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C는 미국 대통령 직속 준사법 독립기관으로 주로 특허 침해와 반덤핑 규제 등 국제적인 통상분쟁을 다룬다. 조사 결과에 따라 해당 제품의 관세율을 인상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하며 사안에 따라서는 수입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미국 대통령이 최종 재가를 맡기 때문에 특허침해 여부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연방법원의 판결에 비해 영향력과 파급력이 훨씬 크다.
ITC가 이번에 재심의를 내리지 않았다면 삼성전자는 내년 1월 14일로 예정된 최종 판결에서도 애플에 패소할 가능성이 높았다. 특허 침해뿐만 아니라 무역 협상까지 다루는 ITC의 특성상 통상 예비 판결이 최종 판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삼성전자는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전문가들은 ITC가 재심의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부담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지난 6월 ITC에 각각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ITC는 9월 내놓은 예비 판결에서 애플이 삼성전자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한 반면 10월에는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 4건을 침해했다고 밝혀 형평성 문제가 불거졌다. 유럽과 한국, 일본 등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판결이 나왔지만 유독 미국에서만 애플에 유리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로서는 일단 유리한 고지를 잡았지만 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르다. 이번 사안 외에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결한 예비 판결에 대해서도 양사 모두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재심사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ITC는 이 사안에 대해서도 재심사 여부를 검토한 뒤 조만간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정부가 다시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도 삼성전자에게는 부담이다. 잇따른 재정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제조업 중심의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초기부터 중점을 뒀던 특허권 및 지적재산권 법률 개정이 한층 탄력을 받고 있다는 점도 ITC의 판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최동석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시장조사실장은 "최근 지속되는 경기침체로 인해로 미국 내에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높다"며 "오바마 2기 출범 후 미국의 통상정책이 보호무역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송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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