연설할 정도의 한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다. 매일 같이 한국어 실력은 연마한다. 그의 아내도 실력이 뒤지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최근 한국어 이름이 생겼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달 29일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을 비롯한 14개 은행장들이 저녁 모임을 가졌다. 매월 열리는 은행연합회 이사회를 마치고 가진 정기 모임이었다. 이날은 모임 최초로 지방은행장들도 참석해 자리의 의미가 더했다.
이날 간사를 맡은 사람은 조준희 기업은행장. 분위기가 무르익자 조 행장은 힐 행장에게 한국어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건의했다. 조 행장이 제시한 이름은 '구제일'. 성은 힐(Hill)이란 이름에서 그대로 따왔다. 언덕이라는 의미의 'Hill'을 한자 언덕구(丘)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름인 제일은 SC은행의 옛 행명인 제일을 따왔다. 과거 국내 은행산업에서 중요한 입지를 구축했던 제일은행의 영광을 잊지 말라는 의미가 담겼다. '구제일'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탄생했다.
조 행장이 뜬금없이 힐 행장에게 새로운 이름을 선사한 것은 힐 행장이 지금까지 국내에서 활동했던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들과 달리 한국문화 수용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높이 샀기 때문이다.
새로운 한국 이름을 선물 받은 구제일 행장도 즐거운 마음으로 이름을 받아들였다는 후문이다.
행사에 참가한 한 시중은행장은 "힐 행장은 현지화에 좀 더 노력을 하겠다는 말로 화답했는데 자칫하면 딱딱해질 수 있는 자리가 좀 더 유연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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