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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시장과 인간

얼마전에 한 금융기관 지점장이 객사를 했다. 이 사람도 예외없는 은행 퇴출자였다. 구조조정이란 큰 물결에 휩쓸려 쫓겨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퇴직금이 있어 생활에 즉각적인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장년의 나이에 있는 돈 곶감 꼬치 빼먹듯 할 수도 없고 백수신세로 빈둥거릴수도 없어 작은 사업을 벌렸다.그러나 때가 때인지라 곧 빚더미 위에 올라 앉게 되었고 빚쟁이들에게 쫓기다 못해 가출을 해 버렸다. 어제의 은행지점장이 하루 아침에 노숙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절망과 좌절과 무력감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그는 분신자살이라는 길을 택했다. 졸지에 비극을 당한 그의 가정은 쉬쉬하며 장례를 치렀다. 그냥 밖에 나가 객사를 한 것으로 하기로 해 신문에 대서특필 될 수도 있는 이 사건은 그냥 한 가족의 비극사로 매몰되었다. 하기야 IMF태풍 이후 일어난 「퇴출 경제」에서 이런 사건이 신문 머리를 장식하기를 바라는 것 조차 감상적 사치에 속하는 일일지 모르겠다. 희생과 고통은 당연히 치러야 할 일로 치부되고 있는 때다. 이것이 냉정한 「시장경제의 실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장에는 인간의 짙은 냄새가 있다. 수많은 상품을 사고 파는 치열한 경쟁 속에 삶의 숨결이 어울린다. 그것이 시장의 원초적 모습이다. 그런데 지금 그 「시장경제」로 가는 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퇴직애사가 줄을 잇는다. 구조조정으로 「경세」의 지략은 만발하지만 「제민」의 길은 어둡다. 「빈부의 양극화」가 가속되고 있다고도 한다. 있는 사람은 고금리 덕에 오히려 재산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나마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은 봉급생활자도 감봉으로 저소득층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 나라 경제의 주체는 정부, 기업, 가계로 이루어진다. 다 고통을 받고 있지만 생사의 위기 속에 있는 것은 바로 200만의 「퇴출가계」이다. 그들은 이미 시장경제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합리성은 살아나고 있는데 인간의 그림자는 희미해지고 있다. 정부도 기업도 지금 바쁘다. 자르고 줄이고 합치는 구조조정에 열심이다. 시장의 기둥과 얼개를 새로 짜야한다는 시대적 합의를 실천하기에 몰두한다. 어차피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다. 한 마디 말이 떠 오른다. 무릇 경제를 다루는 자세는 「냉철한 두뇌와 따뜻한 가슴」이라고 한 피구교수의 말이다. 냉철하게 「시장경제」를 추구해 가는 개혁그룹들이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 이 작업이 궁긍적으로는 사람의 문제를 염두에 둔 것인지 궁금하다. /孫光植(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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