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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수출 금지 족쇄에서 풀려난 일본의 소류급 잠수함이 쾌속 순항하고 있다. 기준배수량 4,000톤급으로 재래식 동력을 사용하는 잠수함으로는 세계 최대인 소류급 6척을 인도 해군이 수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지난달 말 밝혔다. 호주가 동급 잠수함 10척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인도까지 수입 대열에 포함되면 전 세계의 대형 재래식 잠수함은 일본제로 사실상 천하통일을 앞두고 있다.
서방진영 잠수함 시장의 주종은 1,800톤급 이하 중형 잠수함. 독일과 프랑스·스웨덴이 각축을 벌여 독일이 석권해왔으나 일본의 도전에 부닥쳤다. 다른 국가들과 달리 40여년 전부터 3,000톤급 이상 재래식 잠수함의 건조·운영 노하우를 쌓은 일본에 맞서기 위해 독일은 4,000톤이 넘는 216급 건조를 추진하고 있으나 설계도에 머무는 수준이다.
갑작스레 대형 재래식 잠수함 시장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는 것은 지역 패권의 변화 때문이다. 남태평양의 드넓은 대양이 작전해역인 호주는 스웨덴의 기술을 이용해 3.500톤급 콜린스 잠수함 6척을 자국에서 건조, 운용하고 있지만 심각한 소음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뒤부터는 '일본제 잠수함밖에 없다'며 방향을 틀고 있다. 미국과 일본·호주를 연결하는 3각 동맹도 호주의 일제 잠수함 도입을 부추기고 있다.
급신장한 경제력으로 지역 맹주 위치를 굳혀가는 인도는 공격용 잠수함대의 중추로 새로운 대형 재래식 잠수함을 물색 중이다. 러시아제 아쿨라급(1만2,770톤) 공격용 핵잠수함(임대)에 6,000톤급 국산 아리한트(1척 완공, 2척 건조 중, 1척 계획) 전략원잠을 보유한 인도는 러시아로부터 면허생산한 킬로급(3,076톤) 10척의 성능이 여의치 않다는 판단 아래 일본제 소류급 6척의 도입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변수도 없지 않다. 우선 호주가 국내 조선업계의 반발과 일본의 군수산업 발전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중국의 압력으로 구매선을 독일로 돌릴 가능성이 있다. 인도 역시 중국을 견제하려고 일본제 잠수함 카드를 만지작거렸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소류급 잠수함이 출력이 강하고 충전시간이 짧은 리튬이온전지 탑재 실험에 성공할 경우 경쟁력이 배가될 수 있다는 점 역시 판세를 굳힐 변수로 꼽힌다.
한국은 걸음마도 못 뗀 수준이다. 지난해 11월 겨우 3,000톤급 장보고Ⅲ 건조를 위한 선재 절단식을 가졌다. 장보고Ⅲ 잠수함의 성능이 기대만큼 우수한 것으로 판명 나 수출경쟁력을 갖추려면 적어도 실전배치(2023년) 이후 4~5년이 더 필요하다. 리튬이온전지가 탑재될 예정인 장보고Ⅲ Batch Ⅱ는 일러야 오는 2030년께나 성능 검증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건조기술이 일본에 비해 15년은 뒤졌다는 얘기다. 운용 노하우는 더 큰 격차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나 빠른 시일 안에 격차를 줄일 수 있느냐가 산업기술과 해양방위의 관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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