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로 소비자들에게 외면받던 국내 중고차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기업 계열사, 렌터카, 수입차 업체들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면서 중고차 시장이 연간 30조원 규모로 커져 산업의 틀을 갖춰 나가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산업화가 진전될수록 그동안 중고차 시장의 성장을 가로 막았던 정보 비대칭성 문제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고차 시장이 과거 소비자를 속인 매매가 빈번했던 레몬마켓(저급품이 유통되는 시장)에서 우량의 제품과 서비스가 거래되는 피치 마켓으로 바뀌는 것이다. 중고차 산업의 성장성에 주목하고 관련 사업을 영위하는 종목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중고차 거래 건수는 338만대로 신차 등록대수(150만대)의 2.2배수에 이른다. 최근 5년 간 연평균 14% 늘어날 정도로 증가 속도가 빠르다. 시장 규모도 커 평균 중고차 판매단가가 900만 원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연간 32조 원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시장 규모에 비해 현저히 낮은 산업화 수준에 주목하고 있다.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딜러 중 가장 많은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SK엔카가 1%대에 불과하다. 중고차 유통시장에서 경매장을 통한 거래 비중 역시 3%로 일본(60%), 미국(25%) 등 선진 시장에 비해 매우 낮다. 시장 규모에 비해 산업화 정도가 떨어져 있다는 얘기다. 이는 반대로 산업화가 진전될수록 시장에 진입한 기업과 주주의 가치가 추가로 상승할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유럽·미국 등 선진국의 중고차 시장이 신차 대비 3~4배 규모까지 커진 사례를 비춰보면 앞으로 국내 중고차 시장의 추가 성장 여력은 충분하다.
그동안 중고차 시장의 성장을 막던 정보 비대칭성이 줄고 있다는 점도 호재다. 과거 중고차 시장은 대표적인 레몬마켓이었다. 레몬시장은 경제학에서 재화나 서비스의 품질을 구매자가 알 수 없을 때 결국 불량품만이 유통되는 시장을 일컫는데 국내 중고차 시장이 그랬다. 하지만 SK C&C, 현대글로비스(오토옥션), 현대캐피탈(오토인사이드), 동화그룹(엠파크) 등 대기업 계열사들이 온라인, 경매장, 매매단지 등 중고차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정보 비대칭성 문제가 점차 해소되고 있다. 최종경 KTB 투자증권 연구원은 "SK엔카 등의 성장은 차량 진단 및 수리 보증을 통한 온·오프라인 매장 운영 등을 통해 판매자와 구매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줄이고 중고차 시장의 합리적인 가격 형성을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완성차 품질이 향상되면서 중고차의 품질도 개선됐고, 수입차 비중이 늘면서 중고차 평균 판매가격이 오르는 점도 중고차 시장의 성장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경기 불황이 길어지면서 중고차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중고차 시장의 추세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관련 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SK엔카가 대표적이다. 국내 최대 온라인 중고차 매매 사이트인 SK엔카는 대기업 계열사라는 점에서 브랜드 파워와 자본력을 가지고 있어 중고차 조달에 상대적 강점을 갖고 있다. SK엔카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SK C&C는 올 1·4분기에 매출액 5,238억원을 기록했는데 엔카 등 비IT 사업 분야에서만 전체 매출액의 절반(40.7%)에 가까운 2,133억원을 기록했다. 수입차와 관련된 모든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도이치모터스도 최근 중고차(BPS)·애프터서비스(AS) 부문이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아직까진 신차 판매 부문이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성장률만 놓고 보면 중고차 부문이 압도적이다. 올 1분기 BPS부문에서 매출액은 전년동기 대비 52%, 순이익은 84% 늘어 신차판매부문 성장률(16%)을 크게 앞섰다. 렌터카 업체인 AJ렌터카도 주목해 볼만하다. AJ렌터카는 장기렌트 계약이 만료된 차량의 중고차 매각 뿐 아니라 ▦연결 종속자회사 AJ셀카의 B2C 중고차매입을 통한 중고차 매매 ▦계열사 서울자동차경매장을 통한 중고차매매 등 중고차 매매에 관련된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최민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SK엔카, AJ셀카 등 인지도 있는 업체들이 중고차 매입 사업에 진출하면서 중고차 유통 생태계가 자본력과 인지도 있는 업체 위주로 재편될 것"이라면서 "소비자 입장에선 보다 신뢰성 있는 좋은 가격에 제품을 사고 팔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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