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들은 당초 올 하반기에는 실적이 다소 호전될 것으로 보았다. 기준금리가 올라가고 상반기까지 옥죄었던 부실 여신의 부담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도리어 상황은 거꾸로 변하고 있다. 하반기 호전을 점쳤던 요인들이 정반대 상황으로 바뀐 셈이다.
은행 실적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최근 동부 사태 등으로 인한 대손충당금 적립과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돌발 변수로 부상하면서부터다. 특히 동부의 유동성 위기가 동부제철의 자율협약으로 일단락되지 않고 다른 계열사로 확산될 경우 은행의 충당금 규모가 최대 2조원을 넘을 수 있어 충당금 쇼크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금융계는 지난해보다는 사정이 나을 것으로 보면서도 기업 여신의 부실 전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역대 최저치 수준으로 떨어진 예대마진의 추가 하락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만약 기준 금리 인하로 시장금리가 더 내리면 금리에 민감한 대출 자산이 많은 은행일수록 마진 악화 폭이 커진다.
금융계의 한 고위 인사는 "충당금이나 금리 이슈 모두 여파를 예단하기 힘들다"며 "6월 초만 해도 올 하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나아질 것으로 봤는데 이제는 전망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기업여신, 하반기 지뢰밭 되나=이자이익이 감소하는 마당에 충당금은 순익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당장 자율협약에 들어가는 동부제철의 은행권 익스포저만 2조6,000억원에 달해 은행들은 5,000억원가량의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산업은행이 2,000억원으로 가장 크고 다른 은행도 수백억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4분기부터 실적에 악영향이 예상되지만 문제는 하반기다.
동부CNI 등 다른 제조 계열사가 법정관리 등으로 내몰리거나 재무구조개선약정 기업 중에 추가로 부실이 현실화하는 기업이 발생할 경우 충당금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STX·쌍용·팬택 사태 등으로 충당금 폭탄을 맞았던 지난해에 버금가는 사태가 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은행 간 희비도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금융 부실이 상대적으로 덜한 신한은행의 독주체제가 더 굳어지는 반면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을 비롯해 지난해 대규모 클린화 작업에 나섰던 우리은행, 동부 여신이 많은 농협 등은 부진의 늪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한 시중은행장은 "전반적으로는 올해가 지난해보다 낫겠지만 동부 사태 향방 등에 따라 실적 예측치가 크게 나빠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금리 인하되면 실적 주름살 깊어진다=서진원 신한은행장은 1일 조회사에서 유동성 핵심예금 증대와 투자상품외환파생 등 비이자이익 확대를,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중소기업금융의 지배력 강화를 강조했다.
은행 이익의 90%를 차지하는 예대마진 악화에서 오는 충격을 이겨내자는 주문인 셈. 하지만 정책당국이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다.
실제 대부분의 은행은 기준금리가 내릴 경우 기준금리 변화를 반영해야 하는 부채(예금)보다 대출 자산이 10%가량 크다. 금리가 내릴 경우 마진이 더 나빠진다는 뜻이다. 정부 규제 등으로 대출 금리마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아져 부담이 크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대출금리가 빠지면서 조달금리도 같이 낮아져 예대금리 축소 폭이 생각만큼 크지는 않다"면서도 "금리가 추가로 내려도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만큼 금리 인하가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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